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6-⑦ 甫田四章(보전4장)
(1장)倬彼甫田에 歲取十千이로다 我取其陳하여 食我農人하니 自古有年이로다 今適南畝하니 或耘或耔에 黍稷薿薿어늘 攸介攸止에 烝我髦士로다
(탁피보전에 세취십천이로다 아취기진하여 사아농인하니 자고유년이로다 금적남묘하니 혹운혹자에 서직의의어늘 유개유지에 증아모사로다 賦也라)
훤히 트인 저 큰 밭에 해마다 십천을 취하도다. 내가 그 묵은 곡식을 취하여 우리 농부를 먹이니 예로부터 풍년이로다. 이제 남쪽 둑에 농사를 지으러 가니 혹 김매고 혹 북돋움에 찰기장과 메기장이 무성히 자라거늘 크는 바와 쉬는 바에 우리 준수한 선비들이 나오도다.
田地因反 千倉新反 年泥因反 畝滿彼反 耔獎里反 薿 우거질 의, 무성할 의 髦 빼어날 모
○賦也라 倬은 明貌라 甫는 大也라 十千은 謂一成之田이니 地方十里라 爲田九萬畝하여 而以其萬畝로 爲公田하니 盖九一之法也라 我는 食祿主祭之人也라 陳은 舊粟也라 農人은 私百畝而養公田者也라 有年은 豊年也라 適은 往也라 耘은 除草也라 耔는 雝本也라 蓋后稷이 爲田一畝三畎 廣尺深尺이오 而播種於其中하여 苗葉以上이어든 稍耨壟草하고 因壝其土하여 以附苗根하고 壟盡畎平이면 則根深而能風與旱也라 薿는 茂盛貌라 介는 大요 烝은 進이라 髦는 俊也니 俊士는 秀民也라 古者에 士出於農하고 而工商은 不與焉하니 管仲曰農之子 恒爲農하여 野處而不暱하니 其秀民之能爲士者 必足賴也일새라하니 卽謂此也라 ○此詩는 述公卿有田祿者 力於農事하여 以奉方社田祖之祭라 故로 言於此大田에 歲取萬畝之入하여 以爲祿食하고 及其積之久而有餘면 則又存其新而散其舊하여 以食農人하니 補不足助不給也라하니 蓋以自古有年일새 是以로 陳陳相因하여 所積如此라 然이나 其用之之節이 又合宜而有序如此하니 所以粟雖甚多나 而無紅腐不可食之患也라 又言自古로 旣有年矣이라 今適南畝하여 農人이 方且或耘或耔而其黍稷이 又已茂盛이면 則是又將復有年矣라 故로 於其所美大止息之處에 進我髦士而勞之也라하니라
○부라. 탁은 밝은 모양이라. 보는 큼이라. 십천(만)은 1성의 밭을 이름이니 지방 십 리라(地方一里爲井이오 井十爲通이오 通十爲成이니 成은 方十里라). 밭 9만 묘를 만들어 그 만 묘로 공전을 삼으니 대개 9분의 1의 세법이라. 아는 녹을 먹으면서 제사를 맡은 사람이라. 진은 묵은 곡식이라. 농인은 사전 1백묘에 공전을 맡은 자라. 유년은 풍년이라. 적은 감이라. 운은 풀을 제거함이라. 자는 뿌리를 북돋움이라. 대개 후직이 밭을 만듦에 한 둑에 밭고랑 셋을 하니 넓이 한 자에 깊이 한 자이고, 그 속에 파종하여 싹과 잎이 커 올라가면 점점 두둑의 풀을 김매주고 인하여 그 흙을 북돋아서 싹의 뿌리에 덮어주고 둑이 다하여 고랑이 평평해지면 뿌리가 깊어져 바람과 가뭄을 견디느니라. 의는 무성한 모양이라. 개는 큼이고, 증은 올라감이라. 모는 뛰어남이니 준사는 준수한 백성이라. 옛적에 선비가 농부에서 나왔고 공상은 참여하지 못했으니, (『國語』 齊語에서) 관중이 “농부의 자식은 항상 농사를 위하여 들에 거처하여 사사롭게 친하지 아니하여 그 수민의 능한 자 가운데 선비가 된 자는 틀림없이 충분히 힘입었기 때문이라(농민 가운데에서 선비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늘 들판에 거처하면서 누구와 친하게 어울리거나 아첨하지 않고 열심히 농사를 지으면서 자연의 이치를 깨우쳤다는 뜻).”고 하니, 곧 이를 이름이라. ○이 시는 공경으로 전록을 둔 자가 농사에 힘써서 방사와 전조의 제사를 받들었음을 기술함이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이 큰 밭에서 해마다 만 묘의 수입을 취하여 녹미(祿米)으로 삼고, 그 쌓임이 오래되었는데도 남음이 있으면 그 새 것을 보관하고 그 묵은 것을 흩어서 농부들을 먹이니 부족함을 보충해주고 넉넉하지 못함을 도와준다.’고 하니, 대개 예로부터 풍년이기 때문에 이로써 묵고 묵음이 서로 인하여 쌓인 바가 이와 같음이라. 그러나 그 씀의 절도가 또한 마땅함에 합하고 차례가 있음이 이와 같으니 이로써 곡식이 비록 매우 많은 바이나 붉게 썩어 가히 먹을 수 없는 근심이 없음이라. 또 말하기를, ‘예로부터 이미 풍년이라. 이제 남쪽 이랑에 가서 농부들이 바야흐로 혹 김매고 혹 북돋아서 그 곡식이 또한 이미 무성해지면 이 또한 장차 다시 풍년이라. 그러므로 그 아름답고 크며 그쳐 쉬는 곳에서 우리 준수한 선비들이 나와서 위로한다.’고 하니라.
雝 화할 옹, ‘북돋울 옹’ 壟 언덕 농, 밭이랑 농 壝 토담 유, ‘북돋을 유’
(2장)以我齊明과 與我犧羊으로 以社以方하니 我田旣臧이 農夫之慶이로다 琴瑟擊鼓하여 以御田祖하여 以祈甘雨하니 以介我稷黍하여 以穀我士女로다
(이아자명과 여아희양으로 이사이방하니 아전기장이 농부지경이로다 금슬격고하여 이아전조하여 이기감우하니 이개아직서하여 이곡아사녀로다 賦也라)
우리 기장과 우리 희생양으로 사직에 제사하며 사방 신에게 제사하니 우리 밭이 이미 좋음이 농부의 복이로다. 금슬을 뜯으며 북을 쳐서 전조를 맞이하여 단비를 기원하니 이로써 우리 메기장과 찰기장을 잘 키워 우리 젊은 남녀들을 기르리로다.
齊 ‘기장 자’ 明謨郞反 慶祛羊反 御 ‘맞이할 아’
○賦也라 齊는 與粢로 同이라 曲禮曰稷曰明粢라하니 此言齊明은 便文以協韻耳라 犧羊은 純色之羊也라 社는 后土也니 以句龍氏로 配라 方은 秋祭四方하여 報成萬物이니 周禮에 所謂羅弊獻禽하여 以祀祊이 是也라 臧은 善이오 慶은 福이오 御는 迎也라 田祖는 先嗇也니 謂始耕田者니 卽神農也라 周禮籥章은 凡國이 祈年于田祖에 則吹豳雅하고 擊土鼓하여 以樂田畯이 是也라 穀은 養也요 又曰善也라 言倉廩實而知禮節也라 ○言奉其齊盛犧牲하여 以祭方社하고 而曰我田之所以善者는 非我之所能致也요 乃賴農夫之福而致之耳라 又作樂하여 以祭田祖하여 而祈雨하니 庶有以大其稷黍하여 而養其民人也라
○부라. 자는 ‘기장 자’와 같음이라. (『예기』) 곡례에 “직을 명자라.” 하니, 여기에서 자명이라고 함은 문득 글자로써 운을 맞춤이라. 희양은 순색의 양이라. 사는 후토이니, 구룡씨로 배향함이라. 방은 가을에 사방 신에게 제사를 지내 만물을 이루게 했음을 보답함이니, 『주례』(夏官司馬편)에 이른바 “그물이 떨어져서 새를 바쳐 사방 신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것이 이것이라. 장은 선함이고, 경은 복됨이고, 아(御)는 맞이함이라. 전조는 선색을 말함이니, 처음에 농사를 지은 자이니 곧 신농씨라. 『주례』(春官宗伯편)에서 “약장은 무릇 온 나라가 전조에게 풍년을 빎에 빈아를 불고(豳땅에서 생산되는 대나무로 만든 籥으로 豳風 七月편을 연주), 토고(흙을 구워 질그릇 통을 만들고 양쪽에 가죽을 대어 만든 북)를 두드려 전준을 즐겁게 한다.”는 것이 이것이라. 곡은 기름이고 또한 잘함이라. 창름(곳집)이 꽉 차고 예절을 앎이라. ○말하기를 ‘그 가득 담은 기장과 희생을 받들어 사방신과 사직에게 제사하면서 우리 밭이 잘된 것은 내가 능히 이룬 것이 아니고, 이에 농부의 복에 힘입어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고, 또 음악을 지어서 전조에게 제사를 지내어 비를 기원하니, 바라건대 그 곡식을 잘 키워 그 백성을 기르겠다.’고 하니라.
(3장)曾孫來止에 以其婦子로 饁彼南畝어늘 田畯至喜하여 攘其左右하여 嘗其旨否로다 禾易長畝하니 終善且有라 曾孫不怒하며 農夫克敏이로다
(증손래지에 이기부자로 엽피남묘어늘 전준지희하여 양기좌우하여 상기지부로다 화이장묘하니 종선차유라 증손불노하며 농부극민이로다 賦也라)
증손이 옴에 그 아내와 자식으로 저 남쪽 둑에 점심을 내다 먹거늘 전농관이 매우 기뻐하여 그 좌우에 있는 음식을 집어서 그 맛있고 없는 것을 맛보도다. 벼가 잘 다스려져 둑과 같이 컸으니 마침내 잘되고 또 많음이라. 증손이 성내지 아니하며 농부도 능히 민첩하도다. 饁 들밥 엽
○賦也라 曾孫은 主祭者之稱이니 非獨宗廟爲然이오 曲禮外事에 曰曾孫某侯某라하고 武王이 禱名山大川할새 曰有道曾孫周王發이 是也라 饁은 餉이오 攘은 取요 旨는 美요 易는 治요 長은 竟이오 有는 多요 敏은 疾也라 ○曾孫之來에 適見農夫之婦子 來饁耘者하고 於是에 與之偕至其所而田畯亦至而喜之하여 乃取其左右之饋하여 而嘗其旨否하나 言其上下相親之甚也라 旣又見其禾之易治하여 竟畝如一하고 而知其終當善而且多하니 是以로 曾孫不怒하며 而其農夫 益以敏於其事也라
○부라. 증손은 제사를 주관하는 자를 일컬음이니 홀로 종묘만 그러한 것이 아니고, (『예기』) 곡례하편에 “외사(외부, 외국과의 일)에는 증손 아무 후 아무라.” 했고, (『서경』 주서 무성편) 무왕이 명산대천에 기도를 올릴 때에 “유도증손주왕발(도를 이어받은 증손 주왕 발이라.)”이라고 한 것이 이것이라. 엽은 먹임이고, 양은 취함이고, 지는 맛있음이고, 이는 다스림이고, 장은 ‘마침내’이고, 유는 많음이고, 민은 빠름이라. ○증손이 옴에 마침 농부의 아내와 자식이 와서 김매는 자에게 점심먹이는 것을 보고 이에 더불어서 함께 그 곳에 이르렀으며, 전농관이 또 이르러 기뻐하면서 이에 그 좌우에 있는 음식을 취하여 그 맛있고 없음을 맛보니, 그 윗사람 아랫사람이 서로 친함이 지극함을 말함이라. 이미 또 그 곡식이 잘 다스려지고 마침내 이랑이 똑같이 되었음을 보고 그 마침내 마땅히 잘되고 또 수확이 많을 것을 알았으니 이로써 증손이 성내지 않고 그 농부는 더욱 더 그 일을 바삐 하니라.
(4장)曾孫之稼 如茨如梁이며 曾孫之庾 如坻如京이라 乃求千斯倉하며 乃求萬斯箱이로소니 黍稷稻粱이 農夫之慶이라 報以介福하니 萬壽無疆이로다
(증손지가 여자여양이며 증손지유 여지여경이라 내구천사창하며 내구만사상이로소니 서직도량이 농부지경이라 보이개복하니 만수무강이로다 賦也라)
증손의 농작물이 이엉과 같고 들보와 같으며, 증손의 노적가리가 섬과 같고 높은 언덕과 같으니라. 이에 천 개의 창고를 구하며 이에 만 개의 수레 상자를 구하노니 찰기장과 메기장과 벼와 조가 농부의 복이라. 큰 복으로 갚아주니 만수무강이로다.
[참고] 梁
梁을 朱子는 毛傳의 해석을 따라 車梁인 수레끌채 개념으로 해석했는데 바른 해석은 아니다. 如茨如梁은 曾孫之稼로 심어놓은 농작물의 줄이 반듯하고 나란히 줄지어 선 모양을 표현한 내용이다. 그러므로 글자의 본뜻대로 ‘이엉과 같고 들보와 같다.’고 해석해야 한다.
○賦也라 茨는 屋蓋니 言其密比也요 梁은 車梁이니 言其穹隆也라 坻는 水中之高地也요 京은 高丘也라 箱은 車箱也라 ○此言收成之後에 禾稼旣多하니 則求倉以處之하고 求車以載之라하고 而言凡此黍稷稻粱은 皆賴農夫之慶而得之하니 是宜報以大福하여 使之萬壽無疆也라하니 其歸美於下하고 而欲厚報之如此라
○부라. 자는 이엉이니 그 빽빽하고 서로 붙어있음을 말함이라. 양은 수레 끌채니 그 높이 솟음을 말함이라. 지는 물 가운데의 높은 땅이고, 경은 높은 언덕이라. 상은 수레 상자라. ○이는 ‘수확한 뒤에 곡식이 이미 많으니 곧 창고를 구하여 쌓아놓고 수레를 구하여 실어 나르라.’고 하고, ‘무릇 이 서직도량은 다 농부의 복에 힘입어 얻은 것이니 이 마땅히 큰 복으로 갚아서 하여금 만수무강하라.’고 했으니, 그 아름다움을 아래(농부들)에게 돌리고, 후하게 보답하고자 함이 이와 같음이라.
甫田四章에 章은 十句라
[북산지십(北山之什) 제7편 보전4장(甫田四章) 경문 다시 읽기]
(1장)倬彼甫田에 歲取十千이로다 我取其陳하여 食我農人하니 自古有年하며
今適南畝하니 或耘或耔에 黍稷薿薿어늘 攸介攸止에 烝我髦士로다 賦也라
(2장)以我齊明과 與我犧羊으로 以社以方하니 我田旣臧이 農夫之慶이로다
琴瑟擊鼓하여 以御田祖하여 以祈甘雨하니 以介我稷黍하여 以穀我士女로다 賦也라
(3장)曾孫來止에 以其婦子로 饁彼南畝어늘 田畯至喜하여 攘其左右하여
嘗其旨否로다 禾易長畝하니 終善且有라 曾孫不怒하며 農夫克敏이로다 賦也라
(4장)曾孫之稼 如茨如梁이며 曾孫之庾 如坻如京이라 乃求千斯倉하며
乃求萬斯箱이로소니 黍稷稻粱이 農夫之慶이라 報以介福하니 萬壽無疆이로다 賦也라
甫田四章이라
출처 : 『詩經講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