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왓씨무앙 사원 천년 보리수나무
인도차이나반도의 유일한 내륙국가인 라오스는 2천여 년 전 여러 소국의 연합체인 ‘애뢰’ 왕 시대를 지나 1353년 ‘파응움’ 왕이 크메르 제국으로부터 독립하여 ‘루앙 프라방’에 ‘란쌍 왕국’을 세운다.
란쌍 왕국은 라오스의 ‘쎄타티랫’ 왕(1547-1571) 시대에 외세를 극복하고 1563년 비엔티안으로 천도하여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쎄타티랫 왕 사후 왕위계승 분쟁, 거듭되는 미얀마의 침공에 시달리다가 ‘쑤린야웡싸’ 왕(1637-1694) 때 다시 안정기를 맞는다.
이 시기의 비엔티안에 많은 사원의 건설과 화려한 예술품, 라오스 문자의 문학, 서양과의 교역도 활발하였다. 이때 란쌍 왕국에 왔던 네덜란드 상인 ‘부이스토프’가 1641년 비엔티안 외곽 사원으로 가는 왕의 행렬을 기록했다.
‘흰색 코끼리를 탄 왕이 우리 천막 앞으로 지나갔다. 우리는 길 위에 무릎을 꿇었다. 왕은 23세 정도 되어 보였다. 행렬 앞의 창과 총으로 무장한 약 300명의 군인과 뒤로는 코끼리를 탄 병사들과 악대들이다. 이어서 2000여 명의 군인과 왕의 다섯 부인을 태운 16마리의 코끼리가 지나갔다.’
그러나 쑤린야웡싸 왕 사후 라오스의 란쌍 왕국은 루앙프라방 왕국, 비엔티안 왕국, 짬빠싹 왕국으로 분열되었다.
그렇게 삼국으로 분열된 라오스는 베트남과 태국의 간섭에 시달리다 비엔티안 왕국은 태국에 의해 1828년 멸망하였다. 그러나 태국과 가까웠던 루앙 프라방 왕국은 1830년대부터 1860년 초까지 안정기를 누렸다.
하지만 1860년대 이후 중국인들이 라오스로 와 도적 떼가 되어 약탈하는 등 정세가 불안해졌다. 이에 루앙 프라방은 1893년 스스로 프랑스의 보호국이 되었다. 그러다 1945년 일본에 의해 강제로 독립하여 잠시 일본의 괴뢰국, 일본 패망 뒤 다시 프랑스 식민지 시대를 거쳐 1947년 프랑스군이 철수함으로써 1950년 라오스 왕국으로 독립하였다.
1975년이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면서 ‘쑤완나푸마’ 국왕이 물러나고 지금의 라오 인민민주공화국이 수립되어 ‘쑤파누웡’이 초대 국가 주석이 되었다. 라오스의 모든 생산수단은 국가 소유, 공산주의 외의 어떠한 사상도 금지된 정권이었다.
이 베트남 전쟁 때 라오스도 미군의 무자비한 폭격에 5만여 명이 죽었고, 아직도 고산지대에 남아 있는 불발탄을 제거하는 데에 100년이 걸린다고 한다. 1990년대에 2만여 명이 불발탄으로 죽었는데 대부분이 아이들이었다
아무튼, 이제 라오스 정부는 1986년에 중국이나 베트남의 경제정책을 차용하고, 1989년 첫 직선제 총선, 1991년 헌법을 바꿨다. 하지만 1995년 ‘반혁명활동’ 단속으로 국민보다는 체제유지에 치중하고 있다. 다행히 1997년 동남아시아 국가연합에 가입하고 문호를 개방하며 세계 각국의 원조와 협력으로 발전을 지향하고 있다.
이 라오스의 불교사원에 가면 천 살이 넘은 보리수나무를 볼 수 있다. ‘씨’라는 여인의 희생을 기려 세운 ‘왓씨무앙’ 사원의 보리수는 고개를 들면 아래가 보이지 않고, 내리면 위가 보이지 않는다. 쎄타티랫 왕이 건설했다는 ‘탓루앙’ 사원에도 어마어마한 보리수나무 두 그루가 있다. 우주의 나이로 천년이야 시간도 아니지만, 우리 인간에게 천년은 33대의 조상이 사는 삶이다. 그 천년의 세월을 우러르며 보리수나무 앞에서 두 손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