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하게 화요일에 집중된 배송 탓에 수업을 몇 차례 빼먹었거니와 간신히 쓴 글들도 주제를 한참 벗었난 듯하여 강의 참석을 주저하고 있을 때 교수님의 한마디는 흔들리던 나를 다시 강의실로 이끌었다. '끝이 좋으면 다 좋습니다.' 교수님은 연애의 고수임이 분명하다. 밀고 당기는 기술이 이리도 탁월하니 말이다. 꼼꼼하고 깐깐하게 학생들의 글을 점검하고, 간혹 무안할 정도로 따끔한 지적을 서슴지 않다가도 저리도 따뜻한 말 한마디로 사람을 이끌어 내다니 그를 진정한 연애의 달인이라 칭하고 싶을 정도였다.
내가 이번 학기를 마치는 데에 이훈 교수님의 짧은 한마디가 큰 힘이 되었다면 나를 다시 글쓰기 반으로 이끈 것은 최혜진이 다음(daum)의 브런치(brunch)에 올린 <잘 못 노는 아이>라는 글이었다. 덴마크 화가 피터 한센(Peter Hansen)의 그림을 나름 해설한 그녀의 글은 내게 사그라져 있던 글을 쓰고 싶은 욕구를 되살려 주었다. 글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 없는 짧은 글이지만 읽는 내내 당산나무 아래에 모여 노느라 '밥 먹어라!'는 엄마의 외침조차 짜증스러웠던, 텅 빈 겨울 논에서 친구들과 막대기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던 어린 시절이 그려졌다. '글로 써 보고 싶다. 누군가의 글만 읽을 게 아니라 나도 저렇게 쓰고 싶다.'는 갈증이 생겼다. 두툼한 공책을 마련하고 호기롭게 시작했다. 하지만 공책은 한두 장에 몇 가닥 볼펜의 흔적만을 담은 채 이내 책꽂이에 박힌 신세가 돼 버렸다. 빈약한 내 의지력을 탓하며 일상의 글쓰기 반에 자연스레 기댔다.
그동안 올린 글들을 읽으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잘못된 맞춤법과 비문은 그래도 봐 줄만한데 담고자 했던 원래의 의도를 한참 벗어나 아예 다른 글이 되어 버린 게 보여 헛웃음만 터져 나온다. '일'이라는 주제에 썼던 <작은 성공>이란 제목의 글과 '웃음 또는 품위'이란 글감에 올린 <화장실에서>가 제일 심하다. 특히 <화장실에서>는 그냥 웃음을 주는 글일 뿐이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를 전혀 드러내지 못했다. 처음에 생각한 의도는 '남성들의 잘못된 권위 의식'을 비꼬고 싶었는데 방향이 이만저만 틀어져 버린 게 아니다. 이유는 뻔했다.
시작을 '제발 앉아서 싸라.'로 하고 싶었다. 그래야 내 의도를 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일주일 내내 7자만 적어 두고서 지니고 있던 생각들을 옮겨 적지 않았다. 한 줄이라도 써 내려갔어야 했다. 글은 엉덩이의 힘으로 쓴다고 교수님은 수업 시간이나 여러 글에서 수 없이 말했다.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래야 제대로 된 글이 나오는 거라고 매번 강조했다. 그런데 난 아직도 이런 습관을 들이지 못하고 단번에 완성시키려 했다.
'죽음'이란 글감에 글을 올리지 못했다. 외삼촌의 죽음에 관해 썼다가 지우고, 생명보험에 대해 적은 글도 삭제하고 말았다. 키우던 닭 15마리가 신짐승에게 당한 일을 적다가는 결국 포기했다. 머리에선 세월호, 아들의 친구, 묏자리 등이 맴돌았지만 결국 글로 털어놓지 못했다. 당시엔 생각들이 도무지 정리되지 않았고, 글을 앞으로 끌고 나갈 힘이 부족다고 여겨졌다. 나중에 다른 이들이 올린 글을 읽으며 후회와 반성을 했다. 수업 첫시간이면 교수님은 '생각의 씨앗'을 항상 설명했는데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하지 못했다. '죽음'을 주제로 한 글을 이번 겨울 방학 숙제로 남긴다.
많은 아쉬움이 남는 한 학기였다. 그래도 내게 칭찬을 몇 마디 정도는 해 줘야 할 듯하다. 글을 쓰면서 사전을 자주 찾는다는 게 첫 번째이다. 조금만 헷갈리면 사전을 들춘다. 맞춤법에는 자신만만했는데 '되려'의 올바른 표기는 '되레'라는 것을 안 이후부터 조금은 겸손해졌다. '마을 사람들'을 글감으로 글을 써 볼 요량으로 이런저런 궁리를 하는 중이다. 거의 매일 마주치는 이들이지만 이제는 그들이 궁금해졌다. 한 명 한 명의 인생이 마치 소설처럼 느껴졌고 동네와 사람들이 새롭게 보였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내게 칭찬을 하고 싶다.
올 겨울은 무척 짧을 듯하다. 읽고 싶은 책 몇 권을 정했고, 가고 싶은 박물관과 다시 걷고 싶은 산길도 정했다. 누군가는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것은 내게 소중하다. 이번 방학엔 알차게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 많은 게 고맙고 대견한 한 학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