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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을 고발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대하여
반 경 환
아마도 우리 한국인들은 이문열을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작가로 생각하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이문열은 1948년 경북 영양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중퇴하고, 1978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塞下曲」이 당선되어 한국문단에 데뷔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사람의 아들, 젊은 날의 초상, 영웅시대, 오디세이아 서울, 황제를 위하여, 시인, 선택, 변경 등의 장편소설과 이문열 중단편 전집(전5권)이 있고, 그의 산문집 사색, 「시대와의 불화, 평역소설 삼국지와 수호지 등이 있다. 따라서 그의 사람의 아들(일본, 네덜란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일본, 스페인, 콜롬비아, 이탈리아), 금시조(일본, 독일, 콜롬비아, 이탈리아, 프랑스), 황제를 위하여(프랑스), 시인(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콜롬비아) 등이 외국어로 번역되었고, 또한 그는 ‘오늘의 작가상’,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21세기문학상’ 등, 우리 한국의 주요 문학상을 수상한 바가 있다. 1,000만부 이상이 팔려 나갔다는 삼국지를 포함하여 그의 작품들은 2,000만부 이상이 팔려 나갔으며, 그는 한국문학의 역사상 최초로 소설가 재벌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문열의 소설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며, 또, 그의 문학성을 조금도 인정을 하지 않고 있다. 그는 그의 문학적 주제를 쉽고, 재미 있게, 엮어나갈 줄 아는 재능을 지녔으나, 그 문학적 주제를 ‘대서사시적인 주제’로 승화시킬 수 있는 역량이 없는 것은 물론, 자기 자신의 타성과 관성의 늪에 빠져서 너무나도 대중적인 통속소설들을 대량생산해 내고 있었고, 이제는 그 상업적인 마수의 늪에 빠져서 삼국지와 수호지에 이어서, 초한지를 평역하는 추태를 연출해 내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최고 작가가 거듭거듭 자기 자신을 갱신하고 우리 한국문학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이끌어 가려고 노력을 하기는 커녕, 중국의 고대소설들----정통소설도 아닌 무협 소설들----을 평역하고 있다니, 가히 그의 돈벌이에 대한 탐욕은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어쨌든 이문열의 ‘역사철학의 부재현상’, ‘대중적인 통속소설의 대량생산’, 그리고 ‘최소한도의 문학적 자부심마저도 잃어버린 상업주의’를 혐오하고, 그리고 호머와 셰익스피어와 괴테와 제임스 조이스와 프란츠 카프카는 존경을 해도 그의 문학적 성과는 조금도 인정을 하지 않고 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소설가의 사명’을 망각한 이문열의 ‘도덕적 정결성’에 있다고 믿고 싶다. 이문열의 도덕적 정결성은 이미, 도저히 치유될 수 없을 만큼의 훼손을 입었고, 바로 그곳에서 그의 역사철학의 부재현상, 대중적인 통속소설의 대량생산, 그리고 그의 상업주의가 배태되어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이문열은 역사와 민족 앞에 사죄를 하고, 그의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은퇴를 해야 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좀 더 과감하게 말한다면, 이문열의 대표작품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더럽고도 추악한 작품이며, 우리 한국인들의 명예와 명성에 똥칠을 해댄, 표절작품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그 무엇보다도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를 표절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1970년대 초에 황석영은 그의 「아우를 위하여」을 발표했고, 이문열은 1987년도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발표했다. 나는 이제부터 황석영과 이문열의 소설의 이야기를 요약해 보고, 그 소설들의 주제와 등장인물의 성격, 그리고 너무나도 명확한 표절의 문장들과 글도둑질의 역사 철학적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바램이 있다면, 이 글을 계기로 우리 한국사회에 미만해 있는 글도둑질의 문제가 종식되고, 하루바삐 우리 한국의 소설가들이 세계적인 차원에서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게 ‘대서사시적인 문학작품’들을 연출해 내야 된다는 점일 것이다.
황석영의 소설, 「아우를 위하여」의 주인공인 ‘나’(김수남)는 11살 때 부산의 초등학교에서 영등포 소재의 초등학교(국민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다. 그는 비록, 키가 작고 나이는 어리지만, 첫 번째 일제고사에서 ‘수석’을 차지할 만큼 총명한 학생이며, 과외공부를 하고 점심을 굶는 아이를 위하여 도시락을 하나 더 싸올 수 있을 만큼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안의 아들이다. 그가 피난지 부산의 학교에서 영등포 소재의 학교로 전학을 올 무렵에는, 미군부대 하우스 보이 출신인 이영래가 ‘새로운 가다’로 등극을 하게 된다. 그는 벌써 다리에 털이 돋아났으며 눈은 가늘게 찢어지고 어깨가 떡 벌어진 아이였다. 그는 첫째 가다인 장판석이를 빈 발전실로 유인해다가 몽둥이로 습격해서 항복을 받았고, 둘째 가다인 은수와 종하를 그의 심복으로 삼게 되었다.
영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구시대적 인물인 ‘메뚜기’ 선생의 비호와 묵인 아래 ‘반장’이 되었고, 종하를 기율부장, 은수를 총무로 임명하여 거느리게 된다. 그는 발언권을 얻어서 동의와 재청을 받고 의견이 채택되던 자치회의의 규율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공포와 위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모든 회의를 진행하게 된다. 그의 말 한 마디는 곧 학급 전체의 의견이었고, 그가 지시하는 일은 그것이 씨름이든, 축구시합이든 간에,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은행지점장의 아들, 극장, 양조장집의 아이들로부터 장난감, 극장표, 돈 같은 것을 빼앗는 대신, 그 부잣집 아이들에게는 청소 당번을 면제시켜주는 전략을 구사할 줄도 알고 있었고, ‘담임선생 메뚜기네 아기의 돐 선물’과 ‘청소도구’를 마련한다는 구실 아래, 걸핏하면 돈을 모금하여 제멋대로 탕진하고, 그것을 의심하는 아이에게는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메뚜기는 학급에 기강이 서고 자치능력이 향상된 것에 대하여 대단히 만족해 하고 영래의 전제군주적인 일인 지배체제를 묵인해준다. 따라서 영래의 전제군주적인 권력 행사에 반항하는 자는 학급의 배반자이며, 그 어떤 처벌이나 폭력도 감수해야만 되었다.
하지만 영래의 그 전제군주적인 일인 지배체제에 균열이 생긴 것은 교생 선생님이 부임을 해오고 부터였다. 담임선생인 메뚜기가 교사의 사명과 그 의무를 망각한 구시대적인 인물이라면, 새로운 여자 교생 선생님은 교사의 사명과 그 의무에 충실한 인물이었다. “새로 오신 교생 선생님은 무엇이나 열성을 다해 가르치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어느 때는 우리가 모르는 어려운 얘기까지 꺼내어 학과의 분명치 않은 곳을 밝혀주려고 했다”라는 말과, “혼자서만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 사람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면 여럿이서 고쳐줘야 해요. 그냥 모른 체 하면 다 함께 나쁜 사람들입니다. 더구나 공부를 잘 한다거나 집안 형편이 좋은 학생은 그렇지 못한 다른 친구들에게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라고, 나를 타이르는 말이 그것이다. 우선 첫 번째로, 영래와 그 패거리들이 교생 선생님의 환심을 사려고 한 ‘외제 나일론 스타킹 선물사건’이 역효과를 불러일으켜서 교생 선생님의 노여움을 사게 된 것이고, 두 번째로, 영래와 그 패거리들의 최후의 발악과 도 같은 횡포에 하나, 둘, 어린 아이들의 ‘童心’이 이반을 보이면서, 그 선생님을 모욕하는 ‘춘화사건’을 계기로----‘내’가 주동이 되어서---- 영래와 그 패거리들을 몰락시키게 한 것이다. 나는 그 선생님의 가르침 대로 영래의 전제군주적인 일인 지배체제를 종식시키게 된 것이고, 그 선생님이 가르쳐 준 도덕적 교훈을 ‘군대에 가는 아우에게’ 지난 날에 대한 회상의 형식으로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교생 선생님은 도덕적 정결성의 화신이며, ‘어떤 일이 있어도 정의가 짓밟혀서는 안 된다’는 도덕적 교훈을 가르쳐 준 인물이다. “여럿의 윤리적 무관심으로해서 정의가 밟히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거야”라는 말씀이 바로 그것이다.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주인공인 ‘나’(한병태)----‘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반동적인 인물인 엄석대를 지시하고 있지만, 그 소설을 실제로 이끌어 가고 그 소설적 주제에 부합되는 인물은 ‘나’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 12살 때, 서울의 명문초등학교(국민학교)에서 한 작은 소읍의 ‘Y초등학교’로 전학을 간다. 그는 비록, 키가 작고 나이는 어리지만 서울의 일류학교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총명한 아이이며, 아버지는 군청에서 군수 다음의 고위직에 있을 만큼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안의 아들이다. 그가 서울의 명문초등학교에서 시골의 Y초등학교로 전학을 갔을 때는 “머리통이 하나는 더 있어 뵐 만큼 큰 키”와 “쏘는 듯한 눈빛”을 지닌 엄석대가 체육부장과 미화부장을 거느리고 전제군주적인 일인 지배체제를 구축해 놓고 있었다.
엄석대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구시대적인 담임선생님의 비호와 묵인 아래 급장이 되었고, ‘숙제검사’와 ‘청소검사’ 등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권한을 ‘으시시할 만큼 아이답지 않은 침착함과 치밀함’으로 수행을 하고 있었다. 그는 마치 하늘나라의 천사처럼, 학급내의 문제가 생길 때마다 ‘구원자’와 ‘해결사’로 나타났고, 그 댓가로 찐 고구마, 달걀, 볶은 땅콩, 사과 등을 예사로 얻어 먹고 있었다. 그 역시도 발언권을 얻어서 동의와 재청을 받고 의견이 채택되던 자치회의의 규율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공포와 위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모든 회의를 진행하게 된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곧 학급 전체의 의견이 되었고, 그가 지시하는 일은 그 무엇이든지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석대의 전제군주적인 일인 지배체제에 반발하여, ‘그 비열한 추문폭로작전’----석대의 금품및 물품착취사건 등----을 펼쳐 나갔지만, 그때마다 담임선생님의 은밀한 비호와 묵인 아래, 나만이 더욱더 외롭고 힘든 생활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 추문폭로작전 이후, ‘감찰권’과 ‘처벌권’을 갖고 있는 석대의 박해는 더욱더 ‘나’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었는데, 왜냐하면 날이면 날마다 다른 아이들로부터 도전(싸움)을 받게 되거나, ‘나’의 사소한 잘못마저도 침소봉대되어, 내가 거꾸로 ‘불량스러운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외롭고 고독했던 투쟁도 ‘유리창 닦기 검사현장’에서의 ‘저항을 포기한 자의 눈물’을 보인 이후, 그 끝장을 보게 되고 만다. 그리고 나는 석대의 사나이다운 관용적인 마음에 감동을 받아서 ‘샤프펜슬’을 상납하게 되고, 그 하늘나라의 천사와도 같은 ‘석대의 은혜’로 더없이 달콤한 ‘비굴한 굴종의 열매’를 맛보게 된다. 이제 실력 이하로 뒤쳐져 있었던 주먹서열도 바로 잡게 되었고, 내가 ‘사면’을 받은 것이 알려지자 많은 친구들도 사귈 수가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처럼 나를 미워하던 담임선생님도 돌아온 ‘탕아’처럼 반겨주었고, 겨울방학의 일제고사에서는 마침내 2등을 되찾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들이 석대에게 갖다 바치거나 빼앗긴 것들, 그리고 우리가 석대의 이름으로 시험지를 바꿔쳐준 것 등은 “석대 왕국에 안주한 신민으로서 자발적으로 바친 조세나 부역에 가까운 것”이었고, 그만큼 비굴한 굴종의 열매는 달디 달았던 것이다.
그러나 석대의 전제군주적인 일인 지배체제에 균열이 생긴 것은 6학년으로 진급하여 새로운 담임 선생님을 맞이하고 부터였다. 5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이 교사의 사명과 그 의무를 망각한 구시대적인 인물이라면 새로운 담임선생님은 교사의 사명과 그 의무에 충실한 인물이었다. 사범학교를 나오신 지 얼마 안 되고 그 유능함과 성실함을 인정받고 있는 담임 선생님은 급장선거에서 61표 중 59표로 엄석대가 당선이 되자 그 일인 지배체제에 제동을 걸었고, 다른 아이들이 시험지를 바꿔쳐준 결과 평균 98점으로 전교 1등을 독차지 하던 엄석대에게 문제를 풀게하여 엄석대의 일인 지배체제를 종식시켰다. “나는 되도록이면 너희들에게 손을 안 대려고 했다. (......) 너희들은 당연한 너희 몫을 빼앗기고도 분한 줄을 몰랐고 불의한 힘에 굴복하고도 부끄러운 줄을 몰랐다. 그것도 한 학급의 우등생인 녀석들이.” 그리고 이밖에도 엄석대의 비행들----금품과 물품착취 및 모금액 횡령사건 등----이 백일하에 폭로되고, 끝끝내 엄석대는 자퇴를 하게 되고 만다.
그후 나는 대학을 졸업한 후, 대기업의 사원, 영업사원, 학원강사를 전전했지만, 엄석대는 ‘우리들의 영웅’으로서 언제나 나의 마음 속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내가 때늦은 휴가차 강릉역에 도착했을 때, 나는 거기서 형사들에 의해서 쇠고랑이 채워지는 엄석대를 보게 되고 만다. 엄석대는 ‘우리들의 영웅’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었던 것이다.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어떤 일이 있어도 정의가 짓밟혀서는 안 된다’는 윤리적 명제가 그 소설적 주제라고 할 수가 있다.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와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개의 핵심적인 줄거리로 요약을 할 수가 있다. 먼저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는,
1, 주인공인 나(김수남)는 피난지 부산의 초등학교에서 영등포의 초등학교로 전학을 간다. 나는 11살이고 키는 작고 나이는 어렸지만 첫 번째 일제고사에서 수석을 차지할 정도로 총명한 아이이다. 나는 명문중학교에 가기 위하여 과외수업도 받고, 점심을 굶는 아이들을 위하여 도시락을 하나 더 싸올 수 있을 만큼 비교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안의 아들이다;
2, 내가 전학을 간 그곳은 ‘메뚜기’라는 담임선생님의 비호와 묵인 아래, 미군부대 하우스 보이 출신인 이영래가 판을 치는 곳이다. 이영래는 열 다섯 살로 눈은 가늘게 찢어지고 어깨가 떡 벌어진 악동이다;
3, 나와 우리 학급의 친구들은 이영래와 그 부하들에게 부단히 억압을 받고 착취를 당한다;
4, 하지만 그 이영래의 전제군주적인 일인 지배체제가 끝장을 보게 된 것은 새로운 교생선생님이 부임을 해왔기 때문이다. 사회적 정의감에 불타는 교생 선생님에 대한 ‘외제 나일론 스타킹 선물사건’과 그 선생님에 대한 ‘영래네 패거리들의 욕설과 춘화사건’ 이후로, ‘나’와 우리들은 일치 단결하여 그 영래네 패거리들을 몰락시키게----‘메뚜기’라는 담임 선생님은 시대착오적이며 구시대적인 인물이었지만, 새로운 교생 선생님은 이영래의 비행을 주목하고 그의 악동짓을 퇴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된 것이다;
5, 그 결과 ‘어떤 일이 있어도 정의가 짓밟혀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정의(소설의 주제)가 실현된다
라고 요약할 수가 있으며,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역시도,
1, 주인공인 ‘나’(한병태)는 서울의 명문 초등학교에서 어느 작은 소읍의 Y 초등학교로 전학을 간다. 나는 12살이고 키는 작고 나이는 어리지만 서울의 명문초등학교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을 정도로 총명한 아이이다. 나는 공부 이외에도 ‘그림그리기’를 잘하고, 나의 아버지는 군수 다음의 고위직에 있을 만큼 비교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안의 아들이다.
2, 내가 전학을 간 그곳은 담임 선생님의 비호와 묵인 아래, 고아출신인 엄석대----그는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가 판을 치는 곳이다. 엄석대는 열 다섯 살이 되었을 정도로 ‘머리통이 하나는 더 있어 뵐만큼 큰 키’와 ‘쏘는 듯한 눈빛’을 지닌 악동이다;
3, 나와 우리 학급의 친구들은 엄석대와 그 부하들에게 부단히 억압을 받고 착취를 당한다;
4, 나와 엄석대와의 대결국면에서 그 갈등이 해소된 것은 내가 엄석대의 절대적 권력에 무릎을 꿇고 그의 부하가 된 것이지만, 그러나 엄석대의 전제군주적인 일인 지배체제가 끝장을 보게 된 것은 6학년 때, 새로운 담임 선생님이 부임을 해왔기 때문이다. 5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은 시대착오적이며 구시대적인 인물이었지만, 6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은 엄석대의 비행을 밝혀내고 그의 악동짓을 무섭게 단죄한다;
5, 그 결과, 사회정의(소설의 주제)----‘어떤 일이 있어도 정의가 짓밟혀서는 안 된다’----가 실현되고, 엄석대는 자퇴를 하고 사회의 깡패가 된다.
라고, 요약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미 대부분의 독자들은 눈치를 챘겠지만,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와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단편소설과 중편소설이라는 차이만 있을 뿐, 똑같은 주제, 똑같은 구조, 똑같은 이야기, 그리고 똑같은 등장인물들의 성격에 의해서 지배를 받고 있고, 그것은 아마도 이문열이 황석영의 소설을 하나 하나 모조리 베껴갔기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황석영의 소설이 1970년대 초의 작품이고, 이문열의 소설이 1987년도 작품인 만큼---- 황석영이 외국 작가의 작품을 하나 하나 모조리 베낀 것을 보고 이문열 역시도 공범자의 미소를 띠고 그 모방범죄를 저질렀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황석영이 그의 작품, 「아우를 위하여」가 표절된 것을 알고 묵인해 왔다면, 그는 이문열과의 떳떳치 못한 검은 거래를 했을 것이고, 적어도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공범자의 침묵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후자의 가능성이 매우 큰 데, 왜냐하면, 자기 자신의 작품의 주제, 구조, 이야기, 그리고 등장인물의 성격까지도 하나 하나 모조리 베껴간 대사기꾼의 범죄행위를 용서할 수 있는 작가는 아마도 이 지구상에서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 사소한(?) 범죄행위의 산물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이상문학상’을 수상하게 되고, TV와 연극과 영화의 텍스트가 되고,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베스트 셀러----아직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가장 많이 팔리는 스테디 셀러 중의 하나일 것이다----가 되어준 것은 우리 한국문학사의 비극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어디 그뿐이던가? 이미 앞에서 소개했던 대로, 대한민국의 가장 대표적인 문학작품으로 일본, 스페인, 콜롬비아, 이탈리아 등의 언어로도 번역되었고, 이제는 어느덧 초등학교의 교과서에까지도 실리게 되었다. 이문열의 더럽고 추악한 글도둑질----절도행각----이 단군 이래의 최대의 대형사기사건으로 이어지고, 그에게는 수십억원대의 돈과 명예와 명성을 안겨다가 주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아, 우리는 이것을 ‘지적소유권’을 지상최대의 명제처럼 받들어 모시는 문화선진국민들에게, 또 그리고 너무나도 티없이 맑고 순진한 이 대한민국의 어린 학생들에게 어떻게 사죄하고 설명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도 권선징악적이고,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권선징악적이다. 그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정의가 짓밟혀서는 안 된다’는 소설의 주제를 이루면서, “여럿의 윤리적 무관심으로 해서 정의가 짓밟히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거야”(황석영)라는 말과, “너희들은 당연한 너의몫을 빼앗기고도 분한 줄을 몰랐고, 불의한 힘에 굴복하고도 부끄러운 줄을 몰랐다”(이문열)라는 잠언적인 경구로 이어지고도 있었던 것이다.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는 단순구조로 되어 있고,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삼중의 구조로 되어 있다. 황석영의 소설은 그것이 단편소설인 만큼, ‘나와 학급의 아이들’/ ‘영래와 영래네 패거리들’의 관계가 단 한 번의 반전으로 끝을 맺게 되지만, 이문열의 소설은 그것이 중편소설인 만큼, ‘나’와 ‘석대와 석대의 패거리들’의 긴장 관계가 ‘나의 굴복’으로 반전을 맞이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또한, 그 태평성대의 시대가 새로운 담임 선생님의 등장으로 또다시 파탄을 맞이하게 되고,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난 이후, 지난 날의 엄석대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재등장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황석영과 이문열의 소설의 주제와 구조, 그리고 그 이야기와 등장인물의 성격에 별다른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황석영의 소설에다가 약간의 스토리와 이문열 특유의 냉소주의적인 색채를 덧씌웠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주제, 구조, 스토리 이외에도 그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따져 보지 않으면 안 된다. 황석영의 ‘나’는 11살로, 비록, 키가 작고 나이는 어리지만 매우 총명하고 똑똑한 아이이다. 그는 비교적 여유가 있는 집안의 아들이며, 교생 선생님의 말씀에 감동을 받고, 이영래와 그 패거리들의 악동짓을 종식시키게 되는 아이이다. 이문열의 ‘나’는 12살이며, 그 역시도 키가 작고 나이는 어리지만 매우 총명하고 똑똑한 아이이다. 그 역시도 비교적 여유가 있는 집안의 아들이며, 나중에는 비록, 굴복을 하게 되지만, 엄석대에게 마지막까지 완강하게 반항을 했던 아이이다. 이영래는 미군부대 하우스 보이(고아) 출신으로서----열다섯 살의 학급반장으로서----그의 전제군주적인 일인 지배체제를 구축해 놓은 악동이며, ‘메뚜기’라는 담임선생님의 비호와 묵인 아래, 온갖 나쁜 짓을 다 하게 된다. 하지만 사범학교 출신의 교생 선생님이 부임을 해오자, 그의 전제군주적인 일인 지배체제에 균열이 생기고, 마침내 ‘나’와 다른 급우들에 의해서 그 몰락을 맞이하게 된다. 이문열의 엄석대 역시도 고아출신으로서----열다섯 살 정도의 학급반장으로서---- 그의 전제군주적인 일인 지배체제를 구축해 놓은 악동이며, 담임 선생님의 비호와 묵인 아래, 온갖 나쁜 짓을 다 하게 된다. 하지만 6학년 때, 새로운 담임 선생님이 부임을 해오자 그의 전제군주적인 일인 지배체제에 균열이 생기고, 그는 그의 급우들에 의해서 그 몰락을 맞이하게 된다. 그 다음, 황석영의 ‘기율부장’과 ‘총무’는 이문열의 ‘체육부장’과 ‘미화부장’으로 변형되고, 그들은 모두가 다같이 이영래와 엄석대의 심복으로서 온각 악동짓을 일삼게 된다. 그리고 또 그 다음, 황석영의 ‘메뚜기’ 담임 선생님과 이문열의 담임 선생님 역시도 너무나도 똑같은 판박이이며, 그들은 모두가 다같이 교활하고 영악한 악동들을 비호하거나 도대체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는 관심조차도 없는 매우 반동적이며 시대착오적인 인물들이다. 황석영의 교생 선생님은 남 다른 교사의 사명과 그 의무에 충실한 인물이며, 그녀는 이문열의 담임 선생님과 똑같은 인물이다. 그 선생님들은 다같이 젊고 참신하며, 악동들의 비행을 모조리 샅샅이 들춰내며, ‘어떤 일이 있어도 정의가 짓밟혀서는 안 된다’는 소설적 주제를 이끌어 낸다. 전자의 선생님들이 매우 반동적이며 시대착오적인 인물들이라면, 이 후자의 인물들은 하나의 조력자, 혹은 훌륭한 선생님들로서 그만큼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인물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설에 있어서 주제, 구조, 스토리, 그리고 그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똑같다면, 이미, 그것은 ‘글도둑질이냐/ 아니냐’의 문제를 떠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너무나도 뻔뻔스럽고 파렴치한 범죄행위이기 때문이다. 나는 황석영과 이문열의 표절의 문제가 왜, 지금까지 한 번도 논의되고 회자되지 않고 있는가를 너무나도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고 있다. 이 대한민국은 그 이름도 거룩한 ‘표절공화국’이고, 그 글도둑질의 대가들이 모든 大權을 장악하고 있는 사회인 것인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비슷비슷한 분위기, 비슷비슷한 문장들, 그리고 대동소이한 이야기의 내용들을 다시 한 번 우리 대한민국의 독자들이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살펴보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피난지 부산의 학교에서, 수복되고도 수 년이 지난 서울로 전학을 해왔던 첫날, 기분이 잡쳐 버리고 말았다.
우리 학교에 미군부대가 들어와 있어서 학년별로 여러 곳에 뿔뿔이 흩어져 빈 창고나 들판에서 공부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 교실이 엉망인 것 뿐만 아니라 우리 학교 애들은 질이 나빴는데 전쟁통에 몇 년씩 학년을 묵은 큰 애들이 열명 쯤 되었다. 백여 명의 아이들을 키 순서대로 세워놓으면 나 같은 건 겨우 앞줄에서 몇 번째가 될 만큼 작았다. 애들은 내게 아무런 관심도 돌리지 않았으나, 첫 번 일제고사에서 수석을 차지하고 나자 친구가 더러 생기게 됐던 거였다.”
----황석영, 「아우를 위하여」(이하 「아...」로 생략)
나는 그때껏 자랑스레 다니던 서울의 명문 국민학교를 떠나 한 작은 읍의 별로 볼 것 없는 국민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
그 전학 첫날 어머님의 손에 이끌려 들어서게 된 Y국민학교는 여러 가지로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다. 붉은 벽돌로 지은 웅장한 3층 본관을 중심으로 줄줄이 늘어섰던 새 교사만 보아온 내게는, 낡은 일본식 시멘트 건물 한 채와 검은 타르를 칠한 판자 가교사假校舍 몇 채로 이루어진 학교가 어찌나 초라해 보이는지 갑자기 영락한 소공자의 비애같은 턱없는 감상에 젖어들기까지 했다.
----이문열, 우리들의 일그러운 영웅(이하 우...로 생략
나는 담임 선생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메뚜기라는 별명을 가졌는데, 머리 가운데가 쭉 벗어지고 양쪽 관자놀이 부근에만 곱슬털이 부성부성한 모습이었다. 그는 국민학교 선생님 노릇에 별로 흥미가 없는 것 같았다. 무슨 가게인지를 부업으로 벌여놓고 있었는지라 그는 툭하면 자습 시간을 주고선 하루 온종일 밖으로 나돌아 다녔다. ----「아...」
머릿기름은커녕 빗질도 안해 부수수한 머리에 그날 아침 세수를 했는지가 정말로 의심스러운 얼굴로 어머님의 말씀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는 그가 담임 선생님이 된다는 게 솔직이 그렇게 실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 뒤 일 년에 걸친 악연惡緣은 그때 벌써 어떤 예감으로 와 닿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
그때 내게는 나름대로 내세울 만한 게 몇 있었다. 첫째는 공부, 1등은 그리 자주 못했지만, 그래도 나는 그 별난 서울의 일류 학교에서도 반에서 다섯 손가락에 안에 들었다. ----우...
영래는 미군부대 하우스 보이로 싸젠이 기른다는 아이였다. 술이 주렁주렁 달린 인디안식 가죽 저고리에 청바지를 입고 시계까지 차고 다녔다. 눈이 가늘게 찢어지고 어깨가 바라진 아이였다. 영래는 벌써 다리에 털이 돋은 열다섯 살박이였다. ----「아...」
담임 선생님과 내가 처음 교실로 들어왔을 때 차렷, 경례를 소리친 것으로 보아 급장(엄석대)인 듯한 아이였다. 그러나 내가 그를 엇비슷한 60명 가운데서 금방 구분해낼 수가 있었던 것은 그가 급장이어서라기보다는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있어 뵐 만큼 큰 앉은키와 쏘는 듯한 눈빛 때문이었다.
----우....
이새끼 나는 의장이잖아. 종하는 기율부장, 너는 말이지 총무다.
----「아...」
나는 체육부장이고 쟨 미화부장이다. ----우...
새로 오신 교생 선생님은 무엇이나 열성을 다해 가르치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어느 때는 우리가 모르는 어려운 얘기까지 꺼내어 학과의 분명치 않은 곳을 밝혀주려고 했었다. 우리 실력을 향상시켜 주느라고 벼락 시험도 자주 치렀다. ----「아...」
6학년으로 올라가면서 (......) 새로 우리 반을 맡게 된 선생님은 사범학교를 나오신 지 몇 해 안된 젊은 분이었다. 아직 경험은 많지 않지만, 그 유능함과 성실함이 인정되어 특별히 입시반 담임 선생님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여럿 가운데서 뽑혀 오신 분인 만큼 새 담임 선생님은 첫날부터 남 다른 데가 있었다. 작은 일도 지나쳐보거나 흘려듣는 일이 없는 만큼이나 느낌도 예민해 첫 종회시간에 이미 그 분은 우리를 은근히 몰아 세웠다. ‘이 반은 왜 이리 활기가 없어? 어릿어릿하며 눈치나 슬슬 보구’......
----우...
은행 지점장의 아들이나 공장장 아들, 극장, 양조장집 아들 같은 너댓 명의 부잣집 애들은 특히 괴로움을 많이 받았다. 그애들은 뭔가 좋은 것들, 이를테면 장난감, 극장표, 돈같은 것들을 갖다 바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아...」
봇물처럼 쏟아지기 시작한 석대의 비행非行은 끝없이 이어졌다. 여자 애들의 치마를 들추게 시켰다든가, 비누를 바른 손으로 수음手淫을 하게 했다는 따위 성적인 것도 있었으며, 장삿집 애들은 매주 얼마씩 돈을 바치게 하고, 농사짓는 집 아이들에게는 과일이나 곡식을, 대장간 아이에게는 엿으로 바꿀 철물을 가져오게 하는 따위 경제적인 수탈도 있었다. 돈 백 환을 받고 분단장을 시켜 준 일이며, 환경정리를 한다고 비품구입비를 거두어 일부를 빼돌린 게 밝혀지고, 그 전 해 한 학기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고도 나를 괴롭힌 과정도 대강은 드러났다. ----우리...
만일 그렇다면 글도둑질, 즉 표절의 유혹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나는 이미 앞에서, 이문열의 글도둑질의 원인을 그의 역사 철학의 부재현상과 대중적인 통속소설의 대량생산, 그리고 그의 상업주의를 그 세 원인으로 지적한 바가 있다. 그의 역사 철학의 부재현상은 그가 ‘학문의 꽃’인 철학의 수업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역사 철학적으로 깊이 있게 사유할 수가 없었다는 것을 뜻한다. 글도둑질이란 타인의 말과 타인의 사유에 대한 노예적인 복종태도----그러니까 타인의 지적 재산을 함부로 훔쳐가는 것이다----를 뜻하고, 독창성이란 새로운 사물과 현상에 이름을 붙이고 그것을 거대한 사유체계로 엮어낼 수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독창성이란 사상과 이론에서 그 정수를 맛볼 수가 있는 것이며, 사상가나 이론가가 아닌 사람들은 이 세상의 어중이 떠중이들로서----기껏해야 글도둑질의 대가로서----자기 자신의 생명이 되고 피가 되는 진리를 얻지 못한다. 따라서 그들은 옛날부터 독창적인 사상가와 이론가들에게 비싼 수업료와 그 댓가를 지불하고 겨우 그날그날의 생활양식(지식)을 얻게 된다. 사상가와 이론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찬란하고 화려한 사상의 신전에서 살고 있는 지적 자본가라면, 이 세상의 어중이 떠중이들은 그들이 먹다버린 음식찌꺼기와 헌옷가지, 그리고 그들의 발바닥의 때를 닦아주고 그날그날을 살아가는 날품팔이들에 불과하다. 사상가와 이론가의 생활은 지혜로운 생활이며, 그들은 만인들의 생각과는 정반대 방향에서, 이 세상의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그 사색의 황홀함 속에서 살아간다.
그는 오늘도 ‘愛知의 숲’에서 니체와 성교를 하고, 쇼펜하우어와 성교를 하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데카르트와 호머와 셰익스피어와 괴테와도 성교를 한다. 그가 그들의 책을 한 번 읽을 때는 그들의 생각만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고, 그가 두 번을 읽을 때는 그들의 최대의 장점만을 생각하면서 읽고, 그가 세 번을 읽을 때는 그들의 단점만을 찾아내려고 읽고, 그리고 그가 네 번을 읽을 때는 그들을 발밑으로 깔아뭉개 버리려고 읽는다. 그러나 그가 다섯 번, 여섯 번, 열 번, 그리고 백 번을 읽을 때는 그들의 단점까지도 껴안으면서, 그들의 장점과 함께 살아가게 된다. 대부분의 형편없는 惡書들은 첫 번째 읽기 과정에서 탈락하고, 그리고 이문열의 책과도 같은 흥미본위의 악서들은 두 번째 읽기과정에서 탈락한다. 왜냐하면 그 악서들은 어느 것 하나도 그의 지적 성감대를 자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두 번째 책읽기 과정에서 충분히 그 장점이 인정되었으면서도 내가 장 자크 루소를,
루소의 착하고 선량한 마음씨는 그의 도덕철학을 낳았지만, 그러나 그것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구속한다는 데서 몹시도 괴로워했던 인물이다. 타인에 대한 끊임없는 배려와 친절은 만인평등에 입각한 ‘사회계약론자’로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지만, 에밀을 출간한 이후, 그가 주변인으로 밀려나서 그처럼 가혹하게 박해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개인으로서의 독창성과 자유를 극대화시킨 결과이다. 사회계약론자가 그 사회성을 잃어버리고 끊임없이 떠돌아 다녀야만 했던 사회적 부적격자라니, 이 보다 더한 역설과 그 비극적 참상이 어디 있을까? 나는 루소의 천재성은 인정하지만, 그의 선악의 이분법에 사로잡힌 도덕성은 인정할 수가 없다. 그의 제자 ‘에밀’은 도덕적 기계인간이며,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육체적, 정신적 기형아에 불과하다
라고, 비판한 것처럼 그 단점이 드러나지 않는 책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의 장점이 그 단점을 상쇄하고 남을 때, 그때에는 나의 친구가 될 수가 있다. 나는 ‘愛知의 숲’에서 그들과 성교를 즐기면서, 오직, 나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독창성은 자기 자신만의 사유의 결과이며, 그것은 삶의 투신에의 문제이다. 어쨌든 그 지혜로운 사상가의 생활은 그 무엇보다도 용기를 필요로 한다. ‘만인 대 일인의 싸움’, ‘나는 신성모독을 범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나의 존재론을 밀고 나간다면, ‘세계는 나의 범죄의 표상이다, 고로 행복하다’라는 나의 행복론을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그 낙천주의자의 명제들을 정식화시켰고, 그 결과, 한국사회에서 철두철미하게 소외되고 박해를 받아왔다. 그러나 나의 철학예술가의 생활은 나날이 즐겁고, 기쁘고, 어쨌든 성실한 자의 그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혜, 용기, 성실----, 나는 이 모든 삼박자를 다 갖추었고, 이 철학예술가의 눈으로 이문열을 바라보면 그의 글도둑질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학문의 꽃인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 사회는 그릇된 교육을 받고 있는 사회이며, 그릇된 교육을 받고 있는 사회는 모든 인류의 스승(천재)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고 있는 사회에 지나지 않는다. 이문열 역시도 그릇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역사 철학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지 못한 것이고, 이것이 그의 글도둑질의 첫 번째 이유가 된다. 이문열은 사상과 이론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독창성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또 창조적 독서와 사색의 즐거움도 알지 못한다. 따라서 그는 그의 ‘문학적 주제’를 ‘대서사시적인 주제’로 승화시킬 수도 없었고, 진정한 소설가의 사명인 도덕적 정결성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사상과 이론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인간, 독창성과 창조적 독서와 사색의 즐거움도 알지 못하는 인간, 그 인간의 젊은 날의 초상, 영웅시대, 오딧세이아 서울, 변경, 삼국지, 수호지, 초한지 등은 너무나도 대중적인 통속소설에 불과하며, 역사 철학적인 사유없이 그처럼 많은 글을 쓰고 있었으니, 어떻게 자기 자신의 생각을 가져 볼 수가 있었겠는가? 너무나도 많은 통속소설을 쓰고, 글을 쓰고 또 쓰고 있는 인간이 또한 어떻게 소설가의 사명인 도덕적 정결성을 유지할 수가 있었겠는가? 그는 지혜도 없고, 용기도 없는 인간이며, 대한민국의 역사상 가장 많은 원고료와 인세로 소설가 재벌이 된 인간이며, 그러나 그 인간은 셰익스피어와 괴테와 호머에게 도전해 보려는 야심도 없는 인간에 불과하다. 오직 그는 성의 문제와 페미니즘, 그리고 김대중 정권에 대한 극우 보수주의적인 언동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장본인이며, 이 땅의 미래의 우리 한국인들에게도 가장 매력이 없는 인간이다. 이문열의 너무나도 많은 대중적인 통속소설은 사색하지 않은 자의 글쓰기에 불과하며, 그것은 반드시, 자기 자신을 돌볼 시간이 없었던 그만큼, 글도둑질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는 사색하지 않는 인간이며, 사교무대의 얼굴마담이고, 오직, 상업주의의 늪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가련한 인간이다. 마지막 세 번째로, 그의 상업주의는 그 글도둑질의 또하나의 이유가 되어주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대한민국의 초등학교 교과서에 소개되고, 또 이 땅의 어린 아이들이 이문열의 도덕적 정결성에 찬양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이문열의 개인의 영광과 그를 배출해낸 민음사의 상업적 이익을 위해서 천하의 대사기꾼적인 그의 글도둑질을 언제까지나 쉬쉬하고 덮어두고만 있을 것이란 말인가? 이문열은 대한민국의 대작가도 아니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엄석대’보다도 더 도덕적 정결성을 갖춘 인간도 아니다. 자기 자신의 역사 철학적인 무지와 그것의 한계를 극복하고,호머나 셰익스피어나 괴테처럼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게 세계정복운동을 펼쳐나가야 되는 것이 그의 사명이건만, 기껏해야 무협소설에 불과한 삼국지와 수호지와 초한지를 평역하고 있는 추태를 생각해 본다면, 그의 작가 의식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상업성으로 물들어 있고, 돈과 명예는 같은 무대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려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이문열은 역사와 민족 앞에, 이 글을 읽는 즉시 사죄하고, 그의 대부분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이제는 한국문단에서 은퇴를 해야만 한다. 이제 모든 대학생들과 시민단체와 민족문학작가회의를 비롯한 지식인들은 이러한 한국문단의 국제적 망신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기 위해서라도, ‘이문열의 은퇴와 절필 선언’을 유도해야만 하고, ‘글도둑질 추방운동본부’를 상설하여 하루바삐 표절의 문제를 근절시켜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교수 3명 공동집필 논문
‘외국표절 국제 망신’
“세계적인 통신분야의 학회 전문지에 한국 교수 3명이 공동 집필한 논문이 외국논문을 표절, 국제적인 망신을 사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세계 1백50개국 교수와 학생 등, 35만명이 가입한 미국 전기, 전자학회(IEEE) 산하 통신학회지 커뮤니케이션스 매거진 11월호에서 쿠오 편집장이 공개해 드러났다. 이 학회지에는 논문을 표절한 3명 가운데 2명의 공식사과문도 함께 게재됐다. 쿠오 편집장은 “지난 5월호에 게재된 한국 교수 3인의 공동 논문이 캐나다 빅토리아대 교수 등의 논문을 상당부분 표절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논문표절은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훔치는 더러운 짓이며 연구자의 창조적 가능성을 죽인다”고 신랄하게 비난했다.
표절을 한 것으로 밝혀진 국내학자는 대구 K대 박모(전자전기컴퓨터학부), 부산 D대 백모(인터넷공학부), 포항P대 홍모(컴퓨터공학과)교수로 이중 백교수는 박교수의 제자. 커뮤니케이션스 매거진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5월호에 실은 논문 ‘유틸리티 모델을 사용하는 멀티미디어 인터넷 서비스를 위한 서비스 레벨 약정관리’(100- 106쪽)에서 캐나다 빅토리아대 매닝 교수 등 외국 교수 3명의 논문 중 스물아홉 구절과 세 개의 도형, 모델을 거의 그대로 베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학회지 11월호는 국내 교수들의 논문 내용과 원본을 대조, 표절 사실을 증명해 놨다.
이와 관련, 박, 백교수는 학회지에 실린 사과문에서 “매닝 교수 등의 모델과 도형, 컨셉트 등을 적절한 참조표시 등이 없이 재사용해 매우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백교수는 “표절사실을 인정한다”며 “박교수와 홍교수는 논문에 이름만 올렸을 뿐 논문작성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박교수는 “당시 논문이 관행적으로 이뤄져 오고 있는 IEEE 검증을 거쳤기 때문에 표절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홍교수와 함께 이름을 올렸다”고 해명했다. 한편 이같은 표절 사실이 알려지자 D, K대 등 관련 대학 인터넷 홈페이지엔 이들을 비판하는 글이 빗발치고 있다.
‘이승우’씨는 박교수가 재직 중인 K대 학과 홈페이지 게시판에 ‘표절사건’이라는 제목 아래 “사과문을 읽어보니 주 저자는 아무 것도 몰랐고, 두 번째 저자가 모든 일을 저질렀다고 돼 있더군요”라고 “한번이라도 논문을 써본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이게 얼마나 말이 안되는 소리인지 금방 알 것”이라고 개탄했다. 또 ‘나그네’라는 ID의 네티즌은 “국제적 망신 아닙니까? 이제 IEEE에 한국 논문 내기가 꽤 어려워지겠군요”라고 적었다. 이밖에 D대 인터넷 홈페이지에 ‘유학생’이라고 밝힌 네티즌은 “어떻게 남의 논문을 표절한 교수가 뻔뻔하게 강단에 설 수 있느냐”며 “그러면서 학생들에겐 커닝하지 말라고 하겠죠”라는 글을 올려 비꼬았다.”
대구= 송의호, 조문규 기자
----중앙일보, 2001년 11월 19일자
한국과학자 외국논문 표절
네이처誌 “KAIST출신 박사 8건 베꼈다”
국제 물리학회 가이드라인 추진... 파문 확산
한국인 재로공학자가 8편의 논문을 표절해 국제학술지에 게재한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다. 영국의 과학전문지인 ‘네이처’지는 1일자(신년 호)에서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방문연구원으로 근무하던 한국과학기술원(KAIST)재료공학과 (현 신소재공학과) 출신 P박사가 1997년부터 2001년까지 발표한 논문 가운데 8편이 표절로 판명됐다”고 보도했다.
이번 표절사건은 P박사가 2000년 12월 국제학술지인 ‘유로피직스레터스’에 실은 ‘중성자 회절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을 러시아인 저자가 2002년 4월 케임브리지대에 표절이라고 알리면서 불거졌다. P박사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자 케임브리지대와 KAIST가 자체 조사에 들어가 나머지 7편의 논문에 대한 표절 여부가 확인됐다. 네이처에 따르면 P박사의 논문은 대부분 러시아 학술지를 베낀 것으로, 다른 논문에 대한 추가 조사도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혹을 산 논문 가운데 4편은 해당 학술지 인터넷판에서 삭제됐으나 나머지 논문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한편 전 세계 물리학 관련 학회 연합체인 ‘국제순수 및 응용물리연합(IUPAP)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표절 대처 가이드라인을 제정키로 결정해 파장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P박사는 2002년 금오공대 교수로 임용됐으나 P박사가 석사학위 지도교수의 20년 전 논문을 표절한 사실 등을 KAIST가 금오공대에 통보하면서 한 학기만에 면직됐다. 본보는 네이처의 보도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P박사와 접촉을 시도했으나 연락이 되지 않았다. P박사는 조사가 시작된 직후 케임브리지대로부터 퇴거 요청을 받고 자취를 감춘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 2004년 1월 5일자
모든 독창적이며 개성적인 존재들이 사라진 사회에서는 온갖 부정부패와 범죄가 만연하게 된다. 한국 사회는 온갖 부정부패와 범죄가 만연된 사회이며, 이 땅의 명문대학교의 석, 박사학위들은 타자의 글베끼기로 일관되어 있다. 박사학위를 돈 주고 산 재단이사장과 대학총장도 보통이고, 타자의 글베끼기로 교육부 장관과 대학교수가 된 학자들도 보통이다. 그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교육시장의 개방이며, 교육시장이 개방되면, 그들의 글도둑질이 백일하에 들통이 나고, 대한민국의 교육시장은 서구의 교육기관에 의해서 순식간에 점령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싸움을 한 번 해보지도 못한 채, 명나라와 청나라와 일본과 미국에게 안마당을 내어준 역사적 사실과도 일치하는 것이며, 우리 한국인들이 노예의 계급으로 전락을 하게 된 것과도 같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부시가 김대중 대통령을 소환하여 ‘이 사람, 저 사람’이라고 ‘언어의 귀싸대기’를 갈겨댄 것이나, 또 노무현 대통령을 소환하여 차렷 자세를 시키고 만찬은 커녕, 문전박대를 한 것이나, 또 그리고 ‘이라크파병요청’이 ‘이라크출격명령’으로 들리고 있는 것도 모두가 다 그 글도둑질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글도둑질은 정신없는 민족을 낳고 그 정신 없는 민족은 역사 철학적인 불임의 동물이 되어, 그 모든 독창성을 거세당하게 된다. 모든 독창성이 거세된 사회는 만인의 귀감이 되지 못하고, 조기유학과 유학이민, 그리고 원정출산과 해외도피가 봇물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만인들의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 된다. 그릇된 교육을 받으면 글도둑질이 성행을 하게 되고, 글도둑질이 성행을 하게 되면 그 주체자와 그 민족은 더 이상 어떤 힘도 쓸 수가 없게 된다. 나는 앞의 홍모, 백모, 박모 교수가 그 ‘표절 사건’ 이후 대학교수직에서 쫓겨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문열의 표절 문제는 우리 한국인들의 양심을 회복하느냐, 아니냐라는 매우 커다란 문제가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판, 비판, 그리고 또 비판} 제2권에서
첫댓글 문학 적폐가 버젓이 활동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죽일 놈들이지요
슬픈 일입니다
적극 동감입니다. 얼마든지 훔쳐와서 조금만 포장하고 꾸미면 다르게 보일거라 착각하는 비양심을 가진 글쓰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