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으로부터의 자유
『형제들아 내가 법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 하느니라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7:1-4).
7장으로 접어들었습니다. 7장은 논란이 많고 해석상 차이가 있는 장입니다. 7장 중에서도 14절 이하의 사람, 즉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원하는 이것은 행치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하는 이 사람이 누구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 사람이 바울 자신이냐 아니냐? 바울의 경험이라면 현재의 일이냐 아니면 바리새인 당시의 것이냐? 7장의 사람은 도대체 거듭난 사람이냐?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냐? 거듭난 사람이라면 영적으로 어린 상태냐? 성숙한 상태냐는 등 많은 궁금증을 유발케 합니다.
이런 궁금증을 갖게 한다 해도 이런 것들이, 사도가 7장에서 말씀하고자 한 중심주제는 아닌 것입니다. 7장의 주제는 “그리스도인과 율법의 관계”입니다.
복음을 증거 함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부딪치게 되는 두 극단은 “율법주의와, 율법폐기론 자”들입니다. 5장까지를 통해서 복음을 증거 한 사도는, 6장에서 율법폐기론 자들을 염두에 두고 칭의교리를 변증(辨證)했습니다.
그런데 7장은 또 다른 극단인 “율법주의자”를 염두에 두고 변증하는 내용입니다. 어찌하여 이런 필요를 느꼈을까요? 사도는 5:20절에서 “율법이 가입(加入)한 것은” 하고, 마치 율법이 새치기해서 들어온 것 같이 취급을 했던 것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도,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갈 3:19) 하고, 부가(附加)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율법주의자들의 비위를 상하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친히 주신 율법을 이런 취급을 하다니, 그렇다면 당신이야 말로 율법폐기론 자가 아니요? 하나님께서 필요 없는 율법을 왜 주셨단 말이요?” 사도는 이런 의구심에 대해서 변증할 필요를 느꼈던 것입니다. 그래서 7장이 기록되게 된 것입니다.
도표에 표시된 대로 7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첫째 단원(1-6)은 원리적인 말씀으로 7장을 해석하는 열쇠가 됩니다. 둘째 단원(7-13)에서는 율법이 선하다는 점을 옹호하고, 셋째 단원에서는 반대로 율법으로 섬기는 자의 속박당한 상태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① 첫 말씀이, “형제들아 내가 법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1) 합니다.
㉠ “살 동안만 주관(主管)한다”는 점을 유념하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살 동안만”이라는 말씀이,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다”는 4절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이라 해도 죽은 자는 주관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② 이렇게 말씀한 후에 예를 들기를,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2) 하고, 율법과 우리와의 관계를 부부(夫婦)관계에 비유해서 설명을 합니다.
㉠ 율법이라는 남편을 섬기면서 살아가고 있는 한 여인(女人)이 있습니다. 율법이라는 남편은 완전무결(完全無缺)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일을 법대로만 처리할 뿐, 실수에 대해서 추호도 관용할 줄을 모릅니다. 여인은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남편의 요구에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늘 정죄(定罪)감과 공포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③ 그렇다고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3상),
㉠ 즉 남편의 살아생전에 다른 남자에게로 개가해 가면 음부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율법이라는 남편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가 있단 말인가? 이럴 경우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自由)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라”(3하) 합니다.
④ 그런데 4절에서는,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4상) 하고, 죽는 것은 남편이 아니라 여인임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율법이라는 남편은 결코 죽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 주님은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律法)의 일점일획도 폐하여지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율법 하에 있던 우리의 처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에서 자유 함을 얻으려면 나 자신(自身)이 죽는 길 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는 것입니다.
⑤ 그러면 율법에 대하여 죽는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여진단 말인가? 사도는 대답하기를,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4상) 하고 말씀합니다.
㉠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여졌는가를 이미 6장에서 말씀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고안해내신 최고의 신비인 연합교리를 통해서인데, 우리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함께 죽고, 함께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함께 살리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직접 죽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 이것이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했다”는 의미입니다. 설명을 부가하면 실제로 죽임을 당하신 것은 그리스도시고, 우리는 그 안에서 하나님의 섭리 중에 죽임을 당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은 간음 현장에서 끌려온 여인을 돌로 치라 함과 같이 죄인인 우리를 죽이라 하고 요구하였으나,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대신 내어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⑥ 기독교는 사람을 교화(敎化)하고, 개선(改善)하는 윤리도덕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다시 강조해야할 점은 죄의 권세 하에 있던 자가, 해방(解放)되고 자유(自由)함을 얻는 길은 “옛사람”이 죽는 길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는 점입니다.
㉠ 사도는 갈라디아서 2장에서도,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갈 2:19) 하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는 것은 그냥 옮겨진 것이 아닙니다. 사망에 속해 있던 옛사람은 죽고, 생명 쪽에 다시 태어남을 의미합니다.
㉡ 그러므로 6:11절에서,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 지어다” 한 진리를 붙잡고 있다는 것은, 구원의 확신과 성화를 이루는데 사활을 좌우하는 원리(原理)인 것입니다.
⑦ 다시 태어난 여인은 어떻게 되었는가?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4중), 즉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이를 증거하는 사도가 어찌하여, “예수 그리스도에게 가서” 라고 하지 않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라고 했는지 그 의도를 형제는 이해할 수가 있습니까?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으며, 우리를 위해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율법에서 해방됨이 가능했던 것도, 그 분의 죽으심과 살아나심을 통해서 되어진 일이기 때문입니다.
㉡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한 “가서”라는 표현은,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전 6:17) 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합니다. 이 진리만큼 오묘한 말씀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사도는 에베소서 5장에서 아내들과 남편에 대한 권면을 하는 중에,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 5:31-32) 합니다.
㉢ 연합교리를 아가서에서는,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다”(아 6:3) 하고 말씀합니다. 다시 한번,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주와 합하여 한 영을 이루었다”는 이 영광스러움과, 신비스러움과, 비밀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주와 연합한 이 여인은 그 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⑧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4하) 하십니다.
㉠ 결혼한 사람이 자녀를 생산(生産)하듯이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에게는 열매가 맺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니라”(요 15:5) 하신 말씀과 같은 뜻입니다. 무슨 열매입니까? 6:22절에서 말씀한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입니다.
㉡ 형제여, 율법이라는 남편은 우리를 정죄할 뿐 의롭다고 여겨주지를 못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여주지 못하는 것만이 아니라, “거룩함에 이르는” 성화라는 열매도 맺게 해주지를 못합니다. 칭의 뿐만 아니라 성화까지도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후에야, 즉 복음으로만이 가능하여진다는 점을 명심하십시다. 이것이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첫댓글 연합교리에 대한 귀한 깨달음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강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