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살다간 불멸의 여인들 50인 세계 역사속에서 이름을 빛냈거나 혹은 악명을 떨쳤던, 그 이름만 들어도 드라마틱한 삶의 순간순간을가슴으로 느끼게끔 만드는 정열적인 여인들 50인을 선정해 보았습니다.
Hatshepsut, Egypt BC1482?) 고대이집트 제18왕조 제5대의 ? 나이어린 조카 투트모 3세와 22년간 이집트를 공동통치하였다. 시나이광산의 채굴과 교역을 위하여 푼트원정을 감행하였고 다이르알바흐리의 장제전과 높이 30m의 오벨리스크를 세다.
달기
중국 상나라 마지막 왕인 주왕의 비. 중국 역사상 가장 음란하고 잔인한 독부의 대명사로 '주지육림'이란 말은 연못을 술로 채우고 고기를 숲처럼 매달아 놓고 즐기던 달기의 방탕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에서 나왔다.
구리기둥에 기름을 발라 숯불 위에 걸쳐 놓고 죄인을 그 위로 걷게 하여
미끄러져 타 죽게 하는 포락의 형이나 죄수들을 독사와 전갈이 가득찬 구덩이에 집어넣는 돈분의 형을 웃으며 즐겼다고 한다.
C 貂蟬 중화4대미녀중 한명. 한의 노신 왕윤의 양녀로 '달이 부끄러워 얼굴을 가린다'라고 하였다. 연환계로서 조정의 권력을 장악한 동탁과 그의 양자 여포의 사이를 이간질시켜 결국 여포로 하여금
동탁을 죽이게 만든다.삼국지연의에 등장하나 정사 삼국지에는 등장하지 않으므로 실존인물은 아니다. 정사에서는 여포가 동탁의 시녀와 염문을 가져서 동탁이 알까 두려워 했다고 나올 뿐.
則天武后, 당:624~705 중화역사상 유일무이한 여성황제. 고종의 황후가 된 후 고종을 대신해 정무를 맡아 권력을 장악하였으며, 자신의 아들들을 차례차례 즉위시키며 섭정을 하였다. 고종사후 반대파들을 숙청한 무후는 국호를 주로 고치고 마침내 스스로 황제에 올랐다. 제위기간동안 대내적으로는 공포정치를 실시했으나 백성들의 생활은 안정되어 그녀의 통치기를 '무주의 치'라고 불리우며, 이후 당의 전성기인 현종때의 '개원의 치'의 기초를 마련했다.
楊貴妃, 당:719~756 중화4대미녀중 한명으로 본명은 양옥환, 당나라 현종의 비이다. 절세미인으로 현종의 총애를 받아 황후와 다름없는 대우를 받았으나 안녹산의 난때 양국충과 함께 살해당했다. 후대에 수많은 문인들의 소잿거리가 되었다.
Jeanne d'Arc, France1412~1431 영국과의 백년전쟁 말기 위기에 빠진 프랑스를 구해낸 영웅. 신의 계시를 듣고 출정하여 오를레앙을 해방시키고, 각지에서 영국군을 무찌르고 랭스에서 샤를7세를 즉위시켰다. 부르고 뉴파에게 사로잡혀 마녀로 재판되어 화형당했는데, 이후 샤를7세는 유죄판결을 파기하여 명예를 회복시켰고 1920년 카톨릭교회에서는 그녀를 성녀로 시성하였다.
申師任堂, 조선:1504~1551 율곡의 어머니로서 현모양처의 대명사. 여성의 사회진출이 거의 불가능했던 조선사회에서 빛나는 예술적 업적을 이루었다. 시문과 그림에 뛰어나 여려편의 한시를 남겼고, 안견의 영향을 받은 화풍으로 한국 최고의 여류화가로 평가된다.
Elizabeth I, England 1533~1603 영국 절대주의의 전성기를 이끈 위대한 여왕. 동인도회사를 설립하며 세계에 식민지를 건설했으며 종교통일을 추진하고 상업을 장려하고 빈민을 구제하였으며 문학의 황금시대가 도래하여 셰익스피어, 스펜서, 베이컨 등의 문인이 속출하였다. '짐은 영국과 결혼하였다' 하여 평생 처녀로 살았다.
Mary Stuart, Scotland 1542~1587 왕관을 쓴 갓난아기. 프랑스의 프랑수아 2세와 결혼했으나 1년만에 남편이 죽고 스코틀랜드로 귀환. 앵글리컨처치와 카톨릭의 싸움속에서 잉글랜드의 왕권을 위협하는 카톨릭교도라는 이유로 처형당했다.
お市, Japan 1547~1583 당대의 빼어난 미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여동생. 나가마사와 동맹을 위한 정략결혼을 하지만, 후에 노부나가가 이 동맹을 깨면서 전쟁에서 남편과 아들을 잃고, 오다 가로 되돌아 온 오이치는 시바타 가쓰이에와 재혼했다. 노부나가 사후 그의 후계 문제로 히데요시와 대립하다 결국 패배, 남편과 함께 자결했으니 그녀 나이 37세였다.
Maria Theresia, Austria 1717~1780 합스부르크 공국의 여제. 오스트리아 계승전쟁중 남편 프란츠1세를 황제로 세워 공동통치했으나 실권은 그녀에게 있었다. 남편의 사망후에는 아들 요제프2세와 공동통 치했다. 정치적 능력이 뛰어났으며 부역의 경감, 수도원영지의 몰수, 교육제도의 개혁 등에 성과를 거두었다. 마리 앙뚜아네뜨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Madame de Pompadour, France 1721~1764 프랑스 왕 루이15세의 총희. 빼어난 미모와 재능으로 국왕의 사랑을 받았으며 막대한 국비를 낭비하여 후에 프랑스혁명의 원인을 제공했다. 하지만 백과사전 편찬 사업을 지원하고 로코코 양식을 유행시킨 업적도 있다.
Ekaterina II:프로이센:1729~1796 러시아의 여제. 표토르 3세에게 출가한 뒤 스스로 남편을 폐위시키고 제위에 올라 대제라 불렀다. 법치주의의 원칙을 도입함과 동시에 귀족들과 협력체제를 강화하였으며 영토를 크게 확대하고 농노제를 확장하였다.
Marie Antoinette, Austria 1755~1793 오스트리아의 공주로 루이 16세와 정략결혼. 프랑스의 왕비가 되어 궁정에서 사치에 몰두하다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녀가 처형될 당시 금발의 윤기나는 머리카락은 공포심때문에 푸석푸석한 백발로 변해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