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순자(筍子)이야기
글-德田 이응철
-따르릉! 따르릉!
밤 열 두시가 넘어 막 잠이 들 무렵이었다.
전화가 왔다.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죄송합니다.
이우현 경사 아버님 맞으시죠?
경찰서로 급히 출두하란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아직 밖은 어둠이 빗물과 섞여 끈적끈적하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나니 경찰 아들이 문밖에 서 있다.
마치 연행이라도 하듯 작대기처럼 부동으로 서 있는 게 아닌가!
-아버지!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요?
-아버지 정말, 사실인가요?
혼비백산이 되어 찾아온 아들 차에 올랐다.
아무 말이 없었다. 쇠 철문처럼 철렁 내려앉은 마음이 천근이다. 무겁다.
차는 어둠 사이로 쏜살같이 후석로를 빠져나와 약사동으로 치닫는다.
-아버지! 이게 무슨 망신이죠?
아버지는 아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면서 창밖 어둠속으로 고개를 돌린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나 경찰서는 불야성을 이룬다.
형사계가 있는 이층으로 경찰들이 도열해 웅성거린다.
시선이 집중된다. 따갑다. 형사들은 일단 내게 예를 표하고 의자를 내준다.
기다린 듯이 형사들 숲으로 과장이 내 앞으로 나와 근엄한 표정으로 응시한다.
-이 경사도 저리 앉게!
쭈뼛쭈뼛하게 뒤에서 안불좌석하던 아들에 명령의 화살을 날린다.
-이우현 아버님! 주무시는데 불러 죄송합니다. 저희도 어쩔 수 없어 만부득이 모시게 됨을 용서하시길! 세상에 이런 일이란 프로에나 나올 법한 일이 오늘 저희 경찰서에서 일어났으니 -. 혀를 차면서 시선을 돌린다.
칼칼한 형사과장은 이내 건너편 직원에게 큐하고 신호를 보낸다.
CC tv였다.
교통조사계 사무실 정오 12시 점심시간이었다.
사무실은 아무도 없었다. 텅 비어 있다. 창밖은 잔뜩 흐려 있었다.
권색 오리털 잠바를 입은 중년의 남성 하나가 민원실 이층 교통조사계를 들어온다.
누굴 부른다. 계세요? 몇 번 부르던 중년 남성은 명단을 돌아보며 사무실을 한바퀴 순회한다. 방금까지 사무 보던 책상 위는 모든 것들이 노출되어 널브러져 있다.
-세간에 화제가 된 은빛 수갑, 모자, 살이 통통하게 올라 지폐가 언뜻 보이는 양가죽 지갑, 가죽 조끼, 로렉스 시계, 전기 충격기, 가스총, 그리고 가죽 혁대 콜드에서 잠이 든 리볼버 38구경 권총 한 정,
그 곁으로 중년 남성을 천천히 스치면서 이곳저곳을 살핀다. 여유롭다. 남성은 아무도 없어 발걸음을 돌려 나오다가 한참을 섰다. 그리고 다시 돌아섰다. 형광등만 천정에서 내려다 볼 뿐 아무도 없다.
그러더니 갑자기 태도가 돌변한다. 과감한 행동이다. 어느 책상 앞으로 향한다. 전혀 안하던 행동이다. 도출이다. 창밖은 대지를 뚫고 새싹들이 터져 나오고 묵은 삭정이에 잎눈이 빼꼼히 밖을 내다보고 있다. 무엇인가를 만지작거린다. 그리고 두리번거린다. 아무도 없다. 모두 점심 식사하러 나간 절간이었다. 묘한 시간이 분위기를 몰고 온다.
중년 남성은 들고 있는 가방을 급히 연다.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아니 집어넣는다. 순간 번쩍거린다. 다른 책상에 가더니 다시 무언가를 집어넣는다. 옷 갈아입을 때 떨어진 지폐가 보이는 지갑이다. 그리고 두리번거린다. 무엇을 넣을 것인가? 아무도 없다.
로렉스 시계를 서슴치 않고 자기 손목에 찬다. 순간이다. 마지막으로 중년 남성을 사무실을 빠져 나오다가 다시 들어간다. 그리고 가죽 포대기에서 곤히 자고 있는 무지륵한 가스총을 아주 빠른 솜씨로 닁큼 가방에 집어넣는 게 아닌가! 아무도 없는 사무실이다.
그리고 민원실로 내려가는 중년 남성은 윤말숙이란 경사에게 아들 면회를 청한다.
-네 교통계 이 경사님 아버님이시라구요? 아 그럼 지방청 문경장이 며느님? 네! 동깁니다.
순간 화면이 급정거를 한다. 십여 명의 형사들이 순간 침묵한다.
밤이 이슥하지만 유치장 앞엔 영화 한편을 찍기 전처럼 엑스트라 같은 어디서 왔는지 많은 군중들이 기웃거리며 한마디씩 토한다.
시민 A
- 평생 교육자하던 사람 아냐? 나 저 사람 알아! 지난 해에 정년 퇴직한 사람으로 요즘 글줄이나 쓴다고 신문에 자주 나오던 선생님이셔! 선생님이 왜 여기에 오셨을까? 심성이 옥양목처럼 티없이 깨끗한 분이 이 무슨 변고인가? 어떻게 이런 엄청난 절도죄에 걸려들어 유치장 신세가 되었단 말인가! 통 이해가 가지 않네. 사회적으로 신망이 높으신 분이 순간 물욕에 노예가 되었단을까 아니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범죄를 저지르셨네. 우리 사회가 이 지경까지 왔으니 어디 믿을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네.
시민 B
-저분은 한평생 교편을 잡았지만 도벽이라는 욕구가 늘 깊이 깔려있는 사람이야! 교사란 미명아래 평생을 점잖게 살아올 수 밖에 없었지, 연극무대가 이제 끝났으니 본성이 터진거 아닌가? 이성으로 억누르고 사는 것도 시간이 문제였을거야! 이제 이성조차 흔들려 본성이 터진 것 뿐이야! 예전에 일본 여행 갔을 때에도 슬쩍 장난감을 훔쳐왔다니, 제 버릇 어디 개 주겠나! 원숭이 꼬리처럼 평생 달고 다니던 못된 습성이 늘 잠재되어 있는 자야!
시민C
-이건 부처님 같은 사람에게 범죄를 하도록 유도하는 함정수사가 분명해! 우리 사회가 문제야! 점심시간이라도 항상 근무처를 지켜야 하는데 모두 비웠으니 -.그러니까 아무리 선량한 시민이라도 욕심 없는 사람이 어디있어! 빌미를 준 함정수사라니까! 나라도 가만히 나오지 않겠네-. 표적수사, 교통 범칙금 부과 등 범행을 하려는 심리를 유발해 마구 벌금을 긁는거지 뭐, 이런 일이 어디 한둘이야 요즘-. 빌어먹을 사회가 원망스럽지 안 그래?
유치장에 들어가 앉아있는 남성을 향해 질서없이 문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중년 남성은 머리를 숙이고 절망에 담그고 있다. 문밖에서 흐느끼는 아들을 차마 정면으로 볼 수가 없다. 어찌할 바를 모른다.
-정말 내가 범인이란 말인가! 절도죄라고? 아니야! 꿈이 분명해,
아버지는 어느새 푸른 수의를 갈아입고 쓰레기 더미 같은 오물들 사이 한구석에 몸을 구겨 지나온 생을 돌아본다. 교육자란 가면을 쓰고 살아온 자신을 인정하고 있다. 참 용케도 살아온 날들이다. 욕망이란 부유물들이 항상 내게 밀물처럼 다가왔다. 심성 저 깊숙한 곳에서 파도쳐 온 것이다. 감언이설로 나를 움직인다. 도둑놈으로 밀어낸다. 차디찬 이성이 그 밀물을 덮어 임시방편으로 밀봉해 버리며 살아온 것일 뿐이다.
태어날 때부터 타인의 것을 훔치고 싶다는 욕망이 누구보다 강한 게 분명해. 신이 준 못된 달란트가 아닐까! 순자가 늘 내게 와서 나를 시험하고 논리를 펴곤 했다.
주로 무엇을 탐하고 싶단 말인가!
좋은 집도 외제차도 아니다. 새 옷도 아니다. 소유하고 싶은 생각보다 잠시 가지고 싶은 생각이 더 지배적이리라. 오래 오래 가지고 싶은 욕망이 없다. 그렇다면 좀도둑일까! 부와 권력과 명예를 놓고 보자. 모두가 가난했던 60년대 절대빈곤시절을 견딘 나는 늘 목마름이 배고픔이었다. 악식이라도 많이 먹고 싶어하지 않았던가!
평생 교육자로 살아왔으니 무슨 부를 챙기겠는가! 새로 도시가 개발되어도 몇 년 후면 치솟을 지대이지만 당장 그것을 채울 금전적 여유가 전혀 없다. 주변머리가 없으니 어디서 변통을 한단 말인가! 그저 안일무사로 변화를 싫어하던 내가 아닌가! 경기가 좋을 때나 나쁠때나 그저 돈 있는 자가 돈을 불게 마련이다.
가랑잎이 가을이면 골짜기로 몰리듯이 돈이 사람을 따르기보다 부자가 돈을 부른다.
살면서 세 번의 기회가 온다고 했지만 내게 돈을 뭉텅이로 벌 기회는 없었다. 청렴한 교육자로서 청빈하게 살면서 학문을 연구하는 것이 내게 적임한 삶이 아닐까?
권력 또한 내겐 존재하지 않는다. 남에게 싫은 소리 한번 내기 못하는 간이 약한 내게 무슨 권력이란 말인가! 푸른 시절-. 나는 육군사관학교에서 나와 홍보할 때 처음 뜻을 두기도 했지만 권력은 부자들의 옷자락과 같고 칼집에 꽂아둔 검 같아서 내겐 전혀 통함이 없다.
소시민으로 조용히 살아감이 얼마나 다행인가! 간악스러운 무리들을 위해 내가 칼을 휘두르면 언젠가는 그들이 휘두른 칼에 내가 얼마나 다칠 것인가! 계급사회에 아들이 경찰고시로 들어가서 그는 승승장구하지만 늘 아들에게 겸손을 가르친다.
명예는 어떤가! 다시 태어나면 의학이나 법학을 공부해서 그 방면에 뛰어난 인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이날까지 변함이 없다. 항상 샘물처럼 내게 솟구치는 직업에 대한 갈망을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내겐 부와 권력보다 명예가 내재되었음이 틀림없다.
지금은 내가 순간에 범법자가 되어 유치장에 몸을 뉘었지만 작가란 명예는 체취처럼 나를 떠나지 않고 나를 대변한다. 창작이다. 크레이티브란다. 요즘 정치가들이 주장하는 창조경제처럼 내겐 언제나 새로움을 진흙으로 빚어내는 맑은 창조가 있어 나를 대변한다.
희소가치들을 꼽아보면서 그러나 내겐 시민 A가 말한 목마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저지른 것은 절대 아니다. 아무 부족함이 없다. 소시민으로 적당히 노후된 아파트에서 소리없이 주어진 법을 지켜내면서 샘물처럼 조금은 풍족하게 매월 안겨주는 연금으로 나는 욕구를 충족할 뿐이다. 옥양목처럼 흰 내 심성에는 나는 의아하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곡해하고 있다. 내가 과연 얼마나 남과 선한가, 얼마나 특출한가, 전혀 부족함이 더할 뿐이다.
그렇다면 시민 B가 뇌까린 말은 어떨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