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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나라 멧새의 나라
김 성 도
1
숲의 나라, 멧새의 나라
바위의 나라, 샘물의 나라
야, 평화의 나라, 우리나라여
이것은 이 나라 국가의 후렴이다.
높이가 거의 같은 산용우리들이 우뚝우뚝 솟아 었고, 그 사이로 작온 봉우리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크고 작은 봉우리들은 정답게 어깨동무를 하고, 이 나라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에는 다리가 놓여 있고, 그 아래로 맑은 물이 콸콸 흘러내리고 있다.
위의 노래처럼 이 나라는 숲의 나라다. 훤출한 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죽죽 뻗어 있다. 이 나무들은 상록수들로 언제나 푸르고, 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깊은 숲은 검푸러 보인다.
모두들 수백년 수천년 묵은 나무들이고, 더러는 그 나이가 반만년이나 된다고 한다.
봉우리마다 꽉 들어차 있는 숲에는 따로따로 이름들이 지어져 있다. 그중에도 큰 숲들의 이름만을 들면,
〈고구려의 숲〉, 〈신라의 숲〉, 〈백제의 숲〉, 〈고려의 숲〉 그리고 〈이조의 숲〉들이 그것이다.
이들 숲속에서도 이름난 것으로 〈장수바위〉와 〈슬기의 샘물〉들이 있다.
장수바위들은 집채만한 크기의 것들로, 아직 아무도 그것을 움직여본 사람들이 없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유명한 것들 몇 개만 들어본다.
〈고구려의 숲〉의 〈을지바위〉, 〈신라의 숲〉의 〈유신바위〉, 〈백제의 숲〉의 〈계백바위〉, 〈고려의 숲〉의 〈감찬바위〉, 〈이조의 숲〉의 〈순신바위〉가 그것들이다.
그리고 〈슬기의 생물〉도 만만찮게 그 수가 많다. 이 〈슬기의 생물〉은 이웃 나라, 먼 나라까지 그 이름이 알려져 많은 외국 손님들도 와서 이 샘물을 마시고 또 퍼간다는 것이다.
〈고구려의 숲〉의 〈담징의 샘물〉, 〈신라의 숲〉의 〈원효의 샘물〉, 〈백제의 숲〉의 〈왕인의 생물〉, 〈고려의 숲〉의 〈최충의 생물〉들이 이름 높다. 그리고 〈이조의 숲〉에는 그 수가 한결 많다. 〈퇴계의 샘물〉, 〈율곡의 샘물〉, 〈세종의 샘물〉---
수를 헤아릴 수 없올 정도이다.
이 나라는 또 위의 노래처럼 멧새의 나라다. 이 멧새들은 맑은 하늘과 따뜻한 날씨를 노래한다. 아득한 옛날을 노래하고, 오늘을 노래하고, 앞날의 축복을 노래한다. 그리고 숲과 바위와 샘물을 노래한다. 그 가락은 맑고 평화스럽다. 멧새들의 수도 많다.
퉁수새, 가야금새, 거문고새, 피리새, 장고새, 날날이새, 북새 팽가리새-----.
퉁수새는 퉁수 부는 소리를 내고 가야금새는 가야금줄 퉁기는 소리를 낸다.
그리고 그밖의 모든 새들도 그 이름과 같은 소리를 낸다.
이들 새들은 따로따로 노래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한꺼번에 노래하여 아름다운 화음음 올리기도 한다. 옛 어른들이 지은 가락을 대대로 물려받아서 노래한다.
이 나라 멧새들이 가장 즐겨 부르는 것은 역시 국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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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평화의 나라, 우리나라여.
2
이 나라 백성은 어질었다. 어리석을 만큼 어질었다. 이 나라 임금님도 어지신 분이었다. 대대로 임금님들은 어지신 분들이었다.
평화스러운 이 나라에 변이 일어났다. 갑자기 총칼을 든 오랑캐가 밀어닥치더니 임금님을 몰아내고 버금이라는 자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버금, 이 나라 사람들에게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알고보니, 그것은 오랑캐 나라 임금에 버금가는 사람이란 뜻이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장수바위가 땀을 흘렸다. 정작 그 버금이라는 자가 왕궁으로 들어오는 날에는, 숲과 숲에서 번개가 번쩍이고 우뢰소리가 숲속을 진동시켰다. 크고 작은 장수바위들이 몸을 부딪고 소리를 질렀다. 슬기의 샘에서는
맑은 물 대신 흙탕물이 솟고, 어떤 생물에서는 핏빛의 붉은 생물이 솟았다.
담징의 샘물 밑바닥에서 소리가 들렸다.
오랑캐는 할 수 없군.
오랑캐는 할 수 없군.
그리고 왕인의 샘물에서도 소리가 톨혔다.
은혜도 모르고.
은혜도 모르고.
멧새들도 구슬픈 가락을 노래했다. 그중에서도 꽹과리새는 꽹가리 깨지는 소 리를 내고, 북새는 북 찢어지는 소리를 냈다.
버금이란 자는 총칼을 가진 군대를 거느리고 들이닥쳤고, 이 나라 백성은 빈주먹으로 그들과 맞닥뜨렸다. 처음 백성들은 장수바위들처럼 울부짖고 슬기의 샘물들처럼 피를 토했다.
그러나 싸웅은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3
장수바위는 약간 가라앉았으나 그대로 땀을 흘렸다. 슬기의 샘물은 여전히 흙탕물을 뿜어내고, 이따금 피 섞인 물을 토해내기도 하였다.
어리석도록 어진 백성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갈팡질팡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의 소문이 퍼졌고, 또 그것이 사실로 나타났다.
〈선녀의 호수〉에서 버금을 환영하는 잔치가 베풀어진다는 것이었다.
“환영이라니?”
모두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로 나타난 것이다.
높은 벼슬자리에 환장한 사람들의 짓이라고도 하고, 버금이 강제로 시켜서 하는 짓이라고도 하였다.
이 나라에는 군대군데 아름다운 호수가 었다. 그중에서도 이 선녀의 호수가 가장 이름 높은 곳이다.
물 맑기가 수정 같은 이 호수에는, 달밤이면 이상한 광경이 벌어지는 것이다.
환히 들여다보이는 물밑에 선녀들이 떼를 지어 춤추는 것이 보인다. 춤을 추는데 바로 추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서서 춤을 추는 것이다. 하늘에서 춤추는 선녀들의 그림자가 이 호수에 비친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호수의 이름이 선녀의 호수가 된 것이다.
달밤이면 퉁수새나 거문고새, 가야금새가 번갈아 노래를 불러 선녀들 춤에 한
충 더 흥을 돋구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버금의 환영잔치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다니! 서로들 놀랐다.
맨 윗자리에 버금이란 자가 앉아 있었다. 모두들 또한번 놀랐다.
“저거야 단장이지, 성한 사람인가?”
의자가 크고 높기도 하지만 버금이란 자는 너무도 키가 작았다.
“저런 자들한테 우리가 몰리다니!”
누군가 이렇게 속삭였다.
호수물 밑에서는 춤이 벌어졌다. 그러나 퉁수새도 거문고새도 울지 않았다.
버금을 위한 잔치는 그대로 계속됐다.
버금이라는 자가 일어서더니 연설을 시작했다. 키에 비해서는 야무진 소리였다.
“여러분, 우리들의 조상은 바로 여러분의 조상이었읍니다.”
이 첫마디에 모두들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때였다.
“허허허------”
누군가가 기가 막혀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건 사람 소리가 아니었다. 골짜기에서 골짜기로 돼져가는 메아리 소리였다.
아마 장수바위가 어이가 없어 웃었을 것이라 하였다.
꽹과리새가 꽝꽝 꽹과리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도 버금은 늠름하였다.
‘그것쯤 문제없다!’는 듯하였다.
조용하기를 기다려 다시 말을 계속하였다.
“여러분, 이 나라는 바로 천당의 문턱이요, 낙원을 축소해놓은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말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 백성들올을격분시켜놓고는 다시 백성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릴 속셈이었다.
백성들 중에 몇 사람이 박수를 쳤다.
그러나 힘이 없었다. 그리고 박수소리에는 메아리도 답을 하지 않았다.
버금은 약은 인간이었다.
이내 말을 끊었다.
“어디 두고 보자!”
이런 독한 마음을 먹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4
엉뚱한 소문이 또 퍼졌다. 그리고 그것은 소문이 아니고 사실이었다.
온 나라에 포고문이 나붙었다.
〈포고문
나라 사람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관청에 나가 키를 재도록 하라 키를 재지 않는 자는 처벌을 받을 것이다.
버 금〉
나라 안이 발칵 뒤집혔다.
“오랑캐돌이란 정말 괴상한 인간들이군!”
“쉬, 오랑캐란 말을 가장 싫어하는 재 오랑캐들이야.”
“죽기밖에 더할라구!”
이런 말들이 오고 갔다.
백성들은 시키는 대로 관청으로 몰려갔다.
관청에 가보니 벽에 막대기 하나를 세워놓고 사람들을 그 앞에 세웠다.
몇치, 몇푼 하고 자세한 높이는 필요 없는 모양이었다. “
막대기보다 키가 작은 사람들은 그냥 돌려보내고, 막대기보다 큰 사람만 남게 하였다.
그런데 키 큰 사람들은 그날로 소식이 없어지고 말았다.
소문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나도는 소문으로는 그중에서도 가장 큰 사람들은 죽여버리고 나머지들은 먼 섬으로 귀양살이로 보냈다고 한다.
이 일이 었은 지 얼마 안되어서 다시 포고문이 나붙었다.
〈포고문
이 나라는 버금외 나라다.
버금보다 키가 큰 사람은 이 나라에서 살 자격이 없다.
앞으로도 버금보다 커가 큰 사람은 귀양살이로 보낼 터이니, 스스로 먼 섬으로 가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버 금>
그래서 이 나라는 난장이 나라가 되고 말았다.
5
또하나의 놀라운 소문이 떠돌더니, 그것도 사실로 나타났다. 또 포고문이 나붙었다.
〈포고문
이 나라는 버금이 다스리는 나라다.
숲의 나무들의 키가 너무 크다. 숲의 나무의 키도 버금의 키보다 더 클 수는
없다. 한 달 안으로 나무의 키를 자르도록 한다.
버 금〉
이 포고문을 읽고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은 사람이 많았다.
“여보게, 우리나라는 장차 어떻게 되누?”
“글쎄요.”
“이러고도 그 버금이 오래 견뎌날까?”
“총칼 덕이지.”
“차라리 사람의 목을 자를 일이지, 나무를 자르다니.”
“그게 그것 아닌가.”
“두고 보라고, 얼마 안 있다가 이 나라 사람들을 온통 바다에 쓸어 넣지 않나.”
“그래도 가만 있어야 하니?”
“………”
“가만있을 수 없지, 없고말고.”
이렇게 나라 사람들이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동안에 나무들은 잘리고 쓰러져 갔다.
장수바위들이 다시 울부짖기 시작했다. 슬기의 생물은 또한번 핏물을 토해
냈다.
톱질하는 사람들은 울면서 나무를 잘랐다. 몇사람들은 나무를 자르다가 기절을 했다는 소문도 들렸다.
멧새들이 소동을 일으켰다. 꽹과리새가 꽝꽝 귀가 따갑도록 울어댔다. 북새가 북 찢어지는 소리를 냈다.
그러나 나무는 하나씩 둘씩 잘려가고만 있었다. 멧새들 중에는, 나무 자르는 사람들의 손과 팔을 물고 늘어지기도 하고 성급한 새들은 나무에 몸뚱이를 부딪고 쓰러지기도 하였다.
버금보다 한술 더 뜨는 사람도 있었다.
나무를 자르는 게 아니라 뿌리째 뽑으려고 뿌리를 찍었다. 그자들은 뿌리를 찍다가 쓰러지는 나무 밑에 깔려죽었다.
마침내 숲의 나무들이 난장이가 되고 말았다. 숲이 아니라 무덤가의 표목을 늘어세운 것 같았다.
멧새들 중의 많은 새들은 숲을 떠났다. 아니 이 나라를 둥지고 떠났다. 멧새들은 자기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를 부르며 바다를 건너 멀리로 떠났다.
아, 평화의 나라, 우리나라여
어떤 새들은 목메게 부르다가 지쳐서 바다에 떨어져 죽는 것도 있었다. 이 나라를 떠나는 것은 멧새들만이 아니었다. 많은 나라 사람들도 떠났다. 또 어지신 임금님의 아들들도 떠났다.
왕자들은 어리지만 나이에 비해 키들이 컸다. 왕자들의 키가 버금의 키보다 커질 날이 머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는, 왕자들이 더 큰 변을 당할 것은 뻔한 일이었다. 왕자 중 한둘만은 백성들 속에 숨어 있다는 소문도 들렸다.
숲속의 새들은 노래부르기를 그만두었다. 때로 부른다고 하여도 슬픈 가락의 나직한 노래였다. 〈고향 생각〉, 〈푸른 하늘〉, 〈고향의 봄〉 이런 노래들의 가락이 백성들 사이에 널리 퍼졌다.
6
세월은 그대로 흘러갔다. 이런 것과는 아랑곳없는 듯이 훌러갔다.
어느 날이었다. 숲을 지키던 관리 하나가 버금 앞으로 달려왔다.
“버금님!”
버금은 혈레벌떡 달려온 관리를 돌아다보았다.
“버금님, 큰일났읍니다. 자른 나무들이 몇치씩 자랐읍니다.”
“음.”
“버금님, 아예 나무들을 찍어 넘기거나, 뿌리째 뽑아버리는 게 어떨깝시요?”
“음.”
“그렇게 명령만 내리십시요.”
“……”
“그대로 두시겠옵니까?”
“……”
버금은 역시 영리한 사람이었다. 그 나무들올 찍어넘길 수도 없거니와 더구나 뿌리를 뽑는다는 것은 어림없는 일인 줄은 알고 있었다. 뿌리의 깊이가 얼마나
깊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번 자라기 시작한 나무를 다시 자른다는 것이 어리석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날부터 버금은 병에 걸렸다.
우선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나무 자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것도 한 두 나무가 아니고 숲 전체의 나무가 욱욱 소리를 지르며 자라는 것 같았다. 나무뿐이 아니었다. 그렇게 단속했는데도 키 큰 사람들이 나돌고 있었다. 이제는 맘 놓고 나다니는 것이 예사였다. 버금은 가슴이 두근거리고 살이 떨렸다.
버금에 대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버금이 병에 걸렸다면서.”
“글쎄, 나도 그런 소문을 들었어.”
버금 앞으로 달려오는 관리들은 그때마다 언짢은 소식을 전했다.
“버금님, 나무가 또 자랐읍니다·”
“한 자나 자랐읍니다.”
“어제보다 배나 자랐읍니다·”
마침내 나무들이 본디 키만큼 자랐다는 소식이 들렸다.
버금에 대한 소문이 잇따라 나돌았다.
“뭐, 반신불수가 됐다면서.”
“아냐, 약간 돌았대.”
“약간이 뭐야, 아주 돌았다던데.”
이 나라 사람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왕자님이 돌아오신다!”
나라 사람들은 거리로 뛰쳐나왔다.
“숲의 나라 만세!”
“멧새의 나라 만세!”
“바위 나라 만세!”
“샘물의 나라 만세!”
모두들 울며 만세를 불렀다. 불며 만세를 불렀다. 헤어졌던 왕자들도 다시 만났다. 목을 껴안고 울었다. 숲속의 멧새들도 돌아왔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들이 즐겨 부르던 옛노래를 다시 불렀다.
숲의 나라, 멧새의 나라
바위의 나라, 샘물의 나라
아, 평화의 나라, 우리나라여.
장수바위들은 땀을 거두고 조용해졌다. 그리고 슬기의 샘물에서는 한충더 맑은 생물이 솟기 시작했다.
돌아온 왕자들은 버금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버금은 자리를 비운 채 어디론지 달아나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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