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 1,1-7; 루카 17,1-6
+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말씀을 하시는데요, 1) 남을 죄짓게 하지 마라, 2) 형제가 죄를 짓고 회개하면 용서하여라, 그리고 3) 믿음의 힘에 대한 말씀입니다. 내일 복음에서는 4) 겸손하게 섬기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이 네 가지는 큰 연관성은 없습니다.
앞에서 하신 말씀에 대한 결론들이라 볼 수 있는데요, 우선 1) 남을 죄짓게 하지 마라는 말씀은 부자와 라자로(루카 16장)에 대한 말씀과 연결됩니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에게 무관심했는데 이것이 악표양이 되어 다른 사람도 죄짓게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우리는 부자와 라자로에 대한 말씀을 듣고 스스로 라자로라고만 생각할 위험이 있는데요, 우리보다 부자에 대해서는 라자로가 될 수 있지만, 우리 주위의 수많은 라자로들 앞에서는 내가 부자일 수 있습니다.
2) 두 번째로 형제가 죄를 짓고 회개하면 용서하라는 말씀은 돌아온 아들의 비유(루카 15장) 말씀과 연결되는데요, 작은아들이 돌아왔을 때 잔치를 베푸는 아버지를 큰아들은 이해하지 못했고 자기 동생을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바리사이들은 그럴 수 있지만, 당신을 믿는 공동체는 그래서는 안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3) 세 번째로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라고 청하는데, 배가 풍랑에 시달릴 때 제자들의 반응을 보고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믿음은 어디에 있느냐?”(루카 8,25)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오늘은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돌무화과나무 뿌리는 매우 컸고, 바닷가에 심기지 않았습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그 믿음은 엄청나게 깜짝 놀랄 일을 가능하게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믿음을 ‘더하여’ 달라고 청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양’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많고 적고가 문제가 아니라,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곧잘 '믿음이 부족하다'고 말하지만, 정직하게 말하자면,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엄마가 아이를 '믿는다' 하면서도 ‘혹시나’ 해서 감시한다면, 못 미덥다는 뜻이고, 결국 아이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어느 정도까지는 믿고, 어느 정도부터는 믿지 못하겠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미덥지 않다 뜻이고, 결국 하느님을 믿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더 많이, 더 적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으면 믿는 것이고, 조금이라도 믿지 못하겠으면 믿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믿음을 더하여 달라’고 청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답답해 하셨을 것 같습니다. ‘믿음이 부족하다고 시인하는 것 자체가, 완전히 믿지 못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만일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그 믿음이 너희 안에서 큰일을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나를 믿느냐’고 물으시지, '얼만큼'이냐고 묻지 않으십니다.
첫댓글 '믿음'은 있고 없고의 문제.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 이 표현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주석서에서 본 적은 없고 제 묵상인데, 비슷하게 말한 책이 있는지 나중에 찾아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