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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방 부 Ministry of National Defense | 보 도 자 료 | ||||||
보도 일시 | 2022. 3. 17.(목) 08:00 | 배포 일시 | 2022. 3. 17.(목) 08:00 | ||||
담당 부서 | 유해발굴감식단 | 책임자 | 계획운영처장 | 양범석 | (02-811-6510) | ||
계획운영처 | 담당자 | 공보장교 | 김진용 | (02-811-6521) |
백마고지에서 발굴된 6·25전사자 유해 두 번째 신원확인 |
- 2021년에 발굴된 전사자 유해, 고(故) 조응성 하사로 밝혀져 - 철모와 두개골에는 72년 전 전투의 흔적 고스란히 남아 |
□ 금단의 땅인 비무장지대의 유해발굴작전으로 발굴된 유해가고(故) 조응성 하사(현재 계급 상병)로 확인되었습니다.
ㅇ 2021년 10월 28일 백마고지에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과 육군 5사단 장병들의 노력으로 발굴된 6·25전사자 유해가 고 조응성 하사로 확인되었습니다. 특히, 고인의 유해는 지난해 국방부 보도자료*를 통해 국군전사자 추정 유해로 소개되기도 하였습니다.
* '21.11.24 국방부 보도자료,「서욱 국방부장관, 백마고지 유해발굴 현장방문」
ㅇ 이번 신원확인으로 2000년 4월 6·25전사자 유해발굴이 개시된 이후 총 185명의 국군전사자 신원이 확인되었으며, 비무장지대는 2018년 화살머리고지의 발굴 작전이 시작된 이래 화살머리고지에서 9명, 백마고지에서 2명의 전사자 신원이 확인되었습니다.
□ 고인은 제9사단 30연대 소속으로 백마고지(△395고지) 전투에서 전사하신 것으로 추정됩니다.
ㅇ 백마고지 전투는 6·25전쟁 당시 철원 일대 백마고지를 확보하기 위해 국군 9사단이 중공군과 12차례 공방전으로 7차례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접전이었고, 고인은 1952년 10월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에 방어작전을 펼치던 중 전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 고인이 남긴 철모와 유골에는 전사 원인으로 보이는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습니다.
ㅇ 육군 5사단 발굴병이 기초발굴을 진행하던 중 고인의 볼기뼈 유해가 최초 식별되었고, 이후 유해발굴 감식병이 정밀 발굴을 실시한 결과, 개인호 바닥에 엎드린 자세로 잠들어 있던 고인의 유해가 발굴되었습니다.
ㅇ 발굴 당시 고인의 유해는 상반신만 발굴되었으며, 탄약류를 비롯한 개인 소장품으로 추정되는 만년필, 반지, 숟가락 등의 유품이 함께 발굴되었습니다.
ㅇ 발굴된 철모와 머리뼈에서는 한눈에 보아도 고인의 전사 원인으로 추정할 수 있는 관통 흔적이 발견되어 발굴에 참여한 장병들에게 안타까움을 더하였습니다.
□ 고인의 신원확인은 ‘유가족의 유전자 시료 채취’가 있었기에 가능하였습니다.
ㅇ 당초 만년필, 반지, 숟가락 등 고인의 소장품으로 추정되는 유품이 많이 발굴되어 이를 통한 신원확인의 기대감이 컸지만, 이름이 적혀있는 물건이 없었고, 반지에 음각된 문양도 마모가 심하여 정확한 모양을 식별하기 어려웠습니다.
ㅇ 국유단은 백마고지 유해발굴을 시작하면서 백마고지 전투 전사자 병적기록 등 자료조사를 통해 고인의 따님 조영자 님을 찾을 수 있었고, ’21년 10월 26일 기동탐문으로 채취한 따님의 유전자 시료가 이틀 후 발굴된 유해와 부녀관계로 확인되면서 신원이 확인되었습니다.
□ 고인은 1928년 2월 1일, 경북 의성에서 3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ㅇ 고인은 부모님과 함께 착실히 농사를 지으며 가정을 꾸리던 중 전쟁이 나자 피난을 다녀와, 1952년 5월 아내와 5살, 3살배기 두 딸을 뒤로한 채 제주도 제1훈련소에 입대하였습니다.
ㅇ 유가족 조영자 님은 신원확인 소식에 “우리 아버지 찾았습니까?”하고 감격하셨으며 신원확인 과정에 대해 자세히 설명드리자 “이제야 아버지를 찾았다는 실감이 난다.”고 소회를 밝히셨습니다.
ㅇ 조영자 님은 고인에 대해 “어느 날 아버지가 오징어를 사와 맛있게 먹었는데, 자녀들에게 이별을 고하는 심정으로 맛있는 것을 사주신 것 같아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고 기억하였습니다.
ㅇ 고 조응성 하사의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오늘(3. 17. 목) 인천 남동구에 위치한 딸 조영자 님의 자택에서 고인의 참전 과정과 유해발굴 경과를 설명하고 ‘호국의 얼 함’을 유가족 대표에게 전달하는 등의 순서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 호국의 얼 함 : 전사자 신원확인 통지서와 전사자의 유품 등이 담긴 함
□ 6·25전사자 유가족의 시료채취 참여가 절실합니다.
ㅇ 발굴되었지만 대조할 유가족의 유전자 시료가 없어서 신원이 확인되지 못한 전사자 유해가 1만여 구이며, 이들이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려면 유가족들의 유전자 시료채취가 절실합니다.
ㅇ 유가족 유전자 시료채취와 전사자 유해 소재 제보에 많은 참여를 부탁드리며, 자세한 사항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대표전화 1577-5625(오! 6·25)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 6·25전쟁 발발 72주년인 올해에도 비무장지대 유해발굴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ㅇ 올해에도 백마고지 유해발굴을 지속해 나가며 조국을 위해 희생하신 마지막 한 분의 호국 영웅까지도 가족의 품으로 모실 수 있도록 국가의 숭고한 책무를 완수해 나갈 것입니다.
<끝>
【참고-1】사진자료
<185번째 신원확인 고 조응성 하사(현 계급 상병) 유해발굴 현장>
<185번째 신원확인 고 조응성 하사(현 계급 상병) 유해 매장상황>
□ 고인이 남긴 철모와 유골에는 전사 원인으로 보이는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습니다.
ㅇ 육군 5사단 발굴병이 기초발굴을 진행하던 중 고인의 볼기뼈 유해가 최초 식별되었고, 이후 유해발굴 감식병이 정밀 발굴을 실시한 결과, 개인호 바닥에 엎드린 자세로 잠들어 있던 고인의 유해가 발굴되었습니다.
ㅇ 발굴 당시 고인의 유해는 상반신만 발굴되었으며, 탄약류를 비롯한 개인 소장품으로 추정되는 만년필, 반지, 숟가락 등의 유품이 함께 발굴되었습니다.
ㅇ 발굴된 철모와 머리뼈에서는 한눈에 보아도 고인의 전사 원인으로 추정할 수 있는 관통 흔적이 발견되어 발굴에 참여한 장병들에게 안타까움을 더하였습니다.
□ 고인의 신원확인은 ‘유가족의 유전자 시료 채취’가 있었기에 가능하였습니다.
ㅇ 당초 만년필, 반지, 숟가락 등 고인의 소장품으로 추정되는 유품이 많이 발굴되어 이를 통한 신원확인의 기대감이 컸지만, 이름이 적혀있는 물건이 없었고, 반지에 음각된 문양도 마모가 심하여 정확한 모양을 식별하기 어려웠습니다.
ㅇ 국유단은 백마고지 유해발굴을 시작하면서 백마고지 전투 전사자 병적기록 등 자료조사를 통해 고인의 따님 조영자 님을 찾을 수 있었고, ’21년 10월 26일 기동탐문으로 채취한 따님의 유전자 시료가 이틀 후 발굴된 유해와 부녀관계로 확인되면서 신원이 확인되었습니다.
□ 고인은 1928년 2월 1일, 경북 의성에서 3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ㅇ 고인은 부모님과 함께 착실히 농사를 지으며 가정을 꾸리던 중 전쟁이 나자 피난을 다녀와, 1952년 5월 아내와 5살, 3살배기 두 딸을 뒤로한 채 제주도 제1훈련소에 입대하였습니다.
ㅇ 유가족 조영자 님은 신원확인 소식에 “우리 아버지 찾았습니까?”하고 감격하셨으며 신원확인 과정에 대해 자세히 설명드리자 “이제야 아버지를 찾았다는 실감이 난다.”고 소회를 밝히셨습니다.
ㅇ 조영자 님은 고인에 대해 “어느 날 아버지가 오징어를 사와 맛있게 먹었는데, 자녀들에게 이별을 고하는 심정으로 맛있는 것을 사주신 것 같아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고 기억하였습니다.
ㅇ 고 조응성 하사의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오늘(3. 17. 목) 인천 남동구에 위치한 딸 조영자 님의 자택에서 고인의 참전 과정과 유해발굴 경과를 설명하고 ‘호국의 얼 함’을 유가족 대표에게 전달하는 등의 순서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 호국의 얼 함 : 전사자 신원확인 통지서와 전사자의 유품 등이 담긴 함
□ 6·25전사자 유가족의 시료채취 참여가 절실합니다.
ㅇ 발굴되었지만 대조할 유가족의 유전자 시료가 없어서 신원이 확인되지 못한 전사자 유해가 1만여 구이며, 이들이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려면 유가족들의 유전자 시료채취가 절실합니다.
ㅇ 유가족 유전자 시료채취와 전사자 유해 소재 제보에 많은 참여를 부탁드리며, 자세한 사항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대표전화 1577-5625(오! 6·25)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 6·25전쟁 발발 72주년인 올해에도 비무장지대 유해발굴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ㅇ 올해에도 백마고지 유해발굴을 지속해 나가며 조국을 위해 희생하신 마지막 한 분의 호국 영웅까지도 가족의 품으로 모실 수 있도록 국가의 숭고한 책무를 완수해 나갈 것입니다.
<끝>
【참고-1】사진자료
<185번째 신원확인 고 조응성 하사(현 계급 상병) 유해발굴 현장>
<185번째 신원확인 고 조응성 하사(현 계급 상병) 유해 매장상황>
□ 고인이 남긴 철모와 유골에는 전사 원인으로 보이는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습니다.
ㅇ 육군 5사단 발굴병이 기초발굴을 진행하던 중 고인의 볼기뼈 유해가 최초 식별되었고, 이후 유해발굴 감식병이 정밀 발굴을 실시한 결과, 개인호 바닥에 엎드린 자세로 잠들어 있던 고인의 유해가 발굴되었습니다.
ㅇ 발굴 당시 고인의 유해는 상반신만 발굴되었으며, 탄약류를 비롯한 개인 소장품으로 추정되는 만년필, 반지, 숟가락 등의 유품이 함께 발굴되었습니다.
ㅇ 발굴된 철모와 머리뼈에서는 한눈에 보아도 고인의 전사 원인으로 추정할 수 있는 관통 흔적이 발견되어 발굴에 참여한 장병들에게 안타까움을 더하였습니다.
□ 고인의 신원확인은 ‘유가족의 유전자 시료 채취’가 있었기에 가능하였습니다.
ㅇ 당초 만년필, 반지, 숟가락 등 고인의 소장품으로 추정되는 유품이 많이 발굴되어 이를 통한 신원확인의 기대감이 컸지만, 이름이 적혀있는 물건이 없었고, 반지에 음각된 문양도 마모가 심하여 정확한 모양을 식별하기 어려웠습니다.
ㅇ 국유단은 백마고지 유해발굴을 시작하면서 백마고지 전투 전사자 병적기록 등 자료조사를 통해 고인의 따님 조영자 님을 찾을 수 있었고, ’21년 10월 26일 기동탐문으로 채취한 따님의 유전자 시료가 이틀 후 발굴된 유해와 부녀관계로 확인되면서 신원이 확인되었습니다.
□ 고인은 1928년 2월 1일, 경북 의성에서 3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ㅇ 고인은 부모님과 함께 착실히 농사를 지으며 가정을 꾸리던 중 전쟁이 나자 피난을 다녀와, 1952년 5월 아내와 5살, 3살배기 두 딸을 뒤로한 채 제주도 제1훈련소에 입대하였습니다.
ㅇ 유가족 조영자 님은 신원확인 소식에 “우리 아버지 찾았습니까?”하고 감격하셨으며 신원확인 과정에 대해 자세히 설명드리자 “이제야 아버지를 찾았다는 실감이 난다.”고 소회를 밝히셨습니다.
ㅇ 조영자 님은 고인에 대해 “어느 날 아버지가 오징어를 사와 맛있게 먹었는데, 자녀들에게 이별을 고하는 심정으로 맛있는 것을 사주신 것 같아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고 기억하였습니다.
ㅇ 고 조응성 하사의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오늘(3. 17. 목) 인천 남동구에 위치한 딸 조영자 님의 자택에서 고인의 참전 과정과 유해발굴 경과를 설명하고 ‘호국의 얼 함’을 유가족 대표에게 전달하는 등의 순서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 호국의 얼 함 : 전사자 신원확인 통지서와 전사자의 유품 등이 담긴 함
□ 6·25전사자 유가족의 시료채취 참여가 절실합니다.
ㅇ 발굴되었지만 대조할 유가족의 유전자 시료가 없어서 신원이 확인되지 못한 전사자 유해가 1만여 구이며, 이들이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려면 유가족들의 유전자 시료채취가 절실합니다.
ㅇ 유가족 유전자 시료채취와 전사자 유해 소재 제보에 많은 참여를 부탁드리며, 자세한 사항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대표전화 1577-5625(오! 6·25)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 6·25전쟁 발발 72주년인 올해에도 비무장지대 유해발굴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ㅇ 올해에도 백마고지 유해발굴을 지속해 나가며 조국을 위해 희생하신 마지막 한 분의 호국 영웅까지도 가족의 품으로 모실 수 있도록 국가의 숭고한 책무를 완수해 나갈 것입니다.
<끝>
【참고-1】사진자료
<185번째 신원확인 고 조응성 하사(현 계급 상병) 유해발굴 현장>
<185번째 신원확인 고 조응성 하사(현 계급 상병) 유해 매장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