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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반복적으로 거부한 역사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사야 7장의 아하스와도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하스에게
그런데 아하스는 결국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도 비슷했습니다.
마음을 닫은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두 본문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사야 7장
하나님이 먼저 다가오심
→ 선지자를 보내심
→ 표적을 주려 하심
→ 아하스가 거부함
마태복음 23장
하나님이 먼저 다가오심
→ 선지자들을 보내심
→ 마침내 아들을 보내심
→ 예루살렘이 거부함
특히 예수님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라는 말씀은 매우 슬픈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모으려 했다"
고 말씀하십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의지가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응답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하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깊은 데서든지 높은 데서든지 징조를 구하라."
고까지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하스는 사실상
"원하지 않습니다."
라고 대답한 셈입니다.
그래서 신앙적으로 보면, 이사야 7장의 아하스와 마태복음 23장의 예루살렘은 모두 하나님의 초청을 거부한 사례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마음은 두 본문에서 놀라울 정도로 비슷합니다.
둘 다 하나님께서 먼저 손을 내미시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사용자의 연결은 상당히 통찰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암탉과 병아리" 비유를 떠올리면, 이사야 7장에서 아하스에게 표적까지 허락하시며 믿음을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결국 두 본문 모두 "하나님은 가까이 오셨지만 사람은 응답하지 않았다"는 비슷한 비극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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