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복지병원 환자 목욕 봉사를 하면서/전성훈
10여 년 전 무척 갈망한 끝에 어렵게 성당 사무장 직책을 맡았다. 일을 시작한 지 반 년 정도 지나서 스트레스성 위궤양으로 뜻하지 않게 그만 두어야 했다. 그리고는 한동안 힘들어 했다. 심한 마음고생을 하는 내 모습을 보고 가까이 지내는 교우가 내가 모르는 다른 세상 이야기를 하며 어떤 봉사 단체를 소개해 주었다. 그 단체는 여러 성당의 사람들이 매주일 아침에 미아삼거리에 있는 성가복지병원의 환자 목욕 봉사를 하는 모임이다. 성가복지병원은 ‘성가소비녀회’라는 여성수도회에서 운영하는 병원으로 이곳을 찾는 환자들에게 무료 진료를 해주면서 이 땅에 하느님의 사랑을 소중하게 뿌리는 병원이다. 그렇게 우연히 인연을 맺은 성가복지병원 목욕 봉사, 그 인연이 벌써 1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었다.
내 아이들이 어렸을 때 몸을 씻겨준 이후 다른 사람의 몸을 씻겨준 일이 없었던 나는 목욕봉사라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매화가 부끄러운 듯 꽃봉오리를 터뜨리는 그 해 춘삼월 어느 주일날 아침 성가복지병원 6층 목욕실에 들어섰을 때 병원 특유의 약품 냄새 때문에 나도 모르게 손으로 코끝을 막고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나 병원 약품 냄새는 아무 것도 아닌 약과였다. 환자들의 몸에서 나는 냄새 특히 심한 욕창으로 몸이 썩는 냄새는 너무나 역겨워서 견디기 어려웠다. 토할 것처럼 왝왝거리며 힘들어하자 선배봉사자들이 목욕실 밖으로 나가서 성호를 긋고 있으면 괜찮다고 하였다. 복도 끝에 있는 창가로 가서 차가운 바깥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고 내 뱉기를 몇 번하고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목욕실로 들어갔다. 한 달 정도만이라도 봉사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는데 세월이 지나가면서 그럭저럭 조금씩 익숙해졌다.
목욕을 시켜드린 분들 중에 기억에 남는 환자가 몇 분 있다. 봉사활동에 참여한 지 2-3개월 정도 되었을 때 만난 분으로 젊어서 한때는 어깨에 힘깨나 주었던 듯이 양팔에 문신을 하고 있었던 임씨 성의 환자, 그는 대장암으로 장기간 입원한 탓에 심한 욕창으로 몸이 썩으면서 고약한 냄새가 났고, 몸에 비닐주머니를 두 개씩이나 달고 있어 보기에도 너무 불쌍하고 비참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 양반은 자기의 몸이 아파서 그러는지 신경질을 너무나 많이 부리고 욕설도 거칠게 내뱉었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듯이 몸 상태가 갈수록 나빠지자 화도 내지 못하고 완전히 탈진한 상태가 되어 늘어진 자신의 몸을 우리에게 온전히 맡기더니 얼마 안 되어 하느님 품으로 떠났다.
어떤 방글라데시 청년, 자기를 고용한 사장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겉으로는 원망의 빛을 띄우지 않고 묵묵히 참으면서 돈을 벌겠다는 생각 하나로 굳세게 살아왔을 젊디젊은 그 청년, 그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를 충족하다가 에이즈에 걸려서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쓸쓸이 이역만리 먼 곳에서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 당시만 해도 에이즈 환자를 목욕시키는 것에 선뜻 나서기가 불안하여 최고참 봉사자들이 마스크를 하고 고무장갑을 끼고 1인 병실로 가서 몸을 씻겨주었다. 그가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자 봉사자들 모두가 마음이 아프고 착잡하여 비록 믿는 종교는 다르지만 그의 명복을 비는 기도를 바쳤다. 우리보다 못 사는 일부 아시아 사람들, 소위 이주외국인 노동자를 업신여기고 쌀쌀맞고 차가운 눈길로 대하는 것이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이다. 우리 선배들이 외국에 나가서 돈을 벌 때 갖은 수모와 차별을 당하며,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돈을 벌러온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과거의 상처와 아픔을 당한대로 되돌려주는 것이 아닌가, 자괴감이 든다.
최근에 만난 우즈베키스탄 사람은 폐암말기 환자인데 아주 거칠게 간호사와 목욕 봉사자를 대하고 짬짬이 담배를 피우기도 하였다. 처음 그의 몸을 씻겨줄 때는 트집을 잡고 이런저런 흰소리를 내뱉어 우리봉사자들의 기분을 매우 상하게 하였다. 그날 이후 그와 만나지 않았다. 2-3주가 지나서 간호사의 부탁으로 그의 몸을 씻겨주었는데 그 때는 조용히 몸을 맡겼다. 며칠 후 그는 알라의 품으로 돌아갔다. 나중에 간호사에게 들으니 그는 62세로 우리나라에서 결혼하여 5살 아들이 있고 그 아들을 위해서 끝까지 암과 싸우다가 숭고한 역할을 다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꽃잎처럼 스르르 저버렸다. 인 살라!
이곳에서 함께 몇 년 동안 목욕봉사를 하였던 형제님, 우울증과 조울증으로 평소에 고통을 겪고 계셨다. 어느 날 부터 몸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더 이상 참여할 수 없다고 하시어 그 후 그 분 얼굴을 보지 못하였다. 그런데 몇 개월 지나 그 분이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봉사자 누구에게도 연락이 되지 않아서 문상조차 못하였다. 이 자리를 빌려 간절한 마음으로 그분의 명복을 빈다.
대부분 환자들은 목욕을 시켜드리면 “수고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는 말씀을 한다. 그러나 별난 성격의 환자들도 있어서 간혹 애를 먹기도 한다. 호스피스 병동에 있는 환자들은 다음 주일에 뵙지 못하면 그 분은 하늘나라로 먼저 떠난 것이다. 돌아가신 분들을 자주 보면서 인간의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라는 느낌이 들고 죽음이 그렇게 무섭고 허망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소중한 일요일의 개인생활이 제한을 받는다는 느낌으로 한 동안 아주 부담스러워서 괜히 봉사 활동에 참여했구나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1년에 몇 번 정도 있었다.
이제는 주일 아침 성가복지 병원에 가서 환자들의 몸을 씻겨드리고 하루를 시작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 땅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조그만 도구가 되고 있다는 것을 봉사자들은 기쁘게 생각하면서 건강이 허락되는 한 목욕봉사에 꾸준히 참여하고 싶어 한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아멘! (2015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