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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제13회 심훈문학상 당선작] 흐르는 이야기 /제성욱
“혹시 한국인 아니세요?”
택시 기사는 룸미러로 내 얼굴을 확인하고 씩, 웃어 보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렇다고 대답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택시를 타면서 익숙한 중국말로 목적지만을 말했을 뿐 아니라, 미터기를 노려보며 그걸 꺾으라는 눈짓까지 보내지 않았던가? 한국인으로 보여질 이유가 전혀 없었지만 택시 기사는 나를 한국인으로 확신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요즘 제가 텔레비전에서 <대장금>을 보는 게 유일한 낙입니다. 그려.”
그러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한국 배우들을 줄줄이 꿰고 있는 것이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꽤나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말에 맞장구 칠 수 밖에 없었다.
“대장금은 한국에서도 꽤 인기 있었던 드라마였어요.”
나는 룸미러에 비친 그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그런데 제가 한국인이란 걸 어떻게 아셨어요.”
앞차가 멈추자 기사는 브레이크를 밟으며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택시 안에는 운전석과 뒷좌석 사이에 투명 플라스틱으로 된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었다. 기사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서라지만 그 막이 두꺼워 흐릿하게만 보였다. 그의 얼굴은 주름이 많은 갈색 빛으로 땀 같은 점액질이 번질거리고 있었고, 위에 입고 있는 크림색 셔츠는 목 부위에 땟자국이 남아 있어 며칠동안 옷도 갈아입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을 추이풔라고 소개했다. 윗입술은 두툼하고, 그 위로 이어진 인중이 넓어 전체적으로 묵직한 인상을 주었다. 위로 치켜 올라간 작은 두 눈엔 핏발이 서 있었다. 아마도 밤을 새워 운전 한 모양이다. 앞차가 움직이자 추이풔가 다시 앞을 돌아보며 대답했다.
“사실은 손님이 홍차오 시장에서 물건 사는 걸 지켜봤습니다.”
“거기서 물건을 산다고 해서 한국인이란 법이 없잖아요?”
“생긴 모습으로 보아선 한국 아니면 일본인인데 흥정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한국인이었습니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손목 시계를 차기는 몇 년만에 처음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할 수 있어서 손목 시계가 필요 없었다. 휴대폰을 놔두고 중국에 들어오자 시간을 확인할 게 없다는 걸 알고는 근처의 홍차오 시장으로 갔었다. 홍차오 시장은 베이징 시내에서도 가장 현대화된 시장인데다 외국인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1층은 주로 가전제품과 중국 공예품을 팔았고, 2층과 3층에는 가방과 옷가지, 그리고 진주를 팔았다. 이곳 시장에서 제일 인기가 있는 곳은 1층의 시계 점이었다.
한 평도 안 돼 보이는 시계 매장 수십 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풍경이 아주 낯설지 않았다. 입구 쪽에서 만난 한 점원은 손목에 찬 금빛 롤렉스시계를 자랑스럽게 내보이며 눈치를 살폈다. 나는 외국인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두리번거리지 않고 곧장 그 시계점 안으로 들어갔다. 진열대의 여러 시계 중에 스위스제 보증서가 있는 시계를 가리켜 보였다.
“뚜어 샤우치엔(얼마예요)?”
“이바이 빠스(1800위안 주세요).”
나는 흥정에 이력이 붙은 사람처럼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쓰스(400위안 해요).
그리고는 손가락 네 개를 펼쳐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깎는 것이 일반화된 일이라 하더라도 절반도 되지 않는 가격을 제시했으니 말이다.
“뿌마이(안 팔아요).”
상인은 안 된다고 펄쩍 뛰었다. 그러면서 내가 외국인이란 걸 눈치채고는 계산기를 가져왔다. 다시 한번 적정 가격을 제시해보라는 것이다. 나는 시치미를 떼고 ‘400’을 찍었다. 그랬더니 상인은 한참을 생각하는 척하다가 다시 ‘1000’을 찍어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발길을 돌리는 척 했다. 그러자 상인은 흔쾌히 400위안에 시계를 가져가라고 했다.
나는 그 시계를 찬 손목을 들어 보였다.
“이걸 400위안에 샀지 뭐예요.”
추이풔는 뒤를 슬쩍 돌아보더니 대뜸 “그건 가짜예요.” 하고 말했다.
“홍차오 시장에서 파는 물건의 90퍼센트가 가짜고, 그렇게 싸게 샀다면 99 퍼센트는 가짜일 겁니다.”
나는 어이가 없어 픽, 웃음이 터져 나왔다. 중국에 가짜가 많다는 소리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공안이 어슬렁거리는 앞에서 가짜를 팔 줄은 몰랐다. 추이풔는 흐늘거리는 웃음과 함께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택시 운전을 하다보면 요금을 종종 위조지폐를 받을 때도 있는 걸요.”
“그럼 공안에 신고를 하셨어요?”
“신고는 무슨…… 나도 밤에 잘 보이지 않을 때 그 지폐를 손님에게 거스름돈으로 줘버리지요.”
나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내저었다. 하지만 추이풔는 신이 나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시골의 가난한 며느리가 수년 동안 푼푼이 모은 돈으로 농가소득이 높다는 채소 씨앗을 사 와서 심은 적이 있어요. 그런데 몇 달이 지나도록 싹이 돋지 않고, 그나마 솟아나는 것도 고등 채소가 아니라 잡초였다는 겁니다. 가짜 씨앗을 산 주부는 원통하고 면목이 없어 농약을 사 마시고 자살을 택했죠. 그러나 그 며느리는 죽지 않았어요. 웬줄 아세요? 농약마저 가짜였던 것이죠.”
추이풔는 그 이야기가 재미있다는 듯이 낄낄거리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외국인 앞에서 그 나라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낼 이야기지만 조금도 거리낌없었다. 나는 은근히 그를 떠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중심이라는 중국에서 남을 따라 가짜를 만드는 건 자존심 상할 일이 아닌가요?”
추이풔는 운전대를 잡고 있던 오른손으로 코끝을 긁으면서 말했다.
“중국 속담에 이 세상에 어머니 빼고 가짜 아닌 게 없다라는 말이 있어요. 이걸 다르게 말하면 이 세상에 가짜란 게 없다는 말도 되죠. 진짜라고 주장하는 것은 단지 먼저 만들어져 있을 뿐이죠. 먼저 만들어졌다고 그걸 똑같이 따라 하지 말라는 건 억지예요. 나중에 만들어진 게 더 좋으면 그걸 사면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진짜를 만드는 사람은 손해를 입게 되잖아요.”
“진짜면 진짜만큼 돈을 지불하면 되는 거고, 가짜는 가짜에 알맞은 돈을 내서 사는 거 아닙니까? 진짜는 가짜보다 더 좋은 물건을 만들면 되는 거구요.”
추이풔는 자신이 펼친 논리가 꽤 만족스러운지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나는 그와 더 이상 논쟁하고 싶지 않아 대답 없이 차창을 열어 시선을 밖으로 향했다. 베이징 시내를 벗어나 외곽으로 향하자 거리는 중심가보다 훨씬 좁고 지저분해 보였다. 음식을 팔기 위한 싸구려 찬청(饌廳)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그 음식점에서 풍겨내는 고약한 음식 냄새가 차창 안으로 새어와 미간을 찌푸렸다. 도로는 좁았지만 차와 사람들은 중심가 못지 않게 붐비고 있었다. 자동차들과 끊임없는 자전거 물결, 그 사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무단 횡단하는 거리의 사람들로 마치 시장 한복판을 방불케 했다. 가만히 차창을 통해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조금 전에 지났던 도로를 다시 지나간 것 같았다. 방금 보았던 신호등을 또 스쳐간 것이다. 이곳 택시 기사들은 손님이 외국인 걸 알면 미터기를 꺾지 않거나 목적지까지 빙빙 돌아간다는 걸 익히 들은 바 있었다.
“이 차가 왜 거리를 빙빙 둘러 가는 거죠?”
“손님이 말한 장소를 찾느라 저도 진땀이 납니다.”
자신도 어쩔 수 없다는 말투였다. 하지만 그 말을 곧이 받아들일 순 없었다.
“택시를 10년이 넘게 몰았다는 분이 그걸 쉽게 찾지 못한단 말인가요?
그러자 추이풔가 운전대를 잡은 채 고개를 뒤로 돌리는 것이다.
“그럼 내가 괜히 빙빙 둘러간단 말이오? 손님이 특정한 장소를 정해주지 않았으니 헤매는 거 아닙니까?”
이어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으며 택시를 도로 한쪽에 정차시켰다.
“정 날 못 믿겠거든 다른 택시를 잡아타슈.”
나는 짧은 한숨과 함께 두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계속 가시죠.”
어차피 다른 택시를 잡아탄다고 해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여태 목적지를 둘러왔다면 이제는 곧장 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긴 목적지를 분명히 말하지 않고 근처 작은 서점을 찾아가자는 것도 무리한 주문이지 않은가?
택시는 다시 출발했다. 추이풔는 나를 의식해서인지 속도를 내며 차선을 이리저리 옮겨다니고 있었다.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 근처에서 서점을 본 것 같은데…….”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거리 이쪽저쪽을 둘러보는 게 일부러 둘러 가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는 서점을 본 기억을 되살렸는지 도로에서 좌회전을 해 곧장 나아갔다. 이어 운전대를 살짝 두드리며 슬쩍 물어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이 왜 중국에까지 와서 서점을 찾으시는 거죠?”
“살펴볼 책이 좀 있어서요.”
추이풔는 관상을 보는 점쟁이처럼 이리저리 날 뜯어보며 자신 있는 어조로 묻고 있었다.
“혹시 작가가 아닙니까? 풍기는 인상이 영락없이 글을 쓰는 작가인데요.”
“작가라…….”
나는 그 말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주춤하다가 이내 입을 굳게 다물어버렸다. 이어 아득히 눈을 감으며 시트에 몸을 기대었다.
“인사하시죠. 이번 소설을 맡게 된 윤 작가입니다.”
사장은 나를 작가라고 소개하며 눈을 찡긋 해 보였다. 나의 대학 동아리 선배이기도 한 그는 이제 잘 나가는 사업가의 모습이 몸에 배어 있었다. 금박을 입힌 단추가 두드러진 드레스 셔츠에 고급 양복을 입고 있었고, 잘 정돈되어 무스로 넘긴 머리와 금테 안경은 그를 더욱 세련되게 만들어 보였다. 나를 태우고 온 자동차도 최고급 세단 차가 아니었던가?
나는 자리에 앉으며 건너편 사람을 살폈다. 아무리 뜯어보아도 감독은 아닌 듯 했다. 그는 마뜩찮은 표정으로 테이블 위에 시나리오를 올려놓고 있었다.
“영화 개봉이 한달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전에 꼭 소설을 출판해야만 합니다.”
시나리오를 집어들며 그에게 누구냐고 묻자 자신을 조감독이라고 소개하며 금새 일어설 기미를 보였다. 나는 재빠르게 말을 엎질러 들어갔다.
“시나리오를 쓰신 분이 감독님이 아니던가요?”
“감독님은 막바지 편집 작업으로 바쁘십니다. 영화 홍보를 위해 언론사도 자주 만나야 하구요.”
“하지만 이 시나리오를 직접 쓴 분을 만나야만 소설에서 전달하려는 맥락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조감독은 대답 대신 사장 쪽을 바라보았다. 사장은 약간 무안한 표정으로 나와 조감독을 번갈아 보더니 이내 넉살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소설만 재미있게 만들면 되는 것 아닙니까? 시간도 없는데 이대로 가자구.”
조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는 들고 있던 시나리오를 테이블 위에 던져놓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조감독을 배웅하고 온 사장이 내 옆에 바투 다가앉았다.
“너무 예민하게 굴 것 없어. 감독이랑 배우 모두 지명도가 있으니 영화가 뜨는 건 당연한 것이고, 그러면 덩달아 이 책도 뜨게 된다구.”
사장은 벌써부터 책이 판매될 부수를 계산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이번 작업이 내키지 않았다. 꽤나 명망 있는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까지 맡은 영화를 내게 소설로 만들어보자는 그의 말을 단번에 거절을 했던 것이다. 애초부터 시나리오를 소설로 낸다는 발상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장은 영상을 활자로 옮겨 또 다른 미학적 성취를 이룰 수 있다고 소리치고 있지만, 아무리 좋게 봐도 책을 팔아먹기 위한 수단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소설을 영화로 옮겨 성공한 사례를 거의 보지 못했거니와 영화를 소설로 옮겨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소식은 더더욱 들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사장은 막무가내였다.
“그 번역에만 너무 매달려 있지 말라구. 가끔 머리도 식히면서 해야 작업도 빨라지지 않겠어?”
그는 은근히 이번 작업을 태평광기의 출판과 연관시키려는 눈치였다. 나는 내키지 않았지만 그걸 강력히 거부할 처지 또한 못되었다. 어쨌든 나는 그의 직원이 아닌가? 할 수 없이 승낙하자 이번에는 또 다른 조건을 들고 나왔다.
“네 이름은 책에 못 넣을 것 같아. 아무래도 감독 지명도도 있고 해서 그 감독 이름으로 책이 나올 거야.”
나는 볼멘 소리를 했다.
“그러면 또 고스트 라이트가 되란 말입니까?”
“유령 작가도 작가라구. 지금은 유령 행세를 하지만 나중에는 떳떳하게 네 이름을 올린 소설을 내는 거야.”
사장은 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특유의 넉살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유령작가라…….’
나는 좌석에 몸을 묻은 채 나직이 중얼거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때 택시가 멈춰 서며 추이풔가 뒤를 돌아보았다.
“서점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그는 오른쪽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켜 보였다. 붉은 간판을 단 맥도널드 가게와 나란히 붙은 서점이 눈에 들어왔다. 잘 닦아놓은 유리 진열장 사이로 안의 모습이 환하게 보였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입술을 내밀었다.
“저 서점은 너무 큽니다. 전 작고 허름한 서점을 찾고 있어요.”
“베이징에 큰 서점이 얼마나 많은 데 그래요. 저 정도면 적은 축에 들어가는 겁니다.”
잠시 들러 살펴보는 것 또한 나쁠 것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택시를 도로에 세워놓고 곧장 서점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서점 안은 우리나라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문 입구에는 책과 잡지를 광고하는 포스트가 덕지덕지 붙어 있고, 그 옆 유리벽 안으로 베스트 셀러를 차례로 진열하고 있었다. 서점 안엔 사람이 많은 편이었다. 사람들은 서서 책을 살피기보다는 대부분 바닥에 주저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책을 사기 위해 살피는 것이 아니라 아예 여기서 읽고 가려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 사람들 사이를 피해 소설 코너로 갔다. 먼저 선반 위에 펼쳐 놓은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베스트 셀러들을 표지가 잘 보이도록 늘어놓아 그 가운데 놓인 책을 집어들었다. <괴력난신>. 한 줄로 가득 쌓아놓은 것으로 보아 이곳에서도 꽤나 잘 팔리는 모양이었다. 책에는 안의 내용물을 보지 못하도록 비닐을 입혀 놓았다. 나는 주저 없이 비닐을 뜯고 책표지와 안의 내용을 꼼꼼히 살폈다. 종이 결을 만져보기도 하고 책을 들어 무게를 재보기도 했다. 그러자 점원이 와서 무어라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책을 들고 카운터로 향했다. 위안화로 계산을 치르고는 그 책을 들어 작가 약력을 잠시동안 들여다보았다. 순간 마음 한 구석에 바늘 끝이 와 닿는 것 같았다. 나는 쓴웃음을 머금으며 그 책을 카운터에 놓아두고 나와버렸다.
택시는 그 동안 시동을 꺼놓고 있다가 내가 올라타자 시동을 켜며 미터기를 다시 꺾었다. 뭐라 이야기를 하려다가 그만 입을 다물었다. 다른 택시를 잡아타기도 어려운데 괜한 고생을 하고 싶지 않았다. 추이풔는 태연히 어디로 갈 거냐고 다시 물었다.
“여기보다 더 작은 서점을 찾아주세요.”
추이풔는 자신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어 차를 출발시켜 이번에는 시내 중심가로 향했다. 그는 날이 더운데도 차창을 모두 올리고 있었다. 후텁지근한 바람마저 불지 않자 실내는 찜통처럼 더워졌다. 하지만 난 그 더위를 느끼지 못하고 한가지 생각에 몰두하고 있었다.
“황사가 몰려오려나 봐요. 지독한 놈들이죠.”
내가 아무런 대답이 없자, 이번에는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렸다.
“그런데 왜 하필 작은 서점만을 찾으시는 겁니까? 책을 사려면 큰 서점에 가야하지 않나요?”
하지만 나의 머리엔 여전히 그의 말이 들어오지 않았다. 머리 속에 방금 본 책의 작가 약력만이 자꾸 맴돌고 있는 것이다.
내 이름이 활자로 인쇄되었던 적이 언제였던가? 아마도 고등학교 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학교 교지에 콩트를 응모했는데 그게 당선되어 책에 실린 것이다. 나는 내 글이 실린 교지를 읽고 또 읽었다. 오래 전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던 나의 마음속에 뿌듯한 자부심이 솟아올랐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나중에야 내 글이 뽑힌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누군가 자신의 글이 교지에 실리는 것을 반대하여 그 대신 내 글이 실렸다는 것이다. 나는 그가 누군지 수소문 한 끝에 같은 학년의 이유필이란 걸 알아냈다. 알고 보니 그는 문학동아리의 장을 맡고 있으며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이웃 학교에까지 글 잘 쓰는 것으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었다. 여학생들이 그를 만나기 위해 교문에서 기다리는 걸 몇 번이나 보았다는 말도 들었다. 문득 그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얼굴을 보기 위해 그의 교실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그가 먼저 다가와 아는 체를 하는 것이다.
“네가 이번에 교지에 글을 실은 놈이구나.”
이유필은 키도 크고 얼굴 윤곽도 뚜렷하여 눈에 확 뛸 정도의 외모였다. 얼굴에 서린 웃음도 자신만만한 것이었다.
“이번에 네 글을 일부러 교지에 싣지 않았다면서?”
그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번엔 왜 교지에 글을 싣지 않은 거니?”
“글쎄, 이런 교지에 글을 싣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그게 무슨 소린가 해서 턱을 앞으로 내밀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 없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남겨 두고는 교실 안으로 가버렸다. 나중에야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학교 교지와 같이 수준 낮은 곳에는 글을 싣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순간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교지에 글이 실렸다고 기뻐하고 있는 동안, 그는 그 교지가 수준이 낮다고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었던 것이다. 소문에 의하면 그의 필력은 이미 고등학생 이상의 수준을 가지고 있었다. 벌써부터 신춘문예를 준비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며 은근히 오기가 생겼다. 예전에 교지에 실린 그의 글을 읽어보니 나보다 나을 것도 없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고3이 되어 진로를 정해야할 시기가 왔다. 이유필은 당연하다는 듯이 국문과를 지원한다고 했다. 우연히도 그가 가려는 대학이 내가 평소에 선망하던 곳과 같았다. 하지만 그와 같은 국문과를 가기는 싫었다. 국문과에 가지 않고도 그보다 글을 더 잘 쓸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바로 중문과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중국과 수교를 하지 않아 중문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때문에 수월하게 중문과에 들어갈 수 있었고, 입학하자마자 문학 동아리에 들어갔다.
이유필은 한 학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야 문학 동아리에 들어왔다.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일부러 모른 척 하고 있는 지도 몰랐다. 그게 은근히 내 오기를 자극해 버렸다. 나는 그에게 뭔가 보여주기 위해 학교에서 주최하는 대학문학상을 준비하기로 했다. 몇 개월에 걸쳐 단편을 완성하여 대학문학상에 투고를 했지만 보기 좋게 떨어지고 말았다. 나 대신 수상을 한 사람은 공교롭게도 이유필이었다. 심사위원을 맡은 한 소설가는 그에게 온갖 찬사를 아끼지 않으며 큰 기대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최종심 후보에 오른 나의 글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비평을 아끼지 않았다. 이유필과 나의 글이 나란히 비교된 것이다. 나의 충격은 컸지만 그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 다음해 심기일전하여 다시 대학문학상에 도전했다. 이전보다 더 심혈을 기울여 단편을 완성하여 투고했는데 보름만에 학교측으로부터 당선 통지를 받았다. 나는 뛸 듯이 기뻤다. 하지만 다음날 학교측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당선 취소 통보를 받은 것이다. 이유는 하나였다.
“제 작품이 표절 한 것이라구요?”
“제 소설은 표절이 아닙니다. 일종의 패러디죠.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현대에 맞게 변형시킨 것입니다.”
그러자 그 작가는 아무 말 없이 한 권의 책을 탁자에 올려놓았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이문열의 소설집이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소설집을 집어들고는 목차를 펼쳤다. 놀랍게도 그 목차에는 ‘운수 좋은 날’이라는 제목의 단편이 있었다.
“이문열의 운수 좋은 날은 현진건의 소설을 오늘의 상황에 맞게 바꿔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학생이 투고한 소설은 그 이문열의 소설과 거의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더군요.”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서 이문열의 소설을 읽어나갔다. 현진건의 소설이나 이문열의 소설은 전체적인 구성과 인물 설정은 비슷했다. 내 소설에서 설정한 인물 또한 이문열과 같은 ‘택시 기사’였다. 일제 시대의 인력거꾼이 현대에선 택시기사로 바뀌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소설의 결말은 달랐다. 이문열의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오해를 받고 살해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내 소설은 현진건의 것과 비슷하게 자신의 딸이 죽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그 결말만 빼고는 소설의 전체적인 내용은 거의 똑같다고 해도 무방했다.
나는 30여분 동안 묵묵히 소설을 읽고는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조용히 학교 신문사를 나왔다. 그 후 나는 다시는 소설을 쓸 수가 없었다. 일종의 강박관념이었다. 내가 지금 구상하는 소설이 누군가 완성했거나, 혹은 적고 있는 글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펜을 잡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이유필에 대한 열패감이 작용하여 더더욱 글을 쓸 수 없었다. 그 후로 문학동아리에 발을 끊고는 학과 공부에만 매달렸다.
나는 중문학을 공부하면서 중국 설화에 서서히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특히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은 태평광기였다. <태평광기>는 한(漢)대부터 북송 초에 이르는 소설, 필기, 야사 등 모든 고사들을 광범위하게 채록하여 분류하고 세분하여 엮은 책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태평광기가 우리나라의 고대 소설과 설화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이 태평광기를 그 원류로 하고 있었다. 태평광기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2세기 초반 무렵의 고려시대였다. 수입과 함께 태평광기는 고려 지식인 사회에서 일대 선풍을 일으켰다. 현재 한국문학사에 빠지지 않는 이인로의 파한집, 이규보의 백운소설, 최자의 보한집, 이제현의 역옹패설 등도 모두 태평광기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삼국유사 또한 이야기들의 주제나 소재가 괴력난신으로 일관하는 내용으로 보아 태평광기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 태평광기는 누가 지었는가? 태평광기의 수많은 이야기들은 따로 원작자가 없었다. 중국 내에 떠돌아다니는 수많은 이야기를 송(宋)나라 학자 이방(李防) 등이 편찬했을 뿐이다.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이야기들이 수없이 첨삭되고 윤색되어 태평광기라는 제목으로 옮겨진 것이다. 이 태평광기가 또다시 우리나라로 전해져 수많은 설화와 소설의 원류가 되기도 했다. 여기서는 더 이상 원작과 표절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누군가 이야기의 자그만 눈덩이를 만들면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그 눈덩이를 굴려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나는 그 태평광기를 붙들고 한 학기 내내 도서관에서 씨름했다. 너무 재미있어 강의에 들어가는 것도 잊을 정도였다. 읽는 재미에 빠져들면서 태평광기의 한자 원문을 우리말로 번역하기도 했다. 나는 두꺼운 대학 노트를 구입하여 그 내용들을 우리말로 옮겨갔다. 우리말로 옮기면서 내용을 첨가하기도 하고 삭제하면서 나만의 태평광기를 만들어 갔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옆의 의자에 누군가 다가왔다. 돌아보니 이유필이었다. 그는 한참동안 내가 태평광기를 번역하는 걸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소설은 안 쓰는 거야?”
나는 아무런 대답 없이 다시 번역에만 매달렸다. 더 이상 그와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개의치 않고 옆에 앉아 가만히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나를 조롱하는 것 같아 은근한 오기가 발동했다. 그래서 문득 이런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넌 신춘문예 준비 안 하니?”
그 말은 큰소리를 치면서 여태 신춘문예 당선도 되지 않고 뭐하고 있었냐는 야유의 뜻이기도 했다. 그는 아랫입술을 살짝 움직여 느물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신춘문예 같은 건 관심 없어. 다른 나라엔 유명한 작가들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는걸. 난 이제 근사한 장편을 쓸 거야. 그걸로 세상을 뒤흔들어 놓을 거라구.”
역시 날 찾아온 것은 그 자신만만함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나는 대꾸도 하지 않고 다시 시선을 책으로 돌렸다. 눈길을 돌렸는데도 그는 떠나지 않고 있었다. 대신 한참동안 내가 하는 번역을 지켜보았다. 한문으로 된 책을 노트에 한글로 옮기는 모습을 흥미 있게 보는 것이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번역에 매달렸다. 그러다가 강의 시간이 되어 책을 덮어놓고 강의실로 향했다. 그때까지 이유필은 자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강의실로 달려갔다. 두 시간의 강의를 마치고 오자 도서관 테이블에 있었던 내 노트가 없어졌다. 태평광기는 그대로 있고, 내가 번역한 대학노트만 없어진 것이다. 정황으로 보아 유필이가 가져간 것으로 보이나 특별한 증거는 없었다. 나는 동아리 사무실과 강의실을 뒤지며 이유필을 찾아다녔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 후로도 학교에서 그를 보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중에야 그가 학교를 그만두고 글을 쓰기 위해 어디론가 떠났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좌석에 몸을 기대고 있는 동안 목덜미와 이마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나는 너무 더워 그만 눈을 뜨고 말았다. 차창의 유리를 모두 닫아놓아 안은 무척 더웠다. 나는 앞을 향해 문을 열 수 없느냐고 물었지만 추이풔는 대답 대신 멀리 하늘을 올려다보며 다른 말을 했다.
“혹시 마스크 가지고 계신가요?”
나는 무슨 소린 줄 몰라 눈만 끔뻑거렸다. 그 동안 추이풔는 주머니에서 마스크를 꺼내 코와 입을 막았다.
“아마도 황사가 몰려올 것 같네요.”
아닌게 아니라 멀리 하늘을 보니 온통 붉은 색으로 변해 있었다. 이어 강한 돌풍을 동반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바람이 얼마나 센지 길거리에 세워둔 자전거가 우르르 넘어지고, 입 간판이 심하게 흔들리며 곧 떨어질 기세였다. 회오리바람까지 불어 길바닥의 쓰레기를 하늘로 감아 올렸다. 바람이 먼저 불고 난 뒤에 붉은 빛의 황사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하늘에 시커먼 구름이 뒤덮이면서 붉은 입자가 바람 속에 떠도는 것이다. 온 세상이 모레 먼지로 뒤덮인 가운데서도 길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 복면 강도처럼 망사 보자기를 둘러 쓴 여자들이 자전거를 타고 힘겹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택시 안의 창을 모두 올리고 환기를 내부 순환으로 돌려놓았지만 미세한 모레가 차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피부가 서걱서걱한 느낌이 들며 코가 매캐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얼른 주머니를 뒤져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았다. 황사는 더 심해지고 있었다. 바로 앞도 잘 안보일 정도였다. 추이풔는 운전을 포기하고 도로 가에 차를 세워놓고 황사가 그치기만을 기다렸다. 차에 있는 동안 답답하고 더워 셔츠 단추를 두 개나 풀어놓았다. 그래도 땀은 계속 흘렀다. 창문을 닫아 놓아 힘든 것은 더위뿐만 아니었다. 택시 안의 지독한 악취가 내 코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냄새였다. 빙초산처럼 톡 쏘는 냄새 같기도 하고 덜 말린 우산에서 나는 비릿한 냄새 같기도 했다. 베이징의 택시 기사들 중에는 택시 안에서 숙식까지 모두 해결하는 자들도 많다고 한다. 여기서 먹고 자고 하면서 잘 씻지도 않은 냄새가 그대로 차안에 베어 있을 것이다.
나는 이 고약한 냄새를 견디는 것보다 차라리 모래 먼지를 마시는 게 낫다 여겨 차창을 조금 열어놓았다. 그러자 추이풔가 대번에 성질을 부렸다.
“모레가 안으로 들어오면 청소하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아세요?”
나는 그의 청소라는 말에 그만 실소하고 말았다. 평소 실내 청소를 얼마나 하지 않아 이런 악취가 코를 찌르는데도 말이다. 나는 그의 말에 개의치 않고 차창을 올리지 않았다. 그새 붉은 모래가 안으로 들어와 피부에 닿는 것과 동시에 코의 점막에 달라붙어 그만 재채기를 하고 말았다. 추이풔는 혀를 차며 운전석에서 내 옆의 차창을 올려버렸다. 나는 할 수 없이 입으로 숨을 쉬며 악취를 피하고자 했다. 얼마쯤의 시간이 지났을까? 주위가 조금 밝아지는 느낌이 들더니 붉은 색의 대기가 금새 오렌지 빛으로 바뀌었다. 황사가 조금 가라앉은 듯 했다. 어느 정도 시야가 확보되자 추이풔가 다시 차를 출발시켰다.
택시는 내가 처음 탔던 홍차오 시장을 지나 천단공원을 왼쪽으로 끼고 천안문 광장을 향하고 있었다.
“작은 서점을 찾으려면 아무래도 서민들이 사는 곳을 가야겠죠.”
추이풔는 곧장 위로 향하며 천안문 광장으로 차를 몰았다. 천안문광장 바로 앞의 다잘란(大柵楊) 시장을 지난 차는 그 건너편에 있는 후퉁(胡同)으로 들어섰다. 이곳 후퉁의 풍경은 흡사 우리의 60, 70년대 골목 풍경을 연상시켰다. 바로 옆 번화가에 접해 있으면서도 이곳은 유난히 지저분해 보였다. 사합원이라 불리는 전통가옥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어깨를 겨누며 늘어서 있고, 그 앞의 도로 곳곳에는 포장이 벗겨져 누런 황토 흙이 그대로 드러났다. 부서져 있는 편지함, 낙서 투성이의 낡은 벽, 쓰레기 더미, 기름 찌꺼기가 조합된 온갖 악취가 코를 찔렀다.
추이풔는 그 좁은 도로 가에 잠시 차를 대어놓고는 평상에 모여 있는 사람들 쪽으로 달려갔다. 다시 차로 돌아온 그는 다음 골목을 꺾어 돌며 손가락을 가리켜 보였다.
“저 정도면 작은 서점 축에 들겠죠?”
정말 작은 서점 하나가 골목 한쪽에 나앉아 있는 게 보였다. 옴이라도 걸린 것처럼 껍질이 벗겨진 담장 사이로 낡은 오동나무로 된 작은 문이 보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서점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작았다. 출입문 옆에는 책을 놓아둔 유리 진열장도 보이지 않고, 책을 선전하는 포스트도 붙어 있지 않았다. 입구에 쌓아둔 책더미와 작은 간판이 없었다면 서점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추이풔는 무슨 보물을 찾은 것처럼 득의 만연한 표정이었다.
“어떡할깝쇼? 여기서 기다릴까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 밖으로 나왔다. 서점 안으로 들어섰지만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카운트로 보이는 책상에 턱을 괴고 졸고 있던 주인이 눈을 비비며 고개를 들었다. 손님을 확인한 주인은 다시 턱을 괴어 눈을 감았다. 나는 곧장 소설이 놓인 책꽂이를 찾아갔다. 책은 책꽂이에 꽂혀 있기도 하고, 테이블 위에 펼쳐놓은 경우도 있었고, 바닥에 가득 쌓아 놓기도 했다. 잠시 긴 한숨을 내쉬고는 그 책들을 하나씩 살피기 시작했다. 오래된 책은 먼지가 쌓여 있어 금새 손이 더러워졌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등을 닦으며 부지런히 눈을 굴리다가 녹색과 노란색이 섞여 있는 한 책에 문득 시선이 고정되었다. 짧은 심호흡과 함께 그 책을 집어들었다. 순간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주억거리고 말았다. 책의 표지 색깔과 인쇄 상태가 너무 조잡했기 때문이었다. 제목도 한자 하나를 슬쩍 바꾸어 놓은 데다, 저자의 이름 또한 발음만 비슷한 한자로 되어 있었다. 나는 그 책의 내용을 이리저리 살피다, 그걸 들고 카운터로 갔다. 주인은 여전히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주인을 깨우려다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책을 원래 장소에 갖다놓고는 얼른 서점을 빠져 나왔다.
내가 택시에 올라타자 추이풔가 다시 미터기를 꺾었다.
“이제 어디로 모실까요?”
나는 추이풔 쪽으로 몸을 숙이며 100 위안 짜리 지폐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는 메모지를 꺼내 한자를 적어서 지폐와 함께 추이풔에게 내밀었다.
“저 서점에 가서 여기 적힌 책 모두를 사오세요.”
추이풔는 영문을 몰라 두 눈을 씀벅이며 양어깨를 치켜올렸다.
“우선 시키는 대로 해주세요. 대신 나머지 돈은 댁이 가지세요.”
그 말에 추이풔가 반색을 하며 차 문을 열었다. 그는 나의 마음이 변할까봐 얼른 서점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사장이 나를 자신의 방으로 부른 것은 이틀 전이었다. 그는 강원도에서 막 도착한 뒤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기사를 부리고 있었지만 이번 길은 혼자 다녀온 듯 했다. 사장은 와이셔츠 윗 단추를 열고 넥타이 한쪽을 풀어 제치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 놈이 소설을 더 이상 못쓰겠다는 군.”
그리고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나는 불을 붙여주며 물었다.
“아예 펜을 놓는다는 겁니까?”
“자기도 쉬고 싶다는 거야. 일년만 기다려 달라는군.”
“다음달 말에 출간한다고 언론사에 대대적으로 알리지 않았습니까?”
“그것 보다 큰 문제는 해외 에이전시와 이미 계약을 마쳤다는 거야. 다음달에 출간이 되지 않으면 엄청난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구.”
사장은 관자놀이를 세게 누르며 고개를 내저었다. 사장이 측은하게 느껴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측은함에 이끌려 여기 중국까지 오게되었지만 말이다. 예전에 출판사에서 편집 일을 하던 그는 중국과 수교를 맺고 교류가 늘어나면서 독립하여 중국 전문 출판사를 차렸다. 중국의 설화를 번역하여 아동도서를 만든 것이다. 졸업 후 마땅한 직업 없이 대필과 번역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나는 그 선배의 부탁으로 출판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맡은 일은 중국의 설화를 번역하여 아이들 눈 높이에 맞게 동화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발간한 책들은 반응이 좋아 시리즈를 계속 내었고, 사장은 욕심을 내어 중국어 관련 책도 손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이 흥분한 얼굴로 나를 다급히 불렀다. 그러니까 2년 전의 일이었다. 그는 나를 부르자마자 원고 하나를 건네주었다.
“내가 대단한 괴물을 하나 발견 했다구.”
희미한 미소가 그의 입술 가장자리에 고여 있었다.
“아는 녀석 하나가 원고를 가져왔는데 내용이 기막히단 말야.”
나는 소설의 제목부터 살폈다.
“괴력난신?”
“괴이하고 신이 하며, 환상적인 이야기를 묶었다는 뜻이지. 하늘에서 쫓겨난 신선과 지옥으로 돌아갈 길을 잃은 저승사자가 함께 모험을 하면서 수많은 요괴와 괴물, 귀신을 물리치는 내용이야.”
나는 대충 원고를 훑어보면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내용이 너무 흔한 것 같아요. 익히 들어왔던 이야기라 독창성도 없어요. 태평광기의 여러 이야기를 현대에 맞게 손을 본 수준 밖에 안 되는 것 같아요.”
“그게 바로 이 책의 강점이야.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이야기 말야. 서양의 헤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그리고 스타워즈는 모두 오래 전부터 전해온 서구의 서사구조에 그 원류를 두고 있어. 이 소설 또한 동양, 특히 동아시아에 흐르는 여러 설화를 그 원류로 하고 있거든. 충분히 히트를 칠 수 있을 거야.”
사장의 예상은 보기 좋게 맞아떨어졌다. 책은 출간하자마자 대히트를 기록하며 연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도매상에서 책을 달라고 아우성을 하며 주문이 밀리자 밤을 새며 인쇄를 할 정도였다. 반응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더 뜨거웠다. 특히 자신의 나라를 배경으로 한 중국에서는 책을 사기 위해 줄을 서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사장은 그 책 하나로 엄청난 돈을 벌었다. 첫해 세 권을 시리즈로 일차 분이 나오고 두 번 째 시리지는 작년에 출간되었다. 두 번째 시리즈의 반응은 더 뜨거웠다. 책을 사재기 위해 도매상들이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이 외신에 보도될 정도였다.
책이 그만큼 인기를 끌고 있었지만 작가에 대해서는 계속 베일에 쌓여 있었다. 작가는 매니저를 고용해 신분을 일체 감추며 인터뷰도 삼갔다. 그와 유일하게 만나는 사람은 사장 정도밖에 없었다.
소설이 연일 인기를 끌면서 자연히 다음 작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매년 여름에 책을 출간하던 전례에 비추어 벌써부터 다음 작품에 관한 예상 줄거리와 사상 최대의 판매 부수를 예측하곤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사장의 고민은 깊어갔다. 그에 말에 의하면 작가가 소설의 반도 적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년 동안 쏟아 부어 더 이상 짜낼 게 없다는 것이다. 언론이 호들갑을 떨면서 엄청난 부담도 작용하고 있었다. 사장의 압박에 못이긴 작가는 아예 연락을 끊고 강원도로 잠적했다. 사장은 어렵게 수소문을 해서 그를 찾아갔지만 좀 쉬게 해달라는 말만 듣고 왔다는 것이다.
사장은 필터까지 타 들어간 담배를 눌러 끄며 시트에 몸을 묻었다. 이어 손으로 마른 세수를 했다. 얼굴이 미농지 빛으로 바뀌며 수척한 모습이 역력히 드러났다. 몸을 기댄 채 손을 더듬어 탁자에 놓인 신문을 내게 건네주었다. 신문을 받아들자 빨간 형광 펜을 둘러쳐진 기사가 금새 눈에 들어왔다.
“그걸 한번 읽어 보라구.”
'해적판의 천국'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가 붙은 중국에 <괴력난신> 신작의 공식 중국어 번역본이 출시되기도 전에 가짜 번역본이 버젓이 판매되고 있다. 아시아 사람들을 사로잡은 <괴력난신> 시리즈가 출간을 몇 달 앞둔 가운데 벌써 가짜 중국어 번역본이 출시된 것이다. 중국인 캐릭터가 그려진 소프트커버의 가짜 중국어판은 20위안에 판매되고 있다. 앞으로 출간될 공식 중국어판 하드 커버 책의 판매가에 비해 매우 저렴한 것이다. 한 판매상은 가짜 번역본을 어디서 구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지만 지난 29일부터 판매해왔다고 밝혔다.
그 기사를 보고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다 나왔다. 중국이 짝퉁의 천국이라고 하지만 책이 나오기 전에 가짜가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사장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는 어느새 몸을 일으켜 담배를 새로 붙여 물고 있었다.
“자네가 직접 중국에 가서 그 책을 구해줘야 겠어. 그 짝퉁 책을 구하자마자 나에게 부쳐 줘. 그걸 언론사에 대대적으로 알리면 오히려 우리 책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이 더 높아질 거야. 그리고 그 짝퉁 책에 대응하기 위해 출간을 늦춘다고 말하면 적절한 명분도 생기지 않겠어?”
나는 그의 부탁이 그닥 내키지 않았지만 거절할 처지는 못되었다. 어쨌든 나는 그의 직원이 아닌가?
“우리 출판사에 자네 만한 중국어 실력을 갖춘 사람이 어디 있겠나? 출장비는 두둑이 주겠네. 그쪽 업자들을 찾아서 사진까지 찍어온다면 더 좋은 뉴스거리가 될 걸세.”
사장은 나의 출장으로 <괴력난신>의 출간을 몇 달 연기할 명분을 찾아놓았던 것이다. 나는 선선히 수락하여 어젯밤 이곳 베이징에 도착했다.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추이풔가 얼른 나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추이풔는 책을 잔뜩 들고 밖으로 나왔다. 나는 얼른 그 책을 받아들고 뒷좌석에 놓아두었다.
“분명히 내가 적어준 책들을 몽땅 사 온 것이죠?”
추이풔는 손이 얼얼한 지 주먹을 쥐었다 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가져온 책은 모두 10여권. 미리 나돌고 있다는 짝퉁 책을 모두 가져온 게 분명했다. 나는 잠시 기다렸다 그 서점으로 다시 들어갔다. 조금 전에 다녀갔는데도 주인은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듯 했다. 잠결에 날 보았으니 기억에 없을 것이다. 나는 잠시 서점을 둘러보는 척 하다가 주인에게 다가갔다.
“혹시 새로 나온 <괴력난신> 없나요?”
주인은 단번에 고개를 내저었다.
“그 책은 아직 나오지 않았어요. 한국에서 한달 뒤에 나온다 해도 우리말로 번역되려면 몇 달은 더 걸릴 걸요.”
나는 은근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오리지널 말고 이번에 우리나라 작가가 대신 지은 게 있다는데…….”
주인은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한 서너 시간 뒤에 다시 오면 책을 갖다 놓는다 합니다.”
다시 택시로 돌아온 나는 뒷좌석에 놓아둔 짝퉁 책 시리즈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골목 두 블록을 지나가자 페덱스 지사가 있었다. 그 세 권을 포장하여 급행으로 한국에 보냈다. 내일이면 한국의 사장이 이 책을 받아 볼 수 있다고 했다.
택시에 올라타면서 추이풔에게 말했다.
“몇 시간 있으면 서점에 책을 가지고 사람이 올 겁니다. 이 차로 그자가 돌아가는 곳을 따라가 주세요.”
이야기를 듣는 동안 어느새 추이풔의 표정이 바뀌어 있었다. 코끝을 찡그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이다. 문득 나의 정체가 무척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물었다.
“한국에서 무슨 일로 여기 중국까지 온 겁니까? 보아하니 사업차 온 것 같지는 않고……. 혹시 한국 경찰?”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거짓말까지 덧붙였다.
“중국 공안과도 협조가 된 상황입니다. 여기서 한국의 가짜 책을 만드는 업자를 추적하여 중국 공안에 고발 할 겁니다.”
그러자 추이풔의 표정이 단번에 변했다. 그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턱을 내밀며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관자놀이엔 푸른 힘줄마저 돌고 있었다.
짧은 한숨을 내쉬며 시트에 몸을 기대자 슬슬 배가 고파왔다. 생각해보니 아침 이후로 먹은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서점을 지켜봐야 하므로 멀리 갈 순 없었다. 내가 추이풔에게 배가 고프다고 하자 그가 내 손을 잡아 이끌었다. 그가 데려간 곳은 바로 옆 골목의 작은 시장이었다. 여기 시장에서는 서점을 지켜볼 수 있어 안심하고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시장 거리에는 먹거리가 풍부했다. 장사꾼들이 좌판을 펼쳐놓고 진을 치고 있는데, 그중 단연 인기가 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호떡처럼 생긴 것이었다. 속없는 밀가루 안에 삶은 돼지고기와 풋고추, 파 등의 야채를 잘게 썰어 만든 그것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섰다. 추이풔도 얼른 다가가 그 줄 맨 끝에 섰다.
옆에서 보았을 때는 고소한 냄새가 풍겨서 흥미가 있었지만 가까이 다가서자 금세 식욕이 달아나 버렸다. 포장마차와 주인의 모습이 너무 더러워 보였던 것이다. 나무로 된 도마는 재료를 잘게 다질 때마다 톱밥이 함께 묻어 나오고, 기름은 검정 색으로 변해 폐식용유에 가까워 보였다. 주인의 손톱은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길고 시커멓다. 게다가 그의 앞치마는 더럽다 못해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추이풔가 한참을 기다려 호떡 두 개를 신문지에 싸서 가져왔다.
“이게 위엔삥이라는 건데 무지 맛있어요.”
나는 두 손을 내저으며 정중히 사양했다. 대신 그 옆의 구멍가게에 가서 생수 한 병을 사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물맛도 그닥 좋지 않았다. 비릿한 강물 냄새가 나는 듯 했다. 하지만 갈증이 많이 났으므로 한 병을 다 비우고는 차로 돌아왔다. 황사가 아까보다 덜하다고 하지만 하늘은 여전히 오렌지 빛으로 뿌옇게 물들어 있었다. 공중을 날아다니는 저 모래 먼지가 우수수 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어디론가 들어가야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딱히 갈 곳이 없어 겨우 찾은 곳이 택시 안이었다.
잠시 후 추이풔가 위엔삥을 두 개나 먹어치우고는 택시로 돌아왔다. 그는 맛좋게 담배까지 피워 물고는 담배꽁초를 길거리에 버리려다 내 눈치를 보고는 차안의 재떨이에 비벼 껐다. 내가 경찰이라고 속이고부터 그의 태도는 확실히 변해 있었다. 반말에 가까운 말투도 공손하게 바뀌었고, 무슨 부탁을 해도 군말 없이 들어주는 편이었다. 거짓말 한 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일은 오히려 쉽게 풀릴 것 같았다.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렸으나 책을 가져오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슬슬 무료하기 시작했다. 추이풔는 꾸벅꾸벅 졸다가 자세가 불편하지 고개를 들고 뒷좌석에 놓아둔 책 한 권을 집어들었다. 그는 책표지가 마음 드는 지 이리저리 살피다가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처음엔 안의 내용을 대충 훑어보다가 조금씩 읽어나갔다. 책이 무척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완전히 책에 빠져들어 내가 묻는 질문도 듣지 못할 정도였다. 나는 할 수 없이 팔짱을 끼고는 서점을 유심히 살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문득 작은 스쿠터를 탄 사람이 뒷좌석에 짐을 잔뜩 싣고 오는 게 보였다. 직감적으로 책을 가져온 사람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어서 시동을 걸어요.”
스쿠터에서 내린 남자가 뒷좌석의 책을 들고 서점 안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내 예상이 맞았다. 잠시 후 그 남자가 서점 밖으로 나오더니 스쿠터 방향을 돌려 자신이 왔던 길을 돌아나가는 것이다. 스쿠터가 출발하는 것과 동시에 택시가 그 뒤를 따랐다. 다행히 도로에는 차가 많지 않아 쉽게 쫓아 갈 수 있었다. 한참동안 대로를 따라 가던 스쿠터가 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택시도 아슬아슬하게 방향을 꺾어 그 골목으로 따라갔다. 골목은 겨우 택시가 지나갈 정도로 좁았다. 골목을 빠져 나온 스쿠터는 다시 대로를 따라 가다가 이번에는 더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택시가 골목입구까지 따라 들어가려다 갑자기 멈추어 섰다.
“이쪽으로 들어갈 순 없어요.”
나는 다급한 마음에 얼른 택시에서 내려 그 스쿠터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스쿠터는 속도를 높이지 않아 가까스로 따라갈 수 있었지만 골목은 생각보다 길었다. 서서히 지쳐가며 숨이 턱에까지 차 올랐다.
겨우 골목을 빠져 나왔지만 더 이상 뛰어갈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우둑우둑 핏줄이 부풀어오르며 심장이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 주저앉아 스쿠터가 저만치 달려가는 걸 지켜보는데 뒤에서 갑자기 빵, 하는 경적소리가 들렸다. 언제 왔는지 내가 탔던 택시가 급히 멈춰 서는 것이다.
“어서 올라타세요.”
나는 겨우 몸을 일으켜 택시에 올라탔다. 타이어가 먼지를 말아 올리며 급히 출발했다. 속도를 낸 덕분에 금새 스쿠터가 있는 곳까지 따라왔다. 다행히 스쿠터는 자신이 미행 당하고 있는 걸 눈치채지 못한 듯 했다. 나는 거센 숨을 몰아쉬며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녀석이 지름길을 가기 위해 골목을 들어갔을 걸로 생각했죠. 그래서 미리 나올 곳을 예측하여 급히 달려온 겁니다.”
스쿠터는 후퉁 거리를 빠져 나와 시내 외곽 쪽인 스징산 쪽을 향하기 시작했다. 스징산은 베이징의 대표적인 공업지대였다. 공업지대라고 하지만 공산정권이 성립되기 전부터 조성된 곳이라 영세한 업체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스쿠터는 그 스징산 입구 쪽의 한 허름한 건물 앞에 멈추어 섰다. 스쿠터에서 내린 남자가 그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나는 얼른 카메라를 챙겨들고 택시에서 내렸다. 건물은 낡은 스레트 지붕을 얹은 2층 구조로 담장 여기저기 금이 가 금새라도 무너질 기미였다. 반 지하 쪽에서 사람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남자가 그쪽으로 들어간 듯 했다. 오른쪽으로 돌아가자 반 지하 건물의 유리창이 보였다. 반쯤 몸을 숙여 안을 들여다보자 사람들이 수많은 책들을 끈으로 묶어 부지런히 분류하고 있는 게 보였다. 모두 불법으로 복제한 책이 분명했다. 나는 플래시를 끈 채 그 모습들을 조심스럽게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멀찍이 물러서 건물 전체 사진도 몇 장 찍었다. 이 것으로 나의 임무는 끝난 셈이었다. 하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욕심을 부리고 싶었다. 택시로 달려가 추이풔를 붙잡고 물었다.
“저 도매상에게 책을 공급하는 인쇄소를 찾을 순 없을까요?”
추이풔는 대답대신 아랫입술을 실룩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한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이빨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가짜 책을 신고하면 어마어마한 포상금을 받게 된다면서요?”
나는 가짜 책을 신고하면 포상금을 준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책이 아니라 가짜 식품을 신고하면 그 열 배에 해당하는 포상금을 준다는 뉴스는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신고를 하게 되면 댁이 그 포상금을 받도록 해드리죠.”
그러자 추이풔의 눈빛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윗입술이 치켜 올라가며 느물한 미소가 만들어졌다. 그리고는 곧장 인쇄소가 있는 건물로 걸어가는 것이다. 그가 나온 시간은 5분도 채되지 않았다.
“인쇄소를 알아냈어요.”
나는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 단번에 알아냈단 말이죠?”
추이풔는 호주머니에서 10위안 짜리 지폐를 흔들어 보였다.
“직원 하나를 잡고 이걸 건네주니 단번에 알려주던 걸요.”
추이풔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운전석에 앉았다. 문득 마음이 급해졌다.
“지금 톈진으로 출발하는 거죠?”
하지만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인쇄소가 문을 닫은 시간이라고 해요. 지금 찾아가도 소용이 없을 겁니다. 돌아 가서 쉬셨다가 내일 아침에 같이 가시죠.”
그러면서 택시를 출발시켜 내가 묶고 있는 호텔로 데려다 주었다. 나는 옆 좌석에서 가짜 책을 모두 들고 호텔 로비로 들어섰다. 엘리베이터를 향해 가는데 카운터에서 나를 불러 한국에서 전화가 왔었다면서 메모지를 건네주는 것이다.
사장의 휴대폰 번호였다. 나는 로비 한쪽의 공중전화를 찾아 전화카드를 집어넣고 사장에게 전화를 했다. 신호가 가자마자 사장이 연락이 안 된다며 대뜸 호통을 쳤다. 중국에 들어오면서 휴대폰 로밍 서비스를 받는다는 걸 내가 깜빡한 것이다. 사장이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절실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나는 다소 들뜬 목소리를 수화기에 집어넣었다.
“짝퉁 책은 찾았습니다. 책을 공급하는 도매상을 찾았고, 내일은 인쇄소를 찾아 갈 것입니다.”
“사진은 찍어놓았겠지?”
“물론입니다. 그리고 책은 특급으로 보냈습니다. 내일쯤이면 받아보실 수 있을 겁니다.”
사장의 목소리가 다소 누그러지자 나는 궁금한 사항을 물었다.
“출간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녀석이랑 계속 통화는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당분간은 출간하기 힘들 것 같아. 어쨌든 그쪽 조사만 충실히 해 온다면 두세 달 연기할 명분이 있을 것 같아.
나는 전화를 끊고 카운터에 로밍 서비스를 신청하고는 휴대폰을 받아들고 객실로 올라왔다. 실내는 4월이지만 한여름 못지 않게 더웠다. 밖에 황사가 불어 창을 열어놓지 못한 탓이었다. 나는 에어컨을 켜놓고는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했다.
채 닦지 않은 몸으로 나오자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늘어졌다. 천천히 창가로 걸어가자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베이징의 화려한 야경을 기대한 나는, 그러나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안개인지, 연기인지 알 수 없는 연막이 온 거리에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그 연막은 도시의 모든 불빛을 가리고 모든 건물의 선들을 지우고 있었다. 낮에는 황사가 밤에는 짙은 안개가 온 도시를 덮고 있는 모습에 묘한 답답함을 느꼈다.
그 연막이 객실로 들어올세라 창문을 꼭꼭 닫아놓고 침대에 누웠다. 텔레비전을 켰지만 별다른 재미는 없었다. 대부분의 채널에서 드라마만 방영하고 있는데, 눈에 익은 한국 드라마도 보였다. 우리나라 탤런트 입에서 중국말이 나오는 게 신기했지만, 오랫동안 시선을 끌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불을 끄고는 잠을 청했다. 내일 아침 일찍 인쇄소를 찾으려면 일찍 자두는 게 나을 듯 했다. 하지만 잠은 좀체 오지 않았다. 피로가 둔중하게 몰려왔지만 머리는 오히려 명징 하게 맑아왔다. 잠자리가 낯선 탓이었다. 억지로 눈을 감고 몸을 뒤척이는데 딱딱한 것이 발끝에 걸렸다. 손을 더듬어보니 도매상에서 가져온 짝퉁 책이었다. 나는 가만히 앉아 있다가 불을 켜고는 그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잠을 청하기 위해 책처럼 좋은 도구는 없는 것이다.
책을 자세히 보니 낮에 보았던 것보다 훨씬 조잡하게 보였다. 칼라로 된 표지는 인쇄가 번져 흐릿했고, 색깔 선이 미세하게 둘로 갈라져 우리나라의 불량 식품 포장지를 연상케 했다. 종이질도 그닥 좋지 못했다. 미색 모조지를 사용한 것 같은데 재활용을 한 것이라 색이 누렇게 떠 있었다.
나는 전체적인 내용을 훑어본 후에 첫 페이지부터 읽어나갔다. 인물 설정과 배경은 원래의 <괴력난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늘에서 벌을 받아 내려온 신선이 저승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린 저승사자와 함께 다니면서 온갖 요괴와 귀신을 물리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니까 6권까지 이어온 원래의 <괴력난신> 주인공들이 새로운 모험을 펼치는 것이다. 달라진 것은 주인공들의 괴력이 더욱 강해졌다는 것과 그 배경이 중국과 한국은 물론이고 인도와 아라비아까지 넓어졌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 책은 요괴와 귀신에게 당한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어줌으로써 잔잔한 감동까지 전해주었다. 나는 그 세 권을 단숨에 읽어나갔다. 그만큼 책은 재미있었고, 강한 흡입력이 있었다. 읽으면서 이 글을 지은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강하게 일기 시작했다. 전체적인 이야기 얼개는 비슷하지만 오히려 강한 힘이 느껴졌다. 분명 모방하거나 대충 짜깁기 한 소설은 아니었다. 누가 과연 이런 소설을 적었을까? 아마도 꽤나 유명한 중국의 소설가가 돈을 벌기 위해 이런 소설을 지었을 것으로 짐작하면서 겨우 잠이 들었다. 내가 일어난 것은 카운트에 미리 부탁해 놓은 모닝콜 덕분이었다. 면도도 하지 않고 대충 세수만 하고는 객실을 나섰다.
호텔 회전문을 빠져 나오자 추이풔가 손을 흔들며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 악수를 청하자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손을 내밀었다. 목욕을 했는지 그의 얼굴엔 윤기가 흐르고 있었고, 코를 톡 쏘는 악취도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오늘은 안개가 심한데요.”
추이풔는 하늘을 한번 올려보며 운전석에 올랐다. 실제로 구름이 끼어 있는 것도 아닌데 사위는 이른 새벽처럼 어두웠다. 어제 밤에 보았던 그 연막이 온 거리에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모래와 먼지와 연기가 합성해서 만들어낸 일종의 스모그 현상이었다. 그 연막이 너무 두터워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듯 했다. 태양은 그 원형의 테두리만 간신히 내비쳐 보일 뿐 그 어디에도 햇살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택시에 오르며 물었다.
“인쇄소가 어디에 있답니까?”
“베이징에서 조금 떨어진 톈진의 빈장다오라는 곳입니다.”
추이풔는 톈진까지 택시로 한 시간 삼십 분 정도 걸린다며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시내를 빠져 나온 차는 곧장 고속도로를 달려갔다. 길이 잘 뚫린 덕분에 한시간만에 톈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톈진 시내로 들어가자 베이징과 전혀 다른 도시 모습이 펼쳐졌다. 낡고 우중충한 건물과 쓰레기와 온갖 잡동사니가 널려있는 좁은 길. 자전거는 베이징에 비해 훨씬 많았으나 낡고 녹이 쓴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그 낡은 자전거 살 돈도 없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깨가 축 처진 체 남루한 복장에 초췌한 얼굴로 힘없이 걸어다니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길바닥에 주저앉은 채 지나는 차들을 초점 없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중국의 3대 도시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택시는 그 시내를 지나 빈장다오 공업지대로 들어갔다. 공업지대라고 하지만 대부분 영세 업체로 가내수공업을 겨우 면한 건물들이 힘겹게 어깨를 걸고 늘어서 있는 게 보였다. 추이풔는 종이에 적힌 주소를 입으로 중얼거리며 용케 목적지를 찾아냈다. 골목 안까지 택시가 들어갈 수 없어 차에서 내려 걸어갔다. 공장으로 향하는 골목은 너비 이 미터가 채 안 되는 좁은 골목으로 보도블록이 여기저기 볼썽사납게 튀어나와 걸을 때마다 흙탕물이 튀어 바짓단을 버릴 정도였다.
우리가 찾은 곳은 공장이라고 할 정도도 아니었다. 작은 구멍가게 정도의 크기에 인쇄기 두 대를 놓고 돌리는 정도였다. 명함이나 전단지 정도를 찍어낼 시설로 그 많은 책을 인쇄한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혹시 저들을 통해 그 소설을 쓴 작가를 찾을 순 없을까요?”
“이번에도 돈으로 저들을 매수하잔 말인가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밤을 새우면서 소설을 읽다 문득 작가를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추이풔는 난처한 표정이었다.
“저들은 점조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돈 몇 푼에 루트를 팔 자들이 아니에요.”
“그럼 어떡하죠?”
추이풔는 한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러다가 낮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 팔을 잡아끌었다. 이어 귓속말로 재빠르게 이야기를 쏟아놓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난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게 가능하겠어요?”
하지만 추이풔는 자신 있는 모양이었다.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큰소리 치는 것이다.
“저만 믿으라니깐요.”
그는 곧장 택시로 달려가 뒤 트렁크를 열었다. 거기서 전기 면도기와 빗, 그리고 무스를 가져왔다. 트렁크에는 살림을 차려도 될 만큼 온갖 물건이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먼저 전기 면도기로 턱과 코밑에 남아 있는 수염을 정리하고는 빗으로 머리를 빗었다. 그 머리 위에 무스를 잔뜩 발라 뒤로 넘기자 금새 말끔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는 백미러로 자신의 모습을 살피고는 다시 내 손을 이끌었다.
우리는 당당하게 인쇄소 안으로 들어갔다. 추이풔는 뒷짐을 지고는 인쇄소 내부를 둘러보았다.
“저희는 베이징의 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지금 저희와 함께 할 인쇄소를 알아보는 중입니다.”
그러자 인쇄소 사장이 반색을 하며 차를 내왔다.
“어떤 책을 만들려구요?
그러자 추이풔가 내게 눈짓을 보냈다. 나는 들고 있던 가짜 <괴력난신>을 내밀었다.
“이걸 여기서 인쇄하셨죠? 저희도 이런 종류의 책을 만들려고 합니다. 만 부 정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장은 우리의 눈치를 보다가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여기에 인쇄를 맡기는 대신 가짜 <괴력난신>을 지은 작가의 소재를 가르쳐달라고 했다. 사장은 그 작가를 알지 못한다고 정색을 했다. 그러자 우리도 얼굴 표정을 바꾸며 두말없이 인쇄소 문을 나섰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사장이 망설이는 것 같았다. 만 부나 넘는 책을 인쇄할 기회를 놓치기 싫은 것이다. 우리의 예상은 보기 좋게 들어맞았다. 문 입구를 나서는데 사장이 달려와 우리를 부르는 것이다. 뒤를 돌아보니 그가 메모지 한 장을 전해주었다.
“전화번호는 잘 모르고 원고를 받은 우편물 주소를 적어 놓은 게 있습니다.”
나는 얼른 그 메모지를 받아들었다. 메모지에는 타이위안의 주소가 적혀있었다. 우리는 사장에게 작가를 만나고 다시 오겠다는 말을 하고는 얼른 건물을 빠져 나와 택시에 올라탔다. 나는 주머니에 구겨 넣은 작은 지도를 꺼내며 물었다.
“타이위안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비행기로 가면 한 시간이면 갈 수 있습니다.”
나는 서두르고 있었다.
“그럼 얼른 공항으로 가세요.”
하지만 추이풔는 고개를 내저었다.
“비행기는 며칠 전부터 예약을 해야 겨우 탈 수 있습니다. 한참을 기다려야 될 겁니다.”
나는 그의 말을 믿지 않고 항공사에 직접 전화를 걸었다. 안내원으로부터 들려온 말은 추이풔의 말과 다르지 않았다. 일주일은 기다려야 탑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난감했다. 그 먼 곳까지 차를 타고 갈 순 없는 노릇이었다. 생각 끝에 기차를 타고 가기로 했지만 추이풔는 그마저도 쉽지 않을 거라고 했다.
“기차표도 구하기 힘들 겁니다. 입석좌석도 없을 거예요.”
어느새 차는 베이징 시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수도고속도로를 통해 시내로 진입하면서 우회전하자 등즈먼다제 도로가 나왔다. 이 길로 곧장 나가면 베이징 역과 연결되는 것이다.
“일단 베이징 역으로 가시죠.”
추이풔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베이징 역에 내려놓았다. 역 광장에는 엄청난 인파가 붐비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역에 내리는 사람들을 태우기 위해서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 운전사와 틈만 있으면 아예 이불을 깔고 누운 사람들로 인산을 이루고 있었다. 그들이 뿜어내는 악취와 먼지 속에 묻어 있는 정체불명의 고약한 냄새까지 합쳐져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그 인파를 간신히 뚫고 역구내로 들어갔다. 다행히 베이징 역에는 외국인 전용 카운트가 있었다. 나는 여권과 비자를 제시하고는 타이위안까지 간다고 밝혔다. 하지만 담당자는 표가 이미 매진되었다고 했다. 내일 출발 할 것이라면 입석정도는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일까지 기다릴 수도 없을 뿐더러 10시간이 넘는 시간을 입석으로 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문득 여기서 그만두고 귀국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사장의 지시를 충실하게 수행하지 않았던가? 도매상과 인쇄소를 찍은 사진을 언론에 공개하고, 이를 중국 공안에 정식으로 고발하면 임무는 끝나게 된다. 굳이 작가를 만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설명하기 힘든 묘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차가운 이물감처럼 저 밑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작가를 만나야만 마음속에 드리워진 그 불투명한 막이 걷혀질 것 같았다.
내가 어깨를 늘어뜨리며 역 광장을 빠져 나오자 추이풔가 거 보란 듯이 소리쳤다.
“내 뭐라고 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멀리 여행을 하려면 미리미리 표를 구해놓아야 한단 말이오.”
나는 고개를 숙이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러자 추이풔가 불을 붙여주며 이렇게 물어왔다.
“꼭 그곳에 가셔야 겠어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나더러 다시 택시에 타라고 했다. 날 데려간 곳은 베이징에서 조금 떨어진 영정문 시외버스 터미널 옆의 작은 공터였다. 그 공터에는 10여 대의 낡은 버스가 나란히 주차되어 있었다. 아마도 터미널에서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을 태우기 위한 개인 버스 같았다.
“위레커라는 22 인승 버스입니다. 이 시간에 베이징에서 타이위안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버스 입죠.”
버스라고 하지만 그것은 우리나라의 봉고 보다 조금 큰 크기인데다 차가 너무 낡아 움직일지 조차 의문스러웠다. 운전석 쪽의 유리창은 금이 가 있었고, 타이어도 낡아 반들반들 윤이 날 정도였다. 나는 버스를 살피며 미간을 찌푸렸다.
“저 차로 15시간을 달려간다는 겁니까?”
추이풔는 윗입술을 끌어당기며 헤헤, 웃을 뿐이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추이풔에게 돈을 건네주자 그가 곧 좌석 표를 구해왔다.
“잘 다녀오세요. 와서도 꼭 제 택시를 이용해주셔야 합니다. 포상금도 잊지 마시구요.”
나는 그에게 택시를 대절한 요금을 건네주고는 버스에 올라탔다. 지붕이 낮아 기어가다시피 해서 좌석에 앉았다. 좌석은 나같이 키가 작은 사람도 발을 뻗을 수 없을 정도로 좁았다. 밖을 내다보자 추이풔가 바로 옆에 와서 손을 흔들어주는 게 보였다. 나는 차창을 열어 10위안 짜리 지폐를 하나 건네주었다. 일종의 팁이었다. 그는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인사를 하고는 자신의 택시로 돌아갔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홍차오 시장에서 산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좌석이 꽉 찼는데도 차가 출발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 와중에 사람들은 계속 올라탔고, 조수는 좌석 밑에서 보조의자를 꺼내 그 사람들에게 줬다. 생김새가 영락없이 낚시터에서 쓰는 간이 의자였다. 나중에 꾸역꾸역 밀려 차를 탄 사람들은 같은 차비를 냈지만 아무 불평 없이 보조의자에 앉았다. 조수가 자신이 앉을 보조의자까지 손님에게 내주고 나서야 버스가 출발했다.
시내를 빠져 나온 버스는 고속도로 대신 좁은 국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통행료를 아끼기 위한 듯 했다. 버스 기사는 자신의 운전 능력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좁은 도로를 곡예 하듯이 달렸다. 과속은 기본이고, 차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질주하는 것이다. 버스가 심하게 흔들리며 급정거를 반복했지만 누구하나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멀미가 날 것 같아 차창을 활짝 열고 길게 심호흡을 하며 견뎌나갔다.
버스는 여러 곳에 들러 사람을 내리고 싣기를 반복했다. 도시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녀 달리는 시간보다 정거장에서 쉬는 시간이 더 많을 정도였다. 베이징을 출발한지 얼마 안되어 사위가 조금씩 어두워져 갔다. 나는 중간에 정차한 작은 도시에 내려 물과 음료수를 구입했다. 좌판에 벌여두고 파는 음식은 위생상태가 엉망이라 도무지 손이 가지 않았다. 나는 화장실에 달려가 세수를 하고 손수건에 물을 묻혀왔다. 화장실 옆에는 작은 문방구가 있었는데 거기서 한 아이가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책인가 싶어 가까이 가보니 놀랍게도 <괴력난신>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가짜 책이 아니라 작년에 나왔던 진짜 번역본이었다. 이렇게 작은 도시의 아이까지 저 책을 읽고 있다니 <괴력난신>의 인기를 새삼 실감할 정도였다.
<괴력난신>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그에 관한 논란도 많아졌다. 먼저 책에 대한 표절 주장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소설의 내용이 상당부분 중국의 설화, 그 중에서도 태평광기에 실린 내용을 바탕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벌이는 모험들이 그 책에 실린 여러 내용을 조합했다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이를 반박하는 주장도 만만치 않았다. 태평광기 또한 독창적인 창작물이 아니라 중국의 방대한 설화를 모아놓은 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태평광기에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의 백운소설이나 역옹패설이 표절이 아니듯 <괴력난신>도 표절작이 아니란 주장이었다. 그렇게 되면 설화를 소재로 한 모든 작품이 표절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논란이 깊어질수록 나는 철저하게 신분을 숨기고 있는 작가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하지만 사장은 그 작가가 누군지 내게 가르쳐주지 않았다. 출판사의 몇몇 직원들만 아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창업 멤버에 가까운 주요 직원이 아닌가? 사장이 일부러 나에게만 숨기는 것 같아 몇 번이나 물었지만 가르쳐 줄 수 없다는 말만 들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그 작가가 누군지 알게 되었다. 사장이 부탁한 서류를 들고 사장실을 향하는 데 그가 통화를 하는 내용을 우연히 듣게 된 것이다. 그가 <괴력난신>을 지은 작가와 통화하는 도중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오는 걸 듣게 되었다. 순간 나는 너무 놀라 들고 있던 서류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제야 사장이 내가 온 것을 알고는 황급히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는 무연한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너도 들은 거니?”
나는 핏발 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왜 이유필이 그 소설의 작가라는 걸 제게 숨기셨어요?”
“그게 말이야…….”
사장은 말을 잇지 못하고 눈 주름을 파르르 떨었다.
나는 사장이 왜 그 사실을 숨겼는 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이유필을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 도서관. 그가 태평광기를 번역한 내 노트를 가져간 것이 분명했다. 그 태평광기에 실린 여러 설화를 조합하여 그 소설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태평광기를 표절하여 소설을 적었다는 주장은 일정부분 타당한 것이 되는 게 아닌가? 물론 <괴력난신>이 태평광기를 온전히 표절한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의 상당부분이 그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은 사실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사장은 나와 이유필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그런 것까지 염두 해 두고 그 사실을 숨겨왔던 것이다. 나는 그를 만나 내 노트를 돌려 받고 싶었지만 사장은 끝내 그의 연락처를 가르쳐주지 않아 만날 수가 없었다.
나는 옆에서 그 책을 읽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는 막 돌아서려는 데 휴대폰 벨이 울렸다. 얼른 받아보니 서울의 사장이었다.
“지금 어디야?”
나는 타이위안으로 간다고 말하려다 얼른 생각을 바꾸어 호텔에 있다고 대답했다.
“난 지금 강원도에 있다.”
“강원도라면 이유필을 만나고 있단 말씀입니까?”
“그래. 모처럼 만에 이야기가 잘 통하더군.”
“다시 소설을 쓰기로 했단 말입니까?”
“그게 아니고 말일세.”
사장은 휴대폰인데도 은밀한 목소리로 내게 그를 만난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이야기를 듣다가 나는 너무 놀라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사장의 들뜬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전해졌다.
“이미 우리 둘이 합의한 사항이네. 자넨 내가 지시하는 것만 잘 따르면 된다구.”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건…….”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무슨 말을 하려했지만 사장이 말허리를 자르며 들어왔다.
“나도 어쩔 수 없다는 건 자네도 잘 알 것 아닌가? 달리 선택의 방법이 없네.”
나는 가만히 휴대폰을 꽉 쥐고 있을 뿐이었다.
“자네만 믿고 있겠네.”
메아리처럼 울리는 그 말을 뒤로하고 폴더를 닫았다. 순간 허기가 싹 가시며 심한 갈증이 몰려왔다. 나는 그 자리에서 물 한 병을 다 비우고는 캔 맥주를 사서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가 출발했지만 차창 밖의 풍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캔 맥주를 따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술기운이 퍼져갔지만 정신은 더욱 명징해갔다. 사장에게 들은 이야기가 요동을 치며 마음속에 수 천가지 생각의 갈래를 만들어갔다. 나는 옆 좌석에 앉은 사내에게 맥주를 내밀고 황주와 바꾸어 마셨다. 독한 술을 들이키자 그제야 조금 취하는 듯 했다. 벌게 진 얼굴을 식히기 위해 차창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불며 황토 가루가 피부에 와 닿았다.
타이위엔으로 가는 길은 고원 지대를 계속 내려오는 내리막길인데 길옆이 순간순간 낭떠러지였다. 그 낭떠러지 옆으로 붉은 황토물을 머금은 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아마도 황화강의 한 지류 같았다. 버스는 큰 차라도 만나면 낭떠러지 바로 옆에서 후진과 전진을 반복하면서 빠져나갔다. 그런데 같이 탄 중국인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 모양이었다. 바닥에 앉은 사람이나 좌석에 앉은 사람이나 얼굴 표정이 모두 똑같았다.
사위가 완전히 어둠에 묻히자 사람들은 잠들기 시작했다. 나도 잠이 왔지만 불안해서 눈이 감겨지지 않았다. 버스 기사는 밤을 꼬박 세워 운전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가 만약 졸기라도 한다면…… 순간 아뜩한 마음이 들어 자꾸 운전사에게 눈이 갔다. 한참동안 룸미러로 그가 졸고 있는지를 살피다가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따가운 햇살이 이마를 찔러와 눈을 떠보니 어느새 아침이었다. 나는 하품을 하며 차창을 바라보다가 그만 입이 크게 벌어지고 말았다. 눈앞에 황토고원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그 넓이가 얼마나 광활한지, 마치 비행기를 타고 누런 구름 속을 달려가는 기분이었다. 가끔 미루나무들이 듬성듬성 서 있을 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황토 지대는 바로 밋밋함과 척박함 그 자체였다. 마치 컬러 텔레비전을 보다가 한순간 화면이 흑백으로 바뀐 기분이었다.
차안의 사람들은 모두 잠들어 있었다. 불편한 자세와 좁은 공간 속에서도 잠을 잘 이루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나는 가방을 뒤져 물통을 꺼내었다. 물 한 병을 온전히 비우고는, 그것도 모자라 캔 커피까지 마셨다. 땀을 많이 흘려 목이 말랐던 것이다.
버스를 오래 타서 익숙해졌다 싶었는데 운전사가 타이위안에 다 왔다고 소리쳤다. 거의 하루가 걸려 타이위안에 도착한 것이다.
타이위안(太原)은 산시성의 성도로서 인근 관광지로의 관문 역할을 하는 꽤 큰 도시였다. 하지만 버스가 도착한 곳은 시내 외곽지역으로 관광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낡고 더러워 보였다. 나는 사람들이 다 내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버스 기사에게 다가갔다. 그에게 주소가 적힌 종이를 내밀며 이곳에 찾아가 줄 수 있냐고 물었다. 물론 돈은 두둑하게 주겠다고 했다. 기사는 흔쾌히 승낙했다. 그는 곧바로 차를 출발시켜 타이위안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외곽에 날 내려주고 갔다.
이곳은 중국 최대의 석탄 산지로 거리에는 매캐한 석탄 타는 냄새와 희뿌연 공기가 우울하게 흐르고 있었다. 버스가 내려놓고 간 곳은 작은 시장입구였다. 나는 그 시장에서 사람에게 물어 곧바로 복덕방을 찾아갔다. 복덕방 주인에게 10위안 짜리 지폐와 함께 주소가 적힌 메모지를 내밀었다. 복덕방 주인은 반색을 하며 나를 직접 데리고 그 주소지로 데려갔다. 미로처럼 얽힌 좁은 골목을 한참동안 걸어가자 더위를 피해서 한가롭게 앉아 있는 마을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마을 회관 같은 공공장소와 허름한 초등학교를 사이를 두고 얕은 개천이 흐르고 있었다. 물은 먹빛에 가까운 검은색이었다. 주위의 탄광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란다. 그 실개천을 따라가자 이상하게 생긴 집들이 늘어서 있는 게 보였다. 황토 토굴을 파고 그 앞에 문을 달아놓은 것이다. 복덕방 주인은 토굴 벽을 만지며 내 쪽을 돌아보았다.
“이걸 야오똥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이런 집이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한 산시성의 전통 가옥이라고 소개했다. 복덕방 주인이 돌아가고 나는 주소가 적힌 토굴집 앞에 잠시 멈추어 섰다. 굳이 그를 찾아야만 하는 것인가? 문득 이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차가운 이물감이 잔류처럼 전해져 오며 주춤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어렵게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 순 없었다. 15시간이나 걸려 대륙을 가로질러 오지 않았던가? 게다가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더 강한 걸 부인할 수 없었다. 나는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며 천천히 문을 두드렸다.
문을 노크했으나 안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문이 조금 열려 있어 그 문을 마저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실내는 창이 없어 그런지 무척 어두웠다. 어둠에 조금씩 눈이 익어가자 주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집안은 지독하게 낡고 허름해 보였다. 자질구레한 곰팡이류가 벽을 뒤덮고 허연 거미줄이 천장에 드리워졌다. 가재도구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둥근 탁자에는 낡은 텔레비전 한 대가 놓여 있고, 바로 옆에는 천이 닳아 스펀지가 튀어나온 장의자와 좁은 침대가 놓여 있는 게 전부였다. 잠시 무연한 표정으로 서 있는데 오른쪽 방문이 열리며 등이 굽은 노파가 천천히 걸어나왔다.
“뉘시오?”
노파는 불그스레한 얼굴에 붉게 충혈 된 흐릿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저 그게 말이죠…….”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겨우 이렇게 말했다.
“아드님을 만나 뵈러 왔습니다.”
노파는 무슨 이유로 만나러 왔는지 묻지도 않고 곧장 건너편 방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부스스한 머리를 한 남자가 눈을 비비며 밖으로 나왔다. 어두워 잘 보이진 않았지만 사내는 생각보다 젊어 보였다. 그는 정강이가 드러난 반바지에 소매 없는 허름한 무명 옷 하나만을 걸치고 있었다. 그 또한 무슨 일로 찾아 왔는 지 묻지도 않고 나를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그의 방은 희미한 전등이 켜져 있어 거실보다 밝았다. 그제야 나는 사내의 얼굴을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그는 방금 보았을 때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이마와 입술에 잡힌 주름이 없다면 나보다 어려 보일 정도였다. 햇빛을 많이 받지 않았는지 얼굴은 전체적으로 투명에 가까운 흰빛이었고, 몸은 검불처럼 바짝 말라 보였다. 작은 눈은 밑으로 쳐져 있었고 코와 인중 사이가 가늘어 전체적으로 심약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작가의 방으론 보이지 않았다. 책이라곤 선반 대용으로 쓰이는 야전 침대에 놓은 두어 권이 전부였다. 컴퓨터도 노트북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한참을 망설인 끝에 찾아온 이유를 사실대로 말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의 표정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놀라거나 겁을 집어먹지도 않았다.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듣는 듯한 표정으로 겨우 한다는 소리가 이랬다.
“그래서 어쨌다는 겁니까?”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슬쩍 그를 떠보기로 했다.
“당신은 우리 소설을 표절했고, 그 책 또한 가짜 책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그러자 사내의 언성이 문득 높아졌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그 소설은 당신들의 것과 제목도 다르고 작가의 이름도 필명이지만 제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저의 창작물입니다.”
“하지만 제목과 표지 디자인이 거의 흡사하기 때문에 법적 소송을 걸면 당신이 질 확률이 많습니다.”
“마음대로 하세요. 하지만 난 한국에서 나왔던 그 책을 읽은 적도 없습니다.”
나는 처음에 잘 못 들었나 싶었다.
“우리 책을 전혀 읽어보지 않았다니…… 그게 정말인가요?”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를 올려 보였다.
“베이징에서 왔다던 사람이 그 책의 줄거리를 대강 들려주더군요. 듣다보니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이야기였어요.”
나는 더듬거리며 다시 물었다.
“혹시 태평광기라는 책을 읽으셨나요?”
“전 그런 책을 잘 모릅니다. 그 이야기는 바로 우리 어머니께서 어렸을 적에 들려주시던 이야기와 거의 비슷했어요. 전 어머니께 그 소설의 줄거리를 말씀드렸죠. 그런데 어머니께서도 그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들었던 것과 거의 비슷하다고 말씀하셨죠. 그래서 그 뒷부분을 들려달라고 했던 겁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댁이 소설로 적었던 내용이?”
“바로 어머니께서 들려준 이야기를 다듬은 것이죠. 물론 이야기의 얼개와 구조를 제가 많이 바꾸었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어머니의 이야기와 맥을 잇고 있습니다.”
나는 얼굴이 홍시 빛으로 달아 오른 채 그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그때 휴대폰 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자신에게 전화를 할 사람은 사장 밖에 없었다. 나는 휴대폰을 들고 짧은 한숨을 내쉬다가 배터리를 빼놓아버렸다. 그 사이 노파가 들어와 찻잔을 놓고 조용히 밖을 나갔다. 나는 그 노파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다시 사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소설을 적어 얼마나 받았습니까?”
“200위안을 받았습니다.”
200위안이라면 중국 노동자의 한달 임금이 조금 넘는 돈이었다. 책 세 권을 적고 그 정도 돈밖에 받지 않았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긴 그가 돈을 많이 벌었다면 이런 집에서 살 리가 없었다. 집을 둘러본 바에 의하면 그리 넉넉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다시 한번 사장의 말을 떠올리며 희디흰 공백 상태로 눈을 감고 있다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어 입술을 가늘게 달싹이면서 나지막하게 물었다.
“당신의 소설을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내는 건 어떻습니까?”
사내는 내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눈만 끔뻑이다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나는 못을 치듯이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당신 이름으로 발간된 소설을 모두 회수하고 대신 그 내용을 가지고 우리 작가의 이름을 달고 새로 소설을 내는 겁니다. 물론 당신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드릴 겁니다. 당신이 상상할 수 없는 그 이상의 대가가 뒤따를 겁니다.”
사내는 한참동안 내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는 나의 제안에 그닥 놀라는 기색은 아니었지만 표정은 다소 굳어있었다. 이어 가늘게 입술을 씰룩이며 웃음을 흘렸다. 경멸하는 눈초리로 나를 응시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지은 소설을 그 사람 이름으로 다시 발간하잔 말이죠?”
나는 무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사내는 불콰한 얼굴에 비죽비죽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이내 한일자로 다물어버린 것이다. 나의 두 눈은 그의 시선을 피해 불안전하게 움직였고, 무릎 위에 놓인 자그마한 손은 바지를 움켜쥐었다가 놓기를 거듭했다. 그러는 동안 사내가 갑자기 방문을 열고 집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나는 그 뒤를 따랐다. 사내가 멈추어 선 곳은 먹물 빛의 물이 흐르는 작은 실개천이었다. 그는 실개천 옆의 낮은 둔덕에 쭈그리고 앉아 바닥의 돌을 집어던지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검은 실개천은 수많은 개천들과 합하여져 샤오허강(瀟河)을 이룹니다. 이 샤오허강은 또 펀수이강(瀟河)에 모여들고, 이 강 또한 황화강의 한 지류일 뿐이죠. 수천 수만의 물결이 모여 강을 이루고 또 바다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제가 쓴 소설도 그 조그만 지류의 일부일 뿐입니다. 이미 흘러 가버린 물을 다시 퍼담을 순 없지 않을까요?”
사내는 그 말을 남겨두고는 자신의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우두커니 조그만 개천 앞에 서 있을 뿐이었다. 온몸의 피가 자작자작 졸아드는 느낌과 함께 내가 했던 말을 다시 입안에 넣고서 우둑우둑 씹어 삼키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어떻게 걸어 나왔는 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정신이 멍한 가운데 머릿속이 뒤엉킨 실타래처럼 흐릿 하는 것과 동시에 가슴이 터질 듯한 답답증이 일었다. 모든 것이 하얗게 탈색된 느낌이었다.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좌판 시장 쪽을 걷고 있는 것이다. 나는 기다리기에 지쳐 택시를 불러 타이위안 시내까지 갔다. 거기서 요금보다 훨씬 많은 웃돈을 주고 베이징으로 향하는 고속버스에 올라탔다.
베이징에 도착한 것은 다음날 이른 아침이었다. 호텔 로비로 들어오자 커피숍 쪽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출판사 사장이 손을 들어 보이며 얼굴 가득 웃음을 짓고 있었다.
“어딜 다녀오는 거야?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린 줄 알아? 휴대폰도 받지 않구 말야.”
사장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커피숍 쪽으로 이끌었다. 창가 전망 좋은 곳에 앉히고는 손수 담뱃불을 붙여 내밀었다.
“그 소설을 쓴 작가를 찾을 수 없겠나? 내 돈은 두둑이 준비하고 왔네.”
나는 대답대신 소파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아침부터 황사가 몰려와 밖은 오렌지 빛의 대기로 물들어 있었다. 문을 열고 나가면 얇은 모레 입자가 비처럼 내릴 것 같았다. 나는 문득 답답한 마음이 들어 바로 옆의 창을 활짝 열어놓았다. 그 창을 통해 얼굴을 밖에 내밀다가 어깨를 한껏 웅크린 채 탁자 위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진작에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유필이가 허락을 하던가요?”
“물론이지. 그 녀석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서던 걸.”
사장은 그렇게 말하며 누런 봉투를 슬쩍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핏발 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사장이 짧은 고갯짓을 하는 것이다. 잠시 그 봉투를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안을 열어보았다. 놀랍게도 봉투 안에는 낡은 노트 한 권이 들어 있었다. 이유필이 가져간 태평광기의 번역노트가 지금 내 손에 다시 들려져 있는 것이다. 순간 의식의 필라멘트가 새빨갛게 달아올라서 바르르 떨리다가 툭 끊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부어 올랐던 머릿속이 한 순간에 오그라들었다.
나는 필터까지 타 들어간 담배를 재떨이에 눌러 껐다. 이어 한 손으로 탁자 위를 가늘게 두들기다 담배 한 개비를 다시 입에 물었다. 그러자 사장이 라이터를 켜서 내미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내밀지 않고 그 라이터를 잡아챘다. 그리고는 라이터 불을 노트 밑으로 가져왔다. 순간 바짝 말라 있던 노트에 순식간에 불길이 번지면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맞은 편에 앉아 있던 사장이 놀라서 일어나고 호텔 종업원이 뒤늦게 달려왔다. 그 동안 노트에 불길이 번져 손에 쥐고 있던 위쪽 귀퉁이까지 타 들어갔다. 나는 뜨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손 밑까지 타들어 갔지만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불길이 집어삼킨 노트는 어느새 검은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나는 불길이 잦아들어 온전히 잿더미가 된 것을 손을 쳐서 창 밖으로 던졌다. 잿더미는 바람에 날려 작은 가루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 시커먼 가루들은 수많은 미세 먼지와 짙은 연막, 그리고 누런 황토모래에 섞여 혼탁한 대기 속으로 점점이 흩어지는 것이다.
제성욱
* 1970년 부산 출생
* 1994년 제1회 실천문학 신인상
* 2006년 한국해양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