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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7일부터 29일까지 사흘 동안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열렸던 "원자력과 민주주의" 심포지움에 참석하였다. 그날 발표된 발제 강연을 중심으로 주요 내용을 간추려 아래에 올린다. 9월 29일 행사에는 참석하지 못하였다. 그 대신으로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 실린 가마나카 히토미 씨의 대담문을 싣는다. 영화 <로카쇼무라 광상곡>을 감독한 히토미 씨는 이번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새벽강
강연 일정
때: 2011년 9월 27일 오후 2시 곳: 대학원관 중강당
주최: 이화여성신학연구소, 신학대학원, 기독교학과, 녹색평론사, 한국교회환경연구소
후원: 이화문과학원 HK 사업단
-9월 27일
강연 I 핵이라는 괴물을 어떻게 할까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강연 II 원자력 필요악인가? 김익중(경주환경운동연합 상임의장, 동국의대 미생물학 교수)
-9월 28일
강연 I 선악과, 원전, 생명의 미래 장윤재(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소장)
강연 II 원전과 생태주의, 하느님 나라 문규현(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역임, (사)생명평화마중물 대표)
-9월 29일
영화상영: 록카쇼무라 광상곡-일본 로카쇼무라 핵재처리장공장 건설에 저항하는 지역민들의 투쟁기
감독과의 대화: 카마나카 히토미(일본 다큐영화감독)
-9월27일~ 29일 중강당 앞뜰
다큐사진작가 모리즈미 다카시 반핵 사진전 제공: (사)생명평화마을마중물
핵이라는 괴물을 어떻게 할까
김종철(녹색평론 발행인)
원자력 문제, 장기적이고 포괄적, 실천적으로 생각하자
사실 이야기할 내용은 앞서 사회자가 모두 말했다. (앞서 강연회 사회자는 원자력 문제를 '장기적이고, 포괄적이고, 실천적으로 생각하자'고 말했다) 이런 세 가지면 모든 이야기는 다 끝난다. 할 필요도 없다. 사람의 삶을 좀 장기적으로 생각하고 전체적으로 생각하자. 우리만 사는 것도 아니다. 우리 미래 세대도 있고, 또 다른 민족도 있고, 가난한 사람, 부유한 사람 모두 다 같이 살아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과거에 살았던 사람에게 존경심도 가져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사물을 피상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 내면에 어떤 게 깔려 있나도 심사숙고해야 한다. 장기적, 포괄, 심층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줄여서 '장포심'이라고 하자.(웃음) 이것만 잘 갖춰지면 하나도 할 게 없다. 하지만 이게 잘 안 된다. 왜 안 되는지 모르겠다.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 미국도 안 된다. 이 세계에 희망이 있는지 모르겠다.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에 어마어마한 대재앙이 발생했다. 지난 20년 동안 <녹색평론>을 마음 한편에는 절망적인 기분이 많이 들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좀 더 나은 세상이 되기는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열심히 이야기는 해야 되지 않겠나 이런 심정으로 일을 해왔다.
▲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프레시안(허환주)
그런데 저 엄청나고 끔찍한 사건을 접하고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후회도 생겼다. 소극적인 나의 마음이 저런 사태를 유발하는 데 도움을 준 게 아닌가 생각했다. 좀 더 강인하게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행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후 독일에서 국가적 차원에서 원자력을 폐기하겠다는 소식을 들었다. 독일도 하는데, 지구 상에서 (핵을 없애는 게) 가능하다는 걸 입증해주는데, 못할 게 뭐가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평소 사람의 마음과 거꾸로 가는 게 국가라고 생각했는데 국가에서, 정부와 연방의회에서 그런 결정을 내리는 걸 보면서 그들도 역시 지구에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우리는 그 사람들 뒤를 쫓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면서 좀 더 적극적으로 살아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결심의 한 가지로 요즘 강연을 잘 다닌다. 이전에는 강연을 까다롭게 했다. 이야기를 해봤자 보람도 없고, 괜히 자기네 행사에 구색 맞추기로 나를 부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웬만하면 안 갔다. 요즘은 웬만하면 다 간다. 그래서 지난 6개월 정도 원자력을 테마로 많은 이에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아직도 실력이 없어서 그런지, 이야기를 제대로 못 한 기분이다. 포인트를 놓치고 변죽만 울리면서 이야기를 끝내는 듯하다.
여전히 계속되는 위험, 하지만 정부와 언론은 '안전하다'?
지금 후쿠시마 상황은 수습이 전혀 안 되는 상태다. 방사능이 계속 나오고 있다. 강연에 앞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일본에 다녀온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일본에서 잡지를 봤는데 정부 쪽 과학자들은 원자력에 비판적인 전문가의 과학이 '쓰레기 과학'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어용학자들은 후쿠시마 사태가 발생했지만 조금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언론이다. 언론이 주류 권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통제를 받거나 그들 편에 서 있다. 그래서 대중은 진실을 모른다.
지금 수습을 향해 한 발 겨우 내딛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는 작은 지진이라도 나면 통제 불능 상태에 들어간다. 아시아에 지옥문이 열린다. 지금도 계속 엄중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언론은 선거 문제에만 몰입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다. 선거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일본은 현재 후쿠시마 사태가 어느 정도인지를 정확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 안에 들어갈 수 없으니 그럴 수밖에. 객관적 분석을 하는 사람들은 이번 사태는 히로시마 원폭의 50개 분량이 터진 것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미국 사람들은 큰 걱정을 한다. 서풍을 타고 방사능 물질이 하와이, 미국 본토로까지 가기 때문이다. 우리도 먹는 음식을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시민단체가 방사능 검사를 하는 걸 금지해야 한다고 한다. 단체나 개인이 검사하는 걸 국가에서 감시해야 한다고 했다. 이유는 통제가 안 되기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사실이 알려지면 패닉 상태로 가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냥 정보를 은폐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어떻게 모든 정부가 똑같은지 모르겠다. 나는 한국 정부가 제일 심하다고 생각했는데, 일본과 우리는 오십보백보다. 지난 번 사고를 일본은 공개하지 않는다. 원자력은 어느 나라든 철저한 속임수로 은폐한다. 하지만 그것에 저항하는 이도 분명히 존재한다. 고이데 히로아키(小出裕章)라는 일본 원자력 학자가 있다. 40년간 원자력을 연구하면서 원전 건설에 대해 반대해 온 분이다. 원전 정책을 추진하려고 하는 학자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학회 속에서 그는 고립무원 계속 싸워 왔다. 대학교(교토대학 원자로 연구소)에서도 교수로 승진하지 못하고 정년퇴직을 눈앞에 둔 지금도 조교로 근무하고 있다.
그분이 원자력을 반대한 이유는 한국의 어떤 윤리학자, 인문철학자, 어떤 도덕적 인간보다도 훨씬 더 윤리적이다. 그는 자기가 원자력을 반대하는 이유를 두고 치명적 기술력을 가진 것만이 아니라 일차적 문제, 원자력은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기에 반대한다고 한다. 원자력은 철저히 인간 차별에 기반을 두고 있는 기술시스템이라는 거다.
원자로 가동에 숨겨진 세 가지 차별
우리 한 번 따져보자.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차별이 있어야 한다. 첫째, 원자력 발전 시스템을 가능하게 하려면 사고가 안 나야 하고 평상시 가동 중에도 끊임없이 원자력 내부로 들어가 잔손질을 하는 작업자가 있어야 한다. 사고가 난 후쿠시마 원전 안에서 실제 목숨을 무릎 쓰고 원자력 내부에 들어가는 사람은 누군가. 대외적으로 성명이나 발표하는 이들은 도쿄東京에 앉아 넥타이를 매고 에어컨을 틀고 있다. 화이트칼라다. 반면 실제로 일본을 위해, 방사능 배출을 억제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일본 최하층 노동자다. 얼마 전 일본신문을 보니, 일본 사람들은 단결심이 강하고 애국심이 강해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자기희생적으로 분투하기 때문에 원전폭발을 막고, 방사성물질 대량방출을 막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이들을 교도소에 넣어 종신형을 시키고 싶다. 그런 무책임한 이들이 어디 있나. 그 노동자 중 한 명(원자력 발전소 노동자)이 외국 특파원과 인터뷰를 한 내용은 다르다. 인터뷰에서 노동자는 '나에겐 애국심이 없다. 내가 무슨 애국심이 있나. 내가 일을 하는 건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일본은 세계 초일류의 부국이다. 하지만 사회적 차별은 심하다. 한국 사회도 다를 게 없다. 최하층 노동자, 그 사람들은 자기가 고농도 방사선 피폭을 당하면 조만간 죽는다는 걸 안다. 그러나 그럼에도 당장 살아야 해서 그런 일을 하는 거다.
3월 원자력 발전소 폭발 이후, 고농도 피폭을 당한 60대 노동자가 죽었다. 명확히 방사능으로 죽었지만 일본 정부와 언론은 심장병으로 죽었다고 했다. 내 주변에 심장 안 좋은 사람이 있는데 90살까지 살았다. 방사능 아니면 죽을 이유가 없는 사람을 심장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일반 공동체가 이렇게 사회 약자를 모욕하고 학살하는 거다. 왜 이렇게밖에 안 되겠나. 이렇게 하지 않으면 원자력 발전소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리발을 내민다. 누군가는 피폭당하며 들어가야 한다. 자본주의, 독재주의가 아니면 원자력 발전을 유지할 수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할 수 없다. 또 하나는 지방과 서울, 즉 지방과 대도시 격차 문제가 있다. 박원순 변호사가 나와서 서울시장을 하겠다고 한다. 난 개인적으로 박 변호사가 현재 후보로 나온 이들 중에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수십 년 동안 시민운동을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가피한 일인지 모르지만 서울시장은 서울시만 생각한다. 지방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서울시 행정을 펼친다. 어쨌든 서울시를 좋게 하겠다는 게 서울시장 후보의 공약이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야 할 건 서울시의 전력 생산량은 제로라는 점이다. 당인리 발전소는 폐쇄됐다. 큰 기업, 병원의 비상용 발전기가 돌아가지만 그런 거를 다 따져도 1%도 안 된다. 사실상 서울 자립도는 제로다. 하지만 서울시가 전력을 제일 많이 쓴다. 요즘 지어지는 건물에는 형광등이 수백 개다. 그렇게 엄청난 전력을 소비하면서 이 전기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서울시민은 고민하지 않는다. 울진, 영광, 월성, 고리 등 변방에서 먹고 살 게 없어 고민하는 사람들, 황폐한 사람들은 고기잡이배로 고기를 잡고 논밭 갈아 자급자족하며 살아간다. 그런 사람들에게 돈 몇 푼 주고 속여서 발전소를 짓고 거기서 나오는 전기를 서울로 끌어 쓴다. 원자력 발전소는 평소에도 방사능이 나온다. 원자력 발전소 주변에 오래 살면 아기를 갖지 못한다. 그러나 정부, 산업계는 절대 이를 부인한다. 그런 말 하면 '정크 사이언스(Junk science)'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역학조사로도 나온다.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만 식물과 동물은 거짓말을 안 한다. 원자력 발전소 인근에는 갈매기가 없다.
시골 사람들은 방사능을 평생 맞으며 돈 몇 푼 받으며 산다. 박원순 변호사가 이런 문제에 투철한 의식이 있다면 이런 공약을 해야 한다. '원자력 발전소는 서울에서 짓겠다'고. 그게 양심적인 사람이다. 아니면 집집마다 재생에너지 시설을 설치하겠다고 하라. 하지만 그런 건 말할 생각이 전혀 없는 듯하다. 박원순 변호사는 그렇게 아이디어가 많다던데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할까. 지방과 서울의 격차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격차는 현 세대와 미래 세대의 격차다. 현 세대에 단기적 이익을 위해서는 핵폐기물을 처리할 곳이 있어야 하지만 이를 처리할 곳이 없다. 지금 상업 원자력 발전소는 전 세계에 430여 개가 존재한다. 원자력 발전소는 우라늄을 핵분열시켜 나온 열량의 3분의 1만 전력으로 만든다. 나머지 3분의 2의 열은 폐열로 처리하여, 소위 온배수로서 바다로 버려진다. 그래서 이 온배수가 대륙붕 생태계를 파괴하고, 나아가서 해양 생태계 전체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고 있다.
지금 현 세대는 흥청망청 쓰는 것만 보지, 이 때문에 미래 세대는 감당할 수 없을 거라는 건 생각하지 않는다. 이 세 가지 차별을 기초로 하지 않고서는 단 한순간도 성립할 수 없는 게 원자력 시스템이다.
원자력 포기 못 하는 이유? 핵무기 보유를 꿈꾸기 때문
그럼에도 원자력을 운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원자력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뻔뻔하다. 사고가 나기 전에는 원자력이 절대 사고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미사일을 맞아도 괜찮다고 홍보한다. 그러나 사고가 나니 방사능은 몸에 해롭지 않다고 한다. 적당히 맞으면 건강에 좋다고도 한다. 어이가 없다. 우리가 방사능을 어디서 구한다는 말인가. 그런 말을 하는 이들 집에 택배로 방사성 물질을 보내자. 프라이팬에 볶아 먹으라고. 보약이라는데…. (웃음)
정작 사고가 나니 방사능 문제가 없다고 한다.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 때 제일 큰 피해를 입은 곳이 벨라루스이다. 벨라루스는 국토의 절반 이상이 방사능에 오염되었다. 그렇게 방사능에 오염되었지만 서민들은 어쩔수 없이 계속 거주할 수밖에 없다. 그쪽 의사들에 의하면 지금 벨라루스의 청소년들 중에 건강한 사람은 10명 중 2명 밖에 안된다고 한다. 청소년들은 원래 잘 아프지 않는 법이다. 청소년들은 아플 수 없다. 세포가 활발하게 돌아가고 원기가 왕성한데 왜 건강하지 못하나. 평소에는 안전하다고 하다가 사고가 나면 방사능은 별것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방사능 오염으로 사회적 기반이 붕괴하는 건 심각한 문제다. 저체중아, 기형아들이 그렇다. 이들을 보살피는 사회적 비용은 엄청나다. 거기다 피폭 지역 아이들은 환경 영향으로 범죄자가 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사회적 비용은 어떻게 할 거냐.
미국의 경우, 아이젠하워 대통령 재임 기간 1000개였던 핵이 퇴임할 때는 2만 개로 늘었다. 아이젠하워가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이용한다고 하면서 전 세계에 퍼뜨렸다. 핵발전은 1953년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에 의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 제창되면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되돌아보면 이 시기에 미국이 특별히 평화로운 세계를 원했을 리 없다. 오히려 소련과 치열한 군비경쟁이 시작되어 핵무기 개발이 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미국 정부와 군부가 핵무기 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고 천문학적 예산을 확보하는 데에는 무엇보다 국민의 핵에 관한 이미지가 개선되어야 했다.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의 대량 살상 이후, 핵폭탄의 위력을 알게 된 미국인은 대체로 핵에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핵기술은 전쟁뿐만 아니라 평화와 경제적 번영을 위해서 불가결한 것이라는 논리로 국민을 설득할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핵에너지 기술의 국외 수출에서 얻는 막대한 이익도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은 평화를 증진하기는커녕 세계를 갈수록 위험에 빠뜨리는 결과가 되었다. 이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원자로란 전력 생산 장치 이전에 기본적으로 핵무기원료 생산 장치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자로에서 우라늄 연료봉을 태우면 막대한 에너지가 발생하여 터빈을 돌리기도 하지만, 핵분열의 결과로 생겨난 방사성 물질을 분리·재처리하면 자연세계에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극렬한 맹독성 물질이자 가공할 핵폭탄 원료인 플루토늄을 확보할 수도 있다.
실제로 1974년 인도가 핵무기를 독자적으로 개발해 실험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과의 원자력협정을 통해 도입한 발전용 원자로를 이용한 결과였다. 이에 핵에 관한 한, 군수용과 민수용을 구별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무의미하다. 모든 원자로는 잠재적인 핵무기 제조공장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곳곳에서 핵발전소 가동이 계속되는 한, 핵무기 감축을 위한 노력은 처음부터 한계가 명확한 것일 수밖에 없다. 크고 작은 핵사고 재앙에도 여러 국가가 핵발전소를 포기하지 않고, 기를 쓰고 증설하고자 하는 데는 복합적인 동기가 작용해왔을 것이다. 핵무기 보유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는 국가의 군사적 야심도 중요한 동기였을 게 분명하다.
"1주일에 하루씩 전기 없는 날 운영하자"
프랑스도 원자력 발전소를 58개로 확대했다. 군사적 야심을 한국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 대국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똥' 쌀 곳도 없으면서 '굳이' 원자력 발전소를 계속 유지하는 이유는 군사적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건드리기는 어렵다. 원자력 발전소, 즉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것에는 좌도 우도 없다. 선거 후보자가 핵무장을 하겠다고 하면 상당한 박수를 받을 것이다. 한국에서 녹색당이 출범해 핵을 폐쇄하고 평화민주주의 모범을 보이겠다고 하면 조롱을 당할 것이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깨어 있는 지식인과 시민은 원자력의 문제를 지적한다. 하지만 정치권은 이를 뭉갠다.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 총리는 문제가 터졌지만, 원자력을 계속한다고 발표했다. 사고가 난 지역의 농민은 갈 곳이 없어, 그냥 오염된 지역에서 산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 국가 결정자가 받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기가 막힌다. 결국, 정치 시스템이 바꿔야 이 문제는 해결된다. 덴마크는 오일 쇼크 이후 원자력 발전소를 지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거기도 원자력 이익 세력이 있다. 하지만 덴마크 시민은 냉정하게 원자력 발전소를 지으면서 얻는 이익과 손실이 무엇인지를 전문가에게 들어보는 '시민합의회의'를 만들었다.
저녁 시간에 시민이 모여 찬성, 반대 전문가를 불러 정확한 정보를 들었다. 그리고선 원자력 발전소는 지어선 안 된다는 데 합의를 했다. 덴마크는 예전부터 지방분권이 잘 이뤄져 큰일은 시민 스스로 결정해온 역사가 있다. 또한, 핵무장에 대한 미련이 없었기에 전력만 생각하면 원자력 발전소는 없어도 되는 것이었다. 내가 제안하고 싶은 건, 우리도 덴마크처럼 '시민합의회의'를 만들어 운영을 해보면 어떨까 싶다. 기존 정치시스템으론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원자력 없는 세상이 가능하다는 걸 시민이 느끼게 하려고 1주일에 하루는 '전기 없는 날'을 만들었으면 싶다. 종로구는 월요일, 서대문구는 화요일 등으로 1주일에 한 번 정전의 날을 돌아가면서 정한 뒤, 그날만 되면 전기를 쓸 수 없도록 하는 거다. 그러면 전력 소비는 줄어들고, 국민이 전력에 자의식을 가질 것이다. 원자력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걸 스스로 깨우치는 계기가 될 거로 생각한다. 또 전력이 어디서 나오는지도 알아보고 고민하게 될 거다. 그러면 전력을 지금처럼 함부로 쓰지 못할 거다. 어떤가.
- 이상 윗글과 사진은 9월 29일자 <프레시안>에 실린 허환주 기자의 기사를 옮겼음.
<질문과 답변>
-1. 이런 토론회를 하려면 원전을 찬성하는 쪽도 참여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반대하는 사람들만 모여서 얘기하면 결국 반쪽이 아닌가?
=좋은 의견이다. 그런 방식의 토론회를 환영한다. 그러나 경험상 확실하게 말하자면 찬핵론자들을 이런 토론회에 초청해도 잘 나오지 않더라.
-2. 우리나라에는 존경받는 종교인들이 많다. 환경이나 생태, 탈핵 운동에 교회와 종교인들의 역할을 기대하고 싶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 활동은 미약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 종교의 역할에 대해선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왜 움직이지 않는가...아마 원자력 발전의 실상에 대해서 몰라서 그러지 않을까.
-3. 김종철 선생을 처음 대면하게 된 것도 반갑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 녹색당을 준비하는 분들을 보게 되어 무척 반갑다. 두 가지를 묻고 싶다. 후쿠시마 재난 이후 도쿄대의 강상중 교수가 동북아 원전안전공동체를 구축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한 촌평을 듣고 싶다. 또 하나는 앞서 질문자가 던진 종교인들의 역할에 대해서다. 김종철 선생과 달리 나는 낙관적이지 않다. 종파마다 환경연대조직이 있고 환경/생태문제를 선도하는 훌륭한 성직자들이 많다. 그럼에도 세력을 형성하여 운동을 이끌고 지속시키는 동력을 얻기는 힘들다고 본다. 많은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자선 이미지에 가둬둔다. 그리하여 사회적 맥락에 어둡거나 둔감하다. 이런 태도는 곧잘 반지성적이기까지 하다. 게다가 안정추구가 제일이다 보니 여기에 변혁 같은 성질이 들어설 자리가 없고, 이유야 어쨌든 정부에 반대하는 생각이나 행동은 극도로 꺼리게 된다. 우리 사회에 교회와 절, 신자는 많지만 그곳의 주류는 소비사회의 대중으로 행동한다.
=나는 탈핵발전과 관련하여 ‘시민합의회의’를 제안했다. 그런 뜻에서 강상중 교수 생각은 국가 간 합의체계라 할 수 있으므로 이런 합의체는 있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기존에도 반핵포럼 같은 조직이 있었다. 문제라면 효과가 있어야 할 것이다.
-4.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어서 미국한테 당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알다시피 리비아의 가다피는 핵개발을 포기하였다. 그리고 최근에 나토의 공격을 받고 몰락했다. 그런 관점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탈핵, 비핵을 주장한다. 핵무기가 있어야 힘이 있다고 믿는다면 그런 악순환에서 인류는 벗어날 수가 없다.
-5. 지금 신방과 1학년 학생이다. 선생님께서는 대학교육을 신랄하게 비판하셨는데 지금 배우는 새내기 학생으로서 당황스럽다. 어떻게 공부하라는 말인가?
=권력엘리트들이 바라는 국민은 언제나 얼간이들이지 자주적 인간이 아니다. 진정 자유인으로 살고자 한다면 비판적 사고와 자주적 판단능력을 길러야 한다. 대학에서 이런 능력을 길러주지 않는 한 쓸데없는 것을 배우는 셈이다. 훌륭한 교수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교수들도 많다.
핵발전 무엇이 문제인가?
김익중(경주환경운동연합 상임이장, 동국의대 미생물학 교수)
2011년 3월 11일은 인류사에 남을 날이다. 지진과 쓰나미에 이어 핵발전소 4개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그 결과 수백 년 동안 살 수 없을 만큼 땅이 오염됐고 적어도 수천만 명의 일본인이 방사능에 피폭됐다. 앞으로 적어도 백만 명 이상이 암을 앓거나 기형아가 생길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후쿠시마에서 250km 떨어진 도쿄에서 기준치의 몇 배에 이르는 방사능이 측정되고 수돗물에서는 세슘이 검출된다. 일본은 사후대책과 수립으로 십여 년 이상을 소비해야 하므로 이쯤 되면 이 한 번의 사고로 국운까지 기운다는 예측도 가능하다. 그 이전에도 대규모 핵 사고는 일어났다. 1979년 미국의 스리마일 섬 핵 사고는 처음으로 5등급의 사고였다. 두 번째는 1986년 옛 소련의 체르노빌 사고이다. 미국의 스리마일 사고는 철저하게 감추어진 반면에 철의 장막이라고 불리던 소련의 핵사고가 더 세상에 잘 알려졌으니 얄궂기 짝이 없다. 그리고 세 번째가 후쿠시마 핵사고이다.
1. 후쿠시마 핵사고
후쿠시마발전소의 1,2,3호기가 지진으로 원자로(압력용기)에서 냉각수가 샜고 핵연료봉이 공기에 노출돼 냉각기능이 마비됐다. 수천 도까지 치솟은 노심(핵연료봉)의 냉각수와 피복재(지르코늄) 사이에 화학반응이 일어나 수소가 발생하였다. 깨진 압력용기의 틈을 빠져나온 수소는 원자로 건물 내부에 고여 있다가 폭발하였다. 이른바 수소폭발이다. 이 폭발 전후 노심은 완전히 녹아서 핵연료와 연료봉이 액체 상태로 압력용기 밑바닥에 떨어졌고(멜트다운) 용기의 밑바닥을 뚫고 격납용기 바닥까지 내려왔다(멜트스루). 현재 이 액체상태의 핵연료는 땅을 파고 지구의 중심으로 내려가는 중이다(차이나 신드롬). 한편 3,4호기의 사용후 핵연료 저장소에서는 지진으로 인해 원자로보다 약 5배 이상의 사용후 핵연료가 새어 나갔고 이곳에서도 멜트다운과 수소폭발이 일어났다. 막대한 양의 방사능이 지구환경으로 퍼지고 있는 중이며 현재로서는 이 핵반응을 멈출 방도가 없다. 핵반응은 모든 에너지가 소진될 때까지 지속될 것이고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이 할 수 있는 일은 방사능을 최대한 가두어 두는 일 뿐이다.
2. 핵사고의 확률
과거 중요한 핵발전소 사고를 살펴보자. 첫째 핵발전소가 많은 나라들에서 일어났다. 전 세계 447개의 핵발전소가 있고 그 중, 미국 104개, 옛 소련 32개(당시), 프랑스 58개, 일본이 54개이다. 둘째, 원천기술 보유국, 원자로 수출국, 원자력 선진국에서 일어났다. 핵발전소가 한두 개뿐인 불가리아, 멕시코, 슬로베니아, 아르메니아 같은 핵후진국에서 대형사고가 안 일어난 이유는 무엇인가. 이 사실은 발전소의 개수가 가장 중요한 핵사고의 원인임을 웅변한다. 그렇다면 핵사고 확률을 계산할 수 있다. 정부와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발전)이 여태까지 주장했던 “백만분의 일"이라는 확률은 사실이 아니다. 전 세계 447개의 핵발전소에서 이번까지 발생한 대형 사고는 6개이다. 이 확률은 1.34%에 해당한다. 그러니 21개의 핵발전소가 있는 우리나라는 약 24%가 된다. 심하게 말하면 전쟁도 없이 우리나라가 완전히 망해버릴 확률이 24%가 되는 것이다.
3. 노후한 원전이 더 위험하다.
낡은 원전이 더 위험하다는 증거를 후쿠시마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후쿠시마에는 10개의 핵발전소가 있었다. 그 가운데 나이순으로 1,2,3,4호기가 폭발하였다. 1,2,3,4호기는 모두 30년이 넘은 늙은 원전이었고 5,6호기와 그 이후의 원전은 30년이 채 안된 것들이다. 둘째 공학적 증거이다. 원전 수명을 결정하는 것은 원자로 자체이다. 압력용기는 약 20cm 되는 두껍고 단단한 금속재질로 만든다. 그러나 고압과 고열, 높은 방사능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이 용기에 손상이 간다. 때문에 정기적인 점검이 필수적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작은 균열이 발생하는 현상(경년열화현상)이 원자로에 있는 것이다. 셋째, 외국의 정책변화에서 알 수 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러시아는 수명 연장 대신 신규발전소를 짓겠다고 했다. 노후한 원전이 더 위험하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17개의 원전이 있는 독일은 노후한 원전부터 7개를 폐쇄하였다. 나머지 10개도 앞으로 11년 내에 모두 없애버릴 것이다.
4. 핵사고의 원인
이와 같이 핵발전소의 개수, 노후한 원전 요인이 중요하다. 그러나 핵사고의 원인은 너무나 다양하다. 스리마일은 단순노무자의 실수였다. 체르노빌에서는 과학자들의 무리한 실험이 재앙의 원인이었다. 후쿠시마는 잘 아는 바와 같이 지진과 쓰나미이다. 이를 보면 다음 핵사고는 이 세 가지 말고 다른 원인에서 발생하리라 짐작할 수 있다. 핵발전소에 들어가 보면 너무나 많은 부품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는 너무나 거대한 기계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복잡성이 일정 수준이상인 것이다.
5. 핵산업계의 진실성
우리나라의 핵발전소에서 사고는 그동안 몇 번 일어났을까? 공식적으로는 640여 번이다. 30년 동안 21개의 발전소에서 640회 이상의 사고 횟수는 그리 적지 않다.(과기부 산하 원자력안전기술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숫자를 믿지 못한다. 과거에 정부와 한수원이 거짓말 한 사례들 때문이다. 사고가 나도 법대로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거나 숨겼던 사례가 많다. 냉각수 누출이나 방사능 물질 누출만이 아니다. 2005년 경주 핵폐기장 주민투표 당시 부지조사 보고서는 4년 동안 은폐했다. 2007년 고리 1호기 수명연장 허가 당시에는 안전조사 보고서 공개를 거부하다가 여론에 밀려 2011년 공개하기도 했다. 결국 640여회 사고횟수는 성공적으로 숨긴 사고들을 제외한 숫자가 된다. 핵산업계(이른바 원전마피아)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진실을 숨기는 공통점이 있다.
6. 기준치 이하는 안전하다?
기준치란 의학적인가? 우선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은 의학자나 의사가 아니다. 핵공학자들이 왜 이런 말을 각종 매체를 통해 쏟아 내는가? 기준치란 세계 핵산업계의 정점에 있는 IAEA(국제원자력기구)가 핵산업계의 합법성을 인정받기 위해 설정한 것이다. 그리고 WHO(세계보건기구)가 이를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면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1959년 세계보건기구는 굴욕적인 조약을 맺음으로써 국제원자력기구의 권위에 굴복했다. 그 이후 세계보건기구는 방사능에 대한 입장을 독립적으로 발표할 수 없게 되었다. 현재 이 조약을 파기하기 위해 국제연대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다시 생각해보면 방사능의 환경 기준치란 핵발전소와 핵실험이 없었다면 애초에 필요하지도 않은 숫자들이다.
7. 핵발전소 꼭 필요한가?
독자들의 판단을 돕기 위해 몇 가지 자료를 제시한다.
1) 2010년 핵발전소가 생산한 전기는 한국 전체의 31%였다. 같은 해 전기의 24%는 난방용이었다. 머릿속에 무엇이 금방 떠오르는가? 난방을 안 하거나 절약하면 핵발전소는 필요 없다는 얘기가 된다. 60% 이상이 산업용이며 산업용 전기는 역누진으로 요금을 부과한다.
2) 한국에는 총 8개의 양수발전소가 있다. 전기가 남아도는 새벽시간에는 과부하를 줄이기 위해 전기를 버려야 한다. 이때 양수발전기를 사용한다. 새벽에 큰 저수지의 물을 산꼭대기 저수지로 퍼 올리는 데 전기를 쓰고 전기가 모자라는 시간에는 그 물을 아래로 흘려 수력발전을 한다는 명분이다. 그러나 이 양수발전기가 지난 해 생산한 전기는 전무하였다. 최근 발생한 느닷없는 정전사태(불랙아웃) 때도 양수발전소는 돌아가지 않았다. 결국 핵발전소를 멈출 수 없기 때문에 양수발전기가 필요한데 이는 전 세계의 공통 현상이다.
3) 유럽의 절반은 핵발전소가 없으며 있는 나라들도 오래 전부터 탈핵으로 방향 전환하였다.
4) 2011년 1/4분기 미국 핵발전은 전체 전기의 11.2%였고 같은 기간 재생가능한 발전은 11.6%였다. 미국 재생가능발전의 원가가 2010년 처음으로 핵발전의 원가보다 낮아졌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핵발전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는가? 최근 정부의 움직임을 보면 일본이 뒤처지는 동안 핵선진국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의도가 보인다. 정부가 추진중인 원자력클러스터의 핵심은 핵재처리시설이다. 핵재처리는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게 목표이다. 일본은 이 플루토늄을 약 천톤 정도 보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라늄보다 안전하지도 않고 훨씬 비싼 플루토늄을 비축하는 것은 절대 경제적 이유로 설명할 수 없다. MOX로 불리는 이 핵연료에는 다른 야망이 숨어 있다.
8. 핵폐기물, 영원한 숙제
경주의 중저준위 방폐장은 주민투표를 통해서 결정했다. 2005년 주민투표는 거의 90%에 육박하는 찬성표를 얻었다. 법원은 투표과정의 불법, 탈법행위를 인정하면서도 결과를 뒤집을 수 없다고 판결하였다. 부지조사 결과는 4년 동안 비밀에 부쳐졌고 2009년 처음 공개됐다. 공사현장에서는 하루에 5천톤이 넘는 지하수가 흘러나오고 지반이 연약하다. 때문에 또 다시 공사기간이 연장될 것 같다. 공사를 완수하기도 어렵지만 완공 후에는 더 큰 문제가 생긴다. 바로 방사능 누출 사고이다. 경주 방폐장은 많은 지하수로 인해 결국 물에 잠기고 사일로로 불리는 창고에는 물이 들어갈 것이다. 이 물을 통해 방사능 물질이 사일로 밖으로 이동하게 된다. 게다가 이 사일로는 보수공사가 불가능하므로 일단 방사능이 유출되면 모든 방사능이 누출될 때까지 진행할 것이다.
고준위 폐기물은 또 어떤가? 고준위 핵폐기물과 사용후핵연료는 같은 의미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이 고준위 폐기장을 만들고 성공적으로 운용하는 사례는 없다. 아직 그런 기술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장 덩치가 큰 것은 역시 운전이 끝난 핵발전소 자체일 것이다. 수명 다한 핵발전소를 폐쇄하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단순 폐쇄이고 다른 하나는 완전한 폐로이다. 단순 폐쇄는 중저준위 방폐물(핵발전소 건물)을 그냥 노상에 방치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제대로 처리하는 방법은 폐로인데 아직 그런 경험은 없다. 돈도 없고 거기에 투자할 의지를 지닌 정부도 없다. 그래서 핵발전소를 ‘화장실 없는 맨션아파트’에 비유하는 것이다. 현재 전기요금의 원가에 포함하지 않는 폐로비용과 폐기물 처리비용은 다음 세대가 부담할 것이다. 실로 미래세대에 가하는 범죄행위가 아닌가.
<질문과 답변>
-1. 김종철 선생은 핵발전소에는 결국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욕망이 숨어 있다고 했다. 이 견해에 동의하는가.
= 동의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2. 휴식시간에 어떤 분과 체르노빌 사고와 양수발전소에 대해 얘기했다. 두 사람의 의견이 뚜렷하게 갈렸다. 나는 김 교수의 생각에 동의하고 공감한다. 일례로 양수 발전소는 필요 없다는 의견을 지지한다. 헌데 그 분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쨌든 질문을 한마디로 좁힌다면 핵발전을 대체하는 대안이 될 것이다.
=태양광, 풍력, 바이오메스, 조력, 지열 발전과 같은 대안은 내가 많이 연구하지 못한 분야다. 그러나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핵발전을 없애면 대안이 생긴다고. 과학이 종종 상업과 손을 잡고 변질될 때는 위험해진다. 따라서 언론, 대학, 종교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그림: 오마이뉴스 블로그에서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 선악과, 원전, 생명의 미래
장윤재(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소장)
본래 내가 준비했던 발제문은 30쪽이 넘는다. 이를 강연에 맞춰 줄이려 했으나 실패했다. 대신 요점 별로 짧게 오늘의 발제를 대신하고자 한다. 나는 원전이란 말을 쓰고 싶지 않다. 원자 자체는 열에너지가 미미하다. 그래서 원자력발전이 아니라 마땅히 핵발전으로 불러야 한다. 오늘 여기 모이신 청중은 어느 정도 뜻을 같이 하는 분들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핵발전을 찬성하는 주장을 반박함으로써 본질적 실상을 더욱 밝게 드러내고자 한다. 한국원자력의 아버지 장인순 박사는 말한다. “왜 북한의 핵문제는 놔두고 한국의 핵발전소만 갖고 그러느냐고. 북한 핵이 훨씬 더 위험하지 않은가?”하고. 일본은 현재 플루토늄을 10톤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원자폭탄 4000발에 해당하는 양이다. 나는 장인순 박사에게 되묻고 싶다. “왜 일본은 비판 안 하는가?” 그리고 분명히 밝히건대 나의 기본입장은 한반도의 비핵화에 있다.
흔히 말한다. 자원이 부족한 데다 가진 건 두뇌 밖에 없는 나라이므로 녹색성장을 해야 한다고. 그러면서 이명박 대통령은 2030년까지 전 세계에 80개의 원자로를 팔려고 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핵발전은 전체 전기 생산의 6%에 불과하다. 그래서 모자라는 전력을 위해 핵발전소를 더욱 지어야 한다고. 원전이 녹색성장을 뒷받침하고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대안인가? 세련된 찬핵론자들은 핵에너지를 징검다리로 삼자고 주장한다. 핵에너지가 국산품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핵발전소 1기 건설에는 약 3조 5천억 원이 들어간다. 그 중 건설가가 85%를 차지하는 데 이를 근거로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석유도 국산품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전기란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인가를 다시금 생각해 보자. 핵발전은 사회 전체를 과소비형으로 내몬다. 그런가 하면 세계에서 채굴하는 우라늄은 고갈 중이다. 원전은 외려 온난화에 역행한다. 핵발전 기술과 재생 에너지 기술은 양립하지 못한다. 기술은 항상 문화와 함께하는 복합 시스템이다. 핵발전은 언제나 중앙 집중을 불러오고 거대함을 특성으로 한다. 반면에 재생에너지는 분권적이며 작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핵발전에서 이산화탄소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발전과정 자체에서는 영이지만 원료채굴-채취-농축-재처리 과정에서 화력발전보다 화석연료가 몇 배 더 들어간다. 그 다음 맹독성 물질(핵폐기물)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대로 놔둘 것인가?
여러분도 아시리라. 제임스 러브록이 찬핵론자로 돌아섰다. 가이아 이론을 제창한 그가 찬핵으로 돌아서자 많은 이들이 놀라고 실망했다. 나 자신도 무척 낙담했다. 심층 생태주의자인 그가 왜 찬핵으로 돌아섰을까? 이유는 그의 사상에 있다. 핵에너지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일본 시인의 시 한 구절을 인용하고 싶다. 그는 어둠이 그립다고 했다. 밝음의 문화가 얼마나 허황된 신화인지를 깨달으려면 어둠을 ‘켜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깊은 영적인 자리로 들어갈 수 있다고. 그리하여 나는 우스갯소리로 제자들에게 불을 켜라(턴 온 더 라이트)고 하지 않고 “턴 온 더 다크니스”라고 말하곤 한다. 플러그를 뽑으면 문명이 아름다워진다.
핵은 하느님의 근본원리에 대한 도전이었다. 원자력을 쪼갠 인간은 악마와 거래한 파우스트였다. 인간의 유한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 그것이 죄며 이것이 기독교 신학이다. 일본의 시민과학자 다카기 진자부로는 핵에너지를 일컬어 인류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고 했다. 상자 속에 남은 게 있다. 그건 희망이다. 희망 버전이다. 그런데 또 하나 남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예지다. 예지하지 못하는 인간이란 절망을 가리키는 버전이다. 생명의 미래를 위해서 우리는 이 두 버전을 섞어야 한다.
<질문과 답변>
- 장 교수 강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 한편으로 질문은 두 가지다. 제임스 러브록이 찬핵으로 입장을 바꿨을 때 나도 실망했다. 그런데 그의 가이아 이론은 과학이라고 할 수 있는가? 교회에 다닌 지 10년이 넘는다. 다석과 함석헌, 강원룡 같은 분들의 영향을 받은 듯하고 떼이야르 샤르뎅, 화이트헤드의 신학을 좋아한다. 그럼에도 종교가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물론 사전적 정의를 말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은 종교 하면 곧 기독교를 떠올리는 세태가 돼버렸지만 인류가 받드는 종교에는 불교, 이슬람, 힌두교도 있다.
=가이아 이론이 과학인가라는 논쟁은 실재로 그동안 치열하게 전개돼왔다. 나는 어쨌든 그의 은유를 존중한다. 제임스 러브록은 내게 사랑이자 고민이기도 하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하고 싶다. 종교가 뭐냐? 근원적이고 어려운 질문이다. 잘 모르겠다...(부드럽게 웃으면서) 더욱 겸손해져야겠다. (강연장에 함께 있었던 문규현 신부도 나중에 비슷한 답변을 했다. ‘하느님 앞에서 겸손해지고자 하는 게 종교’라고)
원전과 생태민주주의, 하느님 나라
문규현 신부(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 역임. (사)생명평화마중물 대표)
명백한 시대의 징조, 사랑한다면 이제 원전은 아니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루카 12:56)
이 글을 정리하는 동안 프랑스의 원전 폭발 소식이 전 세계에 속보로 타전됐다. 방사능 유출과 무관한 산업재해라는데 보도된 게 진실이길 바란다. 원전 산업계의 비밀주의와 정보독점, 통제는 아예 체질이므로 의구심이 든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원전 폭발은 인류역사상 전무후무한 3중 재앙이었다. 경제대국, 안전신화, 전문가 집단과 정치지도력에 대한 신뢰, 자연과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생각들이 거품이고 허상이었음이 드러났다. 인류문명은, 특히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철저하게 배워야 했는데 그러하질 못했다. 그래서 더 큰 재앙이 닥쳤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출된 세슘의 양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 168개분에 해당한다고 한다.
원전 ‘안전신화’는 끝났다. 그러나...
인간은 신이 아니다. 늘 불완전한 존재이다. 과학 기술력을 인정한다 해도 그걸 운영하는 인간 앞에 완벽한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원전 참사는 핵발전소가 있는 나라라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재앙인 것이다.
시대의 징조와 위선자들
후쿠시마는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미역과 다시마 요오드제, 소금을 사재기 하고 방사능 비의 공포가 전국을 뒤덮었다. 그러나 이런 소동도 잠시, 소요가 일어나도 이상치 않을 이 마당에 그걸로 끝인 채 잠잠하다. 시민사회는 침묵한다. 정부는 ‘세계적 원전강국’으로 도약하겠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한다. 온실가스 감축문제로 다른 나라들도 원전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확대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저탄소 녹색성장’은 ‘원전 르네상스’의 다른 이름이다. 수명이 다한 원전은 다시 연장해서 돌리고 있고 곧 만료되는 원전도 연장을 추진 중이다. 한국은 원전중독에 빠졌다. 낡은 원자로를 연장하는 것은 일종의 핵폭탄 돌리기, 러시안 룰렛 게임과 똑같다.
핵에너지에는 자연계의 섭리가 작동하지 않는다
프로메테우스는 신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했지만 인간은 신의 영역에 도전했다. 핵불, 즉 핵에너지는 철저하게 인간의 손으로 만든 인공의 불이다. 이 불은 자연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치명적 독소인 방사성 물질을 지녔다. 어떤 물로도 끌 수 없으므로 자연계의 섭리가 작동하지 않는 영역이다.
핵발전소는 핵무기의 다른 이름이다
핵무기와 핵발전소의 DNA는 같다. 다시 말해 핵물질로 무기를 만들든 에너지로 이용하든, 의료용이든 무섭고 두려운 핵물질의 속성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미국과 소련은 냉전시대에 세계 곳곳에서 핵실험을 해댔다. 그리고 핵물질에 대한 공포와 저항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구호가 전면에 내걸렸다. 원자력발전이 대표적인 예다. 체르노빌을 보라. 후쿠시마를 보라. 어찌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말을 끄집어 낼 수 있겠는가. 일본 다큐사진작가 모리즈미 다카시 선생이 전주에 강연 차 왔을 때다. 내가 운영하는 카페 ‘그래도 희망입니다’에 들르셨다. 통역이 카페 이름을 설명해줬다. 모리즈미 선생은 강연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했다. “문규현 신부님 카페 이름이 그래도 희망이다. 그러나 원전 재앙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도 이 말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핵폐기물이 계속 쌓이고 있다
원전은 과속성장과 소비주의를 뒷받침해왔다. 그럼에도 우리가 원전에 대해 더 이상 안 된다고 외쳐야 하는 까닭은 핵폐기물 처리 문제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지 못하거나 둔감하다. 발전소와 폐기물은 일란성 쌍둥이다. 원전을 가동하는 국가들이라면 예외 없이 겪는 골칫거리가 핵폐기물 처리 문제다. 오염 정도가 약한 중저준위 폐기물을 처리하는 방법도 쩔쩔 매고 있다. 전 세계 25만톤이나 되는 고농도 핵폐기물 처리는 또 어떤가. 지금 지하 500미터 암반 속에 건설 중인 핀란드의 처분장이 유일한 정도다. 그런데도 각국은 원전을 계속 가동하고 증설까지 서두르고 있다. 다음 세대에 떠넘기려드는 이 무서운 쓰레기들을 정녕 어찌할 것인가. 독일에 저장된 플루토늄 폐기물은 앞으로 78만 9000년이 지나야 치명적 독성이 소멸된다고 한다. 1만년, 10만년이란 세월은 대지진과 지구 빙하기를 거치고 또 거치고도 남는 ‘영원의 시간’이다.
부안 핵폐기장 유치반대 운동의 경험
2003년 7월 부안군수 김종규는 군의회의 동의 없이 혼자 방폐장 유치신청을 해버렸다. 지자체에 준다는 정부의 지원금 수 천 억원에 모든 것을 팔아넘긴 것이다. 당시 참여정부는 이를 부안에 주는 ‘선물’이라고 했다. 허락 없이 남의 집 앞에 배달해놓고선 안 받으면 가만 안 두겠다고 강짜를 부리는 선물도 있는가. 유치를 반대하는 부안군민들에 대해선 지역이기주의나 님비 현상으로 매도했다. 그러자 굴업도, 안면도에 이어 ‘반핵민란’이라고 일컬을 항쟁이 8개월여 동안 치열하게 전개됐다. 학생들은 등교를 거부했고 어른들은 고속도로까지 진출했다. 투쟁이 격렬해지자 정부는 인구 6만 명의 지역에 경찰병력 8천 명을 데려다 상주시켰다. 수많은 주민들이 경찰과 다투다 다쳤다. 중상도 여럿이었다. 부안군민들은 독자적으로 주민투표를 했다. 전체 군민의 75%인 5만 2108명이 찬반투표에 참여했다. 그 중 92%가 핵폐기장 유치반대에 표를 던졌고 정부도 묵시적으로 결과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부안에서 쫓겨난 핵폐기장은 경주로 갔다. 주민들은 영혼을 팔지 않았다. 아이들의 미래를 저당 잡히지 않았다. 핵은 부안에도 안 되고 한국 다른 곳에도 전 세계 어디에도 안 된다는 게 그들의 구호였다. 후쿠시마 원전 재앙 뒤 비로소 부안주민들은 “우리가 옳았다”고 얼굴 주름을 폈다.
탈원전과 생태민주주의
‘생태주의’는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운명공동체를 일컫는다. 사도 바오로가 늘 “우리는 한 지체”임을 강조했듯이. 생태주의는 단지 자연 뿐 아니라 지상 온 생명의 평화와 공존을 추구한다. 민주주의란 공동체 구성원들을 예외 없이 공정하게 대하며 구성원들의 주권을 인정하고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도록 보장하는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그 첫째 핵심은 ‘어린아이와 같이 미약하고 작은 존재들’이 생태계에 귀한 존재로서 존중받는 것이다. 두 번째 핵심은 현 세대의 행위는 반드시 후세와 후손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핵발전은 그 자체로도 위험할뿐더러 핵쓰레기를 내뱉는 점에서 반생명, 반평화적이다. 또 하나는 에너지 사용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민주화하여야 한다. 전기 사용량이 늘어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숙명이 아니다. 그렇기에 무작정 원전의 불가피성을 들이미는 건 협박과 같다. 핵발전에 관한 모든 정보와 절차가 민주화하여야 한다.
성장과 에너지 중독에 대한 성찰과 전환
탈핵문제는 우리가 추구해온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전환하는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탈핵사회를 갈망하는 것은 공포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는 미래상 때문이다. 누구의 생명도 위협하지 않고 평화로운 사회를 이룩하고, 지구를 착취하지 않으며 후손들에게 터무니없고 부당한 짐을 지우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에너지 과소비에서 벗어나자. 우리나라 1인당 전력소비량은 전 세계에서 1,2위를 다툰다. 이기적이고 소비와 번영신화에 갇혀있는 세태는 자신도 모르게 원전마피아들과 공범자가 된다. 지난여름 일본은 전력대란을 걱정했다. 우리 언론들도 비슷하게 호들갑을 떨었다. 후쿠시마 뿐 아니라 여기저기 지자체에서 원전을 중단하거나 제한했기에 예전과 너무나 다른 여름을 맞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원전 54기 중 오직 13기만 돌아갔지만 ‘전력대란’은 없었다. 다양한 방법으로 전기를 생산했고 시민들은 절전에 동참했다. 맘먹고 의지를 실천에 옮긴다면 탈핵사회로 나갈 수 있음을 충분히 입증했다. 그리스도인에겐 성령의 불, 성령의 에너지가 있다. 이 불은 전환과 변혁의 에너지이다. 탈핵사회는 가능하다. 예수님은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선포하셨다. 창조와 생명의 에너지를 지피고 타오르게 하자. 우리 시대에 진짜 필요한 에너지는 진실한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불덩이이다.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 (데살로니카 전서 5:19)
<질문과 답변>은 특별히 새로운 게 없었으므로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