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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23일 월요일 <환난과 해방과 사명,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소망의 의미>
[김용호] [오전 4:10] 굿모닝입니다~^^ 신나는 월요일~!!
안타까운 자살 기사가 또 났군요. 자살은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극단적인 방법이지요. 최후의 방법이기도 하고.... 자신이 그렇게까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존재인지에서부터 접근해야 할 듯... 결국 내일에 대한 걱정이 가장 핵심이지요. 현재의 고통보다는요. 현재의 고통이란 진통제를 맞아야 하는 육체적 고통 외에는 없다고 봅니다. 사실은 모두가 내일에 대한 걱정이거든요.
(마 6:33-34)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임지웅] [오전 5:01] 전도사님 말씀처럼 자살은 자신을 보호하는 극단적인 방법이라는데 동의합니다. 저도 그런 극단까지는 아니었
어도 그냥 내일 깨지 않았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던 시절이 있었으니까요.
[김용호] [오전 5:02] 그랬었군. 그 시간이야말로 귀한 시간이지. 모든 것을 본질적으로 성찰하게 되는 시간이거든.
[임지웅] [오전 5:03] 네. 그때는 힘들었지만 그 시간 속에서 깊은 성찰도 할 수 있었으니.^^
[김용호] [오전 5:04] 사람이 평안하면 그게 비극이지. 주님 안에서의 평안을 얻는 것을 방해하거든~ 인간의 평안이냐, 그리스도 안
에서의 평안이냐. 인간의 평안은 결국 깨어질 수밖에 없는 평안이라는 것이 함정이지.
(살전 5: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김용호] [오전 6:20] 방금 전 우리 팀의 월드컵 경기가 끝났는데 이기든 지든 월드컵 경기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세 가지 정도지
요. 열광(환희 또는 분노), 냉정, 무관심입니다. 우리가 해방이 되면 될수록 사람들을 움직이는 시스템의 매커니즘을 점점 더 깊이 통찰하게 됩니다. 여기서 모든 것을 통달했다고 하면서 세상 사람들을 비웃는 자들은 하나만 아는 자들입니다.
(고전 2:12-16)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게 되나 동시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게 된 자들입니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모습과 그 원인, 그 어리석음을 알게 되면서 동시에 그들을 위한 사명감에 불타게 되는 거지요.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워 자기 목숨(프쉬케)까지 미워하게 된 자들은 예전의 자신이 그랬듯이 자기 목숨에 모든 것을 걸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아주 잘 파악하게 됩니다. 창자까지 훤히 들여다보게 되지요.
[임지웅] [오전 6:29] 아멘.
[김용호] [오전 6:30] 그렇게 되면 이제 일할 준비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지가 분명해지기
때문이지요.
보수 기독교는 영혼 구원, 진보 기독교는 사회 정의 실현과 구제를 자신들의 주된 사명으로 꼽습니다. 형식 논리는 보수기독교가 성경의 논리와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듯이 문제는 구원이란 무엇인가에서 생기지요.
그리고 각자 자기가 본만큼 행동할 듯싶지만 사실은 보고도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요. 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우리가 비난할 일은 아닙니다. 우리가 이해해야 할 일이지요. 그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성령의 열매 마크로뒤미아까지 받은 신령한 자들은 이해한 내용을 기반으로 전략을 세우고 실천하게 됩니다. 대상에 따라 마치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면서 말이지요. 그 사람을 위해서입니다.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지요.
(고전 9:19-23)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이번 주도 주님의 교회 화이팅입니다~!! 가장 먼저 우리 자신과의 싸움에서 화이팅~!! 다음의 화이팅 대상은 우리의 이웃이지요.
이와 관련해 한 예로 현재의 우리 사회에 대한 분석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겉모습은 보수와 진보의 대립으로 보입니다. 특히 최근의 양극화 악화 때문에 더 그렇게 보입니다. 그러나 속내는 그렇지 않습니다. 빈곤층이 줄기차게 보수 세력에게 표를 주고 있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은 보수와 진보로 갈라져 있는 것이 아니고 아직도 4.19 세력과 5.16 세력, 즉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으로 갈라져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보수 안에도 민주와 세력이 있고 진보 안에도 산업화 세력이 있습니다. 각 개인조차도 이러한 네 가지 성향이 뒤섞여 있어서 사안에 따라 입장이 전광석화처럼 변합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그룹이 있고 각 개인도 수시로 다양한 성향을 내보이는데 목적과 동기는 단 하나입니다. 바로 "나의 행복"입니다. 이기적이냐 이타적이냐도 사람들의 전략적 선택일 뿐입니다.
우리의 사명은 사람들의 그 깊은 속내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나는 행복해야 한다"는 모든 인간의 절체절명의 본능을 공격해서 부수는 것이지요. 이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각 개인의 성향을 정확히 꿰뚫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람을 교묘하게 속이면서 접근할 수 있고 드디어 그 사람이 마음을 열 때 그 빈틈을 정확히 파고들어 공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구와도 충돌하지 않습니다. 누구의 편도 아니기 때문이지요. 이 세상에는 우리의 적도 없고 우리의 편도 없습니다. 민주화도 산업화도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관이 있지만 그 어느 것도 우리의 가치관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위장하고 접근해서 무너질 것 같으면 전도하고 안 무너질 것 같으면 활용합니다. 우리 삶에는 사람을 대적하는 상황이란 없습니다. 그 사람의 무의식에 있는 노예의지의 주인을 대적할 뿐입니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자의식은 사라진 엄마의 젖을 찾는 아기들의 것과 같아서 눈물 없이는 바라볼 수 없습니다.
(눅 23:33-34)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후략)
이 마음이 인간의 자유의지와 자의식을 향한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우리 안에 이 그리스도의 마음이 나날이 채워져 갈 것을 믿습니다. 화이팅~!!
[정진호] [오전 11:10] (약 4:2-3)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이 말씀이 두 번째 믿음을 가진 공동체에만 해당되는 말씀일까요 아니면 첫 번째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도 해당 될까요? 내가 좀 헷갈리는 부분이 어디냐 하면 첫 번째 믿음은 그야말로 우상숭배자와 다름 아니니 그들이 구하는 것은 그야말로 세상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인과법칙에 의해서 얻을 수도 있고 못 얻을 수도 있다고 보는데요, 그들이 구하는 것은 모든 것이 정욕을 위해 구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굳이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해서 드리는 질문입니다. 물론 그들은 자기네가 기도한 응답이라고 착각하고 있겠지만요. 즉 두 번째 믿음에 있는 자들이 수시로 첫 번째 믿음으로 내려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구하는 것을 경계하는 말씀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지 않나 해서 드리는 질문이에요.
[김용호] [오전 11:32] 야고보 사도는 예루살렘 교회에 남아서 사약하던 사도지요. 따라서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정황과 맞물려 생각
해보아야 하고 당시 초대교회의 상황과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의 기록들과 사도들의 서한들을 살펴볼 때 당시 교회는 첫 번째 믿음을 가진 자는 물론이고 심지어 유대교 전통에 묶여있는 자들, 영지주의자들까지도 섞여 있어 계속 말썽을 부리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사도들이 진리의 중심을 잘 잡고는 있었으나 문제를 일으키는 자들에 대한 설득과 때로는 출교까지 해야 했지요. 야고보 사도의 이 권면도 따라서 양육을 넘어선 출교 협박의 뉘앙스까지 느낄 수 있습니다.
[정진호] [오전 11:40] 첫 번째 믿음을 가진 자까지 포함해서 한 말씀으로 봐야 한다는 거네요.
[김용호] [오전 11:40] 예.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진호] [오전 11:40] 예를 들어 이 말씀은 지금 보수기독교인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거지요? 그들이 모두 첫 번째 믿음이라고
가정했을 때요.
[김용호] [오전 11:41] 그렇지요. 그 중에서 두 번째 믿음을 가진 사람을 배출해내야 하니까요.
[정진호] [오전 11:42] 그들 중 두 번째 믿음으로 선택되기로 예정이 되어 있는 자에게는 일단 지금 그가 구하는 것이 정욕으로 구하
는 것이 되니 이런 경우에 하나님이 그들이 구하는 것이 응답받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봐야겠지요? 왜 이런 경우 있잖아요, 뭘 해도 안 되는 경우요. 그래도 그 사람이 두 번째 믿음으로 가게 되는 경우요.
[김용호] [오전 11:44] 그렇습니다. 징계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지요. 애굽에서 이스라엘의 절망과 탄식과 환란이 양이 찰 때까지 내
버려 두셨지요.^^
[정진호] [오전 11:45] 알겠습니다.^^
[김용호] [오후 3:25] 문창극 씨가 청와대의 자진 사퇴 권유에도 불구하고 버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기사가 났군요.^^ 300만 명
이 죽은 한국전쟁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더니 사퇴 권유는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거네요.^^
[임지웅] [오후 3:27] 그런 가운데 조선일보는 특종으로 문후보의 조부가 독립유공자라고 ㅎㅎ 그럼 문후보의 조부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자가 되네요.
[김용호] [오후 3:28] 문창극씨가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기준은 결국 나에게 유리하냐, 불리하냐인 거지.
[임지웅] [오후 3:28] 탈영병은 결국 생포됐네요. 말년 병장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의문이라고들 하는데...지옥 같은 현실은 하루
도 버티기 힘든 법인데 89일인가 남았다는 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요...지금 당장이 지옥 같을 텐데요. 근데 그런 선택의 극단은 이미 기존 교인들도 매일같이 하고 있을 텐데요... 내 기도 안 들어주시면 알아서 하세요. 이런 심리나 별반 다른 게 없어 보여요.
[김용호] [오후 3:33] 절망적인 상황이냐 아니냐는 사실 객관적인 기준이 없는 셈이지. 남의 염병보다 내 고뿔이 힘든 거니까.
그나저나 그 탈영병의 앞날이 너무도 비참하겠군. 사형과 같은 가혹한 처벌은 사실 그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니라 그 외의 공동체 구성원들을 향한 것이지. 당신들도 이렇게 된다. 그러니 공동체를 해칠 생각도 말아라.
[임지웅] [오후 3:35] 네. 근데 사형의 위하효과가 별로 없다는 연구결과도 많은데 결국은 감정적 만족감, 심리적 보상감 같은 게 크
게 작용하는 게 형벌인 것 같아요.
[김용호] [오후 3:37] 흐음 만족감과 보상감이라~ 신상필벌은 세속 공동체 유지의 유일한 수단이지. 에스겔 33장의 공평논쟁이 바로
그 논쟁인거지. 이스라엘은 신상필벌을 주장하고 하나님은 기회를 주는 것을 말씀하시지. 지금 너희가 의인이 된다면 과거를 묻지 않겠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은 자기 경우라면 복음이 되겠지만 다른 사람의 경우면 악담이 됩니다. 그 말씀이 인류를 향한 복음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어렵지요. 공포 때문에요. 그래서 서구 기독교가 기회를 주기보다는 사람을 죽인 일이 많지요. 그것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복음은 모든 사람을 위해 주신 것인데 입으로는 그렇게 말할지라도 정서가 용납을 안 하니 이성도 정서를 따라가고 맙니다.
만원 버스에 매달려 억지로 올라타며 하는 말이 “기사 양반! 아, 이제 고만 좀 태웁시다.” 자기에게 기회를 준 것은 잘 한 일이고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어제도 드린 말씀이지만 그리스도의 제자에게는 적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람과 나의 차이는 내가 그 사람보다 조금 일찍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시작했다는 점뿐이니까요.
[정진호] [오후 5:16] 서기 보고서를 작성하다 보니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재림을 마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에 합당한 자로 바뀌어 가는 것을 소망하는 것이며 이것은 회개와 간구로 나타난다는 것이 새롭게 다가오네요.
[김용호] [오후 5:17] 아멘입니다. 저도 생각지 못했던 개념 정리입니다.
[정진호] [오후 5:18] 로기온이었군요.
[김용호] [오후 5:19] 예.^^ 현세 구원과 내세 구원은 결국 하나로 관통되는 개념이더군요.^^
[정진호] [오후 5:19] 우리의 관심은 현세구원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내게 구원을 위해서라도요.
[임지웅] [오후 5:19] 그러게요. 이미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 살고 있는지도... 거기에 걸 맞는 옷으로 갈아입지를 못하고 있을
뿐...
[김용호] [오후 5:19] 오~ 지웅 형제 의견 감사^^ 동의가 되는걸~!!
[정진호] [오후 5:20] 나도 동의가 되네요.
[임지웅] [오후 5:20] 집사님의 말씀을 살짝 바꾼 것뿐입니다.^^
오늘 마음에 두고 있던 교회의 한 자매와 첫 만남을 가집니다. 근데 너무 열심인 처자라 막상 약속을 잡아놓고 보니 좀 주저되네요. 그래도 화이팅하겠습니다. ㅋ
[김용호] [오후 5:22] 무조건 화이팅!
[정진호] [오후 5:22] ㅋㅋ 열심인 처자는 이미 스케치북에 그림을 다 그려 놓은 거라 그걸 수정하는데 더 힘들지도 모르니 참고하
길...
[임지웅] [오후 5:23] 네. 집사님 말씀과 같은 생각 때문에요. 여튼 일단 최선을~ 제가 아직 지정의 중 정이 부족해서 고민입니다.
[정진호] [오후 5:25] 일단 낚시질로 잡아 놓고 그동안 먹은 거 다 토하게 한 후 새 먹이로 교체하는 방법도 있긴 하지. ㅋㅋㅋ 만나면
서 검토할거는 과연 잡아 놓은 후 먹은 거 토하게 할 때 과연 토할까 하는 것을 검토해야겠지.ㅋㅋ
[임지웅] [오후 5:51] 잘되면 잘 되서 좋고 안 되면 좋은 짝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니 또 좋구... 쿨하게 생각하려 하지만 설레긴 하
네요. ㅋㅋ
[김용호] [오후 5:52] 그럼~ 그 설렘은 하나님이 주신 설렘이야. 하나님이 정하신 짝을 열심히 찾아다니라고 주신 거지.
[정진호] [오후 6:28] 그 탈영병은 사형 선고를 받게 되겠지요. 그 부모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요.
[임지웅] [오후 6:27] 충분히 사형을 받을 만한 사항입니다. 다만 우리나라는 실질적으로 사형제 폐지국가로 분류되어(97.12.30. 김
영삼 정권에서 마지막 사형 집행이 있었습니다) 실제로는 무기형을 살 확률이 높습니다. 다만 형법 제78조 제1호에 따라 30년 동안 집행이 안 되면 형의 선고가 시효완성으로 인해 그 집행이 면제됩니다. 결국 사형집행이 안되면 30년형을 살게 되는 것이지요.
[정진호] [오후 6:28] 군법회의도 그런가?
[임지웅] [오후 6:31] 네. 군형법은 군이라는 특수성이 있어서 특정한 죄목들이 추가되어 특별법 우선의 법칙에 따라 군형법이 먼저
적용되고 나머지 사항은 일반법인 형법을 따릅니다. 특별법 우선의 원칙이라고 있는데 보통 이렇게 정의되어 있습니다. '이 법에 특별히 정한 사항을 제외하고는 민사소송법에 따른다' 요런 식으로 되어 있으면 특별히 정한 사항에 해당하면 그 특별법을 없으면 일반법을 적용한다는 뜻입니다.
법이라는 게 사람들의 행동을 특정하게 유도하는 힘이 있다는 것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형사사건만 보더라도 대개는 예방적 효과보다는 사후의 처리만을 규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그에 대한 대응책이 자꾸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 현실을 암울한 미래로 표현한 영화가 마이너리티 리포트였구요. 그런데 최근 전자발찌를 개선하는데 그와 비슷한 기능을 넣으려 한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좀 우려가 됩니다. 주변의 비명소리나 그런 것들도 감지해서 통제센터에 알람을 전송한다는데..왠지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떠오르더라구요.^^
[정진호] [오후 6:40] 감옥에 가면 교도 되서 나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범죄를 배우고 나온다는데 그렇다고 죄 지은 사람을 감옥에 안
넣을 수도 없고 국가도 고민이 많겠어. 교회에서 교도소에 집회가면 하는 말이 여러분은 적발된 죄인이고 자기네는 아직 적발되지 않은 죄인이라고 말한다던데, 그러면서 예수 영접하면 모든 죄 용서해 주신다고... 진짜 자기들을 아직 적발되지 않은 죄인이라고 생각할까?
[임지웅] [오후 6:48] 경찰한테 적발되지 않은 죄인이라는 뜻으로 그런 말을 하는 듯합니다. 자기들도 뭐가 뭔지 모르는 상황에서. ㅋ
[정진호] [오후 6:49] 자기들 속이 시꺼멓다는 건 인정하는 듯하긴 한데 그 실체를 모르는 것 같아.
[임지웅] [오후 6:51] 네. 그저 세상적인 욕심이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정진호] [오후 6:51] 인간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원치 않는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으니까 맨날 하는 말이 좋으신 하나님 타령
이지. ㅋㅋ
[임지웅] [오후 10:44] 잘 마치고 귀가중입니다! 혼자생각인가? ㅋㅋ 암튼 잘 만났습니다. ㅋ
[김용호] [오전 4:33] 지웅 형제 귀가 시간을 보니 과연 신심이 깊은 자매님인가 보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