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수첩 1 | 김리리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고, 책 읽고, 사색하는 건강한 나라를 꿈꾸며……
‣ 지금 작가로서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신지요?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고, 책 읽고, 사색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어서 걱정이에요.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놀이라고 생각해요. 놀이를 통해 열정이 생겨나고, 그 열정으로 꿈을 이루기도 하고, 자신만의 인생을 구축해 가거든요. 책을 통해서는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나가지요. 타인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세상을 보는 폭도 넓어져요. 아이들에게 사색하는 시간도 꼭 필요해요. 사색을 통해서 세상에서 얻은 많은 경험과 지식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이 모든 게 사라져 가고 있어요.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 시간은 게임이 대신하고, 책을 읽고 호기심을 채우며 상상의 세계를 펼칠 시간은 스마트폰에 빼앗겨 버렸지요. 경쟁을 위해서 사색하는 시간도 사라졌어요.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든 시간표 안에서만 움직이고 있어요. 저는 이십 대부터가 진짜 자기 인생을 사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인데, 아이들은 이십 대가 되기도 전에 이미 많이 지쳐 있어요. 아이들을 위해 신나고 재밌는 이야기, 아이들에게 기운을 북돋워 주는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우리나라 현실을 보면 신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기가 어려워요. 더욱이 세월호 사건 이후에 작가들은 집단 우울증에 걸린 것 같아요. 아이들이 죽어 가는 걸 보면서도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사람들을 지켜보며 무기력함에 빠졌지요. 그 이후로 글을 쓰기가 힘들어졌어요. 열정도 사라져 버렸고요. 몸도 마음도 건강하지 못한 상태가 되어 버렸어요. 한 나라의 부패지수가 높을수록 아이들의 사망률이 높아진다고 하더라고요. 좋은 나라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나쁜 나라는 아이들을 불행하게 만들지요.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는 중요한 전환점에 와 있는 것 같아요. 뭔가 변하지 않으면 더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 아이들을 위해 나라를 바로 세우고, 아이들의 잃어버린 시간을 돌려주어야 해요.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고, 책 읽고, 사색하는 건강한 사회 속에서 동화 작가들의 좋은 작품도 많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김리리
1999년 월간 <어린이와 문학>을 통해 동화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이슬비 이야기』 시리즈, 『왕봉식, 똥파리와 친구야』, 『화장실에 사는 두꺼비』, 『검정연필 선생님』,『내 이름은 개』, 『쥐똥 선물』, 『우리는 닭살 커플』, 『만복이네 떡집』, 『나의 달타냥』, 『그 애가 나를 보고 웃다』, 『뻥이오 뻥』, 『도깨비 잡는 학교』, 청소년소설 『어떤 고백』 등이 있습니다.
작가 수첩 2 | 남은우
멈출 수 없는 여행
‣ 지금 시인으로서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십니까?
(…) 지어진 집들이야 나름 제구실을 해내겠지만 앞으로 지을 집이 문제다. 그 시인이 그 시인이고 고만고만한 삶의 패턴에 든 건 나이뿐이다. 그렇다보니 메마른 감성과 동심을 어떻게든 발동시켜 터다지기는 해 놓아야 한다는 게 지금의 심정이다. 파일 창고에 대충 던져져 있는 동시들부터 꺼내 먼지를 털어 주는 일부터 해야겠다. 목소리만 높은 이슈 동시는 이미지화와 형상화를 통한 새로운 동시들로 재창작해야 한다. 무미한 동시들은 독특한 맛을 첨가시키고 낡고 상투적인 관념들은 미련 없이 날려 보내야 한다. ‘아, 상상력…… 상상력…….’ 상상력을 얘기할 때면 주눅부터 드는 것에서도 자유롭고 싶다. 누구는 진정이 뚝뚝 묻어나는 집을 지을 것이고, 누구는 걸쭉한 입담과 재담이 넘치는 이야기 집을, 누구는 이미지들로 빛나는 집을, 누구는 배꼽 빠지는 풍자의 집으로 우릴 초대할 것이다.
세 번째 집이 꼭 동시집이 아니어도 된다. 그림책과 노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생기는 욕심이 있다. 내 마음에 쏙 드는 그림책 한 권 내고 싶다고. 고래여도 좋고 늙은 내 어머니여도 좋고 꼬마여도 좋고 강아지, 소, 염소 어떤 이야기든 재미있으면 된다지. 없는 문장 실력으로 작가 수첩을 쓰느라 살이 쪽 빠졌다. 힘들었지만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동시에 대한 모호했던 생각들을 조금이나마 정립할 수 있어 좋았다. “너, 요즘 진짜 작가 같아. 세수하는 시간까지 아까워하잖아!” 나한테 툭 던지는 칭찬이 밉지 않다. 매화나무 밑에서 코 한 번 킁킁거리지 못하고 이월이 갈까 봐 조바심치는 것도 이 밤으로 끝이다. 수첩의 빈 공간을 채웠으니 매화뿐이겠는가. 극장도 가고 바다도 가고 동시와도 실컷 놀고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들뜬 마음에 질문 하나 던지련다.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당신의 가슴 깊숙한 곳으로부터 뿌리를 뻗어 나오고 있는지 확인해 보고, 글쓰기를 그만두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할 수 있는지 자문해 보십시오. 조용한 밤중에 이렇게 스스로에게 물어보라는 말입니다. ‘나는 반드시 글을 써야만 하는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카푸스’라는 젊은 청년에게 보낸 편지에서 발췌한 글이다(『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소울메이트, 2014). 죽음도 불사 할 수 있냐는 릴케의 질문에 “예스!”라고 감히 답해본다
남은우
연어가 돌아오는 울산 태화 강변에 착륙, 강 탐험을 즐기고 있습니다. 동시집 『화성에 놀러와』가 있습니다.
작가 수첩 3 | 백승남
재미있고 울림 있고 정의로운
‣ 지금 작가로서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신지요?
고민이야 늘 가득이지요. 우리 사회가 좀 더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였으면 좋겠어요. 상식이 통하는 사회였으면 좋겠어요. 생업과 글쓰기에 바쁜 작가들이 매주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지 않아도 되는 사회였으면 좋겠고요. 그런,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작품으로나마 한몫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나는 어떤 작품을 쓸 수 있을까 늘 고민해요. 물론 고민과 결과물 사이의 간극은 우주만큼 크지만. (…) 그런데, 돌이켜보면 작품 쓰기에 집중 못하는 핑계는 늘 있었던 것도 같네요. 아이가 아파서, 내가 아파서, 몰두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 더 급한 다른 일에 밀려서 등등. 어쩌다 한 번씩 핑계가 사라지면, 창작을 위한 몸 만들기부터 끙끙거리다 좌절하며 포기. 초고 쓴 다음 수정 과정에서 달리는 에너지와 시간 부족으로 포기. 사유와 성찰 부족으로 탈고까지 못 해내고 포기…… 하는 일이 되풀이되는 동안 자존감도 떨어지고 열정도 많이 식었는데요. 동화 읽는 아이들은 자꾸 줄고 잘 팔리지도 않는데 나까지 써야 할까 싶다가도, 그래도 써야겠다는 결론이 나면 다시 고민이 이어지죠 .
어떻게 하면 창작의 설렘을 되살리고 작품 쓰기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글쓰기로 돈도 벌어 밥을 사 먹고 따듯한 옷도 사 입고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책과 멀어진 아이들도 빨려들 만한 재밌고 울림 있는 동화를 쓸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좋은 동화’를 쓸 수 있는 사유의 힘을, 인간과 세상에 대한 깊은 이해와 철학을 갖출 수 있을까. ‘압력밥솥’ 같은 내공을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다 고민입니다. 더는 핑계 뒤로 숨지 말고 좀 더 치열해져야겠다는 반성과 함께요
백승남
월간 <어린이문학>에 작품을 발표하며 동화 쓰기를 시작해 『부처를 만난 고구려왕자』, 『떠버리 무당이와 수상한 술술씨』, 『늑대 왕 핫산』, 『반지 엄마』, 『루케미아, 루미』, 『어느 날, 신이 내게 왔다』 등 동화와 청소년소설을 썼다. 지금은 수원에서 초중등 아이들과 책으로 만나고 있다.
작가 수첩 4 | 윤혜숙
콩나물시루에 물 주기
‣ 지금 작가로서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신지요?
부족한 어휘력(문장력)도 고민입니다. 이야기는 어느 정도 꼴을 갖춘것 같은데, 정작 어떤 상황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미묘한 심리와 행동을 문장으로 써야 할 때 머리로는 선명하게 그려지는데 문장으로 잘 표현되지 않는 겁니다. 부족한 문장력은 이럴 때 더욱 힘들게 합니다. 아직은 동화, 그림책, 청소년소설 등 여러 분야의 글을 써 보고 싶은데, 청소년소설 쓰다 동화 쓰려고 하면 그에 맞는 문장으로 전환되지 않아 소설인지 동화인지 이도 저도 아닐 때가 비일비재합니다. 가끔 ‘어떻게 문장력을 키울 수 있나요?’라는 예비 작가들의 질문을 받을 때마다 딱 잘라 많이 쓰는 것 이외는 방법이 없다고 말하지만, 정말 그 말이 맞기나 한 건지 자신이 없어지기도 합니다. 어쩌면 문장력에서만은 섬세하고 예민한 영혼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하고, 정확하게 쓰라!
“상투적 수식, 이야기와 상관없는 군더더기를 지우라!”
당분간은 어떤 작가의 이 충고를 모니터에 띄워 놓아야겠습니다.
집착증에 가까운 난삽한 독서도 고민입니다. 어떤 작가는 자기 글 쓸 때는 작품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다른 작가의 글은 읽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어쩐 일인지 글 쓸 때 더 책을 읽고 싶고, 읽어야겠다는 열망이 커집니다. 차라리 추리소설만, 좋아하는 작가의 책만, 글쓰기의 롤모델이 되는 책만 읽는다는 작가들을 보면 부럽습니다. 귀가 얇아 베스트셀러여서, 유명작가의 신간이어서, 누가누가 추천하는 책이니까, 글쓰기에 필요한 책이라서, 이런저런 이유를 달아 강박적으로 책을 읽습니다. 책 읽기를 끝내고 글쓰기로 돌아오면 그 책들과 내 글이 비교되면서 절망과 자괴감에 빠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고요. 언젠가 체계 없는 독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한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콩나물시루에 매일매일 빼놓지 않고 물만 줄 뿐인데, 어느 날 보면 콩나물이 시루 가득 자라 있어요. 책 읽기는 그런 겁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그렇게 위로할 수밖에요.
윤혜숙
청소년소설 『뽀이들이 온다』와 한우리청소년문학상을 받은 『밤의 화사들』을 썼고, 청소년 테마소설집 『여섯 개의 배낭』을 함께 썼으며 장편 동화 『나는 인도 김씨 김수로』, 『기적을 불러 온 타자기』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