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시민
선정수 씀
아들을 만나면 영화를 보는 것이 둘만의 데이트 방법 중의 하나이다. 그날은 집에서 늦게 출발하였기에 영화를 보기에는 늦은 시간이었다. 저녁밥이나 같이 먹고 돌아오려고 했는데 밥을 먹기보다 영화를 보자고 하여 영화관을 향하였다. 주말이지만 영화관이 한산하여 주차를 하고 표를 끊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무슨 영화를 볼지 망설일 틈도 없이 집으로 돌아갈 시간에 맞춰 가장 빨리 상영되는 영화를 골랐다. 무료팝콘과 탄산음료를 주문하였다. 무료 팝콘이라 그런지 온기가 없고 눅눅하여 팝콘에 대한 달콤한 기대가 실망으로 이어졌다. 공짜를 좋아해서는 안 된다는 불멸의 진리를 되새겼다. 기다릴 필요도 없이 영화가 곧바로 시작되었다. 1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 순간적인 공포가 밀려왔다. 갑작스런 어둠에 적응이 되지 않아 걸음을 옮길 수가 없어 자리에 서 있다가 서서히 적응되면서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J열 7번, 8번 좌석을 찾아서 앉았다. 군데군데 빈자리가 보였다.
주연이나 제목 줄거리 등을 꼼꼼히 챙겨보지 않고 상영시간만 보고 고른 영화라 큰 기대를 걸지 않았지만 뜻밖에 영화는 지루해 할 틈이 없었다. 명량, 대호 이후의 최민식 주연의 영화는 실로 오랜만에 만났다. 명량의 최민식은 이순신 장군 역으로 몇 마디 말 밖에 하지 않았고 몸짓과 표정만으로 묵직한 이순신 역을 해냈다. 그리고 대호의 호랑이 사냥꾼 최민식 역시 말이 없었다. 말이 없어도 연기인의 몸짓과 표정만으로도 충분히 이야기가 전달된다는 것을 그 때 알게 되었다. 몸으로 말하는 연기자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특별시민에 변종구로 출연한 최민식은 명량과 달리 많은 말을 한다. 정치가로서 대중 앞에서 연설을 해야 하고 자신의 욕망을 향해서 무수한 거짓말을 해야 한다.
박인제 감독의 특별시민은 선거에 드러난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다. 선거에서의 승리는 곧 권력이며 권력은 곧 욕망이다. 선거 공작의 일인자인 선거대책본부장 ‘심혁수’(곽도원)를 파트너로 삼고, 겁 없이 선거판에 뛰어든 젊은 광고 전문가 ‘박경’(심은경)까지 새롭게 영입한 변종구(최민식)는 차기 대권을 노리며, 헌정 사상 최초의 3선 서울시장에 도전한다. 얼마 남지 않은 대통령 선거에 맞춰 맞춤형 영화로 상영되어 좀더 흥미로웠다. 변종구는 박경의 눈에 가장 청렴하고 존경할 수 밖에 없는 인물로 비춰진다. 변종구 선거운동본부의 일원으로 가담하면서 정치적인 쇼의 진면목을 알게 되고 실망과 분노, 썩은 밑바닥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존경하는 인물이 가정 썩은 거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그녀는 실망을 금치 못한다.
변종구는 가족을 정치의 희생양으로 삼는다. 선거에 미친 변종구는 자신이 저지른 뺑소니를 딸에게 덮어 씌우고 선거를 무사히 치르기 위하여 ‘도와줘라’고 한다. 그에게는 가족도 정치적인 도구이이며 그의 생각과 행동 하나하나가 이미지 관리에서 비롯된 정치적인 쇼이다. 심지어는 인간의 죽음조차도 정치적인 계산기에 두드려져 계산되어지고 해결되어 진다. 이미 정치인이기에 인간은 없고 욕망만 남아 있다.
‘이 색 저 색 다 섞이면 결국 이렇게 다 검은색 되는 거야’라며 단일화에 반대하는 박경에게 심혁수는 정치에 대한 색깔을 말한다. 정치는 순수한 제 색깔을 지니지 못한다는 것이다. 좋은 구두를 신으면 좋은 곳으로 데려다 준다고 믿는 심혁수는 취미로 구두를 모으고 닦는 것을 좋아한다. 심혁수는 나중에 좋아하는 구두를 신고 좋은 곳으로 가보지도 못하고 구두를 진열하는 진열대에 깔려 죽게 된다.
양진주(라미란)와 접전 끝에 변종구는 3선에 승리하지만 심혁수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발견한 USB에 담긴 진실을 알게 된 박경은 ‘저는 시장님이 그렇게 싫어하시는 유권자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심판할 겁니다’라고 말하며 돌아서 나간다.
변종구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조연으로 나온 진선규와 쌈을 싸먹는 장면은 압권이다. 상추 두세 겹을 겹쳐 고기를 두 점 쌈 위에 올려 진선규의 입에 넣어주는 변종구, 커다란 쌈을 한 번 더 싸서 입 속으로 밀어 넣어 준다. 미어터지는 입으로 꾸역꾸역 쌈을 먹는 진선규, 변종구는 또 다시 자신의 입으로 큰 쌈을 밀어 넣는다. 상추쌈을 먹는 입이 오물거리는 모습이 크게 확대 되면서 마지막 자막이 흐른다. 입은 끝없는 욕망의 검은 구멍이자 채우지지 않는 아가리다. 그 깊은 욕망의 구멍으로 밀어 넣어진 쌈, 그 쌈을 오물거리는 입.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 일까? 특별시민을 보면서 인간의 욕망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았다. 가지면 가지수록 더 탐하게 되는 욕망은 채워지지 않는 화수분과 같은 것이다.
사성제와 12연기는 석가가 보리수 아래에서 선정에 들어가 깨친 뒤 처음으로 대중에게 가르친 설법이다. 이 설법은 불교의 가장 기본이 되는 교리다. 다. 사성제는 네 가지의 거룩한 가르침으로서 고성제(苦聖諦), 집성제(集聖諦), 멸성제(滅聖諦), 도성제(道聖諦)의 네 단계로 이루어진다. 고성제란 인생은 괴로움의 바다라는 진리다. 집성제란 괴로움의 원인은 욕망의 집착이라는 진리다. 멸성제란 욕망의 집착을 끊어야 괴로움의 바다를 벗어날 수 있다는 진리다. 도성제란 괴로움에서 해탈하기 위해서는 여덟 가지 바른 길을 닦아야 한다는 진리다.
석가는 사성제에서 욕망의 집착이 바로 괴로움의 원인이라고 진단하여 욕망의 집착을 없애는 수행의 길을 제시하였다. 그러므로 불교는 기본적으로 욕망을 부정적으로 보고 정복의 대상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 욕망의 집착은 결코 쉽사리 없앨 수 있는 게 아니다. 석가는 12연기를 통해 욕망의 허망함을 보여줌으로써 욕망의 집착을 없애려고 하였다. 12연기는 무명(無明) → 행(行) → 식(識) → 명색(名色) → 육입(六入) → 촉(觸) → 수(受) → 애(愛, 갈애) → 취(取) → 유(有) → 생(生) → 노사(老死)의 십이지(十二支)로 이루어진 윤회의 사슬이다. 12연기의 바탕을 이루는 사상의 요체는 다음과 같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발생하기 때문에 저것이 발생한다.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하기 때문에 저것이 소멸한다.” 따라서 ‘→’는 인과적 조건을 뜻한다. 욕망은 어떠한가? 갈애(tanhā), 즉 욕망도 심신의 감각 작용과 느낌 등의 인연에 따라 생긴 것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욕망도 실체가 없고 덧없어서 공하다. 욕망이 그러하다면 욕망의 집착이란 허망할 뿐이다. 이런 식으로 석가는 욕망의 집착을 없애려고 하였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변종구처럼 끝없는 욕망을 갈구한다. 또한 불자이기에 욕망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아함경>에서는 12연기와 같이 욕망을 보는 방법뿐만 아니라 욕망을 가라앉히는 구체적인 수행 방법도 나오고 있다. 그 방법은 호흡과 명상이다. 석가는 선정에 들어가 들숨과 날숨을 집중적으로 관찰하는 명상을 통하여 거친 욕망을 가라앉히는 수행을 권장하였다. 우리는 욕망을 벗어날 수는 없어도 나름대로 욕망을 다스릴 수 있는 수행이 필요하다.
☆참고자료: 네이버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