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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금광산악회 경인년산행을 마치고
(백호(白虎)의 해를 보내고 새해를 기대하면서)
어제 하루 종일, 그리고 오늘 새벽까지 내린 폭설로 인해 강천산등산로는 폐쇄되었다.
山은 올라 갈수도 없었지만 오르는 사람도 없었다.
공원관리소에서는 미니포크레인을 동원해 주차장에서 고찰(古刹) 강천寺까지 사찰길만
겨우 제설작업을 해놓았을 뿐이다.
제설작업을 했다고 해도 길은 그대로 하얀 눈길이었으며 우리는 그런 눈 위에 발자국을
만들며 걸어갔다.
이따금씩 바람에 날리는 눈꽃이 안개처럼 머리위로 쏟아지는 강천산의 雪景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온통 은빛의 세상, 말라죽었던 나뭇가지 위에는 새하얀 눈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부처가 雪山에서 가부좌를 하고 수도했던 까닭을 알만도 하다.
오늘은 동짓달스무엿새,
양력으로는 2010년 경인년 마지막 날이며 금광산악회 送年산행일이다.
“묵은해니 새해니 분별하지 말게 / 겨울 가고 봄 오니 해 바뀐 듯하지만 /
보게나, 저 하늘이 달라졌는가? / 우리가 어리석어 꿈속에 사네,”
영광불갑사에서 출가한 학명선사의 글이란다.
잠시 그런 눈길을 걸으면서 금광산악회의 지나온 경인년 한 해를 생각해보았다.
올 첫 산행은 경남 의령군 자굴山이었으나,
강추위와 폭설을 걱정해서 산행地를 변경하고 가천마을 다랑이 논으로 유명한 따뜻한
남해의 응봉, 설흘山을 다녀왔으며,
가섭존자가 바리때를 받쳐 들고 있는 형상을 한 통영의 벽방산을 다녀오기도 했다.
연중 가장 춥다는 대한(大寒)날에 겨울비가 내렸던 완도 상황峰산행,
유난히도 춥고 눈이 많았던 겨울날씨가 봄날같이 따뜻하게 느껴졌던 날이기도 했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이라 봄이 시작되는 날,
원불교영산성지가 있는 영광 구수山도 다녀왔다.
전남 영암에서(2월 5일)우중(雨中)에 시산제를 모셨다는데 회원들의 정성이 크게 山神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못했던 탓일까?
경남고성의 적석山을 산행하던 날에는 비를 맞으며 안개 속에 갇힌 산행을 했는데
짙은 물안개로 가시거리가 50m도 안 되는 바윗길을 엉금엉금 거북이걸음을 걸었던
생각이 난다.
세월은 참 빠르다. 벌써 3월도 중순이 되었다.
전국에 때늦은 큰 눈이 내렸고 기온까지 뚝 떨어져 꽃샘추위를 실감케 하던 날,
전북 완주군에 있는 송광寺 뒷산인 종남산에서 서방山 연봉을 눈길산행 했다.
새하얀 봄, 철없는 폭설로 겨울잠에서 깨어났던 개구리들이 얼마나 기절초풍했을까?
무소유의 삶을 설파하고 실천해온 법정스님이 성북구 길상사에서 세수78세, 법랍56세로
입적을 하셨다(3월 11일).
“살아있는 모든 것은 때가되면 그 생을 마감한다.
이것은 그 누구도 어길 수 없는 생명의 질서이며 삶의 신비이다.
만약 삶에 죽음이 없다면 삶은 그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법정스님 말씀에서)
3월은 변덕이 죽 끓듯 한 계절이 아닌가 싶었다.
때늦은 눈이 내렸다하면 폭설이었고,
기온은 갑자기 곤두박질 떨어져 겨울옷과 봄옷이 서로 갈피를 못 잡고 장롱 속을
왔다 갔다 “아이고 숨차죽겠네”하고 투정을 부리는,
봄날 같지 않는 봄날에, 비도 오고 바람도 불고 저 할 것 다하면서도 그 틈새를 비집고
남도의 꽃들은 화려한 봄날의 향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배를 타고 통영의 욕지面 연화島를 다녀왔고, 광양의 쫓비山-갈미峰을 산행하던 날에는
광양매화문화축제를 구경하고 돌아오면서 금광회원인 나 봉금여사고희연을 회원 모두가
조선컨벤션센터행사장에 참석해서 축하해주었다.
“늦은 봄 시린 바람 싫어 / 섬진강변 돌아오는 날 / 시든 가지에 /
매화꽃 하나 활짝 피어있었네 / 만첩紅梅 붉은 꽃 /
꽃은 피어있어 / 그 향내 / 은은하게 퍼져있었네”
(팡팡 “봉금이 매씨”에서)
북한의 소행으로 밝혀진 1200톤급 초계함 천안艦 피침사건이 일어났다(3월 26일).
46명의 젊은 꽃들이 조국을 위해 고귀한 희생을 한 사건이었다.
날씨 때문에 가지 못했던 경남 의령의 자굴山도,
세상이 온통 꽃 천지인 경남 거제시 대금산 봄나들이도 다녀왔다.
영암 월출산의 주지峰-문필峰산행,
충남의 알프스라는 칠갑산과 천창湖 207m의 출렁다리,
山城과 岩릉이 조화를 이룬 합천군 대병3산 악견山-의룡山을 4월중에 산행을 했다.
“맞다! / 4월이 이렇게 춥다는 것은 / 오백년 주기로 찾아온다는 /
소빙하기의 징후가 아닐까? /
사랑과 희열, 희망 / 그리고 숭고한 정신으로 / 4월은 매 마른 가지에서 /
꽃말을 피어낸다.” (팡팡 “4월의 한파”에서)
단군 이래 최대의 토목공사라는 “모세의 기적” 부안의 새만금방조제를 신나게 달렸다.
철쭉의 계절에는 합천호의 수중梅라는 황매산을,
부처님 오신 날, 전국제일의 철쭉군락지 남원의 바래峰을 다녀왔었다.
“무척 힘이 들어 무척山이라 안 캅니까” 경남 양산과 김해시에 걸쳐있는 무척山을
산행하던 날,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대통령생가를 들렸었는데 서거 1주기추모행사가 열린지 닷새가
지났는데도 사람들의 발길이 끝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왜? 어린 단종이 생각났을까.
경기오악의 하나인 도심 속 대자연 풍요로운 관악산을 산행하는 날에는 나 승기회장님이
산에서 넘어지는 안전사고가 발생해 응급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해안 암벽의 절경인 소매물도, 등대섬을 다녀오던 날은
여름이 소리 소문 없이 우리 곁으로 바싹 다가와 겁을 주고 있었다.
미륵신앙의 꿈, 미륵산의 갈증 나던 무더위산행,
충남 금산의 오염되지 않은 山, 진악山을 산행하는 날에는 인삼시장에도 들렸다.
이상섭회원이 제주도여행에 관한 설명이 있었다.
“바닷가 여름 태양이 너무나 눈부시기 때문에 사람을 죽였습니다.”
1942년에 발표한 프랑스작가 알베르카뮈의 소설(이방인)에서 나온 말이다.
여름장마가 시작되었다는데 비다운 비를 구경할 수가 없었는데,
가야山脈의 말단峰인 경남 거창의 오도山에서 제대로 임자를 만났다.
산행에 참여한 사람들은 남녀노소 귀천을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생쥐신세가 되었다.
중국대륙이 찜통더위 속에 빠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여름더위가 시작된다는 소서(小暑)가 지나더니 광주지방은 낮 최고기온이 섭씨33도나
되는 무더운 날씨가 며칠째 계속되고 있었다.
너무나 더워 “풍덩” 빠져버리고 싶은 심정으로 통영시 사랑面 하島에 있는 칠현山을
찾았으나 마른장마속 무더위가 우리를 몹시 괴롭혔다.
그렇다, 더위는 깊은 계곡이나 바다에서 피서를 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한기(寒氣)를 느끼게 하는 백무동 한신계곡에서 더위를 날려 보냈고,
변山의 모퉁이를 돌아 고사포해수욕장에서도 하루를 보냈으며,
신안군 지도에 있는 우전해수욕장에도 다녀왔으나,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무더위가
다시 계속될 거라는 기상청예보처럼,
광주는 찌는 무더위와 열대야 속에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더위, 넌 이젠 죽었어! 대성동계곡에서 보자”던 자신만만했던 내 호기는 비 때문에
빈말이 되어버렸고,
금산의 성치山 12폭포를 다녀오던 날에는 더위 먹은 산행버스가 잠시 갈 길을 잃고
흑삼판촉회사직원의 감언이설에 걸려들어 회원들이 졸지에 천 여 만원어치의 흑삼을
사는 웃지 못 할 촌극도 있었으니, 누구를 탓하랴, 모두가 더위 먹은 탓이지.
“오 유월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데, 내가 걸렸습니다.”
감기에 걸리신 우리회장님 인사말씀도 있고 해서,
충남 금산의 남이자연휴양림과 선야峰산행을하고 늦게 인삼시장에 들리기도 했다.
태풍 “곤 파스”는 장대비와 바람과 가을을 몰고 왔다가 가을만 남기고 떠나갔다.
지리산대성계곡 의신에서 음양수까지 계곡산행을 했는데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는 형광의 빛을 띠며 눈을 부시게 했다.
“산은 오는 사람의 눈높이만큼 자기를 들어낸다.”고 하던 늙은 노모를 모시고 열심히
사는 “지리산 대성 골 그 집”의 젊은 부부가 눈에 선하다.
요즘 우리사회의 중요한 화두(話頭)로 공정(公正)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명박대통령이 집권후반기 국정과제로 제시한 “공정한 사회”가 정치권과 관가를
비롯해 우리사회의 전반에 걸쳐 지진과 해일처럼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거제 망山을 얕보고 올라갔다가 여름처럼 무덥고 습한 날씨에다 거친 바윗길에 혼이
나서 울고 싶은 마음으로 내려오기도 했다.
“임 떠나던 날 절규하는 몸짓 / 제 심장 쥐어뜯어 /
핏빛으로 피어낸 / 홀로 핀 꽃이여, 슬픈 추억이여!” (팡팡 “상사화”에서)
벌써 상사花가 만발했다는데 상사화단지로 유명한 불교향기 그윽하게 풍기는 영광군,
불갑산을 찾았으며 추석준비를 위해 법성포에 들려 굴비를 구입하기도 했다.
4대 명절의 하나인 추석도 지났다.
절기상 추분(秋分)도 지났으니 계절은 벌써 가을로 접어들었다.
충북 영동에 있는 민주지산 삼도峰에서 석기峰까지 다녀왔는데 계절을 잃어버린
물한계곡의 풍부한 수량만이 계류를 타고 홀로 흘러 내려가고 있었다.
진주시 방어山에서 괘방山을 빙빙 돌아오면서 통일신라시대의 석불立像인 방어산
마애불도 보았다.
어찌 그뿐이랴! 남자의 氣 살려준다는 복분자의 고장 고창 선운사를 다녀오던 날에는
복분자술에 한 잔 취해
“까-짓것, 우리도 오늘 요강 한번 깨 봅시다.”라고 객기도 부렸다.
산악회에서는 1박 2일 가을산행으로 강원도 오대산을 다녀왔는데 나는 건강검진의
재검진문제로 참여하지를 못했다.
강원도 설악산산행도 여러 번 기회가 있었으나 한 번도 참여하지 못했다.
“가난 때문에 삶에 지쳐서 / 목 놓아 울어보지도 못해다는 /
주문진이 고향이라던 /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 /
열여섯 살 지경里 소녀가 생각난다.” (팡팡 “전역”에서)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다.
서울엔 한파주의보가 내려졌고 강원산간지방에는 첫눈이 내렸다.
길을 가다보면 따끈한 군고구마, 호빵, 만두, 붕어빵, 어묵 등 겨울철 군것질거리가
눈에 띄기 시작 했던 날에,
육산(肉山)속의 절묘한 岩봉이 절경을 만들어 놓은 순천시 금정산을 산행하고
철새도래지 순천만습지를 다녀왔다.
시월이 언뜻 지나가고, 아니 벌써 11월이라니!
덧없는 것은 세월이다.
금강, 설악을 거쳐 남행열차를 탄 단풍은 지금 어디쯤 오고 있는 것일까?
한국 8경의 하나인 충북보은의 속리산을 다녀오면서 문장대, 법주사도 보았다.
전국 제일의 丹楓명소인 정읍 내장산도 다녀왔다.
“너로 해서 지금 山은 불타고 있는가?” 요즘은 단풍성수기로 하루 10만의 인파가
단풍을 보기위해 산을 찾고 있으며 연중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내장산을 찾고
있다고 한다.
“山은, 불타고 있는가? / 너로 해서 지금 내장 山寺가 불타고 있다 /
화엄신장이 발 동동거려 봐도 / 활활 타오르는 너에 정념을 어이말릴 수 있을까.
일주에서 극락까지 / 성불스님 다비불꽃도 번져가네 /
인간도 나뭇잎 하나처럼, 너와 함께 가는 것 / 우리는 하잘 것 없는 불티 인생인가?”
(팡팡 “내장사에서”)
우리에 아이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는 날이다.
삼라만상을 한곳에 모아놓은 듯 바위들의 절묘한 배치로 푸른 숲과 어울려 대 장관을
연출하고 있는 만물상(萬物相)을 구경했다.
산행이사가 없어서 가야산과 매화산으로 갈라진 회원들이 다소 어색하기도 했지만
경남 합천에 있는 가야산을 산행하고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寺에 들렸다.
전북 완주의 대둔산도 다녀왔는데 하산 때는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왔었는데
바라보는 마천대의 기암절경이 호남의 금강이라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 했다.
바위를 품고, 혹은 바위를 내려 깔고 앉아있는 청솔은 오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우리민족의 魂이요 表象 그 자체였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좀 차졌다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시간이 지나 갔을 줄이야.
세월은 강물처럼 거침없이 흘러갔고 경인년도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오! 12월(December)이여.
전남 고흥에 있는 우미山을 찾았는데 산행이사가 감기몸살로 불참한 가운데 우미山을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어 낙엽보다 가벼운 사람들만 바람에 날리듯이 우왕좌왕했다.
서너 곳으로 분산돼 내려오는 회원들을 챙기느라고 산행버스 최 기사만 정신이 없었다.
오늘은 김장용 굴을 사겠다는 여성회원들의 성화에 못 이겨 해안 굴채집장에 들렸고
1kg에 만 원씩 하는 생굴을 회원들은 필요한 만큼 사기도 했다.
대설(大雪)도 지났다.
항도(港都)부산을 품고 있는 봉래산을 다녀왔는데 명승 태종대도 한 바퀴 돌았고,
자갈치시장, 국제시장도 구경했다.
한 해를 뒤돌아보면 우리 모두의 삶이 고비 아닌 적이 있었던가?
“고비사막에 가지 않아도 / 늘 고비에 산다. /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
내일 죽을 것처럼 살면서 / 오늘도 죽을 고비를 겨우 넘겼다 / 이번이 마지막 고비다.”
(정호승의 “고비”에서) “고비”는 몽골어로 풀이 자라지 않는 거친 땅을 말한다.
부산 가덕도에서 경남 거제를 잇는 거가대교가 공식 개통되었다.
도시고속도로인 거가대로를 달리며 동남해안의 풍요한 삶을 실감했으며 거가대교,
침매터널을 지나 가덕도 연대봉도 올라갔다.
겨울하늘이 칼바람으로 후려치듯 한 추위를 무릅쓰고 경북 고령읍 미숭山도 다녀왔다.
전북 순창 강천산에서 송년 산행을 하기로 했는데 (12월 31일) 등반코스 때문에 회원들
간에 고성이 오가는 언쟁이 있었다.
이 일로해서 송년 산행이 맥 빠진 잔치가 되어버렸고, 산행이사가 사퇴하는 곤혹스런
상황이 발생했다.
이 후유증은 상당기간 금광을 괴롭히며 내분으로 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바람이 부는가, 눈꽃이 날리네,
눈 속에 갇힌 약사庵
천년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는가.
세상은 온통 순백(純白)한데 내 마음만 어지럽다”
(팡팡 ‘세인峰에서“)
(2010년 12월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