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왕조실록
중종 23년 무자(1528,가정 7)
7월12일 (신사)
순변사의 변방 순심에 왜환도를 보내지 말 것과 먼저 보낸 군기도 가져오도록 하다
정원이 군기시(軍器寺) 단자(單子)를 가지고 입계하기를,
“당초에 순변사가 계청한 물목(物目)에 관한 계하(啓下)된 초기(抄記)는 어제부터 해사(該司)로 하여금 찾아서 가져오도록 했는데 아직 고찰하여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를 고찰해 보건대, 순변사가 계청한 물목은 단지 활·화살·활줄과 왜환도(倭環刀)·화포(火砲)·화약 등의 물품뿐인데, 이 달 9일에 벌등포(伐等浦) 권관(權管) 전세용(全世用)이 부임할 때 전부를 맡아서 가지고 내려가도록 했습니다. 이 군기시의 초기(抄記)는 곧 그때 내려보낸 물목을 적은 것입니다.”
【군기시의 초기에, 대궐에 간직하고 있는 흑각궁(黑角弓) 3백 50장(張), 향각궁(鄕角弓) 3백 50장, 활줄 7백 개, 서보자전(西甫子箭) 5백 부, 적마편전(狄亇片箭) 5백 부, 왜환도 3백 자루, 지신포(紙信砲) 10, 화약 1백 근, 통(筒)이 달린 중신기전(中神機箭) 5백 자루, 화전(火箭)이 달린 소발화(小發火) 1백, 대발화(大發火) 70, 중약선(中藥線) 70 사리, 파진군(破陣軍) 2명이었다.】
하니, 전교하였다.
“이 물목은 순변사가 계청한 다음에 그의 말에 따라 이런 수량을 마련해서 들여보낸 것인가, 아니면 본시(本寺)가 스스로 그런 수량을 들여보낸 것인가? 순변사가 만일 정토(征討)하는 일로 내려가는 것이라면 활과 화살 및 화포 등의 물건을 다수 가지고 가야 하지만, 이번은 단지 변방을 순심(巡審)하면서 정토하는 데에 관한 사세를 보고만 올 것인데, 무기고의 물건을 이처럼 다수 가지고 가는 것은 합당치 못한 듯하다. 따라서 이 물목은 다시 감해서 마련해야 하고, 왜환도는 보내지 않는 것이 가하다. 또 먼저 보낸 군기(軍器)는 또한 시급히 도로 가져오도록 해야 한다. 이런 뜻으로 대간이 왔을 적에 말해 주라.”
【원전】 17 집 4 면
【분류】 *왕실-사급(賜給)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군사-군정(軍政) / *군사-군기(軍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