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명복종”(요한 10:11-18)
국충국 아모스 신부 / 성남동교회
주님은 나의 목자입니다. 주님께서 나의 목자라면, 내 위치는 양이나 염소와 같은 가축의 위치가 됩니다. 자기 비하가 아니라, 양 떼와 같이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삶의 즐거움을 노래한 것입니다. 목자가 양 떼를 좋은 풀과 물이 있는 곳으로 몰고 가는 것과 같이 하느님께서 나의 삶을 이끌어 주신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저 어렸을 때, 가난하였던 아버지는 바닷가에서 낙지를 잡아다가 볼품없는 작은 송아지를 한 마리 사셨습니다. 그리고 그 송아지를 정말 애지중지 키우셨습니다. 그렇게 정성을 들이다 보면 소가 가축 이상으로 되죠. 가축이 아니라 가족이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상전이 되기도 합니다. ‘아! 하느님도 우리 사람을 사랑하셔서 이처럼 보살펴 주시는구나. 정성을 주시는구나. 하느님은 소 치는 목동과 같구나.’
시편 전체 150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시편에 속하는 23편은 이스라엘의 왕 다윗이 지은 시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윗은 본래 양을 치던 목동이었습니다. 양들을 지키기 위해서 양치는 지팡이와 돌을 멀리 던질 수 있는 돌팔매 끈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다윗은 목동이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주님은 나의 목자”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양을 치는 목자는 때에 따라 어느 곳에 양들이 좋아하는 푸른 풀밭이 있는지, 마실 우물이 있는지 훤히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야훼 하느님께서 때에 따라 나를 이끌어 쉬게 하시고, 먹을 것을 주시고, 물을 먹여 주시니 하느님만 의지하며 사는 삶이 얼마나 좋은가!
좋은 풀밭과 우물을 찾아가려면 때로는 위험한 골짜기, 못된 짐승들이 출몰하는 곳을 지나야 할 때도 있습니다. 낭떠러지 길을 위태롭게 지나가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직하고 든든한 목자가 인도하는 길이라면, 그 목자를 완전히 의지하고 무서움 없이 지날 수 있겠지요. 다윗은 그렇게 양들을 온 몸을 던져서 지켰던 경험이 있습니다. 양들은 아버지의 양들이었고, 가족의 재산이었기 때문에 목숨을 던져가면서 양들을 지켰던 것입니다. 그우리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 주님의 이끄심을 의지하면 됩니다. 험한 길이 나와도 그 길 끝은 생명에 이르는 길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어린 다윗이 왕이 되는 과정은 결코 단박에 이루어진 횡재가 아니었습니다. 모함과 의심, 고된 망명 생활, 죽음의 위기를
겪어 내고 얻은 것입니다. 왕이 된 후에도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아들 손에 죽을 뻔하기도 하였습니다. 아비로써 이런 비극을 경험한다는 것이 얼마나 쓰리고 아프고 고통스러운 일이었겠습니까? 정치적인 반대자들과 외국의 침략에 대응하여 싸우는 일도 고생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인생 여정을 끝내고 보니 한평생이 복에 겨운 삶이었다고 다윗은 노래하고 있습니다. 원수들 앞에서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발라 주시고, 잔에 넘치도록 포도주를 따라주셨다고 노래합니다. 왜 힘겨움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그 모든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야훼 하느님의 은총이었음을 다윗은 고백합니다. 그리고, 모든 삶을 마치고 영원히 주님의 집에 거하게 될 것이니 죽음도 두려움이 아니라고 다윗은 노래합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도 다윗처럼 그렇게 노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송아지가 적당한 나이가 되면 코뚜레를 하죠. 소에게는 이게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시기를 놓쳐버리면 코뚜레를 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지기 때문에 주인은 때를 놓치지 않고 코뚜레를 준비합니다. 소가 안쓰러워 약도 발라주고 소가 좋아하는 먹이도 주고 하죠. 코뚜레를 왜 합니까? 소를 잘 제어하기 위해서이지요. 사람과 가까이에서 같이 살려면 소의 본성을 사람에게 맞출 수밖에 없어요. 코뚜레를 하지 않으면 소가 자기가 가고 싶은 데로 가고, 울타리도 넘고, 장독대도 깨고, 위험한 곳에 빠지기도 해서 소를 잘 치기 위해서는 고통스러워도 그 일을 하는 거죠. 우리 신앙생활도 우리 주님을 주인으로, 착한 목자로 믿는다면, 코뚜레를 스스로 다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주님께 내어 맡기는 삶이죠. 신앙의 코뚜레. 그건 기도죠. 기도를 통해서 자기 생활을 반성하고, 기도 가운데 주님의 이끄심을 깨닫고, 기도 가운데 힘을 얻어 죽음의 골짜기라도 건널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착한 목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양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그러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 수난을 거쳐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시며 인도해 주십니다. 목자가 되신 주님께 순명복종하고 주님 이끄시는 대로 그 길 따라서 생명의 강가에 이르는 우리 교우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