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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검증
굉장히 바쁜 주부이고 어머니이며 파트타임 일까지 하고 있던 스미스 부인은
가아담 박사의 연구를 위해 6년 동안이나 몇십 년 전에 쓴 기록을 분류, 해독하여 보통 말로 바꾸는 일에 노력했다. 어떤 노트 속에서 가아담 박사는 눈길을 끄는 기록을 발견했다. 그곳에는 카다리파의 사제가 푸른 옷을 몸에 걸치고 있었다고 적혀 있었던 것이다. 푸른 빛이란, 전통적으로 박사는 스미스 부인의 기록의 신빙성에 깊은 의심을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질문을 해보아도 그녀는 푸른 색깔의 옷을 입고 있었던 기억이 잊을 수 없을 만큼 분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녀가 10대 때 쓴 이 기록이, 그 뒤 20년가량 지난 1965년에 카다리파의 역사 연구가로 당시 제일인자였던 프랑스의 학장 쟝 듀베르누와가 고문서의 한 페이지에서 푸른 옷을 입은 카다리파의 사제에 대한 열 군데에 걸친 기술을 찾아내었던 것이다.
전에 도우루즈 대학의 역사학 교수였고, 형이상학과 카다리파의 상징주의에 있어 권위자인 르네 네리씨는 1969년 랑구독크의 박해때, 카다리파의 사제들은 푸른 옷을 입고 있었다고 쓰고 있다.
가아담 박사는 이 놀랄만한 정보가 사실임이 입증되었기 때문에 스미스 부인이 제공한 모든 자료는 진지하게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박사와 그의 부인은, 스미스 부인이 제공한 자료에 기록된 정보를 검증하기 위해, 장기간의 여름 방학을 남프랑스에서 보냈고, 듀베르누와씨와 네리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고을이나 교회, 그 밖에 사적이 남아 있는 곳을 찾아내어 확인하게 되었다. 정보의 대부분은 하급귀족이면서 활동적인 카다리파였고, 프랑스의 시인이기도 했던 로제와 그녀가 살았던 근처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스미스 부인은 자료를 정리하는 가운데, 로제와 처음 만난 것은 700년 전 쯤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우리 집안은 매우 가난하여 로제와 같은 신분이 높은 사람을 근처에서 본 일도 없었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방바닥에서 잠을 잤습니다. 제가 그를 사랑하게 된 것은 그가 눈보라 치는 밤에 저의 집을 찾아온 첫날 밤,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를 지켜보려고 하지 않았지만, 그가 아주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조금 전에 집이라고 했습니다만, 광보다 조금 나은 정도의 것이었죠.
방이라고는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만, 그는 그 방을 하나 가득 채우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가구라고 해야 보잘것없는 긴 의자와 식탁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날 밤, 저는 잠들어 있는 그에게 키스를 했습니다. 우리들은 모두가 화로를 한가운데 두고 둘러싼 채 옷을 입고 잤는데, 어스름한 곳에서 그의 손이 보였지요.
그런데, 엄지 손가락에는 반지가 끼워져 있었습니다. 아무도 깨어나지 않도록 살그머니 그의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그의 손에 입을 맞추었을 때는 행복했습니다. 처음 겪은 경험이었습니다)
다른 기록에 의하면 그녀와 로제는 아주 친해져 있었다.
그녀는 이렇게 쓰고 있다.
(로제와 저는 언제나 몬토반의 집회(아마도 카다리파의 모임)에 참가하곤 했습니다. 아버지가 집회나 로제에 대한 것을 알면 굉장히 화를 내실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우리들 두 사람만 있을 수 있는 곳은 많았습니다. 교외에는 숲이 많았습니다. 로제는 집회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만, 저와 함께 있을 때는 별로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고, 몇 마일이고 손을 잡은 채 걷기만 했습니다)
그녀는 둘이서 로제의 집에서 함께 살았던 일도 있었다고 적고 있다.
(그 집의 여자가 로제와 저는 결혼해야만 한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우리들은 별로 난잡한 관계를 가졌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둘이 다같이 하나님을 사랑했고 기도하고 예배하러 가곤 했습니다)
그녀는 로제가 죽은 뒤 자살할 것을 생각했으나 카다리파의 수도원에 들어갔다. 처음으로 로제와 만난 지 70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녀는 때때로 '로제, 로제'하며 울부짖다가 잠에서 깨어나곤 했다. 그녀는 가아담 박사에게 열한 살 때 복막염에 걸려서 죽을뻔한 이야기를 했는데, 헛소리로 로제의 이름을 계속 불렀다고 한다.
입증된 정보
스미스 부인이 자료에는 환생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많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사실들은 역사적으로 옳다는 것이 입증되었고, 중세 연구가들로부터 특별히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 교회의 예배는 라틴어가 아닌 프랑스말 사투리로 행해졌다고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 카다리파의 사제 옷은 단추를 썼다고 쓰여져 있다. 전통적인 복장에서는 묶는 것은 끈이었다.
* 로제가 '책을 넣은 주머니가 달린 혁대'를 두르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카다리파의 사제는 요한복음서를 '주머니'에 넣어 몸에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 '신도들을 위한 의자는 없었다'고 전형적인 중세의 교회모습이 정확하게 묘사되고 있다.
* 일부 방의 구조와 칸막이, 집안의 약도가 연필로 스켓치되었고, 의자와 식탁, 방 한가운데 있는 난로가 표시되어 있는데, 이것은 실제로 확인된 중세의 농가와 똑같은 구조였다.
* 로제가 엄지 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있었던 것은 중세에 널리 행해진 습관이었다.
* 로제가 죽은 뒤, 그녀가 살았던 카다리파의 수도원에서 행해진 '평화의 키스'를 비롯한 복잡한 의식이 자세히 설명되고 있다.
* 로제가 아팠을 때, '설탕 덩어리'를 주었다고 한다. 네리교수의 학설에 의하면 중세의 의사는 환자의 병치료를 위하여 '설탕 덩어리'를 처방해 주었다고 한다.
* 로제가 노래로 들려 주었다는 여섯개의 프랑스어로 지은 시가 기록되어 있다. 이 작품들은 문예평론가에 의해 유명한 13세기 시인의 노래라는 것이 확인된바 있다.
* '로제는 식사하기 전에 반드시 주님께 기도를 올리곤 했다'고 쓰여져 있는데, 이것은 일반적인 카다리파의 습관이었다.
스미스 부인의 자료가 쓰여진 것은 그녀가 10대였을 때 일로서, 카다리파나 중세시대의 습관에 대한 역사적인 지식을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을 생각할 때, 이 자료는 더욱 신뢰성을 갖게 된다.
가아담 박사는 '신뢰할 수 있는 역사적인 증거와 대조해 볼 때, 중요한 문제점에 관하여 스미스 부인의 잘못이 증명된 것과 같은 일은 한번도 없었다'고 쓰고 있다.
네리 교수는 그녀의 정확한 정보에 감탄하여 가아담 박사에게 이렇게 말했을 정도였다.
"카다리파의 습관에 대해 모르는 일이 있거든 당신 환자인 스미스 부인에게 물어보세요."
제 4 장 우주로부터의 귀환-임사체험자의 증언
유산의 고통 속에서 생사를 헤맨 그녀는 강렬한 빛과 음악에 포위되었다.
아이를 잃어버린 대신 얻은 것은 혹성의 고동을 받아들여 미래를 미리 알 수 있는 능력이었다.
Myra ka lange: To the Top of the Universe
(Venture Inward Vol. 4. No. 3. 1988)
필자 마이라 카 랑즈는 미국 아리조나주에 사는 화가임.
구급차 속에서
약간 감기 기운이 있어 열이 있었고 더구나 임신 3개월의 몸이었으므로 나는 베개에 등을 기댄 채, 이불 위에 몇 장의 크리스마스 카드를 펼쳐 놓고 침대 속에 누워 있었습니다-1954년 12월 중순의 일이었습니다.
분명 그때는 친구와 친척들에게 보낼 예정인 카드에다가 두 번째 아이가 태어날 예정이어서 기뻐하고 있습니다-라고 썼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 복통이 시작되고, 단골 의사로부터 입원하는 게 좋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응급차에 실려져 있는 동안, 사이렌 소리는 마치 나의 복통에 맞추어 우는 듯 소리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누운 채 마음속으로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하나님, 제발 뱃속의 어린애가 살도록 도와주십시오. 이 아이가 훌륭하게 성장하면 틀림없이 이 불행한 세상을 위래 봉사할 것입니다. "
어째서 그런 식으로 기도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조국인 아메리카가 한국전쟁을 끝냈을 무렵이므로, 10살인 어린 내 아들이 전쟁으로 거칠어진 세상에서 자라는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도의 힘을 강하게 믿고 있었는데도(물론 지금도 믿고 있지만) 기도에는 정신이 집중되지 않았고, 곧 뱃속의 아이는 살릴 수 없다고 깨달았습니다.
근육이 굳어지면서 수축이 시작되었습니다. 갓난애를 살려낼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되면서 괴로워하고 있는 동안 드디어 피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간호부가 혈압계의 수치를 큰 소리로 읽기 시작하자, 나는 점차 내려가는 수치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위 45, 아래 15"
간호부의 목소리가 메트로놈(박자 시험기)처럼 울려 왔습니다.
"위 23, 아래 0"
그러자, 내 머리 속에서 무엇인가 눈이 부실 정도로 섬광이 되어 폭발하고, 내 영혼은 몸 바깥으로 내어 던져졌습니다.
축 늘어진 나를 간호하는 의사들의 머리 위를 떠돌면서, 갑자기 저것은 진짜 내가 아니고 진짜 나를 닮아 있던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나는 몸 바깥에 있었고, 지금까지 느꼈던 고통은 깨끗이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의사 가운데 한 사람이 '이거 난처하게 되었구나! '하는 말을 들어서가 아닙니다. 나는 의사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저는 기분이 상쾌하고 조금도 괴롭지 않다는 것을 의사에게 말해 주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또다시 빛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깊은 우물 속에서 눈부신 태양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빛에 빨려 들어가듯이 떠올라 갔습니다. 그와 동시에 의사들이 내 몸을 검사하고 있는 병원에서 점차 멀어져 가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위로 떠올라 감에 따라 빛은 더욱 터지고 눈부시게 되었으며 마침내는 눈앞에 확산되면서 작렬했고 찬연하게 빛나는 그 빛속에 나는 완전히 포위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래도 이것은 하나님이 분명하다고 생각됐습니다. 압도될 수밖에 없는 사랑과 평화와 기쁨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고독했던 것은 정말 한 순간에 지나지 않았고, 거대한 심장의 고동과 같이 빛이 진동하여 나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기운이 나면서 나도 똑같이 빛을 발산하기 시작했습니다. -내 자신도 그 빛속에 녹아들고 만 것입니다. 나는 아직 '나'였고, 나로서 생각할 수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을 때의 제 자신과는 또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까닭은, 내가 빛이라는 말의 새로운 의미를 이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빛'속에는 누구 나가 알고 싶다고 생각하는, 그리고 알 필요가 있는 온갖 지식이 들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내 자신이 알아야만 할 것을 전부 배웠다고 이야기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빛'속에 온갖 종류의 지식이 들어 있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한 순간, 정적 속에 싸이면서 비로소 사랑이 지닌 진짜 뜻을 알았습니다.
두려움도 후회도 슬픔도 아픔도 없이, 저는 사랑에 포위되고 사랑의 포로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에게 얼굴이 있었다면, 인간의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은 남자이기도 하고 여자이기도 하고-어느 쪽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존재하며, '사랑'이고 '빛'임을 알았습니다.
그쪽의 마음의 세계와 물질계와는 너무나도 다르고 더욱이 모순된 것 같으면서도, 관계도 매우 깊기 때문에 육안으로밖에 볼 수 없는 인간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상태를 표현하기란 어려운 것입니다. 말하기 어려운 상황을 굳이 표현할 방법을 찾아볼 필요는 있겠지만, 어쨌든 다만 체험해 보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주 음악에 포위되어
강력한 빛이 약간 부드러워지면서, 넓게 퍼지기 시작한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저는 또다른 차원에 와 있었고, 그곳에는 저와 같이 땅위에 자기 육체를 두고 온 다른 영혼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육체가 꼭 죽었던 것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깊은 사랑이 담긴 태도로 나를 맞아 주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두 사람은 그 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으로서 한 분은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였고, 또 한 분은 제가 열네살 때 돌아가신 할머니였습니다. 두 분은 나이 먹은 얼굴도 아니었고 고통스럽게 보이지도 않았고 바야흐로 인생의 최전성기에 있는 것 같은 모습이어서 저와 마찬가지로 기쁨에 가득차 있었습니다. 나머지 분들은 땅 위에서 알았던 사람들인지 아닌지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들을 알 수가 있었고, 그쪽에서도 저를 알고 있어서, 그들이 저를 사랑하고 있듯이 저도 그들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저마다 별개의 존재이면서 모두 하나이며, '빛나는 한 존재'의 일부분인 것이었습니다. 위험한 여행을 끝마치고 갑자기 집으로 돌아온 것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전에 그곳에 있었다는 것도, 그 일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모드 저 사랑의 빛속에 있으며, 지금은 저 땅 위에 있었을 때처럼 서로 떨어져 있어도 외로운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각자는 전체의 일부를 이루고 있으며, 그 전체와는 하나의 존재였던 것입니다.
지금은 예수님이 말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라는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말로 바꾸어 표현하면, 내 자신이 이승의 생활을 시작한 창조의 태안에서 또 다시 들어갔다고 느꼈던 것입니다.
이제 저는 그 똑같은 시발점에, 그리고 지상 생활의 종착점에로 되돌아 온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목소리와 같은 음악이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부터 들려 왔습니다. 각자는 자기 자신의 음색과 음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전부가 하나가 되어, 조화된 큰 기쁨의 합창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려거든 이렇게 상상해 보십시오-당신이 생각할 때, 그 생각과 똑같은 정도의 아름답고 정열적인 음색이 당신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마다 사람들의 생각이 조화된 일대 교향악이 되는 것입니다-즉, 사랑이라는 말과 함께 우리들의 생각이 이것과 똑같은 것을 뜻하는 음색을 창조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이 이 물질 세계에서와 같은 귀로 듣는 말을, 저승에서는 아무도 쓰지 않았다는 것도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하는 것은 모두가 소리의 성질에 의해 전해지고, 생각만 해도 전해지는 것이었다. 갑자기 아무런 예고도 없이, 아름답고 조화된 교향곡을 방해하듯 라디오에서 잡음과 같은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음산하고 슬퍼 보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곧 불쾌하고 슬픈 소리로 변했습니다. 나는 몹시 마음이 산란해져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저 심한 소음은 무엇입니까?"
하고 나는 물었습니다.
"땅 위에서 살고 있는 몇 백만 명이라는 사람들 상념이 내는 소리가 하나로 모여진 것입니다. "
라고 그들은 대답했습니다.
그전에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것들을 나는 배우고 구경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째서 여러분들은 울지 않는 것입니까? "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언제나 저런 음색을 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
"언제가 되면, 조화된 소리가 들려 오게 되는 것일까요? "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이, 자기네들이 서로가 하나로 맺어져 있음을 깨닫고, 미워하는 대신 사랑을 생각하게 되었을 때입니다. "
나는 또다시 울었습니다.
"그것은 훨씬 앞날의 일이겠지요. "
"그렇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들을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
라고 그들은 말했습니다.
지시하는 게 아니라, 이것은 단지 제가 그들에게 힘을 빌려줄 수 있음을 말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아주 보통 인간으로서, 지금 듣고 있는 심히 듣기 싫은 소리를 고치기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엄두도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이곳에서 배우고 있는 것을 그들에게 알려주는 것, 그 것이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
그러자, 저승의 '천계의 상담역'이라고 제가 부르던 존재가 갑자기 사라지더니, 또다른 존재가 자기 소개를 해 왔습니다. 저에게는 빛의 존재는 보이지 않았고, 다만 알게 된 것은 조금 전에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보다 훨씬 높은 지식과 예지를 가진 누군가가-그리고 분명히 지금까지 내가 체험해 온 것, 그 무엇보다도 훨씬 뛰어난 존재가-그곳에 있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지구가 고동치고 있다
공부는 다음 단계로 발전되어, 우리들은 지금까지 주위에 있던 많은 사람은 위쪽으로 올라갔습니다. 조금 전에 찾아온 존재와 나는 한 순간, 우주의 푸른빛에 휩싸였습니다. 그러자 빛나는 청록색 구체인 혹성 지구 모습이 보이고, 그 소리가 들려 오기 시작했습니다. 지구는 진동하는 거대한 발전기처럼 고동을 치며 큰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나는 지구와 지구 위의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에 압도되어, 지구에는 인간이 만들어 낸 불행이 존재하고 있다는 방금 전에 알게 된 사실들을 생각하면서 또다시 슬퍼져서 울었습니다.
지구에서 나는 소리는, 천천히 울리는 심장 고동의 리듬에 맞추어서 커다란 콘크라베이스가 울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지축을 중심으로 돌면서 낮게 '옴''옴'하고 소리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리는 다른 혹성이 내는 여러 가지 높이의 소리와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는 이 멋진 교향곡에 깊이 빠져들었던 것이었습니다.
사람이나 물체에게도 저마다 독특한 색채와 볼륨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음역도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를테면 프리즘을 통과해 나오는 일곱 가지 빛 사이를 당신 자신이 자유스럽게 출입할 수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 광선에 닿거나 통과할 때마다, 저마다 사람의 음색이 당신 자신이 만드는 음색과 하나가 되어 화음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어떤 것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색채가 풍부한 오로라나 음악의 빛나는 멋진 상태를 말로는 표현할 수 없고, 완전히 똑같은 빛으로 그릴 수가 없는데, 이것은 빛의 투명성을 그대로 표현할 수있는 물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푸른 우주에서 회전하고 있는 우리들의 지구를 지켜보고 있는 동안에, 그것은 변하기 시작했고 투명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나! 지구는 숨을 쉬고 있구나, 하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정확했습니다.
그 모습은 3차원의 현미경을 통해 살아 있는 완전한 세포가 천천히 숨쉬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지구는 이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세포들 가운데 하나의 아름다운 살아 있는 둥근 세포와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땅 밑에서 지표로 거대한 동맥망과 같이 솟아오르고 있는 수많은 강들이 보였습니다. 물은 대기 속의 비가 되어서, 바위와 흙 속을 통과해 여과되고, 또다시 땅 밑의 강으로 되돌아가 순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이 모든 과정을 또다시 반복하는 것이었습니다. 백열로 용해된 지구핵의 액체는 여기 저기에서 지금이라도 지구 표면으로 분출하려는 것같이 보였습니다. 그것들은 압력 발브와 같이 보였습니다만, 대부분은 지표로 통하는 통로를 만들려고 하고 있었고, 최종적으로는 새로운 압력 발브와 같은 구실을 하는 것이겠지요.
우리들이 그 위에서 살고 있는 지각은 내부 핵의 두께에 비해 너무도 얇은데 놀랐습니다. 이렇게 얇은 껍질이 어떻게 해서 폭발할 위기를 안고 있는 내부의 열을 끌어안고 있는지 이상했습니다.
다른 혹성 전부를 본 것은 아니었지만, 순식간에 저는 우주를 한눈에 바라다 볼 수 있는 곳으로 끌려갔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혹성 하나 하나가 다른 혹성 전체에 대하여 얼마나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는가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어떤 혹성에 영향을 끼치는 힘은, 다른 혹성 전체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그 별에 살고 있는 모든 존재에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의 혹성을 인간에게 비유해 보는 것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즉, 하나의 인간-사실은 작은 혹성이라는 하나의 세포-이 개인의 여러 세포뿐만 아니라, 다른 혹성이라는 여러 가지 세포에게도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우주와 한 몸임을 알고 굉장한 충격을 받은 저는, 자기는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두번 다시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다른 사람들이나 다른 혹성에 대하여 무엇을 행할 때, 행위의 내용상 좋고 좋지 않고를 떠나서, 그 행위는 자기에게 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어떤 행위도 그 자체가 만들어 내는 반작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타인을 생각해서 행동하든, 타인에게 적대적으로 행동하든,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대하여 행동하는 것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께서 '당신네들이 힘없는 약자에 대하여 행한 일은 나에게 대하여 향한 것이 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뜻을 잘 알 수가 있었습니다.
저의 이해력에도 한계가 있어서, 지식을 얻은 뒤 처음 알게 된 일도 있었습니다. 그 일을 알게 된 것은 이 임사체험을 겪은 몇 년 뒤의 일이었습니다.
거기서 제가 배운 것은 '우주 시대'가 된 뒤에 이래가 가능해지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우주시대는 1954년에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주의 꼭대기에서-최고로 행복했다
나의 여행은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난 것이었고, 그 덕분에 나는 이 여행에 대하여 쓰게 된 것입니다만, 또다른 차원의 세계에 갔을 때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저는 몇 주일 동안이나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높은 곳에서 지켜보고 있는 동안, 지구는 여러 번 회전했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분명해진 것은(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시간을 초월하여 그처럼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과, 한순간에 일어난 일들을 남김없이 표현하려면, 다시 생각해 내는데 많은 세월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랑과 빛이 제가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그것도 이승의 생활로 되돌아 올 때 배우고 있는 동안, 시간은 정지된 것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 한순간이 지난 뒤, 그 차원에 머물러 있을 것인지, 육체로 돌아갈 것인지를 선택할 권리가 나에게 있었습니다. 시간적으로 한계가 있었고, 이 이상 저승에 있다면 되돌아가고 싶어도 육체 속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죠.
이 멋진 세계에 대하여 배운 것을 꼭 전해야겠다고 저는 결심했습니다.
그 때까지 아직 사선을 넘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일이 없었습니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육체는 죽지만, 그 속에 있는 인격은 죽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 모두 기뻐하게 되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붕 위에서 큰 소리로 외쳐서, 제가 배운 것들을 온 세계 사람들과 나누어 갖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과 일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지내야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남을 상처 입히면 자기 자신도 상처를 입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만 되면 전쟁도 미움도 모두 사라지는 게 아닐까요.
'이것이 당신의 목표입니다'리고 누가 이야기해 준 것은 아니었지만, 알게 된 이상은 그 지식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가질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과야 어찌됐든, 해보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저 아름다움과 영감의 차원에 있어서는, 자기가 배운 것에 애래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낼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전에 있었던 차원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는 순간에 비로소 머리에서 나와 있는 투명하고 부드러운 끈으로 나는 육체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 끈은 상념과 같이-저쪽 차원에서 볼 수가 있었던 물질로 되어 있던 것을 빼고는-머리에서 나와 있었습니다.
'저승'에 눌러 있으려고 결정하면, 아마도 자기 스스로 '끈'을 끊을 수 있는 것 같았습니다.
또한 육체 속에 살수 없게 되면, 내 자신의 지성에 의하여 끈이 끊어진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몸으로 되돌아 갈 결심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주의 높은 곳에서 후퇴하기 시작하여, 맨 먼저 저에게 예의를 지켜 준 애정이 넘치는 사람들이 있는 영역으로 돌아갔습니다.
저쪽도 제가 되돌아 갈 결심을 한 것을 알고 있는 듯, 또한 그 사실을 알고 기뻐하는 듯해서 저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 곁을 지나가는 저에게, 그들은 갑자기 기쁨에 넘치는 노래의 합창으로 작별을 고해 주었습니다.
오늘날까지 저의 귀에는 그 음악의 장엄함이 남아 있어, 괴로운 일이 생길 때는 추억 속에서, 그들이 애정을 보내 준 그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돌아가곤 한답니다.
그들과 헤어진 뒤, 내 자신이 상념의 끈을 따라 내려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나는 뒷걸음치면서 그들 쪽으로 '위를 행해' 보고 있었으나 그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계속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그 음악 소리를 녹음할 수만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지구에 U턴
또 다시 나의 몸과 하나가 된 순간, 나의 사고력은 제어 요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육체라고 하는 공허한 껍질로 둘러싸여 있는 영혼은 실제로 형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지성이었던 것입니다.
주위에서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들려 왔고 간신히 나는 제 자신이 병실에 누워 있음을 알았습니다. 아픔과 상실감과 숨쉬기가 힘들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 명의 의사인지, 인턴(수련의)인지가 내 목에 손가락을 집어넣었기에 저는 심하게 몸부림쳤습니다.
"이제는 혈압이 올라가겠지"
하고 그들은 말했습니다.
"간신히 숨을 돌렸네요. "
하는 간호부의 목소리가 들렸고, 누군가가,
"위험할 뻔 했네요. "
라고 덧붙여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 아무것도 모르고 있구나 하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굉장히 예뻤어요. "
하고 중얼거린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예쁘다뇨, 무엇이요, 꿈이라도 꾼것인가요? "
"아아뇨, 꿈은 아니었어요. 사실이었어요. "
"무엇이 사실이냐구요? "
간호부는 끈질기게 물었습니다.
저는 머리를 흔들고, 잠이 든 채 했습니다. 제가 우주의 꼭대기에 갔었다고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겠어요?
이 우주의 장엄함을 몸소 체험한 뒤였기 때문에, 몸 속으로 돌아온 것을 알고 저는 의기소침한 상태였습니다.
건강 상태는 눈에 띄게 회복이 되어 갔습니다만, 저에게 있어서는 일상생활에 마음을 집중시키는 것조차도 굉장히 괴로운 조정 기간이었습니다. 저 압도적으로 아름답고 사랑에 가득찬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서 못 견딜 지경이었으니까요.
애정 있는 어머니라면 누구나 그렇게 말하리라고 생각됩니다만, 어린 아이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비록 초기 유산이라도 마음에 상처를 입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선택을 했고, 결단을 내렸습니다. 선택한 것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육체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게다가 저에게는 사랑하는 남편과 소중한 아들이 있어서, 저에게 있어서 두 사람이 필요한 것처럼, 두 사람에게도 제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저승 세계의 사랑과 빛이 아이를 잃은 슬픔을 약간은 보충해 주었던 것입니다.
제가 잃어버린 아이는 살아남아서 '이 불행한 세계'에 해답을 주기 위해 일을 할 수 없었지만, 아마 저라면 할 수가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저승의 여행에서 느낀 해방감과 황홀감, 기쁨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단어는 없습니다.
악보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었다면, 음악으로 잘 표현할 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저는 지금 작곡가들 가운데는 틀림없이 그런 차원을 어느 정도 체험한 사람이 있을 것이 분명하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헨델이나 모찰트, 비바르디, 바하가 작곡한 것은 저 숭고하고 멋진 환희의 한 구절이었던 것입니다. 헨델은 그것을 (메시아)에서 '할레루야 합창'으로 표현했고, 베토벤은 완전히 귀가 안 들리게 된 뒤에 작곡한 (교향곡 9번)에서 '환희의 합창'으로 그것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슬프게도 헨델도, 베토벤도 아닌 것입니다. 남편은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을 돌보고 계신 목사님조차도 제가 광신자가 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계셨으니까요.
저는 지금까지 정통적인 청교도의 교회에서 자랐었기 때문에 일요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그대로 믿고 있었습니다.
결혼하고 살림을 하면서 가정과 지역사회와 교회에서 일해 온 저로서는 배운 바에 의문을 가질 이유 같은 것은 없었으니까요.
기독교도들에게는 하늘에 특별히 마련된 곳이 있어서 죽으면 그곳에 가게 되어 있으며, 그곳으로 예수께서 마중 나와 주신다. 그런 뒤에 '주님이 다시 오시게 될 때까지' 우리들은 잠들게 되어 있고, 재림하실 때 주임의 힘에 의하여 우리들은 죽음에서 되살아나 주님의 사랑과 아름다움의 세계에 다시 태어난다고 배웠던 것입니다.
저는 예전에 하늘나라에서 산 일이 있고, 그곳에 가면 그 사실을 알게 되리라는 것, 그리고 우리들에게는 두개의 몸이 있는데, 하나는 물질 세계에서 사는 동안의 마음을 담는 것이고, 또 하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활동할 수 있는 불멸의 몸이라는 것을,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임사체험을 한지 얼마 뒤, 저는 그때까지 다녔던 교회를 떠났습니다.
너무나도 글자 그대로의 성경 해석, 시야를 좁게 만들기 위한 것과 같은 교의나 교리... 그런 설교를 듣는 게 못 견디게 괴로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귀중한 체험을 모두에게 분배하리라고 큰 기쁨으로 꽉 차 있었던 기분은 사라져 버리고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아무도 알고 싶어하지 않는, 말할 수 없이 소중한 지식에 봉인해 버린 것과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몇 년이 지난 뒤, 저는 고대의 현인이었던 노자가 쓴 (도덕경)에서 '실재란 말로 정의를 내리기에는 벅찬 것이다. ' ((노자) 제1장의 도하도, 비상도, 명하명, 비상명-도의 길로 삼아야 하는 것은 보통 길이 아니며, 이름의 이름지을 것은 보통 이름이 아니다) 또는 제32장의 (도상무명-도의 상은 이름이 없다))는 말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존재는 부분적으로밖에 정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 식으로 말한다면, '사랑과 빛의 존재를 부정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며, 자기 자신의 존재를 부정함과 같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배운 것-예지 능력
내가 격은 체험에는, 저에게 있어서나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도움이 되는 '부작용'이 있었습니다.
회복된 지 몇 주일이 지난 뒤, 새롭게 심리적인 작용이 생긴 것 같은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지각작용이 강해진 것은 아마도, 지금은 다른 생명체와 나 자신을 구분하지 않게 된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저는 나 자신이 만물의 일부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구가 내는 소리를 듣고, 지구가 우주에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변화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것도 그중 하나의 이유일 것입니다.
예지 체험은 수없이 많고 그래서 어느 것을 이야기해야 좋을지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만, 저는 예지 체험을 세 가지 종류로 나누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특정된 인물에 관한 일입니다. 1969년의 어버이날에 아들이 전화로 육군에 종군하여 이제부터 월남에 가게 되었노라고 전해 왔습니다. 아들이 밀림 속의 일선에 파견된 것은 훨씬 세월이 지나기까지 몰랐습니다.
한달 뒤, 저는 몹시 우울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들이 부상을 입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어느 정도의 부상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국기제정기념일인 6월 14일, 명상과 기도의 도중에 저는 전화로 말하는 것 같은 아들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어머니, 저는 괜찮습니다. "
일주일이 지난 뒤, 아들로부터 병원에서 치료를 위해 휴가를 받게 되었다는 짧은 내용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훨씬 뒤에야 폭탄의 파편이 목의 경동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꽂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아들이 목숨을 건지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렸지만, 아직 아들의 몸의 안전에 대해서는 신경이 몹시 쓰였습니다.
갑자기 방 안에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저와 함께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성경의 기도문을 반복하세요'라고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주님은 다시 부활하시고...' 라는 대목에 왔을 때, '중단하고 귀를 기울여요' 하는 말씀이 들렸습니다.
그때 저는 알았던 것입니다. 아들의 경우, 사흘째란 석달 뒤를 뜻하는 것이어서, 즉 월남으로 간 뒤 석달이 지나면 그 는 무사하게 되리라는 것을...
출발한 지, 꼭 석달째 되던 날에 아들은 사령부로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는 다른 임무를 맡게 되어 쟝글로 돌아가지 않아도 좋게 되었던 것입니다.
큰 재해를 예지하다
두 번째 타입의 경험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관한 일입니다. 저는 몇 번이나 대기권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필요에 의해 생기는 태풍 같은 것을 예지하고, 이 일로 해서 일어나는 참사와 죽음을 글자 그대로 체험하면서 고민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슬펐던 것은 폭풍이 어느 지점을 습격하는 가를 꼭 집어낼 수가 없어서, 재해를 당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게 경고할 방도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최초의 예지 체험 예는, 임사체험을 한 후 봄에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매우 무거운 것이 덮치는 것과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고, 중압감과 동시에 구역질과 무기력감에 엄습당한 것입니다. 다음에 깜짝 놀랄 또다른 증후가 나타났습니다. 제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힘과 싸우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입니다.
"무엇인지 무서운 일이 일어나겠다! "
하고 저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외쳤습니다.
몸을 새우와 같이 구부리고 배를 꼭 누른 채 온 세계의 고통을 한 몸에 지고 있는 것과 같은 나의 모습을 보고 남편은 걱정되어 말을 걸어 왔습니다.
"왜 그래? 어디 몸이 아픈가?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뭐지? "
"무엇인지 영문을 모르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 것 같아요. 하지만 저로서는 어쩔 수 없는 거죠! 무엇인가 재난이 일어나나 봐요! 아주 가까운 시일 안에... 그래서 압도된 것인가 봐요! "
몸 속에서 체험하고 있던 고통을 억누르려고 몇 분 동안 안간 힘을 쓴 뒤, 간신히 평정을 찾았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체험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그 뒤 일주일 동안, 저는 내내 이상한 생각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난 귀에, 몸안에서 경험한 것은 나중에 2마일 앞에 있는 분양지를 습격한 태풍의 발생원인 된 주변의 대기의 불균형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태풍의 습격 직전, 저는 일주일 전에 겪은 것과 똑같은 증상때문에 고통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라디오로 뉴스를 들을려고 했으나 정전이었고, 아들을 데리고 자동차로 가서 카 라디오로 태풍에 대한 경보를 들었습니다.
그때 집안에서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전화는 친절한 이웃사람으로부터 걸려 온 것으로서, 자기집 지하실로 피난을 오지 않겠느냐는 이야기였습니다. 우리집에는 지하실이 없었으므로 집에서 나가기 전에 창문을 모두 열어 놓았습니다. 태풍이 습격했을 때, 집의 창문을 완전히 닫아 두면 기압의 급변 때문에 집이 무너지는 경우가 있다고 만물박사인 친정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웃 집에 있는 지하실에 도착했을 때, 이미 태풍의 강풍은 1마일쯤 되는 곳에 가까이 있었고, 이쪽을 행해 똑바로 진행해 오는 게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제 눈앞에서 태풍은 갑자기 90도로 방향을 전환을 했습니다.
"천만다행이네요, 동쪽으로 잘 방향을 바꾸어 주었네요. 아니었더라면 꼼짝없이 당할뻔 했지요. "
라고 이웃 사람은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은...
이웃 사람들에게는 제가 체험하고 있는 느낌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기에, 저는 고통과 슬픔을 참노라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기분이 팍 가라앉는 이 사건을 겪은 뒤, 내가 이와 같은 대 재난의 경고를 받는 것이라면 어째서 좀 더 정보-적어도 사람들에게 미리 알려주기에 충분한-를 받지 못했던 것일까 하고 스스로 대뇌이곤 했습니다.
하지만 최초의 예지처럼 이후, 보다 많은 것들이 와락 밀어닥쳐서 압도된 나머지, 보통 생활을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의사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의료 최면의 훈련을 받아 제가 받아들이는 정보를 의식에서 차단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상처 입은 혹성은 경고한다.
요즘에 와서 조언에 대한 요청을 받으면, 특별한 경우에 한하여 깊은 면상에 잠겨 정보를 얻어낼 수가 있습니다. 다른 새로운 정보와 마찬가지로, 그것도 실용화되지 않으면 안되며, '결함을 발견하기 위한 실험'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예지체험 가운데는 부탁을 받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체험하게 되는 너무나 강렬한 것이 가끔 있습니다.
다음에, 세 번째 타입의 예지는 장차 우리들에게 영향을 끼칠 '일어나기 시작하고 있는 무엇인가'에 대한 우주적인 지각입니다. 이에는 살아 있는 지구라고 하는 하나의 세포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우주와 이 혹성 위에 살고 있는 우리들 전체와 관련된 것입니다.
물리적인 우주에서는 무엇인가가 일어나면 반드시 다른 어느 곳에서 균형을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저는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른 말로 바꿔 말하면, 반드시 무엇인가가 그 공간을 메꾸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오메가는 반드시 알파와 바뀌게 되며, 어떤 사물이나 상태든, 영원히 오메가나 알파 상태로 존재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세계에서 또 다른 쪽으로 통과하는 소용돌이를 지날 때, 삶과 죽음이 '손상을 입기'는 하지만, 그것은 다만 지성이 재순환 하여 태어났다가는 여행의 나머지 반을 통해 또다시 물질계에서 사라져 가는 것뿐인 것입니다-무한히 말입니다.
모든 존재는 시작도 없듯이 끝도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글자 그대로 만물의 재순환과 거기에 뒤따르는 재성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1970년 초에, 우리 식구가 중서부에서 아리조나주로 이사간 뒤의 일이었습니다만, 기분좋게 개를 데리고 산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저는 몸이 갑자기 쇠약해진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몸이 떨리는 것과 같은 감각에다가 깊은 불안감에 사로잡혔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즉시 제자신이 체험하고 있는 것이 이 혹성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어서 태양신경총의 내부에 충격이 있어, 저는 지구의 내부에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발생했음을 느꼈습니다.
몸 전체가 너무나 괴로워 저는 의자를 손으로 더듬어 찾았습니다.
혹성 전체가 흔들려지는 것을 '느꼈고' 제가 느끼고 있는 것은 심한 지진이 일어난 것이거나, 아니면 핵실험과 관계된 일이 틀림없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체험을 하고 있는 동안 내내 저에게는 이 혹성의 외각 구조를 버티는 작용을 하고 있는 바위의 대들보가 갈라지는 게 '보인' 것입니다. 그 반향이 지하에 충격파를 보내서 몇천 마일 떨어진 지점의 다른 암층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 단 한번의 폭발 때문에 혹성의 전체가 우주공간에서 진동했습니다.
커다랗게 입을 벌린 구멍이 보였고, 그것은 일찍이 지하의 샘이 생명력 그밖에 에너지를 살아 있는 혹성이라는 세포의 표면 조직에 공급해 온 곳이었습니다.
의식 속에 환상과 정보가 흘러 들어오고 있는 동안, 지구의 표면 밑에 있는 구조가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체험을 겪어 보지 못한 분이 생각하기에는 황당무계한 이미지로 생각될 줄 압니다만, 나에게는 지구가 내는 비명소리가 분명히 들렸던 것입니다.
마치 지구는 상처 입은 짐승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혼자서-아니 혼자서가 아니라 이 혹성과 함께-울었고, 저의 의식 속에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찾아 드는 것을 느낄 때까지 눈물은 멎지 않았습니다.
그 존재는 저 멋진 여행 중에도, 그 일이 있은 뒤에도, 자주 저를 찾았고, 오늘도 똑같이 찾아 왔던 것이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느낌과 동시에 제자신이 마음의 눈으로 알게 된 것과 인류 스스로가 만들어 낸 슬픔에 대하여, 이제부터 계시되는 것 전부에 대하여 저는 글로 써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었습니다. 또한 지구가 우주에서 자기 자신의 균형을 유지할 필요 때문에 파괴적인 폭풍이나 소용돌이 등 혹성의 대변동이 장차 일어날 것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귀를 기울여 주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혹성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으면 안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해하는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이 재난을 피할 수 있는 기회는 아직 남아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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