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아그네스(Agnes of God)
최용현(수필가)
‘신의 아그네스(Agnes of God)’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밤의 열기 속으로’(1967년)와 ‘Sunrise Sunset’으로 유명한 뮤지컬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1971년)을 연출한 노만 주이슨이 1985년에 제작과 감독을 맡아 만든 미스터리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종교를 모독한다는 이유로 수입이 미뤄지다가 1987년에 개봉되었다.
시작은 연극이었다. 한 수녀원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기사를 보고 극작가 존 필미어가 쓴 희곡을 바탕으로 1979년 미국 브로드웨이에 올린 연극 ‘신의 아그네스’는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1983년에 초연(初演)된 우리나라 연극무대에서도 아그네스 역을 맡은 윤석화를 단숨에 스타덤에 올려놓으며 최다 관객동원, 최장기간 공연 등의 성공신화를 이어갔다.
연극과 마찬가지로 영화에 등장하는 핵심인물도 세 사람이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신앙심이 깊은 아그네스 수녀(멕 틸리 扮), 결혼생활에 실패하여 두 아이까지 버린 채 수녀가 된 미리엄 수녀원장(앤 밴크로포트 扮), 그리고 수녀원에서 숨진 여동생을 둔 정신과 의사 리빙스턴 박사(제인 폰다 扮)이다.
몬트리얼의 한 수녀원에서 아기가 탯줄에 목이 감겨 죽은 채로 휴지통에서 발견되고, 산모는 아그네스 수녀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세간의 화제가 된다. 아그네스 수녀는 영아살인죄로 기소되어 교도소 혹은 정신병원으로 보내지게 되었는데, 정신과 의사인 리빙스턴 박사가 아그네스의 정신 상태 조사와 감정을 맡게 된다.
리빙스턴 박사는 수녀원을 방문하여 미리엄 원장을 만난다. 미리엄 원장은 이곳은 외부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곳이어서 남자를 접할 기회가 없다며, 아그네스 수녀는 성녀 마리아처럼 순결한 몸으로 신에 의해 수태가 되었다고 말한다. 손바닥에 성흔(聖痕)을 보일 정도로 아그네스 수녀의 신앙심이 깊다면서….
그러나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미리엄 원장의 말을 리빙스턴 박사는 믿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런 밀폐된 환경에서 아그네스 수녀가 어떻게 임신을 했단 말인가. 리빙스턴 박사는 아그네스를 찾아가 보는데, 천사처럼 아름다운 목소리로 성가(聖歌)를 부르고 있었다. 대화를 해보니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 지도 모를 정도로 순진무구하고 바보스럽기까지 했다. 아그네스 수녀는 자신이 아기를 낳은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았다.
리빙스턴 박사는 아기의 아빠가 누구일까 생각하다가 수녀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고해성사를 하는 신부를 찾아간다. 이곳의 수녀들이 만나는 유일한 남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부를 만나보니 나이가 아주 많은 노인이었다.
아그네스 수녀의 이력서를 찾아본 리빙스턴 박사는 미리엄 원장이 아그네스의 이모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그네스의 어머니는 원치 않는 임신으로 아그네스를 낳았다고 한탄하면서, 자신을 버린 남자들에 대한 분풀이로 어릴 때부터 아그네스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고, 성적인 일은 죄악이라고 하면서 아그네스가 커서도 남자를 가까이 하지 못하도록 옷을 벗기고 담뱃불로 음부를 지지기도 했단다. 그 때문에 아그네스는 17세가 되어도 생리가 뭔지도 모른 채 수녀원에 들어왔고, 수녀가 된 뒤에는 오로지 신에 대한 사랑과 신앙심으로 살아가고 있게 된 것이다.
리빙스턴 박사는 법정의 허락을 받고 미리엄 원장의 입회하에 최면요법을 시행한다. 최면상태에 들어간 아그네스는 아기를 낳았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아기를 낳자마자 탯줄로 목을 감아 휴지통에 버린 것은 아기를 죄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며, 아기를 잠재워서 자신에게 임신을 시킨 신에게 돌려주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그네스가 신이라고 말하는 아기의 아빠는 누구인가? 리빙스턴 박사는 수녀원의 설계도면을 확인하고 수녀원의 헛간에서 밖으로 나가는 어두침침한 비밀통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리빙스턴 박사는 아그네스 수녀가 그 비밀통로에서 어둠의 남자 즉 헛간 문지기한테 강간을 당한 것으로 유추한다. 신에 대한 맹목적인 환상을 가지고 있던 아그네스 수녀는 그 어둠의 남자를 신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리빙스턴 박사는 아그네스 수녀를 지켜보면서 그녀가 어린 시절에 겪었던 아픔과 시련에 대해서 연민을 느끼게 되었고, 종교의 기적에 몰입되어있는 미리엄 원장에 대해서도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세상에는 과학의 잣대로 설명할 수는 없는 부분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그네스 수녀에 대한 리빙스턴 박사의 정신감정보고서가 법정에 제출되자, ‘아그네스 수녀는 정상적인 정신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이 없다. 수녀원으로 돌아가서 정신과 치료를 받으라.’는 최종판결이 나온다. 아그네스 수녀가 수녀원 뜰의 오두막에서 성가를 부르고, 그 옆으로 흰 비둘기가 후루룩 날아가면서 영화가 끝난다.
영화의 앞부분에서, 아그네스 수녀가 낳은 아기를 죽여서 쓰레기통에 버린 행위가 자신에게 임신을 시킨 신에게 아기를 다시 돌려보내기 위해서 그랬다는 말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으나, 영화가 끝나갈 무렵에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가 신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아그네스 수녀가 결코 그런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리빙스턴 박사로 나오는 제인 폰다는 왕년의 명우 헨리 폰다의 딸이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고, 미군의 월남전 참전을 반대한 사회운동가로도 유명하다. 그녀의 남동생은 ‘이지 라이더’(1969년)에 나오는 피터 폰다이고, ‘위험한 독신녀’(1992년)에 나오는 브리짓 폰다는 피터 폰다의 딸이다.
원장 수녀 역을 맡은 앤 밴크로포트는 영화 ‘졸업’(1967년)에서 친구의 아들인 더스틴 호프만을 유혹하는 로빈슨 부인으로 나왔던 바로 그 배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