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천하(太平天下)'는 1938 [조광(朝光)] 1월호부터 9월호까지 9회에 걸쳐 연재되었던 채만식의 대표적인 장편 소설이다.
제목은 1회 때는 '天下平春'이었다가 2회부터는 '天下太平春'으로 나왔고 1948년 12월 '太平天下'로 개체되어 단행본으로 발간되었으며 전체 15장으로 나뉘어 각 장마다 소제목이 붙어 있다.
이 소설은 일제 강점하의 실상을 가족사 소설의 성격을 빌어 심도있게 표현하였고, 성격 묘사를 통해서 사회 전체의 실상을 암시하려는 성격 소설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으며, 일제 강점하의 현실을 ‘태평천하’라고 믿고 있는 주인공의 시국관에 대한 풍자를 한다. 즉 부정적인 인물들로 구성된 한 가족의 삶을 통해 구한 말 개화기 세대의 가치관을 분석하고 일제 강점하의 사회 현실 극복 방식을 풍자적으로 암시하고 있는 전지적 작가시점의 소설이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930년대 서울 평민 출신의 대지주인 윤직원 영감은 하인는 상전을 섬기기다 하고 그 대가를 바라지도 말아야 한다거나, 인력거 삯을 깍거나, 무임승차를 한다거나, 하등표로 상등석에 앉아서 관람을 한다거나, 소작인에게 땅을 부쳐먹고 살게 하는 것을 커다란 은전을 베푼다고 생각하는 구두쇠이며 무식하고 철면피이나, 몸체는 우람하고 신수가 훤한 72살의 늙은이이다.
그러나 그런 윤직원에게도 쓰라린 과거가 있으니, 그의 부친 말대가리 윤용규는 떠돌이 놀음쟁이였으나 출저가 불분명한 200냥의 돈이 생기고부터 착실한 살림꾼이 되어 억척같이 재산을 불려 천석꾼이 되지만 화작떼들에게 수십차례나 봉변을 당하고 결국 목숨까지 잃는 것을 20대에 직접 목격하고부터는 세상 모드를 증오하는 마음과 단 한푼이라고 아끼려는 구두쇠 기질까지도 생겼으나 일본인들이 들어 오고부터는 불한당(화적떼)들을 막아 주고 순사들의 보호까지 받게 되어 천하가 태평하게 되었다고 좋아하며 만족해 한다.
그래서 학교를 짓는 데는 한 푼도 내놓지 않으면서도 경찰서 무도장을 짓는데는 기부금을 아낌없이 낸다. 족보에 도금을 하여 새롭게 꾸미기도 하고, 양반(‘직원’이라는 향교의 우두머리, 본명은 윤두섭)을 사고, 양반과의 혼인을 위해서 가난하고 먼 양반 집에서 며느리들을 얻어들이고, 손자 종수와 종학이를 군수와 경찰 서장을 만들어 진짜 가문을 빛내기 위한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집안의 불화는 끊이지 않고 계속되어서 며느리와 손자 며느리까지 앞에서는 순종하는 체하지만 뒤돌아서면 서로가 흉을 보며 시기하고, 아들 창식은 노름에 빠져서 다른 것은 돌보지도 않고 오직 가산 탕진에 몰두하고, 손자 종수는 군수가 되기는 커녕 방탕한 생활을 일삼으며 많은 돈을 날리고 심지어 아버지의 첩 ‘옥화’까지 건드릴 뻔하였고, 증손자인 경손이도 윤직원의 애인인 동기 ‘춘심’이와 놀아나고, 윤직원 영감도 ‘춘심’에게 빠져서 정신 없이 돌아간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자신이 점점 썩어 가는 것도 모르고 각자 주어진 여건에 만족하면서 한껏 방탕한 생활을 누리면서 태평을 즐기는 것이다. 그런데 경찰 서장을 만들겠다고 동경에 유학을 보냈던 둘째 손자 종학이가 동경에서 사회주의 운동에 연루되어 체포, 투옥되었다는 전보를 받고 윤직원 영감은 기절초풍하며 분통을 터뜨린다.
“……이 태평천하에! 이 태평천하에……”
“……그놈이 만석꾼의 집 자식이, 세상 망쳐놀 사회주의 부랑패에 참섭을 하여 으응, 죽일 놈! 죽일 놈!”하면서.
작가 채만식은 이 작품을 통해서 일제 강점하의 현식을 ‘태평천하’라고 믿는 부정적인 인물들을 반어와 회화( )를 통해 겉으로는 추켜 올리면서 동시에 그들의 추악함을 폭로하고 있다. 사회주의 운동으로 투옥된 종학이만 예외로서 작가의 긍정적인 입장을 반영하고 있으며, 또한 그의 프로 문학에 대한 동반자작 입장을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 소설은 15장으로 구성되었으나 여기에 수록된 부분은 1장과 2장의 구두쇠임을 강조한 부분과 15장의 절정 부분이다.
[청도여고]
태평천하
채만식의 "태평천하"
채만식의 "태평천하"는 1938년 "조광" 1월호부터 9월호까지 연재되었던 장편 소설이다. 잡지 발표시의 제목은 "천하태평춘"이었다. 그 후 1940년과 1948년에 각각 단행본이 나왔는데, 이때 "태평천하"로 제목이 바뀌었다. 잘 알려진대로, 채만식은 일제 치하와 해방 직후의 어둡고 혼란스러운 사회 환경과 타락하고 주체성 없는 인간들의 모습을 다각도로 비판함으로써 당대 현실의 치부를 예리하고 정확하게 조명한 작가이다.
그는 늘 민족이 처한 역사적 상황과 여러 가지 사회적 조건들을 작품의 제재로 삼았다. 동시에 우리 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작가로서 채만식의 생애는 역사의 증인으로, 시대의 비판자로 남기 위한 나름대로의 끈질기고 고통스러운 노력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것은 소설이 무엇이며,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추상적인 예술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는 구체적 상황 속에서 창작을 통해 직접 찾으려고 한 그의 현실주의적 문학관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한다.
"태평천하"가 발표될 무렵은 일제가 극단적으로 언론과 문화 활동을 억압하고 제한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암흑기에 작가가 직접적으로 현실에 참여하거나 사회를 비판할 수 없는 상태에서, 채만식은 '풍자'라는 무기를 사용하여 매우 탁월한 성과를 거두었다.
"태평천하"는 풍자 소설이다. 여기에서 특히 풍자 소설을 강조하는 까닭은 이 작품이 부정적인 면(없어져야 할 어둠)을 통해서 긍정적인 면(있어야 할 밝음)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풍자 소설은 항상 대상을 현실을 말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도덕적 공리와 행동 규범이 와해되어 사회가 이상을 등졌을 경우 그것에 대한 분노와 항거가 풍자를 낳는다. 풍자 작가가 삶의 이상과 사회적 정의를 철저하게 배반하면서 살아가는 타락한 인물들을 주로 등장시키는 것은 독자에게 심리적인 반동을 유발시켜 진실을 열망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비리와 모순이 가득찬 오염된 세계를 보여 줌으로써 현상의 근원적 병폐가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인식하도록 하고, 더 나아가 그것의 전반적인 시정을 촉구하려는 데 풍자의 목적이 있다. 그렇게 본다면 풍자는 상처부위를 도려냄으로써 재생을 바라는 외과 의사의 역할을 하는 셈이 된다.
"태평천하"가 윤직원 일가의 허황된 망상과 맹목적 이기심을 당시의 상황에 대입한 것으로 보면, 이 작품의 시대 배경 자체가 작가의 치열한 풍자 정신에 의해 설정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일제의 가혹한 경제적 수탈로부터 비롯된 극심한 궁핍과 총칼을 앞세운 식민지 지배 체제의 억압적 상황 속에서 유독 만석꾼 지주인 윤직원 집안이 누리는 "태평천하"라는 게 실제로는 얼마나 반역사적이고 반민족적인 것인가를 이 소설은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 작품은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도덕적 공리와 행동 규범을 와해시키는 부정적 군상이다. 이들의 두드러진 특징은 상황 내에서의 일체의 반응이 자기 편향적인 본능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들에겐 사리를 판단하는 정상적인 가능이 퇴화되어 있으며. 건전한 대인 관계를 위한 노력이라든가 자기 성찰의 노력이 전무하다.
한마디로 이들의 모든 행위는 단지 인간 모멸의 풍속에 불과할 뿐이다. 이 작품의 인물들 가운데 좋은 상태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인물은 하나도 없다. 즉, 어떤 인물로 되어 가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그 인물인데, 이것은 무엇보다 작가 채만식의 풍자적 의도 때문에 그러하다. 이처럼 대상과 상황을 부정적으로 제시하는 작가의 의도는 나쁜 현상의 개선을 촉구하고 진실된 세계의 가치를 추구하도록 하는데 있으며, 바로 이것이 "태평천하"가 지닌 풍자 소설로서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작품의 결말 부분에 나오는 윤직원의 절규는 그가 평생동안 쌓아 놓았던 성이 무참하게 붕괴되는 소리 그 자체이다. 윤직원의 모든 목표는 무지와 독단, 민족과 역사의 실체를 왜곡하고 부정하는 색맹적 사회관의 토대 위에서 세워진 것이기 때문에 이처럼 허망한 파멸의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윤직원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의해서이다. 사태가 악화되어 그의 가문이 몰락의 길로 빠져드는 것 역시 전적으로 그에게 책임이 있다. 결국 윤직원은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는 그의 외침으로 대변되듯, 매사에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탐하는 반사회적·반역사적 행위를 통해 결국 남이 아닌 자기 스스로를 망치게 만든 전형적인 시대의 백치라고 할 수 있다.
채만식은 "태평천하"를 통해 가혹한 식민지 현실과, 그 어두운 시대의 추악한 분비물인 윤직원이라는 인물의 타락상을 풍자라는 무기를 동원하여 매섭게 비판하고 있다.1930년대라는 역사적 암흑기에서 대부분 작가들은 일제의 지식인 탄압에 따라 출판 검열의 벽을 넘지 못 하고 절망적 현실을 외면하고, 통속 문학이나 과거의 역사물로 도피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런 때에 채만식은 일제에 빌붙어서 '태평천하'를 부르짖는 윤직원 일가의 짐승 같은 모습을 통해, 시대의 어둠을 더욱 짙게 만드는 무리들, 즉 일제에 항거하기는커녕 오히려 일제의 수탈 정책 못지않게 혹독한 고리 대금과 장리벼로써 동족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그렇게 모은 돈으로 기껏 동물적인 쾌락에 탐닉하는 반민족적이고 반도덕적인 정신 파탄자들을 마음껏 야유하고 조롱하여 천하의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다. 참담한 민족 현실을 태평천하라고 예찬하는 윤직원의 현실관이 어느 정도로 색맹적인지는 다음 말을 통해서 스스로 입증되고 있다.
··· 자, 부아라. 거리거리 순사요, 골골마다 공명헌 정사,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남은 수십만 명 동병을 히여서, 우리 조선놈 보호하여 주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으응?···· 제것 지니고 앉아서 편안허게 살 태평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구 허는 것이여 태평천하!····
이처럼 작가는 일제의 혹독한 식민 통치를 개인적 부와 안락의 보호막으로 이용하는 윤직원의 민족 배반적인 행위를 폭로하고 있다. 극단적인 이기심으로 인해 가치관이 전도된 정신적 파탄의 실체를 고발하고, 무너져야 할 봉건 체제와 함께 없어져야 할 윤직원과 같은 교활한 인간 해충들, 그리고 그러한 독충들을 길러 내는 일본의 한반도 지배 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태평천하"는 인간을 짐승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며 온갖 기행을 연출하는 윤직원과 같은 추악한 이기주의자를 비판하고 고발하는 방법에서만이 아니라, 당시의 역사와 고통스러운 민족 현실을 특유의 풍자적 시선과 뛰어난 사실주의 정신으로 훌륭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