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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
할렐루야! 2013년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각오로, 새롭게 맞이한 2013년을 말씀과 기도 가운데 살아감으로, 마음의 소원하는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는 복된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청주에서 가장 높은 아파트는 어떤 아파트일까요? 높은 아파트 가운데, 복대동에 세워진 지웰시티 아파트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현대백화점이 있습니다.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가장 친절하게 대하는 손님들이 있다고 합니다. 어떤 손님에게 최고의 친절을 베풀까요? 어떤 옷을 입고 오면, 정중하게 맞이할까요?
멋스럽고 아주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온 사람일까요? 아니면 막 잠에서 깨어난 모습으로, 헐렁한 츄리닝을 입고 온 사람일까요? 여러분이 백화점에서 근무하고 있다면, 어떤 손님에게 친절을 베풀겠습니까?
어떤 분한테 들은 이야기로는, 헐렁한 츄리닝에, 슬리퍼 신고 오는 사람에게 최고의 친절을 베푼다고 합니다. 이유는 그 백화점 바로 옆에 있는 지웰시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정장을 갖추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금방 잠에서 깬 얼굴로, 츄리닝 입고 나올 확률이 많기 때문에, 그들에게 친절을 베푼다고 합니다.
지웰시티아파트에서 최고 높은 층이 몇 층인 줄 아십니까? 직접 올라가 보지는 않았지만, 45층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45층에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즘처럼, 많은 눈이 내리고, 추울 때, 전력소비도 많아서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멈추어 섰습니다. 현대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기도 하고, 롯데마트에서, 롯데아울렛에서 쇼핑을 하면서, 기다렸지만, 엘리베이터가 멈추어 서서, 도무지 움직이지를 않았습니다. 주차장에서, 마냥 기다릴 수 없어서, 걸어 올라가기로 작정하고, 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겨우 45층까지, 무거운 쇼핑백을 들고, 기어서 올라왔습니다. 아파트 문을 열려는 순간, ‘아차’ 호주머니에 키가 없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파트 키를, 자동차 안에 놓고, 그냥 올라왔습니다. 그 순간 얼마나 마음이 허탈해지겠습니까? 이럴 때 그 사람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참으로 허망하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 허망한 마음에, 눈물을 머금고 내려왔는데, 그만 급한 마음에, 무거운 쇼핑백을 그대로 들고 내려왔습니다.
“이 미련함”
“내가 왜 이럴까?” 하면서, 차에서, 아파트 키를 찾는데, 없어요. 다시 한번 찾아봤더니 안주머니에 열쇠가 있어요. 무거운 쇼핑백을 들고, 다시 낑낑대며, 45층까지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키가 잘 맞지 않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옆 동 아파트로 잘못 올라온 것입니다. 그 순간 얼마나 마음이 허탈해지면서, 좌절해지고 싶겠습니까? 이럴 때 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참으로 허망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나고, 고장난 앨리베이터를 왜 빨리 안 고치느냐고, 신경질나고, 온갖 감정이 왔다 갔다 할 것입니다.
알고 봤더니, 그 나중에 잘못 올라온 동은, 정상적으로 엘리베이터가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려 올 때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습니다.
옆동이지만 멀쩡한 엘리비ㅌ이터를 놔두고, 걸어 올라간 것을 생각하면, “내가 왜 사노”라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러한 허망함은, 좀 힘들지만, 고쳐서 바로잡을 수 있는 허망함입니다. 하지만 인생을 다 살고 난후, 돌아갈 때가 되,어 자녀들 다 불러 모아놓고, “아, 잘못 살았구나. 바보처럼 살았다.” 이와 같이 잘못 살았음을 깨닫는 허망함은, 다시 고칠 수도 없는 허망함이기에, 망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허망함으로 망하는 인생을 살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지나온 2012년을 뒤돌아보면, 좋은 일도 있었고, 나쁜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는 추억으로 자리 잡은 일도 있었고, 기억에서 지우고 또 지우고 싶은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가능하면, 지나간 2012년, 후회스러운 일들, 지우고 싶은 일들, 나쁜 일들은 말끔하게 잊어버리고, 2013년에는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각오로,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3년, 교회 표어는 “새 사람을 입으라”입니다. 하나님의 말슴은 에베소서 4:24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아멘.
한번 따라해 볼까요? “새 사람을 입으라”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다음에, 아담과 하와가 그 곳에서 살도록 해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아담과 하와가 옷을 입고 있지 않았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따 먹고 난 후, 옷을 해 입었습니다.
뱀의 유혹에 넘어간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난 후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삼았습니다. 그 후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를 위해서, 하나님이 친히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 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가죽으로 옷을 해 입기 위해서는, 동물이 죽어야 했습니다. 어린 양이 죽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린 양을 잡아, 그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히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해 입었던 무화과나무로 엮은 치마는, 뽐내고,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후로 인간은 계속 옷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의상문화를 발전시켜 나왔습니다.
여러분! 옷과 신분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왕은 왕복을, 평민은 평복을 입어야 합니다. 제사장은 성의를 입었고, 목동은 목동의 옷을, 노예는 노예의 옷을 입었습니다.
누가복음 16장을 보면,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겼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는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했지만,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기도 했습니다. 옷만 봐도, 부자인지, 거지인지를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을 보면, 아버지를 떠났다 돌아온 탕자가 있었습니다. 영양실조에 누더기를 걸친 거지꼴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종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고 말했습니다.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누더기 거지 옷을 벗기고, 제일 좋은 옷을 가져다가, 돌아온 아들에게 입혀 주었습니다. 새 옷을 입혀 주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13절을 보면, 그 당시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말씀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라고 했습니다. 권위, 권세, 위엄을 상징하는 발에 끌리는 긴 옷을 입으셨고, 가슴에는 금띠를 두르셨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7:14절을 보면, 지파별로 구원받은 사람들의 숫자가 나오는데, 그들은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19:8절을 보면, 어린 양 예수의 신부가 될 구원받은 사람들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입는 옷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의복이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사도 바울이 주시는 교훈도 다를 바 없습니다.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보낸 편지를 통해 “입으라, 벗으라”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누더기는 벗어버리고, 새 옷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첫째, 벗어버리라
22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아멘.
“유혹, 욕심, 구습, 옛사람”
이런 것들은 예수 믿기 이전에 가지고 있던 것들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뱀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해,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실패한 조상이 되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돈의 욕심을 벗어버리지 못해, 예수님을 팔아넘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대도로 소문났던 조세형은, 형을 살고 나온 뒤, 옛날 습관을 버리지 못해, 이 집 저 집을 다시 털다가, 붙잡혀 교도소에 들어갔습니다. 바울은 그런 것들, 유혹, 욕심, 구습을, 오랫동안 걸쳤던 누더기를 벗어던지듯, 버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벗으라”는 것은 단순히 옷을 벗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옛사람을 벗으라”는 것입니다.
옛날 중국 여인들은, 어려서부터 신던 신발을 평생 신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발이 작았습니다. 발을 위해 신발을 신은 것이 아니라, 신발에다 발을 맞춘 것입니다. 옷도 마찬가지입니다. 옷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옷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최고급 옷을 입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속사람은, 추악한 사람이 있습니다. 각종 보석, 장신구로 치장했지만, 그 인격과 삶이, 추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변해야 하는 것입니다.
옛 이름을 버리고, 새 이름으로 바꾼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부분 옛 이름은 뜻이, 나쁘거나, 좁은 것들입니다. 야곱이 이스라엘로,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사래가 사라로, 사울이 바울로, 시몬이 베드로로 바뀌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이름 가운데 특이한 이름이 많다고 합니다. 이런 이름들이 정말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황금독수리 온 세상을 놀라게 하다, 강도범, 백원만, 이모년, 황외출, 현상범, 노숙자, 김타잔, 백두산, 한라산, 강아지, 오렌지, 이강도, 임신중, 전화기, 허영심”
만일 황외출이 맨날 외출만 한다든지, 현상범이 진짜 현상범이 된다든지, 노숙자가 진짜 노숙자가 된다든지, 허영심이 진짜 허영심으로 가득 찬다면, 그 삶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러분! 옷보다, 더 멋지고, 이름보다 더 값진 사람이 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새해 첫날입니다. 벗어버려야 할 옛것들은 무엇입니까? 아직까지 청산 못한 옛 습관, 옛 사람은 무엇입니까?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살아야 합니다. 버릴 것을 버릴 때 정리가 쉽게 됩니다.
“구습이란”, 나쁜 습관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구습을 버리거나, 고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구습은 불쑥불쑥 솟아나는 힘이 있고, 기회만 주어지면, 되살아나는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담배가 본인 건강과 가족 건강에 해롭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입니다. 하루에 평균 두 갑을 피우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금연학교도 다녀보고, 껌도 씹어보고, 정초가 되면, 결심과 다짐도 해보았지만, 여섯 번이나 금연에 실패했습니다. 담배 습관 끊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설교 중에, 하나님은 습관도, 인생도, 질병도, 고치신다는 말씀을 듣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담배를 끊기 위해 금연 시도를 했지만, 여섯 번째 실패했습니다. 담배는 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잘 안됩니다. 담배를 피우는게, 하나님 뜻이면, 하루에 다섯 갑은 피울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끊는 것이 좋다고, 여기시면, 끊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석 달이 되는 어느 날, 퇴근 후, 집에서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인 후, 한 모금을 빨아들였는데, 갑자기 기침이 터지고, 구역질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날은 담배를 피우지 못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담배를 피우려는데, 똑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출근하고, 점심시간, 다시 담배를 피웠습니다. 그런데 더 억세게 구역질이 일어나고, 기침이 쏟아졌습니다. 퇴근길에, 혹시나 싶어, 동네 병원에 들러, 진찰을 받고, 사진까지 찍었지만, 폐나 간에는 별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때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담배 피지 말라는 신호인가?”
그날 이,후 두어번 더 시도를 해보았지만, 담배 연기만, 입과 코로 들어가면, 기침이 쏟아지고, 구역질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담배를 안 피면, 말짱했습니다. 담배를 안 끊을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는 지금도 만나는 사람들에게 간증한다고 합니다. “기도가 내 습관을 고쳤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습관도 고칩니다.
여러분! 새 옷을 입으려면 기본적으로 헌옷을 벗어야 합니다. 헌옷을 입은 채 새 옷을 입으면, 새 옷이 새 옷이 아닙니다. 새 포도주는 새부대에 담아야 되는 것처럼, 새 옷은 헌 옷을 벗고 입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옛사람을 벗어버리시기 바랍니다.
둘째, 새 사람을 입으라
23-24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아멘.
새 사람이 되는 조건, 새 사람이 입는 옷의 재료를 밝히고 있습니다.
심령이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육체는 겉사람이고, 심령은 속사람입니다. 새 사람이란, 목욕하고, 머리 손질하고, 속내의 갈아입고, 새 옷 입고, 새 양말, 새 손수건, 새 장신구로 꾸민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이 새롭게 되어야,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는, 새 사람이 되는 것, 거듭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석할 사람들은, 그 옷을 어린 양의 피에, 깨끗하게, 희게 세탁한 사람들이고, 희고 아름다운 세마포 예복을 입은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새 사람은, 곧 구원받은 사람들을 의미하고, 구원받았다는 것은, 더럽고, 추한 죄를 깨끗이 사함 받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믿고 죄 사함 받은 사람은 누구나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새 사람 되는 조건이, 바로 예수 믿는 것입니다.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은 옷을 입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 진리, 거룩함은, 하나님의 성품을 의미합니다. 옳고, 바르고, 깨끗한 성품이,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국산 남성양복도 한 벌에 1천만원 하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비싼 이유는, 양복천을 짠 실이, 가장 가늘고, 좋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재료값이 비싸기 때문에, 양복도 비싼 것입니다. 그런 비싼 옷은 입을 수 없다지만, 내가 새 사람이 되기 위해, 입는 옷은 의, 진리, 거룩함으로 지은 옷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동원해 만든 옷인 것입니다.
앞에서, 아담과 하와가 옷 입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맨 처음 입은 옷은 재료가 무화과 나뭇잎이었습니다. 무화과 나무 잎으로 하나 하나 붙여서, 치마 만들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잘 찢기고, 햇빛에 말리면 부스러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가죽옷을 만들어 입히셨습니다. 가죽은 따뜻하고, 내구성이 있어, 거의 평생 입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를 위해 만드신 가죽 옷의 의미는, 어린 양을 죽여, 희생시키고, 사람을 위해, 가죽옷을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사건 속에 그리스도의 대속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예수의 보혈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와 허물을 덮고, 해결해 주시기 위해, 어린 양 예수를 죽게 하시고, 그의 피로,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의 의미가, 가죽옷 속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값없이 흰옷을 선물로 받았지만, 예수님은 피 흘려 죽으심으로, 옷을 지으시고, 그 옷을 나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주목할 것은 “새 옷을 입으라”가 아니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다는 점입니다. 그 뜻은 새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담은 본래 새로 지음 받은 새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죄 짓고 난 이후, 새 사람이 망가지고, 낡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죄는, 사람도, 인격도, 사상도, 정신도, 생활도, 망가뜨립니다.
바닷가는, 철로 만든 구조물이나, 기구들이, 빨리 부식되어, 망가집니다. 짠 바닷바람이 불고, 습기가 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쉽게 녹슬고, 부서집니다. 죄의 바람이 불면, 모든 것이 다 녹슬고, 부서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오셔서, 살리는 바람을 일으키시고, 생명운동을 일으키셨습니다.
이것을 바울은 고린도후서 5:17절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1:5절을 보면,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새 사람이 됩니까? 누가 새 사람을 만듭니까? 내 힘으로, 내 의지로, 내가 새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를 새롭게, 교회를 새롭게, 가정을 새롭게, 사람을 새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새 사람이 되고, 새롭게 되는 과정이 있습니다.
아버지를 떠나, 방탕하고, 재산탕진하고, 거지가 된 둘째아들의 경우를 예로 삼아보겠습니다.
첫째,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잘못했다. 내가 나쁜 아들이다. 아버지가 만류할 때, 고향집을 떠나지 않았어야 하는데, 내가 잘못 생각했다. 내 잘못이다. 내 탓이다”라고 깨달아야 합니다. 즉 자아발전, 자아성찰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돌아와야 합니다. 발등을 찍고, 탄식하고, 눈물 흘리는 것만으로, 안 됩니다. 아버지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셋째, 고백해야 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다신 안그러겠습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넷째, 새로운 신분을 보장 받아야 합니다. “됐다. 다 용서한다. 너는 죽었다가 살아온 내 아들이다”라면서, 새 옷으로 갈아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살찐 소를 잡아, 잔치를 벌이는 용서와 환영의 축제가 벌어져야 합니다.
여러분! 설빔을 아십니까? 새해를 맞이하여 차려 입는 새 옷을 설빔이라고 합니다. 묵은 것을 떨어버리고, 새롭게 한 해를 맞이한다는 의미에서, 설날 아침 일찍 일어나, 미리 마련해놓은 새 옷을 입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조상들이 새해 첫날을 맞이하여, 설빔을 입었던 것처럼, 새롭게 시작된 2013년에는 새 사람을 입을 수 있는 축복의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에게 새로운 2013년을 허락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올 한 해에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 복된 한 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