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자의 지옥
시장에 완전한 자유를 부여하는 것이 위험한 데는 더욱 근본적인 이유가 존재한다.
에덤 스미스는 구두공이 자신이 낸 흑자를 더 많은 조수를 고용하는 데 쓸 것이라고 가르쳤다.
이것은 이기적 탐용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암시했다.
이윤은 생산을 확대하고 사람을 더 먾아 고용하는 데 할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탐욕스러운 구두공이 피고용인들의 월급을 깎고
근로시간은 늘리는 방법으로 이윤을 늘리면 어떻게 될까?
표준답변은 자유시장이 피고용자를 보호해주리라는 것이다.
만일 우리의 구두공이 월급은 너무 적게 주고 일은 너무 많이 시킨다면,
최고의 일꾼들은 자연히 그를 떠나 경쟁사의 가게로 일하러 갈 것이다.
폭군 같은 구두공에게는 최악의 노동자만 남거나 아무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는 운영 방식을 바꾸거나 사업을 접어야 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탐욕 때문에 피고용인들을 잘 대해줄 수밖에 없다.
이론상으로 물 샐 틈 없는 논리 같지만, 현실에서는 물이 너무 쉽게 샌다.
왕이나 사제가 감독하지 않는 완전 자유시장에서
탐욕스러운 자본가들은 독점을 할 수도 있고, 노동자를 탄압하기로 서로 공모할 수도 있다.
만일 국내의 모든 구두 공장을 통제하는 단 하나의 회사가 있거나
모든 공장주가 임금을 동시에 삭감하기로 짬짜미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노동자들은 더 이상 일터를 바꿈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을 것이다.
사태는 이보다 더 나쁠 수도 있다.
탐용ㄱ스러운 사장들은 노동자들의 이동의 자유를 제한할 수도 있다.
빚을 갚기 위한 노역이나 노예제도를 통해서 말이다.
한편 근대 초기 유럽 자본주의의 부흥은 대서양 노예 무역의 부흥과 함께 등장했다.
이런 재앙의 책임은 독재적인 왕이나 인종차별 이데오로기가 아니라 고삐 풀린 시장의 힘에 있었다.
유럽인은 아메리카를 정복한 뒤 금광과 은광을 개발하고 사탕수수, 담배, 면화 농장을 건설했다.
이 광산과 농장은 미국의 생산과 수출의 중추가 되었다.
사탕수수 농장은 특히 중요햇다. 중세 유럽에서 설탕은 희귀한 사치품이었다.
중동에서 터무니없는 가격에 수입되어 진미 요리나 엉터리 약에 들아가는 비밀 성분으로만 조금씩 사용되었다.
아메리카에 대규모 사탕수수 농장이 건립된 이후, 점점 더 많은 설탕이 유럽에 들어왔다.
설탕 가격은 하락했고, 유럽인들은 단것을 점점 더 좋아학 되었다.
기업가들은 엄청난 양의 단 것을 만들어 수요를 충족시켰다.
가령 케이크, 쿠키, 초콜릿, 캔디 그리고 코코아. 커피, 홍차 같은 가당 음료였다.
평군적인 영국인의 연간 설탕 섭취량은 17세기 초에는 거의 제로였지만
19세기 초가 되자 8킬로그램으로 늘었다.
하지만 사탕수수를 재배하고 거기서 설탕을 추출하는 것은 노동집약적인 사업이었다.
적도의 태양 아래 말라리아 감염 위험이 큰 사탕수수 밭에서 장시간 노동을 하려는 사람은 드물었다.
계약직 노동자는 대량소비하기에는 너무 비싼 상품이었다.
시장의 함에 민감하고 이윤에 탐욕을 부리며 경제성장을 바라는 유럽인 농장주들은 노예로 눈을 돌렸다.
16세기에서 19세기까지 약 1천만 명의 아프리카 노예가 아메리카로 수입되었다.
이 중 약 70펴센트가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했다.
노동환경은 끔찍했다. 대부분의 노예는 짧고 비참한 삶을 살았다.
그 외에도 노예를 포획하기 위한 전쟁이나
아프리카 내륙에서 아메리카 연안으로 노예들을 옮기는 과정에서 수백만 명이 추가로 사망했다.
모두가 유럽인들이 탈콤한 홍차와 캔디를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설탕 농업의 거물들이 막대한 이윤을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자행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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