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 넘게 이어지는 감염병 상황에 심신이 축축 늘어진다. 지친 몸과 마음에 활력을 주는 특별한 보양식은 없을까? 영양 많고 맛도 좋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마침 제철 맞은 귀한 몸이 있다. ‘하모’로 잘 알려진 갯장어다.
갯장어 어장으로 유명한 고성군 삼산면 포교마을에서 오늘의 주인공을 만나보자.
생긴 것도, 맛도 야무진 놈!
‘하모(ハモ)’는 갯장어를 가리키는 일본어이다. 갯장어라는 우리말이 있으니, 그놈을 갯장어라고 부르자. “포교마을은 개펄이 많은가 봐요? 갯장어가 많이 잡힌다니.”, “그렇게들 많이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사실 개장어예요. 개장어.” 부산횟집 차태수(53) 사장이 손사래를 치며 말한다.
물었다 하면 놓질 않아서 개같이 힘센 이빨을 가진 놈이라고 갯장어란다. 차 사장이 제대로 보라면서 수족관에서 한 마리를 꺼내 들어 보인다. 워낙 힘이 좋은 놈이어서 대가리를 칼등으로 툭 때려서 기절시킨 후 취재진에게 내민다. 도마 위에 눕히자마자 깨어나서 난리를 쳤지만, 그 무시무시한 이빨 구경은 확실히 했다.
갯장어는 붕장어와 민물장어에 비해 대가리가 크고 주둥이가 뾰족하다. 부리부리한 큰 눈에다 길게 찢어진 입이 일단 귀염상은 아니다. 보고 나면 못 먹을 것 같다는 일행의 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드세게 생겼다. 위로 삐쭉 솟아오른 아래턱 앞쪽의 송곳니와 아래위턱에 골고루 박힌 날카로운 이빨의 위세가 대단하다. 이빨 때문에 거제·통영 일대에서는 ‘이장어’라고도 한단다.
“야무지게 생겼지요? 생긴 것만큼 맛도 특별합니다. 처음 드신다면 지금까지 드시던 회와는 완전히 다른 맛일 걸요.”
‘놓칠 수 없다’ 대접받는 한철 특미
포교마을이 자리한 자란만 일대는 수심이 얕고 바위와 진흙이 많아 갯장어 서식지로 좋은 환경이다. 3대째 포교마을 토박이라는 차 사장에 따르면 80년대까지는 포교마을에서만 하루 1t을 잡아 올릴 정도로 갯장어가 풍년이었단다.
“우리 어릴 때는요. 갯장어가 그렇게 많이 잡히는데도 맛을 몰랐어요. 일본 바이어들이 여기까지 들어와서 배가 들어오자마자 족족 사갔거든요. 전량이 일본으로 수출됐어요. 인기가 좋았어요.”
요즘은 어획량이 그 절반에도 못 미친다면서 국내 수요가 늘어 수출은 아예 못 한다고. 한 번 맛본 사람은 해마다 꼭 한 번은 먹는다 할 정도로 국내에도 애호가가 많단다. 양식을 못하니 모두 자연산인데다 5~9월 수온이 오른 한철 잡히는 어종이다 보니 가격대가 높을 수밖에 없다.
“손님들 연령대는 건강식 좋아하는 40~50대가 많은데요. 요즘에는 특별식을 찾아다니는 젊은 친구들도 찾아옵니다. 고성읍에서 여기까지 들어오는데도 30~40분이 걸리는데, 부산·창원에서도 알음알음 잘 찾아오시더라 고요.”
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올 만큼 귀한 대접을 받는 갯장어의 맛이 점점 더 궁금해진다.
주방장 칼 솜씨에 달린 맛의 비밀? 가시!
갯장어는 겉모습만 거친 것은 아니다. 몸체에도 가시가 촘촘히 박혀 있다. 그래서 아무나 갯장어를 다룰 수 없다고 한다. 도마 위에 펼쳐놓고 보니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잔가시가 살 속에서 고개를 치켜들고 있다.
“그런데 이게 또 한 맛을 내거든요. 뼈째 씹는 맛이 있어요. 잔칼질을 수백 번 해야 먹을 수 있는 회가 됩니다.”
그래서 갯장어는 주방장 칼 솜씨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말이 생겼단다. 15년째 갯장어 전문 횟집 주방장으로 이름을 날린 차 사장은 칼 솜씨에 자부심을 보인다. 방금 깨끗하게 손질한 갯장어를 냉장고에 넣고, 서너 시간 냉장 숙성한 갯장어 횟감을 꺼내 본격적인 회 썰기에 들어간다. 찰기 있는 회 맛을 보려면 숙성은 기본이다.
70㎝ 정도가 가장 맛있다면서 길이를 가늠해 보이던 차 사장이 잔가시를 얼마나 잘게 다져서 곱고 얇게 써느냐가 회 맛을 좌우한다면서 유연한 손놀림을 선보인다. 그의 손을 거친 갯장어회는 사실 기계로 썰었다 싶을 정도로 섬세하다.
갯장어 하면 떠오르는 샤부샤부용 횟감도 곱게 칼집이 들어가긴 마찬가지다. 드디어 갯장어 맛을 본다.
쫀득 회 살살 녹는 샤부샤부 ‘뭘 먹을까?’
회 접시 옆에 쌈채소와 초장이 차려졌다. 거기까지는 익히 아는 회 상차림이다. 독특한 것은 큼직하게 썬 양파. 중국집 반찬처럼 채 썰어 낸 것도 아닌, 큰 양파를 3등분한 크기로 상에 올랐다. 동글동글 굴러다닐 정도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양파도 쌈채소였다는 것.
갯장어 밥상을 차리던 차 사장의 부인 황선정(49) 씨가 장어의 느끼함을 잡아주는 양파쌈 싸는 법을 알려준다. 양파 한 겹을 벗겨 오목한 자리에 회를 올린 후 취향대로 쌈된장이나 초장을 올려 한입에 넣는다. 아삭한 양파의 식감에 쫀득쫀득한 갯장어회가 잘 어울린다. 양파의 매운 향과 달큰한 맛이 회 맛을 돋우는 역할을 한다.
부담스럽던 잔가시는 전혀 거슬리지 않는다. 꼬득꼬득하면서 오래가는 단단한 질감이 독특하다.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난다는 유경험자들(?)의 말이 이해가 된다. 사실 갯장어의 독특한 식감과 맛은 다른 종류의 장어에 비해 단백질 함량이 많은 특성과 관계있다고 한다. 아미노산의 작용이라는데, 아무튼 차 사장의 말대로 ‘완전 새로운 회 맛’이다.
샤부샤부는 일단 육수 맛이 생명이다. 갯장어 뼈와 다시마로 우려낸 국물에 배추, 부추, 버섯 등 채소가 들어가면서 구수하고 시원한 맛을 낸다. 여기에 갯장어의 비린 맛을 없애줄 건삼, 대추, 청량고추도 들어갔다. 칼집을 곱게 낸 갯장어를 육수에 담그자 금세 동그랗게 말리면서 탐스러운 꽃모양이 된다. 갯장어는 기름기가 적어 육수 냄비에 기름이 뜨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살살 녹는 식감에 담백하고 깔끔한 맛을 낸다.
특급 보양식 마무리는 갯장어 뼈와 껍질을 고아 끓인 장어탕이다. 특히 회로 갯장어를 맛본 사람이라면 장어탕은 꼭 먹어야 된다. 찬 기운을 가라앉히면서 뜨끈하게 몸을 데우는 데 최고다.
촬영협조 부산횟집 고성군 삼산면 두포1길 145 ☎ 055) 672-2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