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생활지도 서비스가
모바일에서는 어떻게 된건지
고정된 화면 외에는 이동, 확대등의 기능이 전혀 안돼
데스크탑 모니터 화면을 찍으서 사진의 화질이 다소가 떨어짐이 아쉽습니다.
(사진 왼 쪽에 성남국민학교)
(사진 오른 쪽 위가 자성대)-(1975년)
초량에서 이사와 저희가 세들어 살았던 첫 집은 빨간 색이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2층의 단칸방...
유일한 출입구는
상당히 경사진 나무(?)로 만든 일종의 사다리급 계단이었죠.
(계단 폭이 좀 좁아서 위험)
이 계단을 길이 5미터 정도 올라가야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오르락 내리락 하는게 겁이 났었지만 어느 정도 적응하고나니
다닐만 했네요.
다닐만하니 방심이 사고를 부른다고
다치지는 않았지만 괜찮거니 하며
무의식적으로 딛다가
"미끄덩~"
그 후로 조심해서 다녔죠
근데 조심한다고 해도
비가 내리는게 문제였습니다.
비만 오면 특히 미끄러워 조심해도 위험했습니다.
비가 안와도 누가 물묻은 신발로 계단에 흔적을 남기면
그 사실을 모르고 내려갔다간 큰 일이 날 수도 있었죠.
그 만큼 미끄러웠습니다.
이 집 주인집의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중풍이 들어 나무 지팡이를 짓고 겨우 한 발짝 뗄 수 있는 아주 좋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몸이 유달시리 벌벌 떨어대었죠.
제가 어릴 적 좀 많이 별낫긴 했지만 무슨 이유인가는 몰라도
저를 많이 구박했었습니다.
제가 보이면 머리를 지팡이로 때렸죠.
그래서 한 대 맞은 이후로는
거의 걷질 못하니 거리를 두거나
아님 먼거리에서 생~달려서 대문을 나가거나 대문을 들어와서 계단으로 올라가곤 했었죠.
아무리 꼬맹이(이 때가 5~6세 정도)라도 걷는 속도는 ~~~제가 더~~
수 년간의 초미니 단칸방 2층 생활을 마감하고
하늘 색이 보이는 대로가 접한 2층으로 이사를 했었습니다.
여기는 2층 단칸방이긴해도
복도를 사이에 두고 맞은 편 작은 공간에 방과 분리된 곳이 있었는데
지금의 아파트 주방과 욕실을 겸비한 별도의 공간을 사용할 수 있었죠. 기존에 비해 많이(?)나아진거죠...그래봐야
극빈자 계층이긴 마찬가지였지만요.
아뭏든 새로 옮긴 곳에서도 많은 추억이 있습니다.
이 집 구조가 특이했죠.
2층에는 우리 포함 3~4집이 있었는데 2층으로 오르는 2미터 정도의 계단을 오르면
저녁에 외부의 침입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시설이 되어있었습니다.
계단만큼 뚫린 부분을 정첩으로 연결하여두고 나무로 덮거나 열 수 있게 되어있었죠.
덮고나서 오도시(?)로 잠굴 수 있는 시건장치도 있었구요.
하늘 색 부분을 확대해 보시면 오른 쪽으로 시커먼 부분은 마당입니다
마당에서 2시 방향의 정사각형 집이 주인이 사는 단층 주택이죠.
주인집 따님이 있었는데
이름이 "복자"였습니다.(性은 모르겠네요)
그 누나와는 저랑은 나이 차이가 많았는데 10년 이상이었던걸로 기억됩니다.
저를 많이 이쁘해주셨죠.
설날, 추석의 명절이 되면
세배돈 타러 주인집으로 가서 인사한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저희가 세들어 살든 2층 주택이 TV에 한번 생중계로 잠깐 나왔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해가 올림픽이 있었던 1976년이었을겁니다.
우리나라의 첫 금메달을 딴
양정모 선수를 기념하고 홍보차
부산지역의 주요 도로를 카퍼레이더 하면서 생중계로 방송했죠.
집에는 라디오밖에 없어~~~
TV있는 집에가서 꼽사리 끼여보니
주만간산 격으로 오바브릿지 지나자마자 1초정도 보이더군요...ㅎㅎ
이 주택은 주변 확장 공사를 하며
제 기억이 맞다면 2차례에 걸친 확장으로 인해 2차 때 사라졌습니다.
노란 색이 있는 곳은 1~2살 아래의 동네 동생이 살던 곳으로
성남국민학교 소사를 하시던 아버지를 둔 동생이었습니다.
ㄴ자 모양
여기가 성남국민학교 학생수가 너무 많았을 때 본교와 떨어진 학교 교사로 알고 있습니다.
교사 옆으로 제법 작지않은 공터가 있는데 초미니 급의 운동장 역활을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여기의 동네 친구, 형, 동생이랑
편을 갈라 미니 축구 많이 했었답니다.
이 곳 외에도 자성대 쪽에 학교 교사가 더 오래 전에는 있었던 모양이던데
저의 어린 시절엔 접하지 않은 부분이라 더 자세한건 모릅니다.
파란 색의 집은
저의 형님 친구 분의 아버지 집입니다.
그 형의 이름은 "호철"이었던거 같습니다. 몇 년 전까지는 확실히 알았는데 지금은 가물가문하네요.
친형에게 물어보면 당연히 알고 있겠죠...ㅎ
아뭏든 이 집은 마당에 작은 인공 연못(?)이 있을 정도의 수준이었는데
형이랑 당시 단짝이라 수시로 드나들 수 있는 빽이었기에 너무 좋았었지요.
아이보리 비슷한 색이 있는 사진 오른 쪽은
정확치는 않지만 저 집이거나
좌우 1집 정도에 제법 규모있게하는 사설 과외집이 있었습니다.
여자 선생님이었고 그 분 아들분은
희귀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머리가 큰~~
상당히 규모있게 잘 운영했었는데
전두환 정권들어 서면서
과외금지령이 시행되어 한 순간에
경제력을 상실하게 되었죠.
저 집에서 과외받은것이 2년 정도는 됩니다.
과외집과 함께 있는 주인인듯한 집은
어슬프게 뭔가 장사를 했었던거 같은데 종목은 기억나질 않습니다.
항상 안 쪽엔 어두컴컴해서~~
또래 과외 친구들이랑은
일찍 오는 경우는 지금의 영가대를 지어놓은 곳에서 많이 놀았죠.
영가대 부근의 2미터 정도 되는 옹벽에서 뛰어내리기도 하고...
영가대 쪽 쇠창살 사이를 들어갔다 나왔다 하기도 했죠.
쇠창살 한군데가 눈에 차이가 안보일 정도 조금 더 벌어진 곳이 있었거든요.
거기는 아는 친구들만 들어갔다 나왔다...
한번은 처음 과외온 친구랑 노는데
우리가 잡힐듯하면 쏙~들어가는데
그 친구 그 쇠창살 위치를 처음이니 당연히 몰라서
어떻게 된건지 몰라 눈 앞에서 당황해하던 모습이 어제같이 떠오릅니다 ...
그런 술래잡기 놀이, 다망구...오징어달구지 참 많이 했었네요.
오랜만에 부산생활지도 보면서
옛 추억이 떠오르길래 몇 자 적었습니다...^^~
첫댓글 초미니 단칸방 빨간색 점 집은 좌측으로 길이 뚫리면서 기형적으로 좁은 건물이 되었네요..^^
3~4년 전 쯤에 갔을 때 저 집 쯤이겠다 싶은 주택이 있었으나
님의 말씀처럼 왼 쪽으로 새 길이 나서 그런가 딱 이 집이다 할만한 것이 보이질 않더군요.
집 오른 쪽 골목으로는
길쭉하게 막힌 골목이 있었습니다...ㅎ
첫번째 집의 계단은 이런 모양이 아닐까요? 진해 일본가옥의 2층 출입구 계단입니다~
대충 그림 1장을 그려봤습니다.
완전 외부에 노출되어 있었죠
그림 제일 아래 쪽에 누구나 드나드는 문이 있었고(동 쪽) 그림 오른 쪽에
주인집이 있었죠.
올라가는 각도가 45~55도는 됐을거 같습니다.
@화기치상 2층인데 계단이 5미터라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정말 큰 구조물이었네요!
@재규어
추가로 세를 내기 위해서
저렇게 노출형 계단을 만들었다고 생각됩니다.
계단 폭이 비교적 좁아 항상 조심해야 했죠...^^`
재규어님께서 댓글에 달아주신 사진에 나와있는 모습은 2번 째 이사한 집의 모습과 유사합니다.
계단을 다 올라가면 유사시 계단이 보이는 직사각형의 빈 공간을 나무로 덮어 닫을 수 있는 장치가 있었습니다...ㅎ
@화기치상 신기한 구조였네요~ 옛날에는 특이한 구조의 집들이 종종 있었던것 같습니다. 70년대에 친구가 다가구 주택에 살았는데 2층 건물의 한 가운데에 높은 천장이 있는 마당이 있고 그 둘레로 여러채의 집이 있었던게 참 특이했습니다 ㅎ
@재규어 재규어님의 사례가 저보다도 더 특이하네요.
소개하신 스타일을 본 적이 없어
지금도 남아있는 곳이 있다면 꼭 구경하러 가고 싶습니다...^^~
@화기치상 검색해보니 지금은 부전동 마크 1 타워가 되어있네요. 고공출사에서도 몇번 찍으신 빌딩자리. 십수년전만 해도 외관이 남아있었던 기억인데 아쉽네요~
국민학교 소사라고 말씀하신부분에서 싱끗 웃었습니다~
지금은 사실상 사라진 용어 아닌가 싶습니다.
7080세대 정도는 되야 알아들을 수 있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