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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도전-한번의 실패, 한번의 성공-의 경력이 전부인 울트라. 남들은 아직 해보지 않은 회원들도 있지만 도전하는 입장은 풀코스 경험 만큼이나 초자다. 작년 강화햄울트라 때 다짐한 것이 체중조절이었다. 오히려 작년보다 체중이 더 많이 나가서 울트라는 감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때가 되니 김경수가 “형님 작년에 못한 거 해야지”하면서 슬슬 건들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나는 마음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잊어버릴만 하면 툭툭 건딜어 본다.
이형준 감독도 당구를 치다가 북한강울트라를 슬쩍슬쩍 종용하지 않은가. 김민제,최명수 등도 살살 승부욕을 자극했다. 그러다보니한번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번 생각하게 되니 은근히 자주 머리에서 맴맴 돌았다.
급기야 황춘남 코치가 나가자고 또 한번 유혹을 한다. 어라! 강북마라톤 신희숙 사무장이 50km를 도전하지 않은가. 내가 망설이니까 같이 참가하자고 강하게 부추기는 바람에 에라 모르겠다 일단 접수만 하고 입금은 나중에 좀더 생각하고 하기로 접수를 했다.
작년은 교통 사고로 인하여 20여일 준비해서 나갔는데 올해는 중간중간 풀을 여러번 뛰었기에 체중만 줄일 수 있다면 완주는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지막 테스트로 화천비목마라톤을 기준으로 삼기로 했다. 꾸준한 연습은 하지 못했지만 대회는 꼬박꼬박 참가했기에 대회 페이스에 맞추어 배낭을 매고 뛰었다.
부상을 달고 사는 나는 결국에 왼쪽아킬레스건초염이라는 것만 새삼 확인하고 말았다. 접수를 하고 나서는 포기하는 것은 싫었다. 물리치료를 병행하면서 컨디션 회복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다행히 며칠간의 물리 치료 덕분에 아킬레스의 통증이 사라졌다. 기한이 지났지만 추가 입금을 하였다.
출퇴근을 자전거로 하면서 하체의 힘을 보강하였고 점심에 낙산공원에 올라 언덕훈련을 열흘간 매일 2시간씩 하였더니 북한강 언덕 코스에 대한 공포감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거기다 이 악물고 음식 조절을 하니 대회 당일에 2.5kg을 감량하여 77kg로 체중을 만들었다. 거리에 대한 시간 계획을 다시 조정하여 75km 지점에 11시간에 도착하면 마지막 25km는 걷고 뛰면 15시간에 들어오는 것으로 작전계획(?)을 짰다.
입금을 늦게 했더니 대회 이틀전에 입금 확인이라는 문자메세지가 떳다. 사실 입금 확인이 안되기를 한편으로 바랬다. 사실 100km지 이게 만만한 거리는 아니었다. 대회장에 도착하여 물품 수령을 하니 내 명단이 누락이 되었다. 입금이 늦어서 배번 인쇄가 안되었다. 예비번호를 나중에 부여받고 뛰려니 조금은 기분이 상했다. 날씨도 찌뿌드하고 포기할까 하는 갈등이 오고가고 있었다. 비가 내리면 나는 포기하겠다하고 내심 마음은 먹었는데 비는 오락가락하기만 하였다.
시간은 어김없이 오고 있었고 회원들과 파이팅을 하며 각자 목표에 맞쳐 출발선을 뛰어 나갔다.
발걸음은 그런대로 내 페이스에 따라 가고 있었다. 오히려 페이스를 늦추려고 몇 번이나 나 스스로 제지했다. 5km, 10km를 지나면서 비슷한 주자들끼리 모여가기 시작했다. 최기운,황춘남 회원과는 의식적으로 떨어져 갈려고 했다. 괜히 동반주하다가 오버페이스를 하면 안되었기에 내페이스에 맞는 주자들과 섞여 뛰어갔다.
10km를 지나니 강북마라톤의 세 여성회원들이 편의점에서 콜라를 사먹는 것을 보고 나도 물보충할려고 0.5l를 사서 물주머니에 넣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강북마라톤 세 여성은 길가에 나온 무슨 동물 새끼들과 같았다. 속으로 웃음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고 즐거운 상상을 하며 달려 나갔다.
그래도 한번 뛰어 본 코스라 작은 언덕과 평지는 열심히 달리고 고개는 큰 걸음으로 걸었다. 25km 묵밥집에서 간단하게 물보충을 하고 쓸데없는 시간을 아끼려고 서둘러 출발을 하였다.
20km를 지나면서 왼쪽아킬레스가 조금씩 당겨오는 것이 점점 속도가 줄어들고 있었다.
30km에 도착하니 3시간 45분, 무리를 하지 않고 달려왔지만 점점 무거워지는 다리는 어쩔 수가 없었다. 점점 통증이 올라오는 아킬레스를 생각하니 포기에 대한 강한 유혹이 일어났다. 바쁜 시간을 쪼개 자봉을 해주시는 최석균,서효순 부부와 이정근 고문님, 이화섭 신입회원을 생각하니 다시 힘을 얻어 달려간다. 최서균 부회장님의 단백질보충제와 시원한 얼음을 제공받으니 지나가던 강남마라톤회원이 자기네 카페에 글을 올려달라고 한다. 우리 카페에 들어와서 감사의 글을 올려야지 자식들이 앞 뒤를 모르나 하면서 그들과 같이 달려갔다.
30-40km은 우리가 풀코스를 뛸 때도 힘이 드는 구간이다. 천천히 뛰었다지만 고개가 많은 코스라 체력이 많이 빠졌다. 40km에서 최석균 부회장님의 자봉을 받으면서 포기 의사를 내비췄더니 반환점은 가야되지 않겠냐는 말한마디와 반환점에 맛있는 음식이 많다는 서효순 회원의 유혹에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40-50 구간은 아마 내가 이코스를 뛴 것 중에서 제일 힘들고 지루하게 뛴 구간이다. 9시쯤 부터 시작된 비는 그칠 출 모르고 점점 몸이 추워지고 굳게 만들고 있었다. 40에서 포기하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될 정도로 아킬레스는 당겨오고 정말 비를 맞고 뛰는 것이 싫었다.
반환점에 도착하면 남아있는 시간은 8시간, 7시간 걸린 것이 돌아 올때 8시간은 어쩌면 더욱 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반환점까지는 가야했으니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겨우겨우 반환점에 도착하니 12시 45분, 6시간 45분 걸렸다. 맛있는 음식이 닭죽일 줄이야. 나는 닭죽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것도 다떨어져서 겨우 이정근 고문님이 빼돌린 두 그릇,한그릇을 겨우 먹고 전흥기님의 것을 꽉 옆에 붙여 놓고 기다렸다. 포기 의사를 알리고 기다리는데 씩씩하게 들어서는 그를 보니 묘한 승부 근성을 일으켰다.
먹자마자 뛰어가는 그를 보니 나도 모르게 뛰어 가기 시작했다. 한그릇도 안되는 닭죽을 먹었는데 갑자기 힘이 나기 시작했다. 한손에 랜턴을 들고 힘차게 팔을 흔들었다.
50-65km는 내가 제일 씩씩하게 달려간 구간이다. 왠만한 언덕은 걷지 않고 뛰고 내리막 길은 무모할 정도로 전력 질주를 하였다.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면서 쌓았던 다리힘이라 생각이 들었다.
60에서 최석균 고문님의 마지막 도움을 받으며 힘을 충전한다.
65에서 이정근 고문님께서 전흥기님의 소식을 묻는다. 내가 제껴서 왔기 때문에 얼마나 떨어졌는지 모른다고 했다.이정근 고문님의 자봉을 받으며 75에 도착하니 남아있는 시간이 4시간.
예상했던 대로 도착을 한 것이다. 아킬레스도 더이상 통증이 진행되지 않았다. 몇몇 주자들과 신청평대교를 걸어서 넘어가니 이상하게도 결승선에 도착한 기분이었다.
아직도 24km가 남았는데.. 마음을 다시 잡으며 가니 다리 끝에서 이화섭 님을 뵈니 또 한번 힘을 내기 시작하였다. 얼마안가 박현철 회장님을 만나 동반주를 하는데 50-65에서 오버페이스를 했는지 무거워지는 다리를 내 마음대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한동안 통증이 없었던 아킬레스가 다시 아파오기 시작하였다. 서종면 강가는 먼저 간 내 친구의 유골을 묻은 곳이기도 하다. 친구에게 완주의 힘을 달라고 기도도 하였다. 북한강은 나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가 할 정도로 갑자기 체력이 바닥이 났다. 천천히라도 달리자는 회장님과 잠시 실랑이를 하고 걷기로 하였다. 80에서 정기화 회원의 "사무장님 얼굴이 반쪽이 되었어요"라는 소리에 눈물이 핑돌았습니다. 이홍규의 "형님 뭐 도와줄 거 없어요"라는 말에 "없어"라고 갔다. 모두가 고마웠다. 조남득부회장, 도성기주무, 윤여훈 가슴이 벅차 올랐다. 가슴은 범착 오르는데 왜 체력은 안올라오는지 정말 답답했다.
아이들 얘기와 우리 클럽에 대한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95km 그동안 이정근 고문님과 동반주를 한 전흥기님을 만나면서 서서히 달리기 시작하였다. 예상했던 시간보다 25분을 앞당겨 14시간 30분에 골인을 하였다. 우리 회원은 7명이 참가했는데 엄청 많이 참가한 것으로 주로에 계신 분들과 주자들이 우리 회에 칭찬을 많이 해서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마 그것은 우리 회원들이 자봉을 서에 번쩍 동에 번쩍 해서 그런가 봅니다. 나도 자봉의 힘이 있었었기에 강화에 이어 지긋지긋한 북한강울트라를 완주할 수 있었읍니다.
회원들과 완주의 기쁨을 나누면서 다음날 나에게 닥칠 후유증은 전혀 모른채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밤 11시에 점점 당겨오는 근육통(사실 몸살통)을 시험 공부 중인 아들을 꼬셔 30분을 안마를 받았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내리막길을 달렸던 후유증인지 허벅지가 당겨오고 아킬레스건이 발걸음을 놓는 것이 힘들어졌다. 갑자기 어지러워지고 몸에 열이 나기 시작했다.
할 수 없이 차로 출근을 하는데 월요일이라 도로는 꽉 막혔다. 겨우겨우 1시간 20분 걸려서 사무실에 도착하고 가져간 케잌 한조각으로 아침을 대신한다.
은행일을 마치고 5분 걸리는 길을 20분을 겨우 걸어 찜질방 수면실에 몸을 던진다. 그렇게 던져진 몸은 고열과 어지러움으로 망가져가고 있었다. 화장실을 기어서 갈 정도로 몸이 힘들었다.
이형준 감독, 최기운 고문님, 김경수 전화를 겨우 받으면서 몇번이나 고열과 통증으로 까무러치기를 한 끝에 겨우 식혜 한모금을 입에 댄다. 저녁 당직을 위해 택시를 타고 사무실에 겨우 도착하여 벽에 몸을 맡긴다. 말일이라 모든 직원들이 술 약속을 하여서 대체해 줄 직원이 없었다. 미아리에 있는 친구 병원에 전화를 걸어 구급차를 보내달라고 하고 싶었다.
화요일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회사 입사이래 20년만에 처음으로 결근을 한 것이다. 식중독에 걸려서도 출근을 했었는데.. 회사에 가서 쓰러져도 출근은 했었는데. 한발작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내의 부축을 받으며 상가 의원에서 링게르를 하루종일 맞는다. 생애 처음으로 맞아봤다. 그러나 차도가 전혀 보이질 않는다. 누워서 겨우 죽을 먹는다. 무엇이라도 먹어야 빨리 낫는 것은 알기에 허겁지겁 입에 꾸역꾸역 넣는다. 며칠전 부터 부부 싸움을 한 와이프는 못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미련~~~뭐라고 해댄다.
수요일 역시 출근을 할 수가 없었다. 하루종일 영양제를 맞아도 차도가 안보인다. 눈을 뜨면 무조건 어지럽다.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도 어지럼증은 계속 된다. 산부인과 의사인 동생(?)에게 연락을 해보라고 했다. 그녀도 지난번에 골프를 치러갔다가 나하고 똑같은 증세를 격었다고 하며 그냥 쉬어야 한다고 한다. 퇴근한 이비인후과 의사인 제부에게 비상약을 받아 복용하니 한결 나아졌다. 세반고리관에 바이러스가 침투하여 이상이 생겼다니 병원에 가서 정밀 진찰을 받으라한다.
목요일 차를 끌고 힘들게 출근을 하였다. 얼굴만 보이고 집 근처 이비인후과를 찾으니 큰 병원가서 치료를 받으라고 권한다. 결국 친구에게 전화를 걸고 가서 이러저런 검사를 다해보니 간치수가 150이 넘었다고 바로 입원을 시킨다. 정상 수치가 40이하여야하는데...A형 B형 C형 간염에 대한 검사를 다한다. 심전도 검사를 하니 이것도 비정상.
그간의 사정을 의사인 친구에게서 듣던 와이프는 사색이 되어 버렸다. 까딱했으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에 월,화,수요일에 간치수가 얼마인지 상상이 안갈 정도라고.
금요일, 다행히 간치수가 110으로 떨어져서 입원을 계속하라는 의사의 권유를 뿌리치고 퇴원을 하였다. 너무 덥고 시끄러워서 있기가 어려웠다.
100km 뛸 때 겨우 1kg 빠진 것이 며칠 아픈 동안에 3kg 빠져서 지금은 74kg이다. 바지도 32로 다시 샀다.
몇몇 회원과 직원들은 그렇게 운동을 해도 살이 안빠졌는데 날씬(?)해졌다고 좋아한다. 북한강울트라는 완주를 한 후에도 쫒아와서 괴롭힌다는 엉뚱한 생각도 들고 죽은 친구 에 대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런데 앞으로 울트라는 내 사전에 없어졌다. 내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와이프 성화에 마라톤 자체도 힘들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 '명'은 알 수 없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두번의 완주 속에 한번은 35도를 넘어가는 폭염 속에서 이루어냈고 지금은 12시간 이상을 비를 맞고 이루어냈기에 극과극의 기후에서 이루어낸 것이라고 나름대로 만족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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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석보람기 맞어요? ㅋㅋ 암튼 욕심있는 사람이 성공한다잖어요 대단하신 한상민씨.. 내 생각엔 이쁜 언니들이 책임져야 할 것 같구만요 결정적으로 울트라에 신청하도록 강~하게 부추겼으니...
몸이 말이 아니였었군요! 넘무리하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요! 이번일을 계기로 좀 쉬시면서 재충전 하시며 나를 뒤돌아볼수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저 또한 6월에 첫풀뛰고 한달만에 풀코스를 또 뛰었는데 솔직히 부상이 올까봐 내심 두려웠으니까요 ^^; 다행히 충분한 연습량이 뒷바침이 되어 부상없이 즐런했어요 아무쪼록 건강챙기시고..
미안하요"고생했수"다시얻은 생명 간수잘하요
고생하셨습니다. 일요일에는 컨디션이 그다지 나쁘게 보이지 않았는데... ... 몸 잘 추스리고요. 건강 회복하길 힘!!!
상민씨 글을 보며 웃음이 나왔어요, 힘들어고생했는데 미안...이렇게 잘 쓰느라 늦게 올렸군요 참 잘쓴 보람기 마음에 닿네요.요즘 상민씨얼굴보면 미안해서 보기가 좀 그래요. 수고 했어요 이번 고행이 아름다운 옛일로 기억되게 앞으로는 부상도 없이 달릴수있기를 바랍니다
건강 하게 운동 합시다
참 아름답고 멋있어요. 감격스러운데.. 제가 숨이 이리도 차네요. 새 인생이 시작되는 듯하네요. (아~ 무시라)
이번 북한강울트라가 많은교훈을 주었군요.너무나 구구절절이 써내려간 글들이 그날을 되새겨보게하는군요.아무쪼록 몸관리 잘하시고 빨리회복하시어 즐거운 운동이 될수있기를바랍니다.
그래도 한다면하는 그 성격 누가 말리겠읍니까, 좋은 경험하셨는데 앞으로 몸관리 잘하셔서 즐런하심이 어떠신지요
고생하셨고 다행히 많이 회복되어 기쁩니다. 앞으로 울트라에서 상민씨 페메할 일이 없어져서 섭섭하지만, 건강하고 부상없이 달리기를 기원합니다.
며칠동안 못 보다가 다시 만나니 반갑습니다. 한결 날씬해진 몸을 보니---울트라에관심이 갑니다. 힘든 경험을 했고 또한 잘 이겨내신것 축하드립니다. 그 많은 부상가운데서도 이겨낸것은 달리기에대한 사랑이 아닌가 싶습니다. 총무님의 끓어오르는 열정에 찬사를 보냅니다.
처음 읽을때 왠지 콧잔등이 시큰했는데 다시 봐도 그러네요. 도전, 완주 다 좋습니다만, 명(命)을 거론할 정도로 의미있는 일이었나 의구심을 가져봅니다. 개인적으로 마라톤은 도(道)라고 생각합니다. 즉 예(禮)를 갖춰야 된다는 겁니다. 마라톤에서 예(禮)란 충분한 준비와 자기절재를 말하며, 그것없이 도전해서 완주 한들 진정한 성취감을 느낄수 있냐는 겁니다. 고생하시고, 힘들어 하시는 분께 드릴 말씀은 아닌줄 압니다만 안타까움에 건방지게 몇자 적습니다. 과감한 포기도 때론 현명한 레이스의 한 방법이란걸 명심하시고, 모쪼록 쾌차하시길 간절히 빕니다. 강북마라톤 세여자-동물새끼 무슨뜻일까요...^-^~~~
사람 명은 길 가가다도 벼락맞을 명은 피할 수가 없지요. 축구선수가 그라운드에서 심장마비로 죽는 것은 그사람이 약한 것이 아니라 명이겠지요. 군대에서 극기훈련을 하는 것은 평시가 아닌 극한상황을 주어지고 그것을 견뎌내기 위한 과정이지요. 아무리 훈련을 많이 해도 운동과 건강은 별개지요. 출근길에 동생부부를 만났는데 저항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바이러스가 침투하여 생긴 것이라 재수가 나빴다고 생각하고 쉬면 저절로 회복되는 것이라고 하네요.
아주 극단적인 설명에....우리가 길을 가면서 벼락맞아 죽을까를 걱정할까요. 축구선수가 시합에 임하면서 죽음을 생각할까요. 제가 드린 말씀은 글중에 명(命)을 표했다는건 生死를 생각할 정도로 힘든 여정이었다는 얘긴데, 그럴땐 차라리 과감히 포기하고, 다음을 기약하는게 오히려 현명한 판단인거 같고, 그런 도전이었다면 더욱더 몸을 만드는데 충실하자 라는 의미로 드린 말씀이었음을 재삼 밝히며, 사무장님을 걱정하는 마음에 주절히 주절히 적었습니다. "良藥은 입에는 쓰나 病에는 이롭고, 忠言은 귀에는 거슬리나 行에는 이롭다" 는 옛말이 갑자기 생각나는건 왜 일까요...
빠른 회복 하세요 잘 생긴 사무장님
참 달리기가 뭔지 하여턴 감명깊게 읽어습니다 아프신몬 이제 좀 많이 좋아 지신가봐요..하루 빨리 쾌차 하시고 내년에 또 도전 해보세요 글도 참 잘 쓰셔어요 재미 있게 잘 읽어습니다 나도 기회가 되면 이렇게 어렵게라도 도전 해보고 싶네요 무지 수고 하셨습니다 완주 추카 드리고요
내년엔 무조건 자봉한다 벌써부터 꼬득이지마. 폭염 속에서도 뛰오봤고 비를 쫄딱 맞으며도 뛰어봤으니까 됐네요. 기록!! 그건 끝도 없어... 나 집에서 쫒겨나기 싫어. 우리 마눌님 엄청 무섭거든. 내가 몸이 추스려지니까 바가지 구박 슬슬 강도가 세지고 있음
살아줘서 고맙습니다. 의사들은 항상 겁을 많이 줘요
맞어 맞어. 나 이제 쌩쌩해지는데
저도 가족들의 수술경험이 있는 데 그때마다 의사들은 최악의 경우를 설명하는 것이었어요......물론 혹시모를 책임정신이겠지요.... 그만큼 의사들은 생명에 대해서 무한책임을 지겠다는 숭고한 정신이라고 생각해요....저도 함께 같이 달렸으니 한상민선생님의 건강이 완쾌되기를 기원합니다.
적당하게 했으면 하는데 머리 속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이해를 못하겠어요. 울트라는 가정의 평화와 안녕을 위하여 이걸로 그만하기를...
아~~ 이제 봤어요...ㅠ.ㅠ; 워낙에 제가 긴글은 잘 읽지 않는 습관이 있어서리..... 마음 다잡고 남의 경험을 들어보고자 읽기 시작했는데 ... 이런일이 있었군요... (심한 뒷북이죠?) 얼마나 힘들었을까 ...역지사지 해보니 눈물이 다 나네요.... 나 마라톤 그만둬야 할까봐요..... 아직은 지켜야 할 가정이 있어서리..... ㅠ.ㅠ;
달리는 것이 힘든 것이 아니라 공교롭게도 몸이 그때 아플 때였었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