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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평론 2023년 5월 칼럼
제목 : 시험의 노예가 되게 하는 학벌주의 사회
저자 : 안재오
서론 : 저출산의 원인 ㅡ 학벌주의
요즘 한국의 가장 큰 문제는 저출산, 고령화이다. 연일 신문과 방송에 이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이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모르고 있다. 필자가 교육평론 칼럼에서 여러 번 상세하게 지적한 것처럼 이 문제의 원인은 바로 교육 제도이다. 즉 「공부 잘하면 출세한다」는 신념으로 나타나는 학벌주의가 바로 그 직접적인 원인이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이런 제도와 의식이 늘리 퍼져있지만 그 피해가 극심한 지역이 바로 한국, 일본, 중국, 베트남, 대만 등 과거 중국문화권에 속한 나라들이다. 고래로부터 과거시험 혹은 국가 시험을 통해서 관리를 등용한 중국 문화의 열향력에 속한 나라들에게서 이 학벌주의는 현재 엄청난 폐해(弊害)를 끼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가 바로 그것이다.
이에 배해서 학벌주의에 의해서 지배되는 나라들이긴 하지만 영국과 미국 등은 비교적 학벌주의의 폐해가 작은 나라들이다.
아시아에서 이렇게 학벌주의가 국가 멸망을 초래할 정도로 극심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교육 경쟁이 보편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사회의 모든 계층이 교육 경쟁에 참가한다. 따라서 경쟁은 극심하고 이에 비례해서 교육비가 많이 들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중•고등학교가 무시험화되면서 오히려 대학 입시 경쟁은 더욱 치열해 진 면이 있다.
과거에는 중학교부터 입시경쟁이 있었고 이런 과정에서 1차 교육 경쟁에 패배한 학생들 일찍이 명문대 경쟁을 포기한 덕분에 경쟁의 모집단이 지금보다 크지 않았다. 중학교 내지 고등학교 입시 경쟁에서 낙오한 학생들은 일찌감치 산업체나 기능직을 찾을 수도 있었다. 필자가 중•고등학교가 무시험 제도를 반대하는 것은 절대 아니고 단지 대학 경쟁이 더욱 보편화되고 심해진다는 현재의 현상을 설명한 것이다.
최근 어떤 신문 기사에서 월급 370만인 남성이 소개팅에 나왔다가 상대방 여성에게 심한 모욕을 당한 기사가 실렸다. 즉 연봉 5000을 받아도 여자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결혼하기 위해서는 남-녀 합산 소득이 1억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파다하다. 이런 근본적인 원인은 교육이다. 「생애주기 적자 구조」에 의하면 애 한명을 다 키워 독립시키기 까지는 3억 5천만원이 든다고 한다. 보통 아파트값 때문에 돈이 많이 든다고 하지만 이는 서울에 국한 된 이야기이고 지방은 다르다. 그리고 아파트 내지 비싼 주택 마련 역시 자녀 출산 및 양육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자녀 출산 계획이 없는 부부들은 비싼 주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덧붙여 말하면 요즘은 애기 낳지 않는 부부들이 많다. 심지어 어떤 신혼 부부들은 아예 애기 대신 강아지만 키운다는 말도 들었다. “애는 돈이 많이 들잖아요?” 라고 한 신혼의 여성이 나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2. 본론 : 시험의 노예가 되게 하는 학벌주의 사회
학벌주의가 저출산의 원인임을 위에서 밝혔다. 이에 못지않게 아니 근본적으로 더 큰 문제가 교육 강제로 인한 인권의 탄압과 창조성, 주체성, 도덕성 결핍이다.
교육 기간 내내 시험 준비만 하는 나라에서 창의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각급학교는 물론이거니와 학교를 졸업한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거의 모두 취업 준비 시험에 목을 매고 있다. 학교 시험, 입시 준비와 취업 시험 준비로 청춘의 에너지를 모두 소비한 이들은 소위 「번아웃」 현상에 빠지기도 한다. 즉 그렇게 힘들게 공부하여 희망하던 대학교나 직장에 들어가자 마자 탈진 상태에 빠져 심신(心身)이 무너지는 경우이다. 아래의 글은 이런 사정을 잘 묘사하고 있다.
“제 방은 쓰레기통이에요. 반지하 자취방 불을 꺼놓고 1주일 동안 아무 곳에도 안 나갔어요. 수업에도 빠졌더니 과 친구들이 찾아와서 창문을 두드리더라고요. 살았나 죽었나 확인하러 왔대요. 저도 제가 한심한데 애들이 제 방을 보고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싶어요. 저 정말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대 붙었거든요. 꿈에 그리던 관악에 왔는데 이제 와서 아무 것도 하기가 싫은 거예요. 공부는 커녕 움직이기조차 싫고, 방도 막 어질러 놓고 싶어요. 무엇인가 정리한다는 것이 너무 싫어요. 그냥 너저분한 어둠 속에서 쉬고만 싶어요.” (2022.06.17. 경향신문)
직장인들 역시 이런 번 아웃 현상을 경험한다. 온갖 취업 준비로 겨우 바라던 직장에 들어갔으나 곧 탈진(번아웃) 현상이 발생한다.
번아웃 증후군으로 고통받은 경험을 호소한 직장인 상당수가 입사한 지 5년 안팎에 불과한 어린 회사원이었다. 심지어 취업준비생, 대학원생의 번아웃 경험담도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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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미국에서는 '밀레니얼은 어떻게 번아웃 세대가 됐는가'라는 책이 출판돼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미국 밀레니얼보다 어린 나이부터 강도 높은 무한경쟁을 겪은 우리나라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어쩌면 더 이른 나이에 훨씬 심각한 '한국형 번아웃 증후군'을 겪고 있는 건 아닐까. (매일 경제 21.03.03.)
이런 일련의 학생, 청년 관련 사회 문제는 시험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진다. 즉 중-고등학교의 중간고사 기말고사, 수능시험 그리고 입학시험, 입사 시험 등을 말한다. 어린 회사원들이 번 아웃에 빠지는 이유가 한국의 경우는 특히 취업 시험 준비가 그토록 힘들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주로 대학 입시 중심으로 시험 증후군을 서술할 것이다.
경향신문 기사 「저 성적 좋아요···그래도 입시 지옥에서 탈출하고 싶어요」 (2022.06.17.)에 나타난 몇 가지 사례를 가지고 입시지옥, 성적 지옥 한국 교육의 병폐와 그 후과(後果)를 분석하려 한다.
<다섯 사람의 이야기>
①정연이= “저 월화수목금토일 매일 학원에 가거든요. 주말에도 아침만 집에서 먹고 계속 학원에 가 있거든요. 그런데 학원에만 있다고 다 해결되나요? 저 사실 학원에서 별로 공부 안 하거든요. 내가 학원에 안 가면 엄마가 너무 불안해하니까 그냥 가있는 거죠. 집중은 안되고, 성적도 안 오르고, 그만 두겠다고 말할 용기도 없고, 정말 너무너무 스트레스 받아요. 학원에서 집에 오면 밤 12시가 다 되는데 그 때 학원 숙제를 또 해야 한다는 게 정상이냐고요? 집에 도착하면 피곤한데 집에 안 들어가고 아파트 주변을 돌아다닐 때가 많아요. 학원도 싫은데 집도 싫어요. 갈 곳도 없고 얘기할 곳도 없고 정말 매일 눈물만 나요, 진짜.”(2022.06.17. 경향신문)
「공부 못하면 인생 망친다」, 「좋은 대학교에 못가면 힘들게,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 는 학벌주의 사상은 이렇게 아이들을 교육 지옥으로 몰아 넣고 있다.
학벌주의는 이렇게 교육을 빙자한 폭력이다, 인권유린이다. 그러나 「모두 자녀를 위하는 사람으로 이름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범죄로 분류할 수도 없다. 집단적인 광기에 가깝다. 이런 광기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 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천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것이다. 「공부 잘하면, 시험에 붙으면 출세한다」는 집단 의식은 고려 시대부터 시작된 것이다.
⑤민호 맘= “아이에게 신경안정제를 먹이는 기분 아세요? 고3의 봄이 지났어요. 이제 반년만 버티면 고생 끝이에요. 제 아이는 대학 입시를 위해서 12년을 달려왔어요. 이제 와서 포기하면 그 동안의 우리 삶 자체가 물거품이 되는 거예요. 명문대 합격은 저도 원하지만 아이가 더 절실히 원하고 있는 것이에요. 몇 달만 버티면 되니까 마지막 방법으로 약에 의존하는 거죠. 아이가 약을 먹지 않고서는 신경이 얇아질 대로 얇아져서 끊어질 것만 같다고 말해요.”(2022.06.17. 경향신문)
필자 역시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벌써 47년 전인 경북 고등학교 고 3 시절 갑자기 성적이 대폭 떨어져 정신적인 쇼크를 받았고 그 후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산경-정신과 병원에 다니면서 고3 생활을 마쳤다. 그 당시 경북고는 아직 무시험이 아니었다. 서울, 부산에서 먼저 차례대로 고교 무시험이 실시되었고 대구는 서울보다 2년뒤, 부산보다 2년뒤 고교 무시험 진학이 예정되어 있었고 당시 부산에서 무시험으로 진학하여 고교 배정을 마친 필자는 우연히 보도 여행으로 부산의 집에서 이모님이 사는 대구로 걸어서 갔다.
걸어서 3일 만에 대구에 도착했고 그 때 이모부는 대구 중앙상고의 국어 선생님이었는데 그로부터 경북고 시험을 한번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래서 집으로 내려가 한 보름쯤 공부한 뒤 경북고에 응시하여 우여곡절 끝에 합격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경북고의 각종 시험 방식이었다. 한달에 한번씩 월례고사를 치는데 1~2학년 때에는 전과목이 똑같이 100점 만점이었으나 고 3부터는 서울대 입시 전형과 같이 배점이 조정되었다. 즉 국-영-수는 각각 50점 만점 그 그리고 나머지 과목은 2~30 점 대였고 또 문제는 1~2 학년 때에는 도덕, 미술, 체육 등도 모두 100점 만점 시험을 보는 데 3학년 때에는 비교과 과목은 모두 성적 산정에서 빠졌다.
당시 필자는 부산의 집에서 대구로 유학을 했기에 부모님의 공부 관리나 감시를 전혀 받지 않았다. 그래서 좋아하는 취미 생활 즉 문학 독서와 서클 활동을 실컷 했다. 그 이유는 전과목 100점 시스템의 경우 영어나 수학 점수가 나빠도 윤리, 세계사 등 암기과목을 잘하면 성적 등수가 잘 나왔기에 – 즉 서울대 갈 성적이 나왔기에 – 필자는 취미생활과 학창 생활을 겸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경북고 친구들은 모두 고3 성적과 명문대 입시를 염두에 두고 벌써 1학년 때부터 영-수 공부에 과외를 받고 학원을 다니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필자는 그런 사정을 모르고 지냈다. 그러다가 고 3이 되니 성적 등수의 폭탄적인 변화가 있었다. 즉 1~2 학년 때 암기과목은 전혀 하지 않고 영-수 만 하던 대들은 점수가 확 오르고 반대로 암기 과목 중심으로 하던 내 같은 애들은 점수와 등수가 확 떨어진 것이었다.
후일 서울대 법대를 나와 사법고시도 합격하고 나중에 서울대 법대 교수가 된 친구에 대한 소문은 그의 어머니가 고교 입학 하자 애를 캐비넷에 가두고 놓고 공부를 시킨다는 것이었다.
이런 일이 이미 50년 전부터 있었다. 그러니 지금은 그 경쟁과 압박이 어린 영혼들에게 얼마나 큰 족쇄로 작용할 것인지 상상해 볼 수 있다. “대학 입시를 위해서 12년을 달려왔어요” 라는 학부모의 외침이 공감을 받는다.
「명문대 합격은 저도 원하지만 아이가 더 절실히 원하고 있는 것이에요」 라는 진술 역시 공감이 간다. 어린 시절의 영혼과 의식에 주변에서 즉 부모, 친척, 교사 혹은 학원 강사들에게서 이런 말을 많이 들으면 예민한 감수성에 강한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는다. 물론 이 말, 즉 「명문대 가면 출세한다」가 거짓은 아닐 것이다. 또 「공부 잘하면 잘 산다」 도 완전히 거짓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학벌주의는 한 가지 큰 함정을 가지고 있다. 즉 공부 잘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대한민국의 모든 고등학교에서는 「인서울 대학은 가야지」가 입버릇처럼 되어 있다. 그런데 인서울 대학 가는 비율은 10% 정도이다. 나머지 90%는 지방 대학에 간다. 좀 과장되게 말하면 국민의 90%는 진학 실패, 교육 실패를 한 낙오자가 된다는 말이다.
교육의 낙오자들은 이제 –소극적인- 반란을 시작했다. 즉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다. 아니 낳지 못한다. 그 결과 출산율 0.78 라가르드 유럽 중앙은행 총재의 말을 빌면 「집단 자살」 (collective suicide) 이라는 사건이다!
지난달 한국을 방문한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한국은 ‘집단자살(collective suicide) 사회’”라 한탄했다고 당시 동행했던 이창용 IMF 아태국장이 전했다.
라가르드가 이런 발언을 하게 된 배경은 지난달 7일 서울 이화여대에서의 ‘학생들과의 간담회’였다. 당시 라가르드 총재는 학부·대학원생 8명과 ‘한국 교육시스템의 미래와 여성의 역할’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이대 재학생 150여 명도 청중으로 대화에 참석했다. (중앙일보 2017.10.25.)
이런 맥락에서 필자는 교육 제도 개혁으로 국가를 구원한다는 정당, 「교육공화당」을 창당활동을 하고 있다.
사실 학벌주의라도 미국이나 영국 정도이면 괜챦다. 그러나 한국이나 동 아시아의 경우 이는 거의 치명적인 사회적 병폐를 야기한다. 이제는 교육 개혁이 정치의 중심에 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