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일당’에 대한 재판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8월 14일부터 9월 17일까지 19회에 걸쳐 공판이 계속되었다. 광복절과 토ㆍ일요일을 빼면 거의 매일 재판이 열린 셈이다. 이것도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신군부쪽으로서는 다급했다. 이미 최 대통령은 하야했고 전 장군이 권좌에 올랐다. 하루라도 빨리 최대의 정치적 반대세력인 김대중진영 제거를 마무리 짓고 ‘홀가분하게’ 새출발을 하고 싶었다.” (주석 20)
재판은 피고인들이 수감 중에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지만 아랑곳없이 진행되었다.
검찰은 주로 김대중의 ‘용공혐의’에 초점이 모아졌다. 검찰이 한민통 일본지부의 구성원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가고 김대중이 그런 점을 알면서 그들로부터 자금을 받고, 의장에 취임했다는 주장이었다.
변호인측이 신청한 이태영이 증인으로 채택되었다. 그는 당국의 압력에도 불국하고 구속될 각오를 하고 9월 4일 15차 공판에서 1시간 동안 증언했다. 1971년 대통령선거 당시 이화여대 학장직을 던지고 선거유세에 나섰던 여장부다.
△ 허경만 변호사 〓 95년 9월경 김대중 피고인의 집을 방문했을 때 김 피고가 증인에게 “일본에 가시거든 김종충을 만나 한민통 일본지부의 의장을 맡기로 합의한 바도 없고 현재 의장이 아니니 나의 이름을 빼도록 해달라”고 부탁한 사실이 있는지.
△ 이태영 증인 〓 있다. 김종충은 “알았다. 내가 알아서 조치하겠으니 염려말라고 전해달라”고 했다.
△ 허 변호사 〓 또 김 피고가 해외교포들에게 “이 선생의 책임이 무겁다. 그들이 너무 오래 해외에 나가있으니 남북이 잘 분간이 안 되는 모양인데, 반한은 말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나는 김 선생의 안부를 묻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말을 전했다.
△ 허 변호사 〓 평소 피고인을 용공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 이 증인 〓 김 선생과는 20여 년 교제가 있었다. 정말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또 여러번 국회의원을 했고, 지금 그의 비서실장이었던 사람(천명기)이 장관이 되지 않았는가. 그는 신민당의 대통령 후보를 한 사람이다. 신민당 사람 모두가 바보 아니면 공산주의자란 말인가. 도저히 믿을 수 없다.
△ 김대중 피고인 〓 몇 가지 직접 여쭤보겠다. 한민통은 미국과 일본에 각각 결성됐다. 두 개의 차이에 대해 들은 적이 있는지.
△ 이 증인 〓 미국에 가서 한민통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들 얘기가 자기네들은 김대중 선생과 노선을 같이 하는 데 (미군철수와 원조중단 반대) 동경은 다르다고 했다.
△ 김 피고인 〓 75년 9월 우리집을 방문했을 때 라이샤워 교수가 “한국과 같이 인권을 탄압하는 국가는 지킬 필요가 없으니 미군은 철수해야 한다” 고 연설한 것을 읽고 깜짝놀라 미국에 가거든 “제발 그런 소리 하지 말라. 반체제 인사들도 미군철수는 반대한다” 는 얘기를 라이샤워는 물론 미국무부와 의회관계자들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한 사실을 기억하는가.
△ 이 증인 〓 기억한다. 그들을 만날 때마다 부탁했다.
△ 정기용 검찰관 〓 피고가 지금 유도신문을 하고 있다. 중단시켜 달라.
△ 이 증인 〓 내가 유도신문에 넘어갈 사람이 아니다.
△ 김 피고인 〓 그 동안 내 정치생활이나 일반생활에서 공산주의 냄새나 용공적인 정책을 본 기억이 있는지.
△ 이 증인 〓 없다. 한 나라의 대통령후보가 된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10.26’ 이후에 어떻게 갑자기 공산주의자가 될 수 있는가.
이씨는 증언 도중 몇 차례나 ‘분(憤)’을 누르지 못했다. 이씨는 검찰관을 향해 자신의 안경을 벗어던지려 하면서 “눈이 나빠 사람이 잘 안 보이면 이 안경을 하나 더 쓰고 사람을 똑똑히 보라. 김 선생이나 나를 뭘로 보고 이따위 행동들을 하느냐.”고 호통을 쳤다. (주석 21)
수많은 지식인, ‘야당투사’ 그리고 ‘동지’들이 전두환의 피냄새 나는 5공 초기에 김대중 재판의 증언대에 서기를 꺼려할 때 이태영은 자원하여 당당하게 소신을 밝혔다. 부군 정일형 의원이 유신체제를 비판하다 의원직을 빼앗긴 일을 상기하면 ‘부창부수’, 의기 있는 부부였다.
주석
20) 이도성, 앞의 책, 283쪽.
21) 앞의 책, 287~289.
첫댓글 정말 대단한 분이시지요 부군도 유신시대 군사정권을 통렬하게 비난하는
국회연설뒤 의원직을 박탈당하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