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교수는 문제의 본질적인 면보다 행정의 공급력을 강조하더군요.
스웨덴은 기초적인 복지체계가 단단한 나라라고 알고 있는데 그런 나라와 현재의 우리를 비교하는 게 좀 이상하군요..
우리와 같이 산업구조가 격변하고 고용시장이 불안정하면서도 불로소득에 대한 세금징수가 빈약한 사회에서는
이런 재난에 대응해서는 적은 액수일지도 일률적인 지급이 효과가 크지요.. 미국이 기축통화국이라서 또 홍콩이 현금보유액이 많아서 이런 지급을 하는게 아닙니다. 격변하는 경제환경을 행정측이 세밀하게 판별해서 고른 혜택을 주기가 어려워서이지요.
더 큰 문제는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 있습니다.
선별적 시혜는 개개인이 자신의 가난을 입증해야 하는 심리적 트라우마를 거치지 않으면 안됩니다. 가난한 예술인이 왜 자살을 선택하나요?
재정사용권을 행정측이 독점해서는 안되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세상이 복잡해진 만큼 재정사용권의 원래 주인인 국민도 그 권한을 일부라도 누리도록 하는 게 이치에 맞는 것입니다.
첫댓글 https://m.news1.kr/articles/?3884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