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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시 "단장면(丹場面) 리동가(里洞歌)"는
밀양의 향토사학자이신 손흥수 선생이 고향 밀양(단장면 구미마을 출생)에서
몇 십년동안 단장면과 관련 지역을 각고의 노력으로 수 십번 현장을 답사하여
조사. 발굴한 밀양의 향토색 짙은 귀중한 문화유산입니다
"밀양향토사연구회"의 고문으로 계시면서
밀양향토사연구회 회지(2014년 12월 발행)인 "밀양이야기(제5집)"에 게재된 것을
더 많은 분들이 보실 수 있도록 글을 올려드리며
일부 내용은 손흥수 선생의 요청에 의거 수정(추가)합니다
단장면(丹場面) 리동가(里洞歌)
밀양 향토사학자 손흥수
국화전(菊花田) 서물(庶物)한 산(山)
진주동(進舟洞) 배를 모아 지사동(智士洞) 학서학지(學書學智)
무릉동(武陵洞) 돌아들어 가실(蘆谷)에 백로(白鷺) 앉고
용포(龍浦)에 꿈을 꾸니 소태동(小台洞)이 부가(富家)로다
부엉덤 노적봉(露積峰)은 단정(丹亭) 항상 정기(精氣) 받고
용회동(龍回洞) 슬쩍 건너 사연리(沙淵里) 모랫길에
도화 일지(桃花一枝) 꺾어 들고 승학동(乘鶴洞) 학을 타고
동화전(桐花田) 건너 들고 당모랭이 돌아들어
정각산(鼎角山) 슬푼 넘어 정승동(政丞洞) 쉬어 가자
도래재(回嶺) 돌아넘어 재악산(載嶽山) 죽림가람(竹林伽藍)
표충사(表忠寺)에 들어오니
구절장삼(九節長衫) 노선사(老禪師)는
백팔염주(百八念珠) 목에 걸고
아미타불(阿彌陀佛) 염불(念佛)하니 극락세계(極樂世界) 여기로다
파리답(笆籬畓) 지슬 따라 삼거리(三巨里) 업어 내려
귀내(龜川)에 고기 낚아 범도연(泛棹淵) 돛을 달아
벼락덤(雷岩崖)에 떨어지니 평리(平里)가 앞에 있네
순풍시절(順風時節) 호시절(好時節)에 풍류동(風流洞)이 그 아닌가
바오달(바드리) 백마산성(白馬山城) 창의용사(倡義勇士)
결사보국(決死報國) 성터만은 아직 있네
고야천(姑射川) 맑은 물에 은어(銀魚) 떼는 뛰고 노네
덕달리(德達里) 가림들에 새(新木) 말띠기 구경하고
사희동(四熙洞)건너들어 변자당(卞慈堂)나팔고개
잠시 쉬고 일어나세 농암(籠巖) 청석(淸石) 놀이 가자
농암대(籠巖臺) 구경하고 오목골 치밟아서 열두들 넘어서면
연화동(蓮花洞) 꽃밭 속은 용소(龍沼)로 둘러 있고
사지(沙旨) 상봉(上峰) 상상봉(上上峰)에
상원암(上元岩)이 번뜩 드네
버구(法貴) 삼동(三洞) 니리들어 귀미(龜尾) 사촌(沙村) 양어금에
칠리수(七里水)가 합수되니 귀호(龜湖)에는 거북 뜨고
등잔소(燈盞沼)를 구비 돌아 수십 질 장송(長松) 아래
월연대(月淵臺)가 솟아 있고
놀기 좋다 금시당(今是堂)은 좌우로 둘러 있네
용두소(龍頭沼) 푸른 물에 정자선(亭子船) 올라 보니
진홍단장(眞紅丹粧) 기생들은 노래하고 춤잘 추네
응천(凝川)에 닻을 내려 영남루(嶺南樓)에 올라보니
뜰에는 돌꽃(石花)이요 루(樓) 아래는 죽림(竹林)이네
마암산(馬岩山)이 헌산(軒山) 되고 아북산(衙北山)이 진산(鎭山)이네
아동산(衙東山) 돋은 해가 나리티(日峴)에 해 기우니
만풍(晩風)에 디린바람 백발(白髮)만 날리구나
○ 리동가 발굴를 도와주신 분 (12분)
구미마을 : 심재곤(남), 안법마을 박영순(여), 법산마을 추복도(여)
사촌마을 : 남상규(남), 단장마을 허 선(남), 이상홍(남)
삼거마을 : 우일남(여), 국전마을 장운수(남), 덕달마을 이복우(남)
태동마을 : 김성준(남), 박정식(남)
안법마을 : 배응태(남)
○ 단장면 리동가 요약 및 지명 설명
1. 조사경위
각 리동의 어른 분들로 부터 단장면 지명 유래를 조사하던 중
그 옛날 선조들이 농사일 가운데 틈틈이 이동가를 불러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1993년부터 지금까지 각 마을의 연로하신 남녀 12분의 도움으로
한 소절 한 소절씩 연결하여
면민들에게 선조님들의 여유로움과 고달픈 삶을 후손들에게 들려 주어서
내 고장의 역사와 지명, 명소, 리동가를 보존하려는 목적
2. 가사(歌詞) 내용
- 지역명 : 단장면 리동과 산과 물길 따라 영남루까지
- 내 용 : 리동 지명과 마을 역사를 소개한 가사 (100년~300년 전 역사)
- 용 도 : 농요로서 농한기 농번기 유희 시 농민들이 농요 또는 내방 가사로 틈틈이 불리워짐
- 시 기 : 약 80년~100년 전에 지역민들이 주축이 되어 구전으로 불리워 진 가사
3. 자료 조사자
- 조사자 : 밀양 단장면 미촌리 구미마을(구미2길 35(구미마을) 거주
향토사 연구자 손 흥 수
- 조사기간 : 1993년~2014년
- 연 락 처 : 전화 055-352-5381 / 016-9205-5381
4. 지명 및 가사내용 설명
1) 국화전 >국전마을. 리동가의 첫 번째 마을
2) 서물한 산 >조산방, 주물(呪物)한 산
마을을 비보하기 위하여 숲이 있었으며
돌무지 조산방을 새마을사업 때 다리공사에 채움 돌로 하여 없어지고 난 후
다시 동민들의 합의하여 새로 그 터에 다시 조성하였다.
3) 진주동 >국전 아랫마을. 마을뒤 일제가 광산 개발을 하였으며 지금은 폐광
4) 지사동 >지시동마을, 옛날(200년 전) 능성 具氏의 서당이 있었으며
지금은 서당터만 밤밭 속에 있다.
5) 무릉동 >무릉마을
6) 가 실 >노곡마을 소눌(小訥) 노상직(盧相稷 1854-1931) 선생 자암서당(紫岩書堂)이 있다.
7) 용 포 >마을이름
8) 소태동 >태동마을
9) 부엉덤 >단장천변 용회동 앞산
10) 노적봉 >경주산을 말하며 단장마을의 노적봉이며
오룡(다섯마리의 용)이 한구슬을 두고 다툰다 하여 경주산이다.
일제가 공동묘지를 조성하였다.
11) 단 정 >단장마을.
단장면사무소가 있었으나 공비들의 방화로 소실되었으며
지금은 그 터에 홍제중학교가 개교하였다.
12) 용회동 >용회동 마을 입구 동남쪽에는 연경마을이 있었으며 시장도 있었다.
1919년 기미년 만세운동이 일어난 연경장터 만세운동지였으며
사라호 태풍때 침수 마을이 유실됨.
13) 사연리 >사연리 마을. 마을 상류하천에는 곰소가 있다.
14) 승학동 >사연리 안골마을
15) 동화전 >동화전 마을
16) 당모랭이 >동화전에서 아불로 가는 중간 산모롱이. 길 가운데 당나무가 있다.
17) 정각산 >아불 골마 뒷산이며 산속에 정각마을이 있었으며 지금은 폐동되었다.
옛 절터에는 부도탑만이 남아있다.
18) 정승동 >
귀내 북서쪽 골짜기 안마을 고려 공민왕 때 정승(政丞)인 "안성군(安城君) 김용(金鏞)"
의 귀양지
19) 도래지 >귀내에서 남명 간 고개이름
20) 재악산(載嶽山) >
우리나라의 오악(五嶽)인 백두산(白頭山), 묘향산(妙香山), 금강산(金剛山), 삼각산(三角山), 지리산(智異山)의 정기(精氣)를 실(載)은 산이라 하여 "재악산(載嶽山 = 載岳山)"이다.
천년고찰(千年古刹) 표충사(表忠寺)를 병풍처럼 둘러산
"재악산(載嶽山 = 載岳山)의 사자봉(獅子峯 1,189m)"은 최고봉(主峰)이며,
최고봉(主峰)인 사자봉(獅子峯 1,189m)"을 기준으로
남동(南東)쪽으로 수미봉(須彌峯)
남서(南西)쪽으로 향로봉(香爐峯), 백마봉(白馬峯)
서남(西南)쪽으로 필봉(筆峯), 영봉(靈峯) 등은
재악산(載嶽山 = 載岳山)의 한 산군[하나의 산군(山群)]에 속한다.
신령스런 명산인 재악산(載嶽山)을
일본이 천황산(天皇山)으로 표기 왜곡 하였지만
산봉우리를 여러 산으로 갈라 놓지는 않았다.
그러나 1960년대 "건설부 국립지리원"에서는 산봉우리를 여러 山으로 변경 고시하면서
○ 최고봉인 사자봉 1,189m을 천황산(天皇]山) 으로,
○ 수미봉 1,108m을 재약산(載藥山)으로 지명 개명고시 하였고,
이는 일본이 왜곡한 산을 국립지리원도 같이 왜곡한 것이나 다름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봉(峰)의 명칭을 산(山)의 명칭(山名)으로 한다면,재악산군(載岳山群)보다 규모가 엄청나게 큰 설악산군(雪岳山群)이나, 지리산군(智異山群) 등에는
산이름이 10개 정도는 만들어야 하는 이상한 꼴이 되어 버린다.
즉, 하나의 산군(山群)에는 주봉(최고봉)에다 하나의 산명을 부여하는 것이
산명(山名)을 부여하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따라서 그 당시 "건설부 국립지리원"의 이러한 이상한 오류를 반드시 해명해야 할 책임이 있다]
○ 또 사람들은 인근의 향로봉(香爐峯)을 香爐山으로 즉, "봉(峯)"을 "산(山)"으로 부르고 있다.
지금 표충사에는 1995년 탑(표충사 삼층석탑)을 중수할 때 기초석 밑에서 "표충사 삼층석탑(表忠寺 三層石塔)" 속에 들어 있었던 "개수탑기[改修塔記 : 삼층석탑을 중수(重修)한 내력을 새겨 기록한 돌비문]와 비석걸에 있는 보월비(補月碑)에 산 이름을 "재악(載岳)"이라 새겨 놓았으며, 절의 명칭은 "영정사(靈井寺)"로 새겨 놓았다.
"표충사 삼층석탑"의 내력을 새긴 개수탑비문[改修塔碑文]은
"표충사 삼층석탑의 내력을 새긴 돌비문"으로 "삼층석탑"보다 더 중요한 "보물"입니다
즉, "표충사 삼층석탑"은 "하드웨어적인 보물"이라면,
"표충사 삼층석탑 개수비문"은 "소프트웨어적인 표충사와 삼층석탑의 혼(魂)이 담긴 보물"로 보아야 합니다.
또 동국여지승람과 대동여지도에도 "재악산(載岳山)"으로 명기되어 있다.
초부도 알고 있는데,
최고 학부의 박사님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지,
지식인들은 각성할 줄 모르면서 변명은 이제 그만 하였으면 한다.
표충사에서도 "옛 조사님들[祖師 = 스님의 조상님들]의 글"을 못 모셨는지
[옛 조사님들께서
"표충사 삼층석탑(表忠寺 三層石塔)" 속에 들어 있었던 "개수탑기"와
비석걸에 있었던 보월비(補月碑)에
산 이름을 "재악(載岳)"이라 새겨 놓았으며, 절의 명칭은 "영정사(靈井寺)"로 새겨 놓았다]
라는 뜻입니다
지금도 재악산(載岳山) 영정수(靈井水)는 마르지 않고 흐르고 있다.
21) 죽림가람(竹林伽藍) >옛 영정사(靈井寺) 지금의 표충사(表忠寺)
22) 구절장삼 >노승의 지팡이와 장삼
23) 파리답 >대 울타리 또는 울타리
24) 삼거리 >삼거마을
25) 범도연 >범도마을 뱃머리. 옛날 가내공업으로 범돈한지가 유명하였다.
26) 귀 내 >원구천 마을 원 龜川을 일제가 九川으로 왜곡
27) 평 리 >고례리 평리마을
28) 벼락덤 >평리마을 건너 강가에 있는 벼락 맞은 큰 바위
29) 풍류동 >평리 위 산간마을
30) 바오달 >
바드리 군(軍)이 진(陳) 친 자리. 옛날 성터가 지금도 남아있다.
임란시 송재(松齋) 박명복 용사가 창의하여
백마산성 고수장이 되어 창의용사들과 분전하였으나
왜구의 조총에 많은 창의용사들이 희생되어 성안을 붉게 물들었다 하여 단지 성이라고도 한다.
임란시에 박뫼에서 거주하였으며 지금도 후손들은 감물리 등지에서 살고 있다.
31) 고야천 >고례리 앞 내. 고례대추는 품질이 우수한 특산품이다.
32) 덕 달 >고례리 덕달마을, 지금은 수몰
33) 가림들 >덕달마을에 있는 들 이름, 지금은 수몰
34) 새말띠기 >봄에 논두렁 무너짐을 방지하기 위해 새(新)로 말뚝을 박음
35) 사회동 >덕달리 건너 마을, 지금은 수몰 댐 건설 때 1만년, 2만년전 주거지 및 유물 발견
36) 변자당 나팔고개 >사회동에서 농암동으로 가는 고개에 있는 밀양변씨 할매당,
지금부터 200년 전 밀양변씨가 세거(世居)했던 곳, 지금은 수몰
37) 농암청석 >농암대의 바위와 맑은 냇물 아래 깔린 반석
38) 오목골 >옛날 채지당(採芝堂) 박구원(朴龜元 1442-1530)의 사호정 정자가 있던 곳
39) 열두돌 >국전리 안에 있는 마을
40) 연화동 >감물리의 옛이름 감물리초등학교 뒤 원삼국시대 묘지 출토
41) 용 소 >감물리 마을 이름
42) 사지상봉 >사지와 상봉마을
43) 상원암 >구미 뒷산 너머에 있는 마당바위
44) 버구삼동 >큰골, 법산, 안포동 마을
45) 귀미사촌 >구미와 사촌마을,
사촌마을 앞 똥뫼에서 1,400~1,500년전 동양 최대의 제철 유적 발견
유물은 국립 김해박물관에 소장
46) 양어금 >양쪽 사이 중간
47) 칠리수 >
○단장면 4 골에서 발원하는 ⓵ 영정수(靈井水)-재악산 발원 ⓶ 배내수(梨川水)- 재악산 배내쪽에서 발원 ⓷ 국화수(菊花水)- 금오산 북쪽 국화전에서 발원 ⓸ 연화수(蓮花水)- 금오산 남쪽 감물리에서 발원, ○산내면 3골에서 발원하는 ⓹ 구연수(臼淵水)- 호박소 시례에서 발원 ⓺ 구만수(九萬水)- 구만산 구만동에서 발원 ⓻ 발례수(發禮水)- 정각산 발례에서 발원
48) 귀호(龜湖)> 구미 앞들, 예전에는 호수였다.
49) 등잔소 >칠탄정과 구서원 마을 사이 강에 있는 등잔 모양같이 생긴 바위 밑의 소
50) 수십길장송 >월연대 주위에 옛날에 울창했던 송림,
지금은 참나무와 함께 풍치림으로 보호하고 있다.
51) 월연대 >월연정 정자, 내의 월연(月淵) 이태(李台 1483-1536) 선생의 영대(詠臺)
52) 금시당 >금시당(今是堂) 이광진(李光軫 1513-1566) 선생의 정자
53) 용두소 >용두연 유원지
54) 정자선 >빛을 가린 놀이 배
55) 진흥단장 >짙게 화장한 여자 화장
56) 응천(凝川) >
영남루 앞 강, 동북천수가 월연정 앞에서 합수하여 장선 앞에서 선불마을과 살네마을 아래 금시당쪽으로 분류, 다시 용두소에서 만나 다시 영남루 앞과 가곡동 앞 용두교로 분류, 마암산에서 합수되므로 응천이라 함.(남천강은 일본이 우리 지명을 왜곡하기 위한 지명임.)
57) 영남루 >보물 제147호 뜰에는 석화, 강변 언덕엔 죽림아랑의 전설이 있는 영남제일명루
58) 마암산 >사포리와 예림리 사이에 있는 말 모양의 바위산
59) 아북산 >누에가 알을 실은 형상, 아복산(蛾伏山) 지금은 밀양여고 뒷산
60) 아동산 >봉(鳳)이 춤추는 형상이라 하여 무봉산(舞鳳山) 지금의 무봉사 뒷산
61) 나리티 >해가 지는 고개 일현. 밀양에서 무안으로 넘어가는 고개 일명. 날티고개
62) 만풍 >해질녘에 소소히 부는 바람
○ 리동가 조사 후 느낌있어
서기 1993년도에 지명연구차 사촌 故남상규 씨 댁을 방문하였는데
“자네 동네 이름이 옛날부터 龜尾가 맞네, 리동가에도 그렇게 있다”고 말씀하셨기에
가사를 아시면 한번 적어주세요 말씀을 드리니까
너무 길어서 모두 다 기억은 못하시고,
(일부만) 적어 주셔서 이때부터 리동가를 찾아 남의 집 개도 많이 짖게 하고
일하시는 분들 시간을 너무 뺏어 죄송하였으며,
그렇게 해서 찾아낸 것을 밀양신문에 게재도 하고 라디오방송국에서도 대담하였다.
향토사연구회 창간호에도 게재하여 공개하였으며
더 많은 고증을 받아서 이제 22년이 되는 갑오년에 정리하면서
다시 노래가사를 따라 답사를 하면서 유적지를 찾아 다녔다.
참 그때 찾지 않았다면 이 리동가는 영구히 사라질 뻔 하였으며, 더욱 감개무량하여
제보하여 주신 12분 가운데 생존하신 분은 3분 우일남(여), 추복도(여), 배응태(남) 이며
아홉 분은 신선이 되어 가셨습니다.
다시 또 알게 된 것은
역사는 할아버지 손에서 자란 사람이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며,
할아버지 등 뒤에서 할아버지가 하는 이야기를 10세 미만 손자가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놀라운 발견이었습니다. 역사는 어릴 때 배워야 기억에 많이 남는다.
지금의 핵가족은 많은 역사를 잊게 할 것 같아서 기우 같은 걱정을 해 봅니다.
또 한 가지 사실은 어머니가 불렀던 가사를 듣고
돌아가신 어머니 묘전에 노래비를 세운 분도 있어서
저 또한 고개 숙여 명복을 빌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다 발굴하였다고 믿지 않으면서도 이제는 끝마치겠습니다.
2014년 11월 29일 地耕書庫에서 孫興銖
"지경(地耕)"은 손흥수(孫興銖) 선생의 호(號)입니다
도재국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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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소개 고맙습니다 ^^
지역사랑이 남다르신 두 분 선생님
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만광님이 밀양을 더욱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