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최고 피서지, 강화 팔경 ‘연미정’을 찾아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이 분다.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으로 까마득하게 느껴졌던 이북 땅이 한결 가까워졌다. 남북화해무드를 타고 접경지역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수도권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인 강화도는 평화관광지로 특히 주목을 받고 있다. 그중 2008년에 개방된 연미정은 강화 팔경으로 손꼽힐 만큼 절경을 자랑하지만 널리 알려지지는 않은 강화의 숨은 명소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된 요즘. 주말을 맞이하여 연미정을 찾은 동네 주민들의 발걸음이 가볍다. 아름드리 느티나무 아래 캠핑용 테이블과 의자를 펴고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리는 여성들이 눈에 띄었다.
“저는 근처에 살고, 친구네는 김포 통진입니다. 덜 붐비는 일요일 오전에 이곳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요. SNS에 사진 올리면 다들 이렇게 근사한 카페가 어디냐고 묻죠. 농담으로 우리집 정원이라고 대답합니다. 사방이 터져 있어서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으면 이보다 더 시원한 피서지가 없어요.”
고려 고종때 지어진 학생들의 여름공부 장소
2008년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연미정은 원래 민간인통제구역이었다. 조선시대까지는 한양으로 가는 배가 이 정자 아래 닻을 내리고 ‘물 때’를 기다렸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난 강물이 서쪽과 남쪽으로 갈라져 흐르는 모습이 제비꼬리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연미정’. 500년 넘게 이 자리를 지켜온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운치를 더한다. 느티나무 어느 가지에선가 뻐꾸기가 운다. 드라마 ‘왕은 사랑한다.’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바로 이 자리에서 비극적 운명을 겪은 세 남녀 주인공이 이별을 준비했다.
연미정은 본디 고려 고종(1213~1259)이 학생들의 여름 공부 장소로 지었다고 전해진다. 무더운 여름날, 연미정이야 말로 최고의 ‘독서처’다. 네모난 돌로 이뤄진 연미정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으니 살랑살랑 살갗에 닿는 바람이 상쾌하다. 몽골군의 침략 중에도 나라의 동량이 될 학생들을 우선으로 했던 선조들의 참된 마음이 아름답다.
연미정을 둘러싼 성곽은 월곶돈대다. 타원형으로 된 돈대 꼭대기로 발길을 옮겼다. 파주, 김포, 북한 황해도 개풍군 일대가 한눈에 조망된다. 맑은 날 바라보는 북녘 땅도 좋지만, 해질녘 붉게 물든 풍광은 애틋한 정조를 불러일으킨다.
강화유수 김노진은 강화의 으뜸 경관 열 곳을 뽑아 ‘강화부지’(1783)에 기록했다. 그중 하나가 ‘연미조범(燕尾漕帆)’이다. 김포 통진나루와 강화 갑곶나루 사이를 흐르는 염하. 강과 바다가 만나는 물길을 가득 매운 조운선과, 펄럭이는 돛대, 왁자지껄한 뱃사람들의 활기는 장관이었으리라. 인간이 그은 보이지 않은 선은 염하의 활력을 앗아갔지만,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그날이 온다면 이곳의 풍경도 달라질 것이다.
'냄비밥에 시골 반찬'으로 아는 사람만 아는 숨은 맛집
강화나들길 1코스의 출발지점인 연미정 입구, 간판 없는 식당을 찾았다. 나들길 지기들과 지역 문화예술인사들이 아끼는 맛집이다. 강화 사람들 사이에서는 ‘연미정 할머니 밥집’으로 통하는 백반집. 돼지족발이 통째로 들어간 묵은지찜, 조기찌개, 곰삭은 짠지와 나물 반찬으로 이뤄진 기교 없는 밥상이다. ‘몇 인분 주셔요.’ 주문하면 할머니는 냄비밥을 짓는다. 밥 짓는 냄새가 허기를 부추긴다. 냄비밥이 익으면 할머니는 주걱으로 밥을 푼 후 물을 부어 눌은밥을 끓인다. 강화섬 쌀로 갓 지은 밥과 구수한 눌은밥이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이 자리는 원래 우리집 감나무밭이에요. 여기는 민통선 지역이어서 군부대가 있었거든요. 먹을거리가 부족하던 시절, 겨울이면 어린 병사들이 배가 고프니까 감나무에 달려있던 감을 몰래 따먹곤 했어요. 그러면 ‘얘야, 체한다. 이리 와서 밥 한술 뜨고 가렴.’하고 따뜻한 밥 한 끼 해 먹여 보냈죠. 그러다 보니 군인들이 자꾸 ‘어머니, 밥 좀 해주셔요.’ 부탁을 해요. 군 부대로 돼지껍데기 한관씩 삶아다 주고. 20년째 그렇게 이름도 없는 밥집을 하게 되었네요. 반찬이라고 별거 없어요. 아침에 앞동산에서 산나물 따서 손님상에 올려요. 마당에 있는 개복숭아로 짠지 만들고, 오시는 손님들께 한끼 잘 대접하는 게 복 짓는 거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어요.”
어린 시절, 외가에 가면 귀한 손주 왔다고 외할머니는 이것저것 챙겨주셨다.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소박한 밥상을 떠올리게 하는 할머니 백반. 부디 오래 오래 건강하게 이 자리를 지켜주시길.
첫댓글 냄비밥묵으러가자~~~~~~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