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 남도유배길(다산수련원-영랑생가)-2
백련사 만세루를 빠져나와 주차장 쪽으로 내려가는 길에도 울창한 동백나무가 아름답게 꽃을 피우고 있다.
백련사주차장에서 왼쪽 산길로 접어든다. 지금까지 북적거렸던 사람들은 어디가고 한적하기 이를 데 없다.
평범한 야산에는 후박나무와 사스레피나무 같은 온대성 식물이 소나무 등 다른 나무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진달래가 활짝 피어 봄 향기를 전해준다.
산 아래로는 푸른 보리밭이 산뜻하고, 보리밭 너머로 강진만의 바닷물이 출렁인다.
산자락을 내려오니 길은 강진만 제방으로 길게 이어진다.
강진만은 강진군 강진읍·도암면·신전면과 칠량면·대구면·마량면 사이에 형성된 만(灣)으로 구강포라고도 부른다.
아홉 개의 물줄기가 만난다는 구강포(九江浦)는 강진만 어딘가에 있는 포구 이름이라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디를 일컫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곳 강진만에서는 겨울이면 천연기념물인 고니(백조)를 비롯하여 청둥오리·도요새·백두루미 등
각종 철새가 서식한다. 드넓게 펼쳐진 갈대와 갯벌, 바지락, 꼬막, 맛조개, 갯지렁이 등
먹잇감이 풍부하여 철새들이 겨울을 나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강진만 너머로는 칠량면·대구면·마량면의 산들이 다가오고, 그 뒤로 장흥 천관산도 버티고 있다.
길게 이어지는 제방 길을 걷다보니 만덕산에 기대고 있는 마을이 푸른 보리밭과 어울리고,
물이 빠져 갯벌을 이룬 강진만이 질박하다.
길은 자전거도로를 겸하고 있어 가끔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람들도 볼 수 있다.
걸을수록 강진읍내가 점점 가까워진다.
탐진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이라 넓은 습지를 이루었다. 습지에는 섬처럼 갈대밭이 형성되어 있고,
갈대밭 사이로 구불구불 갯벌 길이 형성되었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이곳에서는 장어와 재첩이 서식한다. 그래서 장어 잡이 소형 배도 있고, 게와 재첩을 잡으러 가는 할머니도 만난다.
“갯벌에서 게와 재첩을 잡는디 옛날 같이 많이는 안 잡혀.”
이곳에서 자연산 장어를 잡는 방법은 옛날 방식 그대로다. 바다 속에 돌무덤을 만들고 나서
돌무덤 밖으로 그물을 빽빽이 친 다음 돌을 밖으로 끄집어낸 후 그 안에 있는 장어를 잡는 방식이다.
이렇게 잡은 장어는 탐진강 하구에 놓인 목리다리 밑 식당에서 인기리에 판매 되었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목리장어 하면 알아주는 음식이었다.
지금은 잡히는 양이 적기 때문에 미리 주문해야 자연산을 맛볼 수 있다.
2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약 3개월 동안은 이곳에서 실뱀장어를 잡는다.
아직도 인공적으로 장어를 부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부화가 되어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오는
실뱀장어를 잡아 민물에서 양식한 후 시판된다.
바다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리면 청보리밭이 싱그럽고 눈부시다.
3km 정도 제방길을 걷고 나서 남포교를 건너니 남포마을이다.
2번 국도가 지나는 도로 아래 굴다리를 지나니 강진읍내가 지척이다.
금방 읍내로 들어설 것 같은데, 길은 외곽으로 한참을 돌아서간다.
탐진강변에 자리를 잡은 큰 마을인 목리로 들어선다. 목리에는 이학래의 가옥이 있었다.
다산선생이 1806년부터 1808년까지 2년 가량 머물렀던 이학래 가옥은 집터만 남아있을 뿐이다.
이어 강진읍내의 북동쪽 변두리에 있는 사의재로 향한다.
복원된 사의재는 초가를 얹은 정면 본채와 문간채, 화장실로 구성되어 있다.
사의재는 다산이 강진으로 유배를 왔을 때 최초로 4년 동안 머물렀던 주막집이다.
다산선생이 한양에서 강진까지 370km가 넘는 삼남길(동작나루-천안-정읍-나주-영암-강진-해남)을 걸어
강진에 도착해 가장 먼저 짐을 푼 곳이 바로 동문주막이다. 대역죄인이라고 모두가 등을 돌릴 때
유일하게 주막집 노파가 다산에게 방을 내주었다.
선생은 이곳 주막 뒤편의 작은 골방에서 4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다산은 이 방에 사의재(四宜齋)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의(四宜)란 네 가지 마땅함을 가리키는데, “생각은 마땅히 담백해야 하고,
외모는 마땅히 장엄해야 하고, 말은 마땅히 과묵해야 하고, 동작은 마땅히 중후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의재 옆에는 작은 연못과 나무다리가 있어 운치를 더하고,
주변의 느티나무와 팽나무들이 다산이 외로움 속에서도 꿋꿋함을 잃지 않고 살았던 당시의 모습을 회상케 한다.
사의재 뒤편에 설치해 놓은 주모상이 길손에게 후덕한 인심을 전해준다.
사의재 문간채에서는 간단한 식사(추어탕)와 막걸리·차류를 판매하고 있어,
옛 동문주막을 상상하며 요기를 할 수 있다.
사의재를 나와 영랑생가로 가는 길은 강진읍내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뒷길이다.
밭길을 지날 때는 화사하게 핀 벚꽃이 길손을 즐겁게 해준다.
우리는 영랑생가 뒤에 있는 금서당(琴書堂) 옛터로 들어선다.
금서당은 강진중앙초등학교 전신으로, 강진 신교육의 발상지이다.
원래 서당이었던 금서당은 1905년 사립금릉학교로, 1909년 다시 강진공립보통학교로 개편되어
1914년 이전하기까지 이 자리에서 초등교육이 이루어졌다.
영랑 김윤식도 금서당에서 보통학교를 다니고 서울 휘문의숙에 입학하였다.
금서당은 1919년 3.1운동 당시 구두에 독립선언문을 감추고 내려온 영랑이 금서당을 거쳐 간 200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던 곳이기도 하다.
현재의 금서당 건물은 1950년 완향 김영렬 화백이 매입하여 평생을 이곳에서 작품활동을 했다.
금서당을 나오니 시문학파기념관과 영랑생가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서 있다.
시문학파기념관에는 1930년 3월 창간한 <시문학>지를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했던 영랑 김윤식을 비롯하여
용아 박용철, 정지용, 이하윤, 정인보, 변영로, 김현구, 신석정 등의 사진과 약력, 시집 등이 전시되어 있다.
영랑은 1934년 <시문학> 제3호에 자신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발표하였고,
1935년 <영랑시집>을, 1949년에는 <영랑시선>을 출간하였다. 영랑 선생은 조국 해방이 이루어질 때까지
창씨개명과 신사참배, 삭발령을 거부한 채 의로운 민족시인으로 살았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부상을 당하여 1950년 47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영랑 선생은 생애에 모두 87편의 시를 남겼다. 영랑생가는 1948년 선생이 서울로 이사한 후 여러 차례 전매되었으나, 1985년 강진군이 매입하여 복원하였다.
1986년 전라남도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었다가 2007년 10월에는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되었다.
돌담길을 돌아 영랑생가로 들어선다. 생가 입구의 조그만 광장에서 그의 대표작인 ‘모란이 피기까지는’이라는
시가 새겨진 시비가 방문객을 맞는다. 생가는 크게 두 블럭으로 나누어져 있다.
정면에서 볼 때 오른쪽이 사랑채, 왼쪽이 본채로 각각 문간채를 통하여 들어갈 수 있고,
본채와 사랑채 사이에도 통행할 수 있는 문이 있다.
먼저 본채로 들어서니 정면 5칸 측면 2칸의 초가집이 영랑을 그리며 고즈넉하게 앉아 있다.
초가 뒤의 동백나무와 대나무는 사시사철 푸름을 유지해 준다.
마침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영랑생가를 붉게 물들이고 있다.
집 옆의 살구나무와 장독대, 우물도 영랑의 시적 상상력을 불러일으켜 주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사랑채 앞에 서 있는 거목의 은행나무는 영랑의 마음을 굳건하게 지켜주던 지주였을지도 모른다.
생가 곳곳에 새겨놓은 영랑의 시를 읽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영랑생가 마루에 앉아 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음미한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2014. 4. 6)
*여행쪽지
-‘다산 정약용 남도유배길’은 강진의 다산수련원에서 영암 구림마을까지 총 61.5km, 4개 코스로 나누어져 있다.
-그중 1코스는 다산수련원에서 다산초당-백련사-철새도래지-남포마을-사의재를 거쳐 영랑생가까지 15km로 5시간 정도 걸린다.
-다산수련원(다산초당) 가는 버스는 강진버스터미널에서 06:35, 07:35, 09:40, 10:40, 11:30, 12:40, 14:10, 17:20, 18:40에 출발한다. 20분 소요.
-강진 목리장어는 옛날부터 유명했다. 목리장어센터(061-432-9292)는 2대째 하고 있는 장어전문식당인데, 양식장에서 1주일 전에 가져와 민물수조에서 항생제 성분을 빼내고 나서 요리를 한다. 장어양념구이와 장어소금구이 1인분에 14,000원이다. 탐진강 하구에서 잡히는 자연산 장어를 먹으려면 사전에 전화로 주문을 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