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본보에 6개월간 연재됐던 필자의 '성지순례 탐방기-그리스와 터키를 가다'를 통해 가톨릭 신자들과 중도일보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던 천주교 대전교구 내동 성당 김정수 신부가 이번에는 일본 나가사키현 고토 열도 기도의 섬으로 가톨릭 역사 탐방과 순례의 길을 떠났다. 이번 김정수 신부의 성지 순례에는 일본어 통역과 안내를 맡은 ILD 트레블 송정순 대표와 동행 취재를 맡은 필자가 함께 했다. 김정수 신부의 지난 17일부터 20일까지 4일간 고토 열도 성지 순례 여정을 따라가본다. <편집자 주>
▲김정수 대전교구 내동 성당 신부
▲NHK 방송 사진 기자 출신 미하시 히데히로와의 만남=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한시간 후면 도착하는 일본 나가사키현 후쿠오카 공항에 내리자 송정순 ILD 트레블 대표의 40년 지기 절친인 미하시 히데히로씨가 우리 일행을 반겨준다. NHK 방송과 그 계열사에서 40년동안 사진 기자를 지낸 72세의 총각 미하시 상은 자동차로 그의 아파트가 있는 하라에 우리를 데려가 하룻밤을 묵게 했다. 방송국에 다니던 시절 다큐멘터리를 위해 아프리카에 가서 수개월씩 코끼리 등을 촬영한 사진첩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올림픽 현장 촬영 사진첩 등 그의 서가에는 수십권의 사진집이 빽빽이 꽂혀 있었다. 그의 성 '미하시'는 '3개의 다리'라는 의미라고 소개한 그는 장기간 외국으로 촬영을 다니다보니 결혼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미하시 상은 한국인의 좋은 점에 대해 “한국인은 어른을 받들고 공경하는 경로사상이 뛰어나 일본이 본받아야 할 점”이라며 “송정순 대표 가족과는 40년동안 우정과 친목을 나눠 한 가족과 다름없다”고 전했다. 송정는 남편의 직장으로 인해 40년전 일본에서 10년을 살았기 때문에 이때부터 미하시 상과의 남다른 친분이 시작됐다. 미하시 상은 송정순 대표 가족을 위해 모든 서비스를 아끼지 않고 베푼다. 또 송정순 대표 가족은 해마다 1월이면 미하시 상을 한국에 초청해 설 명절을 같이 지내고 2년전 미하시 상의 칠순때는 한국에 초청해 한복을 입히고 가족들을 초청해 칠순잔치를 해줬다고 한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우정이 이토록 끈끈하고 뜨겁게 이어지는 현실속에서 한일간의 정치적 냉각 기류는 이들에게 불편하고 안타까운 심정일 수밖에 없다.
▲구 고린성당
미하시 상은 “독도문제나 위안부 문제, 교과서 문제 등 한일간 갈등을 빚는 이런 문제들은 결국 정치인들이 표를 의식해 하는 행위”라며 “아베 총리는 위안부 문제 등 잘못에 대해 솔직히 사과하고, 한국은 아베 수상의 잘못만 따지지 말고 두 이웃나라 수장간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갈등을 해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가사키현 고토 열도 고토시(五島市ㆍ시모고토 下五島)=고토시는 나가사키항에서 서쪽으로 약 100㎞ 떨어져 있는 대략 14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졌다. 배를 타고 2시간에서 3시간 정도 가게 되는 고토시는 고토열도의 남부에 위치한 후쿠에섬, 히사카섬, 나루섬 등 11개의 유인도와 52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는 인구 약 4만명의 지자체다.
고토시는 과거 박해와 탄압을 견디고 신앙을 지켜온 가쿠레 기리시탄(잠복 기리시탄)의 역사가 있는 곳으로, 고토시내에는 21개의 성당이 있고, 순례단들은 이곳을 방문해 기도를 드리고 간다.
고토는 일본말로 '츠바키'라 불리는 동백꽃의 산지이기도 하다. 섬의 도처에서 동백꽃의 군락을 볼 수 있고, 동백꽃 열매로부터 정제한 오일이 유명하다. 최근에는 화장품회사 시세이도에서 만든 츠바키(동백) 샴푸에 고토시의 동백꽃 오일이 사용되고 있다. 온천이든 호텔이든 이 곳에서는 츠바키 샴푸와 린스를 흔하게 볼 수 있다. 동백꽃 캔디도 만든다. 고토 지방 곳곳은 동백꽃과 더불어 유채꽃도 활짝 피어 봄이 찾아온 듯 했다.
▲고토시의 성당들=세계유산에 잠정 등록된 구 고린성당은 시모고토의 목조성당으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당시의 교회 건축 양상을 알아볼 수 있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귀중한 건축물로 1999년 국가 중요 문화재로 지정됐다. 금교령으로 인해 불교신자로 위장하고 고토로 이주해온 잠복 기리시탄(일본의 천주교인)들은 산과 들을 개척해 빈곤을 이겨내며 몰래 신앙을 지켰다.
1865년 우라카미 신도의 발견을 계기로 섬의 기리시탄들은 하나둘씩 자신이 가톨릭 신자임을 밝혀 죄인의 신분이 되자 상상할 수 없는 대탄압이 시작됐다. 심한 박해를 견디며 신앙을 지켜낸 신자들은 섬내 각지에 차례차례 성당을 건설했다. 구스하라 성당은 선교사의 지도와 원조 아래 신도들의 기부와 아이부터 노인까지 전 세대의 총력을 다한 노동력 봉사에 의해 1912년 완성됐다. 성당 인근에는 구스하라 감옥의 유적도 남아 있다.
일본 서쪽 끝자락 고토에 그리스도교가 전파된 것은 1566년이다. 오랜 잠복시대를 견디어낸 신자들은 금교령이 풀리자 1873년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 프레노 신부를 모시고 야외미사를 봉헌했다. 미사에 많은 이들이 모였고, 같은해 12월 24일에는 도자키 해변에서 첫번째 성탄축하미사가 있었다. 이후 고토에 상주하게 된 프레노 신부는 1879년에 임시성당을 건설했다. 이듬해인 1880년 마르망 신부가 부임해 도자키 성당을 건립했고, 고아와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시설인 어린이방을 열어 고토 복지사업의 기초를 쌓았다.
1908년 붉은벽돌의 성당이 세워지는데 배를 이용해 미사참례를 하러 오는 신자의 수가 많아 성당은 바다를 향해 세워졌다. 미사 시간을 알리기 위해 종을 치는 대신 큰 소라껍데기를 불었다. 현재 도자키성당은 기독교 역사 자료를 전시한 자료관으로 쓰이고 있다.
이외에도 일본의 대표적인 성당 건축가인 데츠가와 요스케가 지은 미즈노우라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 일본풍 건축이 혼합된 백악의 목조성당이다. 세계유산에 잠정 리스트로 등록돼 있는 에가미천주당 역시 데츠가와 요스케가 정성을 들여 지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목조 성당이다. 성당 내부는 아치형의 아름다운 천장과 나뭇결 염색법을 이용한 장식이 아름답다.
▲김정수 신부의 소견=천주교 신자들이 어렵고 힘들게 신앙을 지켜온 현장을 찾아와 보니 정부의 탄압과 박해를 받아 멀리 배를 타고 동굴까지 숨어들어온 신앙인들이 행여라도 발각될까봐 불안에 떨면서 인간답지 못한 삶을 살아온 흔적이 못내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러나 목숨을 내걸고 신앙을 지켜온 이들이 이처럼 아름다운 성당을 짓고 청결하게 관리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는다. 우리나라보다 200여년 일찍 천주교를 받아들인 일본은 현재 천주교 신자가 100만여명으로, 600여만명에 이르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적은 숫자일수밖에 없는 것은 주위 환경탓이 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주관을 갖고 '고토'라는 한 지역에 이렇게 많은 종교 유산을 갖고 있는 이들이 부럽고 존경스럽다. 우리나라는 김대건 신부 생가터도 없어지고, 종교 유산들이 부서지고 사라져 보존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운데 이 곳에 와보니 신앙의 산교육장이란 생각이 든다.
크리스천은 어떤 주어진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이 뭔가, 그 길을 찾아 크리스천으로서의 본분을 다해야 된다는 생각이다. 고통이 와도, 행복이 와도 현실을 하나님의 은총으로 알고 맡기는 관용이 필요하다.
첫댓글 중도일보 최근 기사네요!
게재일자 : 2014-02-28 면번호 : 9면
http://www.joongdo.co.kr/jsp/article/article_view.jsp?pq=201402270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