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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쌓인 "치악산"을 다녀와서!
원정산행지로 정한 치악산을 가기위해 새벽 04:00시에 일어나
산행여장을 갖추고 05:00시에 집에서 출발 인근 정류장에서 버스
를 타고가다 양주역에 내려서 1호선 전동차에 승차하여 회기
역에서 경의선으로 환승했고 옥수역에서 3호선으로 환승 교대역에
도착하니 06:40분이었고 07:10분 전세버스에 승차 여주 휴게소를
거쳐서 치악산행 들머리인 국향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09:30 월정사
(月精寺)의 말사(末寺)인 국향사 경내를 돌아보고 향로봉을 향해
오르는데 보문사를 지나면서부터는 22일 밤에 내린 눈길이었고 오를
수록 적설량에 데크길이 덮인데다 가파라서 한동안 집에서 구미(口味)
를 돋구는 음식을 선호하며 편하게 지내다보니 체중이 늘어선지 다행
히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국을 따라가는데도 몹시도 힘이들고 숨이 가파서
멈추기를 반복하며 향로봉에 올랐는데 다음 코스인 비로봉 거리가 5.7km
라 능선으로 가는 길이니 좀 쉬울까했는데 팍팍한 눈길인데다 갈수록 오르
막길이 이어지니 마음이 몸을 가까스로 움직이는 상태라 아침밥을 걸르고
왔으니 뱃속을 채우면 힘이 날까해서 비로봉으로 정한 예정시간을 당겨 2km
남짓한 비로봉에서 먹기로한 점심을 먹고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가다 눈앞을
가로막으며 우뚝선 비로봉을 쳐다보니 위압감이 느껴져서 어찌 오를까싶었지만
쉬기를 반복하며 오르니 다른이들 보다 늦긴 했지만 치악산의 최고봉인
비로봉(飛蘆峰)에 오르니 올랐구나하는 성취감도 잠시 구룡사를 향해
낙타등같은 사다리병창길로 하산을 하는데 가도가도 끝이 보이지 않던
날머리길에 도착하니 15:40분 산행시간 여섯시간 십분이 경과된 시간
이었습니다. 16:30분인 버스의 출발 시간에 늦을세라 잰 걸음으로
구룡사에 들렸다가 내려오면서는 가족이 불공드리려 왔다가는
차에 동승하여 주차장에 오니 10여분 늦은 시간이었는데 다행히
안내를 맡은 마루돌 대장님이 눈이 그토록 많이 쌓인 줄 알았으면
귀가시간을 30분 정도 늦출 걸 그랬다며 아직 못온 대원들을
기다리는 여유 시간을 쉬다가 17:00시경에 출발 덕평휴게소를
거쳐 집에 돌라오니 20:30분이었습니다.
했으면서 가고싶은 치악산을 못갔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3일전에 연락을 주셔서 덕분에 함산을 했는데 서툴게
뒤처져 오는 저를 많이 챙겨주는 큰 도움을 주셔서 깊은
감사의 정을 느낍니다. 선배님 그리고 마루돌대장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치악산(1,288m)은 동경 127°58′07″∼128°08′53″, 북위 37°1′∼37°26′03″에
걸쳐 약 181.3㎢의 산지가 자리잡고 있으며, 1984년 12월 31일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치악산은 영서 지방의 명산으로 주봉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남북
으로 길게 뻗어 있어 산세가 매우 장엄하고 험준하며, 이러한 산세가 기암괴석과
폭포 및 울창한 수목으로 이루어진 계곡의 풍치와 한데 어울려서 아름답고 개성
이 있는 경관을 자아내고 있다. 치악산에는 제1경 비로봉 미륵불탑, 제2경 상원사,
제3경 구룡사와 구룡계곡, 제4경 성황림(천연기념물 제93호), 제5경 사다리 병창,
제6경 영원산성, 제7경 태종대와 부곡계곡, 제8경은 기암괴석 입석대 등
치악8경이 전해지고 있다.
본래 가을의 단풍이 아름다워 적악산(赤嶽山)이라 불렸는데, 꿩을 구해준
나그네가 그 꿩의 보은으로 위기에서 목숨을 건졌다는 전설 때문에
치악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치악산의 최고봉인 비로봉(1,288m)을 중심으로 남쪽으로 남대봉(1,180m)·향로봉
(1,042m)과 북으로는 매화산(1,083m)를 잇는 1,000m 이상의 고능선을 이루면서
많은 산봉과 기암들이 솟아 있다. 남북으로 뻗은 주능선을 경계로 서쪽은 급경사
이고 동쪽은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이룬다. 지질은 흑운모편마암류와 금리대편암류
가 가장 넓게 분포하고 있다. 치악산의 기후는 산악지대와 평지와의 절기차가 10여일
정도 나고, 한서(寒暑)의 기후차이 또한 심하다. 치악산이 위치한 원주 지역의 기후
값으로 10년간(1997~2006) 치악산의 기후를 예측하면 평균기온 11.8℃, 1월 평균
기온 3.2℃, 8월 평균기온 25℃이고, 강수량의 평균 합계는 1429.1㎜이다. 고도가
100m 상승할 때 기온이 0.5℃~0.6℃씩 하강하는 기온체감률을 적용하면 기상청
에서 제공하는 평균기온에 비해 1,000m 고지에서는 약 5.5℃정도가 낮아진다.
정상인 비로봉 주변에는 분비나무 외 31종의 수목들이 자생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신갈나무군락은 치악산 대부분 지역에서 무성하게 자라고,〔優占〕 소나무군락은
치악산 남측과 서측의 하단부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포유류는 두더지를 비롯한
13종이 조사되었고, 조류는 붉은머리오목눈이를 비롯한 116종이 관찰되었다.
치악산 지역의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후기 화성암류와 쥐라기 전기 화성암류의
생성작용이 일어나기 이전에 시대미상의 퇴적암을 기초로 한 변성암류인데 이를
통해 생성 시기를 유추할 수 있다. 1391년(공민왕 2)에 왕의 태(胎)를 안치하기도
한 치악산은 영서 지방의 명산이며 원주의 진산(鎭山)이다. 조선시대 때에는 5악
의 하나로서 치악산에 동악단을 쌓고 원주·횡성·영월·평창·정선 등 인근 5개 고을
의 수령들이 매년 봄·가을에 동악신에게 함께 제를 올리기도 했다. 즉 5악 신앙의
하나로서 동악의 신령께 감사하고 국가의 진호를 기원하는 호국대제로 받들어
올렸던 신성한 산이었다. 치악산에는 서쪽의 급경사를 이용한 옛 산성들이 남아
있는데, 거란의 침입과 임진왜란 때의 격전지였던 영원산성과 금두산성·해미
산성지(海美山城址) 등이 있다. 이러한 성터들은 예로부터 군사적 요지에 위치해
있던 원주를 지키는 요새로서 치악산의 험준한 산세가 지리적 이점되어 큰
몫을 해왔음을 입증하는 사적인 것이다.
산세가 웅장하고 풍경이 아름다운 치악산에는 구룡사를 비롯하여 상원사·석경사·
영원사·국향사·보문사·입석사 등의 7개의 사찰들이 있어 찬란했던 불교문화의
명맥을 이어 가고 있다. 현재 치악산에는 시·도지정문화재 4점을 포함하여 총
9점의 문화재가 분포하고 있다. 울창한 송림 속에 있는 구룡사에는 대웅전과,
부근에 창건설화에 얽힌 거북바위·구룡소 등이 있다. 꿩의 보은설화로 유명한
상원사에는 상원사지석탑 및 광배(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5호)가 있다. 보문사
에는 원주보문사청석탑(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3호)과 원주흥양리마애불좌상
(강원도 유형문화재 117호)이 있다. 원주영원산성(사적 제447호)과 학곡리
황장금표(강원도 기념물 제30호) 등이 있다. 치악산은 고려말의 학자인
원천석의 은거지로, 그와 그를 찾은 조선 태종에 얽힌 명소와 지명들이 널려
있다. 1975년에 있었던 영동고속도로의 개통과 관광 기반 시설의 확충으로
관광객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한국지명유래집-중부편』(국토지리정보원, 2008)
『한국의 산지(山誌)』(건설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 2007)
『국립공원백서』(국립공원관리공단, 2005)『개정증보판
(改訂增補版) 한국관광지리(韓國觀光地理)』(김홍운, 형설출판사, 1997)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치악산(雉嶽山)
강원도 원주시 및 원주시 소초면과 횡성군 강림면에 걸쳐 있는 산.
높이 1,288m. 태백산맥의 오대산에서 남서쪽으로 갈라진 차령산맥의 줄기로 영서 지방의
명산이며 원주의 진산이다. 남북으로 웅장한 치악산맥과 산군(山群)을 형성하고 있다.
주봉인 비로봉(飛蘆峰)을 중심으로 남쪽으로 향로봉(香爐峰, 1,043m)·남대봉(南臺峰, 1,182m)
과 북쪽으로 매화산(梅花山, 1,084m)·삼봉(三峰, 1,073m) 등 여러 봉우리를 연결하며 그
사이에 깊은 계곡들을 끼고 있다. 남북으로 뻗은 주능선을 경계로 하여 대체로 서쪽이
급경사를 이루며 동쪽이 완경사를 이룬다. 특히 비로봉에서 구룡사(龜龍寺)를 향하여
뻗은 북쪽의 능선과 계곡은 매우 가파른 것으로 유명하다. 한편 고둔치 동쪽인 부곡리의
신막골 일대는 비교적 넓은 평탄지대를 이루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서쪽으로 흐르는 계류들은
섬강(蟾江)으로 흐르고, 동쪽으로 흐르는 계류들은 주천천(酒泉川)으로 흘러든다.
조선 시대에는 오악신앙의 하나로 동악단을 쌓고 원주·횡성·영월·평창·정선 등 인근 5개
고을 수령들이 매년 봄·가을에 제를 올렸다. 또 많은 승려와 선비들의 수련장으로 사찰과
사적이 많다. 공원 면적은 182.09㎢이고, 산세가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많은 문화유적이
있어 1973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1984년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큰골·영원골·
입석골·범골·사다리골·상원골·신막골·산성골 등 기암괴석과 층암절벽의 아름다운 골짜기가
있으며, 비로봉·남대봉·매화산·안봉·천지봉·투구봉·토끼봉·향로봉 등의 산봉과 입석대·세존대·
신선대·아들바위·구룡폭포·세렴폭포·영원폭포 등의 명소가 산재하여 있다. 치악산에는 한때
76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사찰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구룡사·상원사(上院寺)·
석경사(石逕寺)·국향사(國享寺)·보문사(普文寺)·입석사(立石寺)가 남아 찬란했던 불교 문화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구룡사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이 창건한 고찰로 거북바위[龜巖]와
구룡소(九龍沼) 등의 경승지가 있으며 대웅전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었다.
남대봉 아래의 상원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절이며 용마바위와 계수나무
고목이 위엄을 자랑하고 있는데 이곳은 꿩의 보은설화로 더욱 유명하다. 또한 고려 말의 충신
원천석(元天錫)의 은거지였기에 그의 묘소, 사적을 기록한 묘갈(墓碣), 재실(齋室)이 있는 석경사
, 태종이 찾아와 스승을 기다리던 태종대(太宗臺), 할미소[老姑沼], 수레너미재, 대왕재 등 태종과
원천석에 얽힌 지명과 명소가 많이 널려 있다. 남대봉 서쪽 기슭에는 험준한 산세와 지리적 여건을
이용하여 축조한 세 곳의 옛 산성 터가 남아 있다. 합단(哈丹)의 침입과 임진왜란의 격전지였던
영원산성(鴒原山城), 해미산성지(海美山城址), 금두산성이 그것이며, 이것은 예로부터 군사적
요충인 원주를 지키는 천연의 요새로서 치악산의 몫을 입증하는 사적들이다. 남대봉 동남쪽인
상원골 입구 성남리의 성황림(城隍林)은 천연기념물 제93호로 지정되어 있었다.
이곳은 전나무·들참나무·층층나무·피나무·가래나무·들매나무·귀등나무·느릅나무·소나무 등 20종의
수목이 울창하였으나 보호에 소홀하여 고유 임상이 크게 손상되었다. 이곳과 구룡사 사찰림에는
파랑새·호반새·오색딱다구리·청딱다구리·꾀꼬리 등 희귀한 조류도 서식하고 있다. 등산로는 종주
코스와 횡단코스 등 다양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특산물은 송이, 산채, 닥종이[韓紙] 등이며
매년 9월에는 예총(藝總) 원주 지부에서 주관하는 치악예술제가 열린다.
『관광한국지리』(김홍운, 형설출판사, 1985)
『한국관광자원총람』(한국관광공사, 1985)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국향사(國享寺)
강원도 원주시 행구동치악산(雉岳山)에 있는 절.
내용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신라 경순왕
때 무착(無着)이 창건하여 고문암(古文庵)이라 하였는데, 일설에는 고문
암이 아니라 관음보살을 보신 보문암(普門庵)이었다고도 한다.조선 초 태조는
이 절에 동악신(東岳神)을 봉안하고 동악단을 쌓았으며, 매년 원주·횡성·영월·
평창·정선 고을의 원들이 모여 제향을 올린 관계로 국향사라 하게 되었다.
일설에는 조선시대 정종의 둘째 딸인 희희공주가 늘 몸이 약해 병석에 누워
있었는데 어떤 약을 써도 치료되지 않자, 이 절에 보내어 백일기도를 드렸다.
하루는 공주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서 병을 고쳐 주리라고 한 뒤 완쾌되었
으므로 정종이 기뻐하여 절을 크게 확장하고 절이름도 고문암을 국향사로
고쳤다고도 한다. 1680년(숙종 6) 이후에 폐사가 되었던 것을 1907년에는
벽하(碧河)와 응송(應松)이 중창하였으며, 1945년에는 자항(慈航)이, 1974년
에는 주지 전용호(全龍浩)가 각각 중수하였고, 1980년에는 보영(普英)이
토단만 남아 있던 동악단에 앞면 3칸, 옆면 2칸의 건물을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인 관음전과 대방(大房), 동악단, 요사채와 주방이
있다. 문화재로는 ‘普庵堂大禪師靈塔(보암당대선사영탑)’이라고 쓰여진 높이
약 1.6m의 부도와 그 바로 옆에 파괴된 부도 1기가 있다. 또한, 관음전
북서쪽 100m 지점에 동악단이 있다.
『전통사찰총서』 1(사찰문화연구원, 1992)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문화재관리국, 1977)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향로봉(香爐峰)
높이는 1042.9m이다. 강원도 원주시와 횡성군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치악산의
한 봉우리를 이루며 치악산 주봉(主峰)인 비로봉(飛蘆峰:1,288m)에서 남쪽으로
5㎞ 지점에 솟아 있다. 비로봉·삼봉(三峰:1,072m)·남대봉(南臺峰:1,182m)·천지봉
등 1,000m가 넘는 봉우리들이 이루어내는 치악산의 14㎞에 이르는 긴 능선 절반
쯤 되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정상에 서면 북으로 비로봉, 남으로 치악평전(금두고원)
과 금대리, 그너머 백운산(白雲山:1,087m) 줄기 등이 잘 보인다. 남쪽 능선에 있는
치악평전은 정상 바로 아래에 자리한 조금 넓은 평탄한 분지형 골짜기로서, 억새가
그득히 자라고 있으며 햇빛을 받으면 금빛 찬란하게 빛나는 장관은 널리 알려져 있다.
교통이 편리하며, 찾는 이가 비교적 적어 한적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국형사
(局享寺)를 기점으로 행구동 매표소에서 보문사(普門寺)를 거쳐 정상에 이르는
거리가 짧아 당일 산행지로 적합하다. 또한 위치상 북쪽 비로봉이나 남쪽 남대봉
등을 연계하여 치악산 종주산행을 하는 이들도 자주 찾는다. 한국불교태고종에
소속된 보문사는 통일신라 경순왕(재위:927∼935) 때 무착(無着)이
창건하였으며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3호이다.
치악산국립공원 황골지구 탐방코스는 치악산의 주봉인 비로봉으로 오르는
최단거리 코스이다. 치악산국립공원 구룡지구보다 난이도가 낮아, 지역
탐방객이나 시간이 넉넉하지 않지만 정상까지 오르려는 탐방객들에게 인기
가 높은 탐방코스이다. 치악산국립공원 황골지구는 황골탐방지원센터에서
다양한 탐방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며, 포장도로를 따라 1.6km를 오르면
입석대와 마애불좌상을 관람할 수 있는 입석사가 나타난다. 입석사에서
500m 구간은 비교적 경사가 심한 깔딱 고개로, 이 구간만 넘어서면 능선길
이라 어렵지 않게 산행할 수 있다. (출처 : 강원도청)
출처:(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구룡사감로왕도(龜龍寺甘露王圖)
강원도 치악산 구룡사에 있던 조선 후기의 불화.
1727년(영조 3년) 작.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60.5㎝, 가로 221cm. 동국
대학교박물관 소장. 감로왕도는 우란분재(盂蘭盆齋)의 성반(盛飯 : 잘 차린
음식)을 올림으로써 지옥에 빠진 부모가 지옥의 고통을 여의고 극락에 왕생
한다는 내용을 그린 불화이다. 우란분경변상도(盂蘭盆經變相圖)라고도 일컫
는다. 우란분경은 목련경(目連經)이라고도 한다. 목련존자가 지옥과 아귀도
(餓鬼道)에서 고통받고 있는 어머니를 구제하여 천상에서 복락을 이루게
한다는 내용이 골자를 이루는 경전이다. 우란분은 산스크리트어로 Ullabana
라 하는데 거꾸로 매어 단다는 뜻이다. 즉, 죽은 이가 손발을 묶여 거꾸로
매어 달리는 것과 같은 고통을 말한다.
부처님의 제자 중 신통력이 뛰어난 목련존자(目連尊者)가 깨달음을 얻어 세상
을 보니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전에 삼보(三寶)를 믿지 않고 짐승들을 마구 살생
한 죄로 죽어 대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고 부처님에게 사정하였다.
그리하여 어머니가 대지옥에서 소흑암지옥(小黑喑地獄), 여기서 아귀도로 옮겨
지고 다시 축생도(畜生道)로 옮겨져 강아지로 태어나게 되었다. 계속해서 부처님
의 가르침대로 7월 15일 참회의 날에 과거·현세 7세(七世)의 부모를 위하여 시방
(十方)의 부처님과 스님들께 온갖 음식을 공양하였다. 마침내는 어머니를 도리
천궁(忉利天宮)에 태어나도록 구제하였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우란분경을 배경
으로 이루어지는 의식이 우란분재이다. 중국과 우리 나라에서
효 사상과 연결되어 크게 행하여졌다.
이 불화는 화면 중심에 커다란 제상(祭床)을 중심으로 다양한 도상이 전개되는
전형적인 18세기의 감로왕도이다. 상부에는 중심에 7불이 늘어서 있고, 그 앞
[向左]에는 흩날리는 번(幡 : 설법할 때 절 안에 세우는 깃대)을 든 인로보살
(引路菩薩), 반대편에는 아미타불의 협시인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중생을 극락
으로 인도하는 내영(來迎) 장면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중앙에는 커다란 상에
성반이 차려져 있고 그 아래에는 두 아귀의 표현이 보인다. 성반의 왼쪽에는
재(齋)를 올리는 광경이 상세하고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그리고 하단에는 화면
가득 현실의 풍속과 지옥 등의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주위의 여백과 각
장면 사이에는 적·녹·황색의 구름과 암산 등을 표현하여 극락장엄과 아울러 각
장면을 구분하는 효과를 주고 있다.
이 불화는 극락 내영과 성반 의식 장면을 한 폭에 갖춘 형식의 대표적인 감로왕도
라 할 수 있다. 현존하는 감로왕도 중 비교적 연대가 올라가는 작품이다. 밝은 적·
녹·황색이 주조색으로 밝고 화사한 색감을 지녔다. 그래서 탁하고 진한 18세기
후기와는 다른 18세기 전기 불화의 독특한 색감을 잘 전해 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손상이 많긴 하지만 치밀하고 섬세한 구성, 사실적이며 생동감 있는 표현력, 밝고
세련된 색상 등이 당시 불화의 경향을 잘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치악산(雉嶽山)
두견새 노래하는 치악산 굽이돌아
천년에 사랑 그리운 님
종소리만 구슬퍼
치악산 비로봉에 돌아올 내님 소원 빌며
똬라굴 넘는 기적소리 보고픈 맘 실어보네
꽃이 피면 오시려나 벌 나비 벗을 삼아
오늘도 님 그리는 사랑에 치악산아
♥
구룡사 별 내린 밤 둥근 달은 말이 없고
갈자리 사랑 노래하던
산새들도 잠들어
치악산 비로봉에 돌아올 내님 소원 빌며
똬리굴 넘는 기적소리 보고픈 맘 실어보네
눈 내리면 오시려나 산노루 벗을 삼아
오늘도 님 그리는 사랑에 치악산아
2018-02-26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