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처럼 아침 바람은 제법 쌀쌀하였습니다. 아주 상쾌한 봄기운을 볼로 느끼며 광주역광장으로 갔습니다. 이미 많은 친구들이 우리의 애마(에버그린)에 탑승해 있었습니다. 손을 잡으며 그간의 안부를 나누고 정을 교감하였습니다. 오늘 일행은 예술회관 후문에서 합류한 친구들까지 모두 39명이나 되었습니다. 십오야산행 출범이후 최대의 인원이 모인 것입니다. 나중에 봉하마을에서 합류한 정송연 친구까지 40명의 대집단이 움직이게 되었습니다.(강공수 고광창 고재선 고충석 권일산 권혁룡 김기수 김 량 김영백 김오석 김재일 김종국 김휘구 나종만 노강수 노승남 노윤택 류상의 문기정 문대섭 박오정 박호영 백종팔 송하문 양수랑 윤상윤 윤정남 이승정 이원형 이호창 임철호 정동술 정송연 정원길 정재남 제두봉 진홍래 최성연 최수현 한연석 등 40명)
9시 30분쯤 광주를 출발한 우리 일행은 남해고속도로를 달려 섬진강휴게소에서 한 번 쉬고 다시 달리다가 대전↔통영 고속도로로 갈아탔습니다. 동창원IC에서 김해시로 들어갔더니 11시 50분에 봉하마을이 나왔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고향에 돌아와 시민민주주의와 진보의 미래를 연구하고, 농촌마을 가꾸기를 하며 전직 대통령이 한낱 농부로 살았던 곳입니다. 봉하마을을 잠간 돌아보았습니다. 흙과 나무를 이용하여 자연 친화적으로 지었고, 뒷산과 조화를 위해 지붕을 낮게 만들어 지었다는 ‘지붕 낮은 집’이라 불리는 사저(私邸)에는 비운의 영부인 권양숙여사가 살고 있어서 들어가지 못하고, 그 아래 초가집으로 복원된 생가를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기념품 판매장을 둘러보는 동안 마음에 드는 기념품을 사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2009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49재 때에는 없었던 대통령묘역으로 가 보았습니다. ‘국가보존묘지 1호’로 지정되었다는 묘역은 지형을 이용한 때문에 삼각형으로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고인이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 달라!”
말씀하신 유언에 따라 검소하게 너럭바위(눈대중으로 가로×세로, 1.5m×2m)를 비석 겸 봉분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고인의 화장한 유골을 백자도자기와 연꽃 석함에 담아 참여정부 기록 DVD 등과 함께 비석 아래에 안장하였다고 합니다. 나는 모자를 벗고 머리를 조아려 묵념하였습니다. 당신은 영원히 당신을 못 잊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살아 있으니 너무 외로워 마시라 위로 하였습니다.
정토원으로 오르는 길이 돌계단으로 조성되어 있어서 전보다 오르기 쉬웠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옛날처럼 풀석풀석 먼지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부엉이 바위 위로 가서 고인이 자신의 몸을 날리려고 하였을 당시의 참담했던 심정을 느껴보았습니다. 정토원(淨土院)은 고요하였습니다. 2년 전 고인의 49재 당시 유골이 이곳 수광전(壽光殿)에 안치되어 있었을 때 전국에서 모여든 참배객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던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적막한 작은 산사(山寺)일 따름이었습니다.
정토원 뒤로 난 산길을 타고 올라갔습니다. ‘호미 든 관음상’이 있는 봉화산 정상에서는 사방이 툭 트여서 봉하 들판과 마을도 한 눈에 다 내려다 보였습니다. 특히 2008년 이후 약 2년 동안 고인이 대통령직에서 퇴임하여 고향 봉하 마을로 낙향하면서 그다지 높지 않는 이 봉화산 정상에 자주 올라왔을 것이고, 여기에서 사방을 둘러보면서 한낱 농부로서 고인이 꿈꾸었을 살기 좋은 농촌에 대한 청사진이 어떤 것이었을까를 그려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농촌을 만들어 보고자 전남 함평 나비축제를 참관하기 위해 퇴임 후 처음으로 가장 장거리 행보를 하였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였습니다.
다시 봉하마을로 내려와 40명의 친구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가져 온 가용주(家用酒)와 도시락으로 건강 백세를 기원하며 점심을 먹었습니다. 점심이 끝나고 정송연 친구는 부산으로 돌아가고 우리는 봉하마을을 떠나 부산신항만이 있는 가덕대교를 지나 오후 2시 38분 ‘가덕도휴게소’에 도착하였습니다.
가덕휴게소 전망대에서는 우리가 건너갈 ‘가덕해저터널’ 위의 바다 건너로 다이아몬드형 주탑으로 건설된 ‘거가대교’가 보였습니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1층에 있는 홍보전시관으로 갔더니 가덕해저터널의 모형과 공법 재원 등이 잘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3시에 ‘가덕휴게소’를 출발하여 드디어 세계에서 2번째로 침매공법으로 건설하였다는 ‘가덕해저터널’(3.7km)로 들어갔습니다. 잠간 사이에 터널을 통과하여 ‘거가대교’(거가2교와 1교, 4.5km)를 지나니 거제도였습니다. 거제도를 관통하여 ‘신거제대교’를 건너 통영시의 한 건어물 직판장 앞에 차를 세우고 단체기념사진을 찍은 후, 맛보기로 주는 생굴을 안주로 소주를 한 잔씩 입가심으로 마셨습니다. 우리 일행들은 거기에서 멍게 굴 멸치 다시마 등을 사서 차에 실었습니다.
4시 20분 통영을 출발하여 6시 50분 동광주에 도착하였습니다. 다음 달 행선지는 충남 연기군에 있는 ‘베어트리파크’로 정하였습니다. 오늘처럼 성황을 이루기로 약속하고 해어졌습니다.
첫댓글 두 배로 사십니다 ; 나하고 같이 갔었는데 누구(종만)는 가지도 안았고-보지도 못했고 누구(수랑)는 언제 거기까지 가서 보고-듣고 연구해서 다른 사람에게 피드백의 자료를 제공하니 너무너무 고맙기도하고 부럽섭니다. 앞으로도 계속 수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