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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풀의 하이눈 영화 게시물을 보고 옛날에 썼던 글을 올려본다. (최광식) |
일본 야쿠자와 영화 '하이눈'
일본은 곳곳에 심지어는 주택가 가까운 데에도 밤새도록 불 환하게 밝힌 빠칭코점이 있습니다. 넓은 게임장에는 아저씨, 아줌마, 젊은 여성들까지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빠칭코기계 앞에 앉아있지요. 나는 일본에 머무르는 동안 저녁 시간에 동료들과 함께 가끔 그 곳엘 갔었습니다.
우선 천엔으로 쇠구슬을 바꾼 후 투입구에 한알씩을 넣고 레버를 당겨서 구슬이 굴러 나와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천천히 즐기지요. 잘 들어가면 투투거리는 소리와 함께 구슬들이 아래로 빠져나오는데 대부분의 경우 구슬이 다 없어지고 난 후에야 그곳을 나오게 됩니다. 모든 도박성 오락이 그렇듯이 이 빠칭코는 결국 손님이 돈을 잃게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머니가 가벼운 우리 여행자는 천엔 또는 이천엔어치만 한다는 원칙을 미리 정하고 구슬을 하나씩 넣어서 게임을 함으로써 최대한도로 게임 시간을 늘여서 즐기곤 했지요. 그러나 그곳을 나올 때는 항상 약간씩 허탈하고 씁쓸하였습니다.
일본 동경에서 약 2주간 나는 요요기 우에하라라는 곳에 머물렀었습니다. 어느 토요일 오후에 동경 시내엘 나갔다가 오면서 상가표시를 한 집을 지났는데, 그 집 앞에는 머리를 짧게 깎고 검은 양복을 입은 덩치 큰 남자들 대여섯 명이 영화의 한 장면에서 처럼 도열해 서있었지요. 안내하던 일본인 마사오 오노상이 나에게 그것이 야쿠자 보스의 집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일본의 빠찡코점을 대부분 운영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지요.
야쿠자... 나는 어릴 때부터 일본의 야쿠자에 대해서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빠찡코나 술집 등의 사업을 하면서 필요하면 폭력을 쓴다고 합니다. 요즈음엔 과거의 폭력조직의 이미지를 벗고 기업형으로 변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하지요. 그런데... 왜 일본 정부는 그것들을 완전히 없애지 못하는 것일까요? 어릴 때 나는 그것이 몹시 궁금했습니다.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바로 없앨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하면서 말이지요.
미국의 마피아나 우리 나라의 폭력조직의 역사도 유구합니다. 정부는 그러나 그걸 완전히 없애지 못하였지요. 왜 우리사회에서, 그리고 선진국에서조차 폭력을 사용하는 집단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인가?
폭력이 존재하는 이유는 ... 그것이 쾌감을 수반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폭력은 그것을 당하는 사람에게는 공포심과 피해를 주지만 그것을 행사하는 사람에게는 쾌감을 줍니다. 그리고 폭력을 당하는 사람 역시 그 아랫사람에게 다른 폭력을 행사할때는 쾌감을 느끼지요. 폭력에 존재하는 쾌감... 그것은 왜 학교사회에서 소위 이지메가 존재하는지, 대학생 사회에서 동아리 가입 신고식이라는 게 일부 집단괴롭힘의 성격을 띠고 있는지를 설명합니다.
동물사회는 폭력의 지배체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시인류사회도 그러하였지요. 그것은 부도덕한 것도 나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그 사회에서 그 나름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지요. 인간의 경우는 사회가 발전하면서 개별적인 폭력을 금지하고 지배집단이 그것을 독점하여 선택적으로 행사하는 체제로 바뀌어 온 것입니다.
질서유지를 위해서 국가의 제도적 폭력이 적절하게, 신속하게 행사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사적인 폭력이 나타납니다. 인간들은 이러한 사적인 폭력에 대해 향수가 있지요. 의적의 등장... 로빈후드나 임꺽정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슈퍼맨과 배트맨이 그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선량한 사람 또는 연약하고 아름다운 여자가 악당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영화의 한 장면... 대개 경찰은 그 자리에 없거나 있어도 무력합니다. 위기가 극에 달하고 긴장이 고조되었을때 홀연히 나타나는 슈퍼맨... 그가 멋지게 악당을 처치할 때 사람들은 쾌감을 느낍니다.
또한 사회적으로 자기집단의 명분과 이익보호를 위해 폭력은 사적으로 고용되고 행사됩니다. 소설가 살만 루시디가 악마의 시(Satanic verses)를 썼을 때 회교지도자 호메이니는 그를 죽이라고 공개적으로 명령하였습니다. 루시디는 지금까지도 피신하여 다니는 신세이지요. 과거 기독교는 그 교리에 근거하여 십자군원정이라는 폭력을 행사하였고 중세에는 마녀사냥이라는 것도 있었습니다. 얼마전 바오로교황이 그 동안 기독교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사과한다는 공식 메시지까지 발표하였지요.
우리는 이미 수 차례에 걸쳐 불교승려들의 폭력사태도 목격하였습니다. 정치집단이 폭력과 손잡는 것도 보았지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모두들 자신은 정당한데 상대방이 폭력적으로 나오므로 그것에 대응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폭력을 행사하였다는 것입니다. 폭력의 제어를 위하여 폭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 국가 역시 폭력조직의 통제를 위해서 공권력을 사용하는 것이지요.
토플러는 권력이 무력에서 경제력으로 그리고 다시 정보와 지식으로 이동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물리적인 폭력으로부터 권력은 떠났지만 폭력집단은 인간 사회에서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에는... 끊임없이 수요자가 있기 때문이지요.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은 물리적 폭력에 무력합니다. 팔에 문신을 새기고 얼굴에 칼자욱이 있는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람이 눈을 부라리는 것만으로 우리는 공포심을 느끼지요. 그러나... 그런 어깨들과 함께 나이트클럽에 들러서 모두들 굽실거리는 모습을 보면 괜히 으쓱해지고 쾌감을 느낄 것입니다. '예 형님' 하고 한쪽 팔과 어깨를 내리는 제스츄어의 코미디 프로는 이러한 것들에 대한 향수를 반영합니다.
폭력과 그것에 무력한 대다수 사람들을 등장시켜 관객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영화 '하이눈'이 생각납니다. 게리 쿠퍼가 주연한 흑백영화... 그레이스 케리가 이지적이고 청초한 마스크로 등장하였던 영화였지요. 그 영화는 악당들의 폭력과 그것에 무력한 마을사람들과 보안관 사이에서 일어나는 몇 시간의 갈등을 보여줍니다. 관객들은 방관자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이 바로 보안관인 게리 쿠퍼가 됩니다. 그리고 이어서 영화속의 마을사람들과 자신들을 동일화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재깍거리는 벽시계 바늘과 함께 초조하게 그 결말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지요.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힘을 모으면 4명의 악당들을 물리칠 수 있다는 걸 압니다. 그러나 교회당에서 마을 사람들이 격론을 벌인 결과... 마을의 남자들은 보안관 혼자 만을 4명의 악당들에게 등을 떠밀어 넣게 되지요. 이 영화를 보고 사람들은 마을 남자들의 비겁함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부끄러움과 괴로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 영화는 그 고통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하얀 대낮... 결투가 진행되는 가운데 마을 남자들은 집안에 숨어서 거리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게리 쿠퍼와 그의 아내 그레이스 케리는 그들의 힘만으로 4명의 악당을 물리칩니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남편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종교적인 이유로 혐오하던 살인을 하게 되지요. 악당들을 처치한 후에서야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그들이 보는 가운데 고을을 떠나면서 말없이 가슴으로부터 떼어 땅에 던지는 보안관 배지... 관객은 그의 행위에 후련해 합니다. 웅성대며 불어나는 마을 남자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들을 경멸하지요.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불편합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그 마을 사람들이 바로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닮고 있기 때문이지요.
게리 쿠퍼가 어떻게 혼자서 그 4명의 악당과 대적할 수 있었을까요. 나는 그가 용기 있는 자 였다기 보다는 그 악당을 해결하는 문제가 피할 수 없는 그의 일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그의 임기가 끝났기 때문에 그냥 마을을 떠날 수도 있었다고 말하지는 마십시오. 그의 의식으로는 그것은 보안관인 그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두려움 속에서도 그곳에 남았습니다. 그가 4명의 악당이 휘두르는 폭력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의 굳은 표정에서 두려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아마 그는... 처절하게 고독하고 두려웠을 것입니다. 싸움을 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그들도 싸움할 때는 두려움을 느낀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또한 소위 집단행동의 딜렘마(collective action dilemma) 이야기 이기도 합니다. 각각의 사람들이 모두 원하는 공공이익을 정작 그들이 모인 집단에서는 달성하지 못하는 이 딜레마...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면서 거리에 나서지 못하고 집안에 숨어서 한없이 작아지던 사내들의 고통과 부끄러움을 읽을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폭력은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가장들도 폭력이 두려웠지요. 그리고 내가 먼저 나서서 악당들에 대항하다가 희생되면 나의 가족들은 어떻게 되나 하는 생각들이 가장의 머리 속을 스쳐지나갔을 것입니다.
가족들은... 그러한 아버지나 아저씨 오빠들을 경멸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언제나 대부분의 우리들은 영화 하이눈에서 폭력이 두려워 집 속에 숨어있던 마을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선가 폭력이 행사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박두진 시인이 노래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과 노는' 그 세상은 없음을 압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할 일은... 공권력이 좀 더 공정하고 정교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행사될 것을 기대하는 정도일까요? 그것으로는 부족한 것이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슈퍼맨의 꿈을 꾸고 아놀드 슈왈제네거나 람보의 영화를 보며 그리고 로빈후드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최광식 블로그 http://blog.daum.net/mymonte
첫댓글 잘 읽었음다. 게시한 살람이 본인이 아니라 유암화명(김도균)님임다.
그러네. 윤풀이 아니라... 나이가 오십중반에 들어서니 깜빡깜빡한다. 산궁코 수진한 곳에 들어서서 길을 잃지 않았나 걱정했더니 유암하고 화명한 마을이 또 하나 나타나더라 하며 설명하시던 국어선생님 (한창룡선생님인가?) 생각이 난다. 그리고 어디에 우일촌 이란 중국집이 있다고 하시던 생각도 난다. 김도균 군이 유암화명이구나. 버드나무 그늘이 짙고 꽃색으로 밝은 마을... 유암화명에게 최광식이 안부 전한다.
유암화명 server for music, image etc 유암화명의 또 다른 닉네임이 우일촌임다. 옆 블로그에 들어가 보게나.. http://blog.daum.net/kmdkkmdk
윤풀님 이미 들어가 봤다. 의젓한 의사선생님 사진이 있고 닉이 우일촌 이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