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헉. 가을 볕이 유난히 따사롭던 오늘 보랏빛 옷을 입은 맑은샘 식구들은 수원으로 가을 나들이를 갔다 왔습니다.
대안 초등학교 아이들이 어울릴 수 있는 축구 한마당이 열렸기 때문이지요. 낮 2시 부터 6시가 조금 넘은 시간까지. 아니 12시 30분에 모였으니 12시 30분부터 6시 30분까지 거의 여섯 시간동안 온통 축구에 마음을 빼앗겨 있었네요. 본디 축구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저는 축구 경기에 이렇게 기운을 쏟은 건 2002년 월드컵을 끝으로 처음인 것 같습니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를 만큼 몸과 마음을 다해 경기를 한 아이들, 그런 아이들 곁에서 마치 아이들과 한 몸이 된 마냥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목청 껏 기운을 북돋았던 식구들. 그 보랏빛 물결은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지난 해까지 우리 아이들도 축구를 하고자 하는 기운이 엄청 났었지요. 허나 축구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곳이 가깝지 않아 그 기운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초등 대안학교 어린이들이 서로 만나 축구 경기를 하자고 했을 때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할까? 라는 생각도 잠깐 했었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생각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번 축구 한마당에 대한 이야기는 몇 번 축구 경기를 했던 무지개학교과 칠보산학교 선생님들이 여러 학교가 어울릴 수 있는 잔치를 만들어보고자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이야기 되었던 것은 무지개학교, 칠보산학교, 맑은샘학교 이 정도였던 것 같은데 어느새 서울 경기권 학교들이 함께 하게 되면서 8개 모둠이 꾸려졌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처음엔 과연 이 축구 한마당이 어린이들이 어울릴 수 있는 마당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 걱정스러웠습니다. 학교마다 나눠서 경기를 하는 것이 아이들이 한데 섞이고 어울릴 수 있는가에 대한 걱정이었지요. 괜시리 학교끼리 더 경쟁하는 분위기만 만들어 내지 않을까, 아이들 끼리도 서로 더 잘하려고만 하지 않을까 걱정이 안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학교 대 학교가 아닌 모든 어린이들을 섞어 모둠을 나누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이야기를 했었지요. 그래도 축구를 많이 해 본 선생님들이 걱정스러운 부분도 있겠지만 한 번 해보면서 경쟁이라는 것도 어떻게 좋은 경쟁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지 겪어보자 했습니다. 여러 번의 이야기 속에 아이들에게 물어 결정을 하기로 했지요. 아이들은 해보겠다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일곱 명의 아이들이 넓디 넓은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3경기를 뛰었습니다. 물론 후보 선수들, 눈이 빨게 지면서까지 응원 글을 써서 응원했던 아이들, 어른들까지 하면 훨씬 많았지요.
축구 한마당을 준비하며 손호준 선생님은 여러 일들을 이끌고 만들어내며 마음을 많이 썼습니다. 자나깨나 축구 한마당 걱정에 심지어 어제 밤엔 잠도 못이루었다 하셨지요. 아침 나절 학교에 와서는 정말 떨린다며 수원까지 가는 내내 긴장과 떨림 속에 있었습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랜만에 하는 축구 경기이기도 하거니와 다른 학교 어린이들과 한다니 떨리지 않을 수 없었나봐요. 경기를 하기로 한 운동장 가까이 가니 저도 떨려오더라구요. 게다가 축구할 때 입는 옷을 맞춰 입은 수많은 아이들이 운동장을 뛰어다니니 더 긴장되기도 했지요.
낮 2시. 쨍쨍 내리쬐는 볕과 후덥한 공기 속에 맑은샘학교 아이들과 무지개학교 아이들이 첫 경기를 했습니다. 노오란 색으로 오려붙인 등번호와 이름을 붙인 보랏빛 아이들이 둥글게 모여 기운차게 "으샤" 마음을 모았습니다. 드디어 시작입니다. 시작하자마자 세영이가 가볍게 첫 골을 넣었지요. 눈깜짝할 새 일어난 일이라 모두들 엉겹결에 큰 소리를 질렀지요. 그리곤 이쪽 저쪽을 열심히 오가며 발을 맞추고 마음을 맞추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무지개학교에 3골을 내어주며 첫 경기가 끝났습니다. 세영이의 첫 골로 첫 단추를 잘 끼웠습니다. 아이들 마음에도 아쉬움이 컸겠지만 크게 드러내지 않고 다음 경기에 어떻게 할지 마음을 더 모았습니다. 다른 학교 경기가 끝나고 다시 맑은샘학교와 칠보산학교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첫 경기를 하고 난 뒤 전반에 공격을 모으기로 해 골문지기를 하던 우진이가 공격수로 들어오며 강수, 세영, 우진이 발을 맞춰 금새 3골을 넣었습니다.(맞나요? 너무 응원에 빠져있었더니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완전 기분이 좋아 방방 뛰었는데 후반에 들어 잠깐 주춤하는 사이 칠보산학교 어린이들이 3골을 이어 넣어버렸습니다. 흑흑. 그래도 다시 기운을 내 애썼지만 칠보산학교에서 한 골을 더 넣고는 경기가 끝나버렸습니다. 아쉬운 마음이 안드러날 수가 없었지요. 보고 있던 저희도 같은 마음이었으니까요. 많이 아쉬웠지만 3골이나 넣은 것이 더 자랑스러웠습니다. 세 골 넣은 건 아주 잘 한 거라고 서로에게 힘을 주었지요. 하지만 속상한 마음이 쉬이 가라앉지 않은 우진이는 살짝 눈물도 흘렸습니다. 그럼요. 아주 아쉽지요. 아이들은 저마다 자리에서 자기 몫을 다했습니다. 뭔가 어설퍼보이기도 했지만 자기 자리에서 몸을 날려 뛰는 아이들 모습이 어찌나 재미있던 지요. 응원하는 내내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이제 끝으로 수원 방과후학교와 경기가 남았었지요. 우리 손호준선생님은 다른 학교 경기 심판을 보고 있으니 전정일 선생님이 아이들을 모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제 한참 흥이 오르고 어떻게든 한 번은 이겨보리라 마음먹은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귀를 쫑긋 세우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서로 너는 이렇게 하고 너는 이렇게 하고 하는 이야기들이 줄곧 오갔습니다. 몇몇 아이들은 쉬면 더 힘들다며 뒷쪽 작은 경기장에서 줄곧 몸을 움직여 연습을 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지며 쌀쌀한 바람이 불어올 즈음 세 번째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전반에 기운이 좋았습니다. 두 골을 먼저 넣었지요. 포물선을 그리며 위쪽 골문을 맞고 들어가는 강수 골은 정말 멋졌습니다. 으샤으샤. 좋은 기운이 넘쳤습니다. 그러다 방과후학교 어린이들이 두 골을 넣으며 동점. 다시 맑은샘학교가 한 골을 넣었습니다. 3대 2. 마음속으로 이대로만 끝나라 이대로만 끝나라 하는데 방과후학교 친구들이 한 골을 더 넣어 다시 3대 3 동점이 되고는 경기가 끝났습니다. 아!! 정말이지 이토록 아쉬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얘들아 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 우리가 어떻게 마음을 맞춰 골을 넣는가가 중요한 거야. 딱 2골만 넣어. 어떻게 골 넣을 것인가에만 집중해." 라고 했는데 세 골이나 넣었으니 마음만은 아주 풍성합니다. 모두들 아쉬운 마음들이야 내려놓기 어렵겠지만 작은 움직임, 몸놀림 하나하나에 큰 기운을 주었던 부모님들과 동무, 동생들이 있어 아마도 뜻깊은 축구 한마당이었을 것이라 믿습니다. 아마도 부모님들 애간장이 더 타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도 진짜 실컷 웃었습니다. 아이들 모습 하나하나가 다 예술이었거든요.
그래도 세 번째 경기에선 지지않았기에 아이들도 조금 마음을 추스렸습니다. 운동장 한켠에 둥글게 앉자 마침회를 했지요. 아쉬운 마음이 가득한 얼굴들이었지만 다른 이를 탓하지 않습니다. 멋지지요. 아! 딱 하나. 아이들이 입을 모아 "손호준 선생님이 너무 선수 교체를 많이 했어요....!!!" 하하하하하하. 경기 규칙으로, 뛰기로 한 어린이들은 모두 10분은 뛰어야 한다고 했기에 여러 번 선수 교체를 했어야 했는데 마음이 맞을 때쯤 선수가 바뀌는 것이 아이들에게 많이 아쉬웠던 것 같습니다. 괜히 손호준선생님에게 불똥이 튀었지요. 하지만 뭐 그정도쯤이야 우리 손호준선생님 너른 마음으로 받아안았습니다. 아이들 이야기를 들으며 축구 하는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몇 잘하는, 또 마음이 맞는 이들끼리만 할 수 없는 것이구나, 발로 몸으로만 할 수 없는 것이구나, 어떻게 공을 차고 어디로 누구에게 공을 찰 것인지 생각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구나, 모두가 잘 할 수는 없지만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오늘 우리 아이들이 보여준 모습이 더 감동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조금 축구가 좋아졌습니다.
방학내내 딴 데 마음을 쏟곤 오랜만에 글을 쓰니 이야기가 이리저리 주문진 바닷가 파도마냥 출렁이네요. 아직 흥분과 기쁨이 가라앉지 않은 탓도 있고요. 하지만 여전히 고민은 됩니다. 아이들이 다른 학교 아이들과 축구를 통해 동무가 되고 형, 동생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말이지요.
첫댓글 참. 세화를 실은 유모차를 밀며 운동장 가에서 최명희 선생님도 아이들과 함께 뛰었지요. 이쪽 저쪽 골문 옆에서 종민아버지, 원서아버지 아이들과 함께 뛰었지요. 모든 경기 내내 사진 찍느라 지우아버지 아이들과 함께 뛰었지요. 응원석에서 앉았다 일어났다 강수부모님, 2학년 5학년 유찬이 부모님, 우진이 부모님, 세영이 부모님, 종민이 어머니, 민철이아버지, 다경어머니, 동엽아버지 아이들과 함께 뛰었지요. 버스타고 먼곳까지 찾아와준 졸업생 호진이도 함께 뛰었지요.(호진이는 자기 학교 다닐 땐 왜 이런 걸 안했냐고 몇번이고 물었지요. 뛰고 싶은 마음 누르느라 힘겨워했어요.) 모두들 함께 뛰어 참 즐거웠습니다.^^
다경아버지는 원래 기대가 낮았는지(^^), 우리 학교가 잘했다고 좋아하더라구요.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선생님 참 많은 생각을 하셨군요. 역시 남다르십니다.^^ 저는 부모된 입장으로 우리 아이들이 운동장에 왔다 갔다 열심히 뛰는 걸 보는 것 만으로도 기쁘고 대견스럽더라구요. 져도 이쁘고 골까지 넣어주니 고맙고...
우리 아이들도 다음엔 번호가 안 떨어지는 유니폼을 입으면 더 멋있어 보일라나? 이쁜 걸로 다 같이 입히고 싶다라는 생각 뿐이었네요.^^ 선수도 응원하는 아이들도 이도 저도 안 하며 빈둥거리는 아이(제 아들입니다^^)까지 싹 입혀서 그 날만은 한마음 한뜻으로 뭉치는 감동을 느껴 봤음 좋겠다 하면서요..... 그리고 손호준 선생님이 진짜 멋져 보이더라구요. 선생님이 계셔 든든했습니다.
모두들 고맙고 미안합니다. 오늘 학교에선 한 층 더 넉넉해진 우리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스스로들 많이 대견해하고 자랑스러워했어요. 손호준 선생님 정말 멋있었나요^^
어제 경기에서 손호준 선생님은 승부에 연연하지 않고 아이들을 골고루 뛸 수 있도록 배려하시는 덕장의 모습이셨습니다.^^
보랏빛 감동!! 맞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순간들이었습니다. 정우는 집에와서 엄마에게 그러더군요.. "맑은샘이 제일 잘했어" ^^
예비 맑은샘학교 어린이인 정우가 보기에... 승패는 전혀 상관없이 맑은샘이 제일 좋아 보였나 봅니다. ^^
보라빛 감동 물결이 저한테도 밀려오네요^^~
죄송합니다. 오후 4시까지 쭈욱~ 뻗어 있었습니다. 전날 밤 기억이...
일주일만에 다시 글을 읽으니...기억이 새록새록...맑은샘에는 따뜻한 글쟁이들이 참 많아 행복합니다. 고마워요.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