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머리 잘라주세요-
케냐의 나이로비와 바로 전에 머물렀었던 이집트와는 아주 크게 다른점이 있었다. 이집트는 24시간 밤, 낮없이 사람들로 북적북적거리는데 비해, 아프리카는 밤 10시만 지나면 거리가 조용했다. 심지어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워낙 아프리카가 위험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인지 겁 없는 종윤이까지 해가 지고 나면 숙소 밖 나가기를 두려워했다. 다행히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가 큰길가에 접해 있는 9층이어서 굳이 밖에 나가지 않아도 밖의 상황을 잘 볼 수가 있었는데 해가 떨어지면 급격히 통행하는 사람들을 보기 어려웠고, 가끔 한두대의 차가 지나가는 것 빼고, 거리는 아주 한산했다.
그래서인지 이들도 더운나라인 아랍이나 이집트처럼 대체로 아침을 일찍 시작했다. 물론, 우리도 이 아침시간을 놓치지 않고 부지런히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는데 무엇보다 첫 번째 그이유는 뜨거운 해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케냐에 입국할 때 50달러를 내고 90일짜리 비자를 만들려고 했는데 영국이 입국거절한 스탬프가 있는 여권에는 케냐 입국도장을 찍을 수 없다는 이유로 우리는 환승(TRANSIT)비자를 20달러주고 만들어 입국하고, 엄영사관님의 제안대로 여권을 새로 만들기로 했다. 우선 영사님은 탄자니아, 루완다, 우간다를 여행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임시여권을 만들어 주셨고, 우리가 여행 중 여권을 분실했다는 사유를 들어 한국에 여권신청을 하신다고 하셨다. 그 덕분에 나이로비에 있는 시간은 주케냐 한국 대사관, 탄자니아 대사관등을 다니며 여권신청과 비자 만들기에 바빴다.
나이로비는 물 사용이 여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이곳에 머무는 동안은 한 사람당 2리터 pt병 하나로 샤워도 하고, 화장실도 사용해야 했다. 그래서 운동 후 땀이 많이 날 때 샤워를 하는데 발바닥에 세숫대야를 놓고, 우선 아주 약하게 머리위에서 2리터 pt병에 담긴 물을 흘린다. 그리고 대충 젖었다 싶으면 샴푸를 조금 짜서 머리에 먼저 비비고, 충분히 비볐으면 그 거품을 짜내서 몸을 닦는다. 그리고 다시 머리부터 발가락까지 쓰다듬으며 비눗물을 완전히 털어내고 pt병 반 정도의 물로 온몸을 씻어낸다. 이때 중요한 팁은 아주 천천히 물을 흘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숫대야에 고인 물은 화장실 변기옆에 모셔놨다가 용변보고 난 후 뒤처리 하는 물로 재사용한다.
아프리카 첫 도착지인 나이로비만 그런지는 몰라도 숙소 밖을 나가 거리를 다니다보면 유난히 가발가게들이 많이 보인다. 가게 안에도 색색이, 긴것부터 짧은 머리카락만 팔기도 하고, 뒤집어 쓰기만 해도 되는 통가발도 다양하다. 가게가 이렇게 많다는 것은 장사가 된다는 것인데.. 그러다 우연히 내 앞을 지나가다 머리를 긁적이는 사람을 보았는데 머리거죽이 통째로 흔들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통가발을 착용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옆에 지나가는 사람도 가발티가 난다.
‘아프리카 여자들의 80%이상이 머리 때문에 고민을 하다더니..’
케냐 공항에 있었을 때 봤던 대부분 아프리카 여자들은 레게 머리라고 하는 헤어 스타일을 하고 있었는데 신기하게 모두 간밤에 미장원을 다녀 왔는지 머리가 아주 단정해 보였다. 보통 우리가 레게 머리를 하면 이삼일만에 두피 근처가 부스스 해진다. 그사이 머리카락이 자라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프리카 여성들의 레게머리는 한달이 가도 어제 한 듯한 레게 머리다. 그래서 알아보니 아프리카 사람들의 머리카락은 ‘크리스탈 컬’이라고도 불리는데 잘 자라지 않고, 빗질을 하면 잘 끊어지고, 오히려 모근까지 뽑히는 상황까지 생겨서 대머리가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두피에 있는 피지 때문에 지루성 피부염이나 건선같은 두피질환으로 고생도 한다는 기사가 있었다.
여자들에게 머리카락이 없다.. 양장으로 쫙 빼입고, 하이힐까지 신었는데 머리스타일이 스포츠?...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는 방법이 S자 곡선을 만들어주는 가슴 하나라니...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녀들의 가슴은 사춘기만 지나도 아줌마들의 젖가슴처럼 풍만했다. 그러나 치마를 입거나 모조가발을 착용하지 않으면 뒷모습만으로 여자라는 것을 잘 분간할 수 없다. 더군다나 어떤 학교는 우리니라 두발규제가 있었던 것처럼 머리에 어떤 장식도 할수 없는 규칙이 있어서 남녀공학을 방문했을 때 강당 뒤에 앉아 여학생과 남학생 비율을 대략 가늠하려 하는 것이 되지를 않았다. 한참 외모에 예민할때라 학생들의 불만이 많겠구나 하는 생각보다 머리 꾸미는 것으로 빈부의 차가 날 수도 있고, 나이보다 성숙한 몸으로 혹시나 사고가 날까를 염려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이해가 되었다. 아프리카 여행 덕분에 아프리카 여성들의 고민을 알고 부터는 우리는 머리카락을 묶고 다녔다. 심지어 학교를 방문했을 때 여학생들은 종은이와 나의 긴 머리를 계속 만지작거리기까지 해서 긴 머리카락을 찰랑거리며 풀고 다닐 수가 없었다. 많이 미안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종은이는 자신의 긴머리를 잘라달라고 부탁을 했다. 평소 긴 머리를 무지 좋아하던 아이라 궁금해 했더니 종은이는 아주 심플하게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엄마 말씀처럼 어리니까 키도 더 커야하고, 머리는 뭐 금세 자라니까요.”
그러나 종은이가 머리를 자르고 싶은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종은이가 요구한대로 귀밑 단발머리를 잘랐는데 그 자른 머리를 신문지에 정성들여 포장을 하더니 누군가에게 쪽지를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건 당신께 주는 선물이예요. 혹시 진짜 머리카락으로 가발을 만들고 싶으면 이걸 사용해주세요(This is a present for you. If you want to make a natural wig, please use this)"
종은이는 아프리카에 도착해서 여자들이 머리가 잘 자라지 않는다는 것을 본 이후, 자신이 긴머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 미안했다고 하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던 숙소에서 일하는 아가씨에게 선물을 했다. 그러면서 어른이 되어서도 머리를 잘 길러서 이곳에 있는 여자들에게 주고 싶다고 했다.
...
종은이가 오늘 한 이 행동은 아주 작은 일이다.
그러나 내게는 아주 감동스러운 일이었다.
우리가 세상을 여행하면서 보여주고, 느꼈으면 하는 것들을 이미 실천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또 이 여행에 감사하다.
학교에선 누구에게서도, 어디에서도 배우거나 듣지 못했던 아프리카의 여러 현실들을
여행을 하면서 우리는 새롭게 보고, 배우고, 느끼고, 그러면서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무엇보다 케냐 출입국 사무소 직원인 솔로몬에게 이야기했던 것처럼 우리 아이들은 앞으로의 자신의 미래를 이 나라와 함께 꿈꾸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