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 편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요절: 12절
내용 관찰
25편은 각 절의 첫 글자를 히브리어의 알파벳 순서로 시작한, 말하자면 가나다순서의 시입니다. 이것은 이 시의 성격을 암시해 줍니다. 이 시편이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기록되었다기보다는 평생을 경건에 이르기를 훈련한 나이 많은(7) 다윗의 경건 생활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12절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냐“하고 말씀하고 있는데 25편은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⓵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1)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2)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5)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은"(15) "내가 주께 피하오니"(20)하고 주만을 앙망합니다.
②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하여 더 많이 묵상하는 자입니다.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6) 합니다. "주는 인자하시고 선하신"(7) 분으로 "선하시고 정직하신"(8) 분으로 믿고 의지합니다.
③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자신이 죄인임을 항상 고백하는 자입니다.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7) 합니다. "나의 죄악이 크오니"(11)하고 고백합니다.
④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4)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를 사모합니다.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5)하고 주의 말씀 배우기를 사모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그가 택할 길을 그에게 가르치시리로다”(12)라고 말씀합니다.
25편의 전체 구도도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1) 하고 간구하고 있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내 원수를 보소서 그들의 수가 많고 나를 심히 미워하나이다”(19)한 두 부류의 사람과 두 진영이 대치하고 있는 상태임을 유의하십시오.
25편의 핵심은 "주의 선하심을 말미암아"(7), "주의 이름을 말미암아"(11)에 있습니다. "인”(因)하여란 "말미암을 인"자입니다. 모든 은혜는 이 "말미암아"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를 기억해주심도 "주의 선하심을 말미암아"(7) 하시는 것이며 나의 죄를 사하심도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11) 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무슨 공로나 의가 있어서 그렇게 해주시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롬3:24) 가능해진 것입니다. 구속의 역사에는 ‘주의 이름' 즉 여호와의 영예가 결부되어 있습니다. 그 선하심과 그 거룩하신 이름을 위하여 시작하신 분이 마침내 완성하시고야 마는 것입니다 (참고: 23:3, 렘14:7, 단9:19).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궁극적인 목적도 여기에 두어야만 합니다. 자신의 명예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그 선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원수로 개가를 부르게 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2).
우리가 마음에 간직해야 할 말씀이 있는데 "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까닭없이 속이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리이다”(3)는 "수치"라는 말입니다. 20절에서도 "내가 주께 피하오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합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수치를 모욕 정도로 생각해서는 아니됩니다. 이는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단12:2) 하신 영생과 영벌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를 바라는 자는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나를 위해 간구하던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여 이스라엘을 그 모든 환난에서 속량하소서"(22) 하고 하나님의 모든 백성을 위하여 기도함으로 25편이 모든 성도의 기도가 되었고,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기도가 되었습니다.
묵상해 봅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어떠한 자입니까?
하나님의 성품이 어떠하심으로 계시되어 있습니까?
그의 궁극적인 목표를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적용: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덕목 중에 형제에게 가장 취약한 점은 무엇입니까?
암송: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냐(12)
제 26 편
성숙한 자의 기도
요절: 8절
내용 관찰
26편은 다윗이 모함을 받고 쫓겨 다니던 수난 중에 기록된 시로 보입니다. 이런 경우 호소할 곳은 하나님밖에는 달리 없었을 것입니다.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흔들리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1) 합니다. “나를 판단하소서"하는 말은 “나를 살피시고", “나를 시험해 보십시오"(2)하고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는 것을 뜻합니다. 성도들은 자주 이런 기도를 드리기를 사모해야만 합니다. 139:23-24에서도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완전함에 행하였다”는 말이 첫 절에 이어 마지막 부분에서도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11)하고 반복됩니다.
"완전"하다 함이 하나님 앞에서 흠없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 점이 "주의 인자하심이 내 목전에 있나이다"(3)라고 주의 인자를 바람과 "나를 속량하시고 내게은혜를 베푸소서"(11)한 말씀에서 나타납니다. 다윗이 완전하다 함은 모함하는 자들의 송사가 거짓임을 뜻하며 결국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증거를 찾되 얻지 못하니"(막14:55)한 예표됨으로 인도해 줍니다.
다윗은 자신이 하지 아니한 일(4-5)과 하기를 사모했던 일(6-8)을 진술합니다. 그가 하지 아니한 일들은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아니"하고 간사한 자와 "동행치도" 아니하였고(4), 그는 행악자들과 어울리는(집회) 것을 싫어하여 그들과 같이 앉지도 않았다(5)고 말합니다. 그와는 반대로 "여호와여 내가 주께서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머무는 곳을 사랑하오니"(8)라고 말합니다. 이 사상적 배경은 1:1-2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됨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내 영혼을 죄인과 함께, 내 생명을 살인자와 함께 거두지 마소서"(9)하고 간구합니다. 이 기도가 26편의 중심적인 간구입니다. "거두지 마소서"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생전에 불신자들이 살아가는 방식대로 살지 않았으니 죽을 때에도 내 영혼을 그들이 가는 길로 "함께" 가지 않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함께"가 두 번 반복됩니다. 두 길만이 있는데 한 길은 "그 마지막이 사망"(롬6:21)이요 다른 한 길은 "마지막이 영생"(롬6:22)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영생은 "속량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11)로 말미암아 주어집니다. 이 소망이 있는 자마다 완전함에 행하기를 힘씁니다.
끝 절의 "내 발이 평탄한데 섰사오니"는 "흔들리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한"(1)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구원의 확신을 의미합니다. 그는 "여호와를 송축하리이다"하고 찬양으로 이 시를 끝맺고 있습니다.
묵상해 봅시다.
시편 기자가 하지 아니한 일이 무엇입니까? @하기를 사모한 일은 무엇입니까?
26편의 중심적인 간구가 무엇입니까?
적용: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1), 완전함에 행하오리니(11)는 구속함을 얻은 자가 힘써야 할 일입니다.
암송: 내 영혼을 죄인과 함께 거두지 마소서(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