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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4-19
세 번 치고 그친 것이 한이로소이다 / 은혜목회정보
우리 산해원 20주년을 맞으면서 오늘 이 말씀을 한 번 생각해 보아야 된다고 여겼습니다. 「세 번 치고 그친 것이 한이로소이다」라는 20주년을 되돌아보면서 또 20주년 이후를 생각하면서 이 주제로 함께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본문은 엘리사의 임종 현장에서 발생하였던 사실의 기록입니다.
당시에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 죽어간다는 소식을 듣고서 달려왔습니다. 달려와서 평소에 악행을 행하던 요아스 답지않게 이 엘리사 머리 위에 엎드려져서 그 위에 눈물을 흘리면서 "내 아버지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면서 아주 회한에 찬 눈물을 흘리면서 조의와 함께 염려를 나타내고 있음을 본문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요아스라고 하는 이스라엘 왕은 누구냐 하면 앞에 있는 10절로 11절에 표현되어 있습니다마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며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 자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로보암의 죄가 무엇이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기억하시고 이 요아스 때에까지 여로보암의 죄를 언급하셨는지 그 여로보암의 모든 죄라고 하는 것은 이런 겁니다.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전을 크게 건축할 때에 백성들이 많이 헌금도 하고 또 노력봉사도 많이 했기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솔로몬 때에 그렇게 하다가 솔로몬이 죽은 후에 르호보암이 솔로몬의 왕위를 이어서 왕 되었을 때 성전 공사에 힘들었던 많은 불평 가진 사람들이 "이제 새 왕이 등극하였으니 좀 편하게 지냅시다. 좀 옛날보다는 수월하게 해 주기를 바랍니다."라고 부탁을 드렸지만 르호보암 왕도 여전히 "내 아버지의 하던 것 못지 않게 강행하겠다."라고 함으로써, 이 여로보암이 불평분자들을 이끌고서 나가자 갈라지자 해서 편가르기를 했습니다.
성전 공사에 힘들고 또 돈 바치기에 힘들었던 사람들을 모아가지고서 자기가 이끌고 사마리아에로 이동해 가버렸습니다. 하나 민족으로, 하나 나라로, 하나 성전을 위하여 함께 있던 자들을 나누어 가지고서 예루살렘에서 떠나 사마리아에로 갔습니다.
갔지만 그러나 그 동안에 성전 공사하고 또 열심히 충성하던 사람들의 기본적인 신앙이 있어서 절기 때만 되면 이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예배를 드리겠다 하면서 올라가고 또 안식일 날만 되면 예루살렘을 향하여 엎드려서 기도를 하고 이렇게 합니다.
그러니까 이 여로보암이 가만 생각해보니까 결국 이 백성들의 그 중심의 생각이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으니 우리가 지금 사마리아에로 와 있지만 이 사람들이 결국은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겠는가, 또 나에게 반역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을 해 가지고서 "예루살렘에만 하나님이 계시냐? 벧엘산에도 하나님이 계신다. 어디 성전이 하나 뿐인가? 우리도 성전을 지으면 되지."라고 하면서 예루살렘을 향하지 못하도록 하고 자기들 성 가까운 곳의 산에 성전을 짓고 거기에도 하나님이 계신다 라고 해서 백성들은 아주 혼란스러웠습니다.
수가성 예수님을 만났던 여인의 때까지도 이것이 아주 혼란스러워서 "우리들 지도자들은 산에도 하나님이 계신다 하는데 당신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만 계신다 하니 예배를 과연 어디서 드려야 되느냐?" 이런 고민을 온 백성들이 하게 될만큼 이 여로보암이 하나이던 백성을 한 성전을 수축하고 섬기던 백성들을 편가르게 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유혹해 가지고서 자기 백성으로 삼아서 나갔던 것.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아주 충격받으셨고 충격을 받으신 대로 오래 기억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요아스라는 왕이 즉, 엘리사 당시에 있었던 이 요아스라고 하는 왕이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라고 하는 것을 보니까 역시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않고 자기 중심으로 살고, 또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하는 백성들을 자기의 어떤 정책대로 따르기를 바라서 편을 가르고 거기에만 하나님이 있느냐 여기에도 하나님이 있다 그렇게 했던 것 같지요.
그래서 그 오늘 13장 12절에 보면 요아스가 여로보암의 죄에서 벗어나지 않고 정책을 했고 많은 일들을 했는데 그러므로써 그의 사적은 여호와의 이스라엘의 사적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요아스가 여로보암의 죄를 지으면서, 다시 말씀드려서 성전을 떠나서 사람들을 모아 가지고 편을 가르고 그 데리고 나간 사람들에게 거기만 하나님이 있느냐 여기도 하나님이 있다 한 그같은 여로보암의 죄를 이 요아스가 계속 지으면서 아마 많은 작품을 내었겠지요. 요즘으로 말할 것 같으면 길도 만들고 다리도 놓고 이런 시설을 많이 했겠지만,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기록책에는 이 요아스의 했던 모든 행적을 다 빼어버렸다 그겁니다.
그래 이 세상 보기에는 이 여로보암처럼 해도 잘 될 줄 알지만 남들의 보기에는 잘되네 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 역대지략에 빠져버리면 그것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천국에 이르렀을 때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게 되겠지요.
이런 것을 우리 20주년을 맞으면서 20주년 이후를 살아가야 될 우리와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 잘 알아두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런 요아스였지만 엘리사 앞에 달려와서 "어이 할꼬!" 하면서 부르짖을 때에 이 엘리사는 요아스에 대한 그러한 죄가 미웠지만 또 하나님 앞에 악행만을 행한 요아스였지만 그러나 의외로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이 요아스에게 호의를 베풉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 있습니다마는 15절에 보면 "왕은 활과 살들을 취하소서 취하매" 역시 엘리사가 죽을 병 들어서 죽어 가는데도 이 왕은 그래도 이제 엘리사가 막상 떠나니까 이 나라가 어이될까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지요.
그래서 시킨 대로 합니다. "활과 살을 취하소서" 취하매 16절에 "왕의 손으로 활을 잡으소서" 그러니 활을 잡습니다. 잡으니까 엘리사가 죽어가면서 자기 손으로 요아스의 활 잡은 손등을 어루만지며 안찰을 했습니다.
안찰을 하고 축복을 하고서 17절에 "이제 동편 창을 여소서" 곧 열매 "쏘소서" 쏘았습니다.
왜 동편 창을 열라고 했는고 하면,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이스라엘을 공략하는 아람 군대가 동쪽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동쪽에 있는 창을 열도록 하고 그 동쪽을 향하여 창 밖으로 쏘소서 하니까 쏘았습니다.
쏘자마자 엘리사가 외쳐 말하기를 "이는 하나님의 구원의 살이로다.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살이니 왕이 아람 사람을 아벡에서 진멸하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동안 이 요아스가 하나님 앞에서 행한 것은 참 악행이었을 뿐입니다마는 그러나 마지막에 엘리사가 죽어가는 현장에 와서 "어이할꼬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내가 군대를 갖고 있으면 뭐합니까.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것 어떻게 됩니까. 저 강한 아람이 우리를 향하여 공격해 오는데." 하면서 막 몸부림을 칠 때에 동창을 열고 활을 그렇게 쏘도록 하면서 "당신이 지금 쏜 활은 아람을 진멸하기 위한 여호와의 구원의 활이로다. 이제는 당신은 나가서 아람을 쳐서 진멸시키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그 다음 구절에 저는 목사로서 또 20년을 이 현장에서 사역해온 목사로서 20년 이후를 내다보면서 이 다음 구절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18절에 "다시 살들을 취하소서 취하매" 말은 잘 듣습니다. "왕이여 이제 땅을 치소서" 했습니다. 화살을 잡고서 엘리사의 말대로 땅을 치소서 하니까 이렇게 치는데, 그것 참 왕 체면에 여러 사람 보고 있는데 엎드려 땅을 치는 것도 좀 우습습니다.
활 잡으라 해서 활 잡고 활 쏘는 것까지 괜찮은데 땅을 치소서 하니까 한 번 두 번 세 번 치더니 그만 두었습니다. 세 번 치고 그쳤더니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죽어가면서 아주 대노했습니다.
굉장히 충격을 받고 굉장히 노를 발하면서 19절에 "왕이 오륙 번을 쳤더라면, 내가 땅을 치라고 할 때에 세 번만 치고 그칠 것이 아니라 다섯 번이나 여섯 번 쳤으면 좋았지 않겠습니까. 왕께서 이 땅을 다섯 번 여섯 번 쳤으면 이 아람 군대가 쳐들어올 때 다섯 번 여섯 번 이길 것인데 세 번밖에 치지 않았기 때문에 세 차례만 이길 수 있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이 엘리사가 노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엘리사의 관심은 어디 있느냐? 자기가 지금 죽지만 자기가 두고가는 이 하나님의 나라 백성들, 이 백성들은 영원히 존재하기를 원했다 그겁니다.
아람 군대가 공격을 해 들어오는데 엘리사의 계산으로는 적어도 다섯 여섯 번 공격해 들어올텐데 다섯 여섯 번 진멸시켜버리면 이제는 그 싹이 아주 짤라져버려서 그때 이후부터는 이스라엘 백성이 적의 공격이 없이 살아갈 수 있을텐데,
왕이 얼마든지 치도록 몇 번 치라고 하지 않고 시도를 했지만 세 번 치다가 그쳐버리니 굉장히 화가 나서 "당신은 이제 아람을 세 번은 쳐서 이기겠지만 세 번 이상은 이길 수 없을 겁니다. 아람 군대를 반은 이기겠지만 반은 이기지 못하고 패할 겁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장래는 어찌되겠는가 하는 것이 이 엘리사의 관심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후에 요아스의 삼대가,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 아까 느밧의 아들 죄지은 여로보암이 아니고 요압의 아들 이세 여로보암 삼세 스가랴 이렇게 나게 되는데, 이 삼대가 다 동일하게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망할 일이지요. 삼대 중에서 하나라도 제대로 회개하고 돌아섰으면 또 달라질 수 있는데, 삼대까지 자기 아버지가 했던 그대로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더라고 성경은 일부러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누구가 되었던지 간에 여로보암같은 짓을 한 사람은 평생 잊지 못한 것 같아요. 제가 본대로 성경을 소개해드리면 조금 전에 소개해드렸던 13장 10절로 11절에 보면 이 요아스가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더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입의 말씀 속에 누구누구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더라,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죄의 모델이 되었던 이 여로보암 참 불행한 자이지요. 그래서 이 13장 10절로 11절에 “요아스가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했더라.”
또 14장 23절로 24절에도 보면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 이 여로보암 역시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했더라 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또 15장에 가 보면 8절로 9절에 보면 이제 여로보암의 아들 스가랴, 이 스가랴 역시도 여로보암의 죄에서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했더라.
다시 말씀드리면 여로보암의 모든 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힘들어 불평하는 사람들을 끌어모아 가지고서 편가르기를 해 가지고서 함께 충성을 해도 성전을 왕공하기 힘든데 힘들어하는 사람들 불평하는 사람들을 끌어모아가지고서 다른 곳으로 끌고 갔습니다.
데리고 간 것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저 사마리아로 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래도 예루살렘을 향하고 절기 때에는 예루살렘까지 올라가고 안식일이 되면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엎드려서 절하고 기도를 하고 이렇게 하니까 그것도 못하게 하려고 "거기만 하나님 계시냐 여기도 있다." 이런 식으로 혼란하게 만들어서 그 혼란이 백성들을 이어서 이어서 수가성 사미라아 여인까지도 "여기에 계십니까? 저기에 계십니까?" 물을 정도가 되었으니, 참 하나님은 이 여로보암을 아주 잊을 수 없는 죄인이요 죄의 형태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굳이 기록하기를 요아스도 그리고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도 그리고 여로보암의 아들 스가랴도 다 옛날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했다 라고 굳이 일부러 기록을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우리 자녀들 중에서도 혹 유명한 자가 나타나서 앞으로 여로보암 같은 그런 일을 하는 일은 꼭 없도록 기도하고 교훈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잊지 아니하시는. 그래서 그런 행동을 하고서 이 땅위에서 큰 작품을 내고 유명한 왕이 되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역대지략에는 기록에서 빼어버렸더라 그랬습니다.
그러니 이것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났다가 이 세상 살아가는데 역사만 남기고 이 세상을 위한 흔적만 남기면 무엇하겠습니까? 하나님 나라에 기억되고 하나님 나라 기록에 남을 수 있는 생명 록에 기록되는 흔적을 남겨야 우리 영혼이 사는 곳에서 우리의 기업이 있지 않겠습니까?
엘리사가 말했던 대로 14장과 15장을 제가 살펴보았더니 본인인 일대의 요아스는 아람의 공격을 받아서 이기었고, 이대 여로보암도 이기었고, 삼대 스가랴도 역시 처음에는 이겼으나 마지막 전쟁에 가 가지고서 스가랴가 이기다가 막판에서 지고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이 요아스 일대, 이대 여로보암, 삼대 스가랴가 아람이 들어올 때마다 쳐 이겼습니다. 조금 전에 소개해 드린 대로 14장, 15장을 제가 읽어왔기 때문에 여러분 편하시도록 그냥 소개로 드렸는데 틈나시면 한 번 읽어보십시요마는 이 삼대가 다 이겼습니다.
삼대가 이기고 난 다음에 이 삼대가 이긴 마지막 스가랴가 전사하므로써 그때부터 이스라엘은 망하게 되고 이제 아람 군대가 완전히 점령을 하게 되는 이런 형편이 되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엘리사는 요아스에게 땅을 치라고 할 때 "내가 그만 하라 할 때까지 치지, 무엇 때문에 당신이 결정적으로 세 번 치고 말았느냐. 하나님의 한계대로 당신이 한계를 삼아야지 어떻게 당신의 한계로서 당신의 한계를 삼았느냐."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한계로서 한계 삼지 마시고 하나님의 한계가 여러분의 한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계속 치고 있었으면 아마 열 번 스무 번 치도록 두고 있지 않았겠지요. 엘리사가 판단하기로, 아람 군대를 여섯 번만 치면 일곱 번째에는 다 진멸할테니 그때는 이스라엘이 공격받지 않고 살 것이라.
아마 엿새동안 힘써 일하면 제 칠일에 안식일을 준 것같이 이스라엘이 공격받아서 엿새동안에 여섯 번을 싸우지만 그 다음에는 여섯 번만 이기고 나면 적이 씨가 말라버려서 이제는 이스라엘이 평안할 것이다 이렇게 계산되었던 것 같으니, 아마 일곱 번 여덟 번 쳤으면 그만 하시요 했겠지요.
그러나 세 번 치고 딱 마니까 노발대발했습니다. 왜 노발대발했습니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한동안까지는 잘 나가겠지만 얼마가지 않아서 망하겠구나 아마 그런 생각이었겠지요.
여기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엘리사가 이제 곧 죽어가면서 그동안 매우 불의하였던 요아스인데, 하나님께서 싫어하신 그런 요아스인데 그 요아스가 땅을 한 번 치면 어떻습니까? 두 번 치면 어떻습니까? 지금 엘리사의 생각대로라면 땅을 칠수록 요아스에게는 좋은 일인데 세 번 치고 말았다고 이렇게 화가 날 이유가 무엇 있습니까?
차라리 한번만 쳤으면 "이놈아 너는 역시 망할 놈이야. 내가 얼마든지 치라고 했으면 치면 칠수록 네가 대를 이어서 좋을텐데 한 번만 치는 것을 보니 역시 너는 복이 없는 놈이야. 끝이야." 이렇게 할텐데 계속 치지 아니한 것을 왜 이렇게 답답해하면서 이처럼 화가 났던가? 엘리사는 어떠한 마음을 가졌기에 세 번밖에 치지 아니한 것을 이렇게 속상해 했던가?
그렇습니다.
엘리사 그에게는 그 세 번만 친 것이 기간적으로는 요아스로부터 삼대만 이스라엘이 가겠다 라는 겁니다.
엘리사의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영원에 이르기를 바랬던 겁니다.
그러나 이 요아스가 세 번밖에 치지 않았기 때문에 삼대까지 밖에 가지 못할 것이요, 또 여섯 번 정도 쳐야 완전히 적이 진멸될텐데 적을 반쯤 이기다가 살려두고 나면 결국은 이스라엘은 그 반쯤 살아남은 적들에 의해서 망하게 될 것을 훤히 나다보았던 엘리사로서는, 전투적으로는 반만 승리하고 반은 패배하게 되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웠던지.
나의 백성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이 얼마간 동안은 잘 나가겠지만 저 사람이 세 번밖에 치지 않았으니 한 삼대 후에는 그저 이 나라가 망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굉장히 화가 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손에 얹어서 안찰까지 해주고 동창을 여소서, 쏘소서, 잡으소서, 얼마나 호의를 가지고 했습니까? 손등에 안찰까지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당신의 쏘는 화살이 하나님 여호와의 구원의 화살이 됩니다. 내가 주의 종으로서 손을 얹어 안찰했으니 당신의 활은 보통 활이 아니요 당신의 살은 보통 화살이 아닙니다. 이제 아벡에서 나가서 이기소서." 하고,
몇 번이고 이길 수 있도록 땅을 치라고 했는데 세 번 치고 딱 그만 두어버리니까 요아스가 불쌍해서 속이 상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장래를 바라볼 때 슬펐다 그겁니다. 견딜 수 없이 슬펐다 그겁니다. 얼마나 슬펐던지 그는 죽어서도 속이 편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오늘날 허다한 사람들처럼 "뭐 그저 내가 죽는 마당에 나 죽으면 그만이지. 내가 죽고도 한 삼대까지만 잘 나가면 그만이지. 나 있을 동안에 사고 안 나면 그만이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마는 이 엘리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잠시동안 사역했지만 자기가 사역하는 데 참여했던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히 계속되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겁니다.
얼마나 안타까웠던지 그가 죽어도 편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죽고 난 다음에 장사가 되었는데 아까 내용이 무엇입니까?
죽을 병에 걸렸으니까요. 바로 그 뒤에 보면 20절 이하에 보면 엘리사가 죽어 장사가 되었는데 해가 바뀌어 가지고서 살은 다 흙으로 돌아가 버리고 뼈만 남았는데 마침 그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집안에 초상이 나가지고서 송장을 하나 둘러메고 올라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 송장을 산에다 묻으려고 무덤을 좀 준비하려고 하는데 모압의 적당이 나타났어요.
외침이 들어왔다 그겁니다. 외국 군대가 들어와서 가만 보니까 사람들이 뭔가 둘러메고 오는데 "아 우리를 정탐하려 왔다." 이렇게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저 놈 잡아라!" 하면서 달려 들어오니까 송장 묻으러 갔다가 송장 묻지 못하고 얼마나 급했던지 도망을 하게 되는데 송장을 그냥 버려두고 도망을 하려고 하니까 너무 죄송하고 도망을 가면서 어떻게 했는고 하니 구렁텅이가 하나 있어요. 그 구덩텅이가 누구의 묘였느냐 하면 엘리사의 묘실이었어요.
히브리 사람들 묘실을 보면 우리 나라처럼 이렇게 잘 만들지 않고 보통 굴입니다. 굴 저 안에다가 갖다 놓거든요. 나사로 같은 경우에도 굴에서 나왔지요. 성지순례 갔다 오신 분들 가보셨겠지만 돌 굴에서 걸어나오지요 계단으로.
그런데 그런 이제 엘리사의 뼈만 남아 있는 그 굴이 껌껌한 굴이 있으니까 시체를 거기다 던져버렸어요. 던졌더니 시체가 굴러들어가 가지고서 엘리사의 다 썩어 남은 뼈에 다았어요. 뼈에 닫자마자 엘리사의 뼈에서 힘이 나와 가지고서 굴러 들어갔던 송장이 벌떡 살아나 버렸다 그겁니다.
아까 마저 읽었으면 좋았는데 한 번 읽어보지요.
20절 이하에 "엘리사가 죽으매 장사하였더니 해가 바뀌매 모압 적당이 지경을 범한지라 마침 사람을 장사하는 자들이 그 적당을 보고 그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들이 던지매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섰더라" 이랬어요.
참 엘리사 대단한 사람 같습니다.
그는 비록 죽으면 그저 땅속으로 들어가면 평안히 잠자고자 하는 생각으로 갔으면 좋겠지만 엘리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요아스가 땅 세 번만 친 것을 생각할 때 이 나라 백성이 어찌될까,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중간에 끊어지겠구나 이런 생각을 해 가지고서 죽어도 뼈도 힘을 다 발하지 못하고 있다가 그저 송장이 하나 들어오니까 지금 네가 죽어서 들어와 되겠느냐 이겁니다.
발딱 살아 가지고 적과 싸워야지 적을 피해가지고 송장이 되어 가지고 굴러 들어오다니 하면서 그 뼈에서 기운이 나와서 죽은 놈이 살아날 정도니 얼마나 뼈가 독을 품고 있었겠느냐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 죽어서도 영혼도 편치 않았을 겁니다.
그저 자기 일생 일볼 것 다 보다가 그 뒤에야 어찌되든지 말든지 아무 관심 없는 사람 같으면 영혼이 낙원에 가서 편할겁니다. 그러나 엘리사같은 기질을 가진 사람은 앞으로 이 이스라엘 나라가 중간에 가다가 망할 것을 생각하면 영혼이 편치 않았을 겁니다 아마. 뼈까지도. 우리 경상도식으로 말하면 뼈다귀까지도.
이 뼈까지도 기운을 그냥 품고 있다가 마침 송장이 하나 굴러 들어오니까 "네가 지금 나처럼 뻗어 되겠느냐? 살아나가라!" 하면서 당장 살려낼만큼 이렇게 이 엘리사는 무엇을 가졌느냐?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해야 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 그겁니다. 죽어도 편치 않았다 그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당대에만 편하게 되고 자기 있을 때에만 좋으면 그만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영원한 일생 가운데 우리의 나그네 인생은 점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가 참여한 이 하나님의 나라, 이 교회는 영원해야 됩니다. 엘리사처럼 정말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되지 않겠는가.
오늘 우리는 이 엘리야의 사건을 보면서 도전을 받아야 할 줄로 생각합니다. 20주년을 맞는 우리 교회, 오늘만 보고 만족하지 말고 우리 교회가 주 오실 때까지 이어져가야 된다는, 그래서 그 일을 이어갈 수 있도록 오늘날 우리가 장치를 잘하고 땅을 칠만큼 쳐 놓아야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무엇입니까?
예수 믿은 사람 또 들어와서 구원받은 사람, 세례를 받으며 입교인이 됩니다. 이것은 교회의 교적부에 올라감과 동시에 하늘 나라 하나님의 생명록에 땅에서 기록된 대로 하늘에 기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 오시는 날 인자의 날, 성경을 보면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들어올린다 했어요. 들림받는 것이 개인인 것 같지만 결국 교회들을 들어올리는데 이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우리 영혼의 호적지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영혼, 이 교회를 거쳐간 사람들의 영혼의 주민등록지요, 또한 현재에 있는 성도들의 영혼의 주민등록지요, 그리고 앞으로 이 교회에 들어와서 자기의 고향으로 적을 남길 곳이 우리 교회가 바로 호적을 등본할 수 있는 호적지다 그겁니다.
땅의 호적지가 아니라 천국에 들어갈 주소지가 바로 우리 교회인 것인데 이 교회가 없어져버리면 우리의 주소지가 없어져버리면 우리 장래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속한 이 교회는 잠시 스쳐가는 그런 주막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의 고향입니다.
하늘 나라에서도 "네가 어느 교회에 속했더냐? 어느 예수 안에 들었더냐?" 하고 물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나 혼자 예수 믿고 왔소이다." 아니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성령을 보내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신 것은 그의 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라 하였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안에 속해서 천국에 드시기를 바랍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 안에 있는 자기 백성을 찾을 겁니다. 그러면 누구를 찾습니까? 교회 안에 있는 자기 백성을 찾을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교회는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가 영원에 이르기 위해서 이 교회는 영원토록 가도록 주 오실 때까지 이 교회가 지속되도록 우리는 그러한 장치를 지금 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 교회가 크다고 지금 이만하면 만족하다고 "나 살다가 그만이면 그만 아닌가?" 그렇지 않습니다.
저를 비롯한 여러 목사님들과 장로님들 비롯한 여러 중직자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요 하나님의 교회가 된 우리 영혼의 주소지 우리 선배들의 영혼의 주소지 우리 후배들의 후손들의 영혼의 주소지가 될 이 교회가 주님 오셔서 부르는 그때에 남아있는 교회 되어야 된다는 확실한 책임과 사명을 가져야 될 줄로 믿습니다.
엘리사처럼한 생각을 가져야 된다 그것입니다. 엘리사처럼한 생각을 가지지 않는다면, 이 교회의 장래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는 몇년 전에 여러분 앞에 우리 교회 장래를 위해서 '원쓰리처치'(One Three Church) 계획을 한 번 발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건대는 우리 교회처럼 대형교회는 장래가 없다 그겁니다.
여러분 듣기 좀 섭하시겠지만 냉정하게 기독교 역사 속에서 이렇게 계산을 해 본다면 우리 교회처럼 이렇게 대형교회가 되어버렸을때에는 대형교회가 된 상태에 또 그 목사가 있을 상태에는 괜찮습니다마는 목사에게 문제가 생긴다든지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대형교회는 주 오실 때까지 대형교회로 갈 수 있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때 말씀드렸던 대로 한 큰 교회이면서 세 개의 규모 적절한 교회, 세 교회이면서 한 교회. 행정적으로는 구분된 세 교회로서 목사에게 어떤 문제가 생겨도 살아남을 수 있고, 외부로부터 어떤 공격이 온다할지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규모 적절한 세 교회.
그러나 대형교회로서의 유익과 여러 부로서의 많은 영적 도움이 복이 있으니 그것 또한 우리가 확보하기 위해서 행정적으로는 세 지역을 따라서 세워지는 세 개교회, 그리고 또 연합적으로는 한 큰 교회 이 두 가지 효력을 다 맛보자 라고 해서 여러분들에게 설명을 드렸고 또 여론조사를 해서 여러분이 투표에 참여하신 적이 있습니다.
아마 대부분 지지를 해 주셨는데 그때 지지해주신 분들도 많았지만 좀 소수이기는 해도 걱정스러워서 반대하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걱정스럽지요. 딴 데 모델이 있어야지요. 큰 교회를 자꾸만 키우자는 데는 많지만 큰 교회를 그만 하고 나누어서 작은 교회로 만들자 라고 하는 역사가 없기 때문에, 그런 모델이 없기 때문에 염려스러워하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의 숫자는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염려를 강하게 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그 일을 계속 추진할 수가 없어서 그 계획을 접고서 그냥 이처럼 대형교회로 한 번 나가봅시다 해서 대형교회로 나가기 위해서 지난 한 이삼년동안 함께 노력을 해 본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 일 때문에 우리 장로님들은 연구위원회를 만들어서 우리 교회 장래를 위해서 걱정했습니다. 그냥 오늘날 풍성, 풍성하고 좋으니 장래야 어찌 되든지 말든지 그냥 이대로가 좋지 않습니까 라고 했으면 그냥 아무 걱정 할 것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교회는 영광 중에 계속 되어야 된다는 것이 엘리사의 생각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그동안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결과 전당회원과 저는 어떠한 곳에 도달했느냐?
전에 역시 한 번 우리가 얘기 있었던 '원쓰리처치'(1·3 Church), 그리고 '쓰리원처치'(3·1 Church) 그러한 방식으로 우리 교회 구조를 개선해서 주 오실 때까지 어떤 환란이 온다 할지라도 우리가 20년 지나오는 동안에 그런 환난이 많았는데 그런 환난이 온다 하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그런 체제로 나갑시다 라고 해서,
모든 장로님들이 기쁜 마음으로 그와 같은 추진을 하기 위해서 서명날인하고 또 그 계획을 제가 본래 가졌으니 저더러 전권을 맡겨서 이 일을 앞으로 여러 해동안 추진을 해 주십시오 해서 제가 맡아서 얼마 전에 소개된 대로 산해원 미래 위원회 제가 전권위원장으로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염려했던 많은 분들 가운데서 교회를 나눈다 라고 하니까 그저 교회를 나누는 줄 알았어요. 다 쪼개지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우리 식으로 "왜 쪼갭니까?" 좀 더 강하게 말씀하시는 분은 "왜 뽀갭니까?"
그러니까 뽀개는 것이 아니고 쪼개는 것이 아니고 더 합리적이고 어떤 경우에도 살아남고 그리고 우리가 연합해서 큰 교회 효력을 다 누린다고 했지만 아마 목사가 딴 데 도망가고 싶어서 그러는 것 아닌가, 이렇게 염려하시는 분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이 일을 또 추진하면 여전히 전과 같이 "아 목사 또 어디 바람 났는가 보다. 또 어디 가려고 저러는가 보다." 이렇게 염려를 하실까 하는 생각도 들고 해서 제가 이번에 어떻게 하기로 했는고 하면, 그동안 대형교회로서의 계속 유지를 위해서 제가 주일 낮에 설교하던 자리에서 빠져나간 것이 한 4년 넘어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른 분을 세워서 해 보도록 이렇게도 노력도 하고 이렇게 해서 아예 주일 대예배를 제가 떠난 지가 오래여서 이처럼 밤에만 우리 성도님들 모시고 대예배의 그 수많은 성도들을 제가 대하지 못하고 밤에 모이시는 여러분, 물론 지금 모이시는 분들이 다 중직자들이니까 교회를 이끌어갈 어깨에 짊어지신 분들이지요.
그래서 여러분만을 모시고 지금 여러해 동안 이 밤예배에만 제가 설교를 해 오고 있습니다마는 이제 내년부터, 내년 1월 1일부터 우리 성도님들의 혹 가지실 염려를 하시지 않게 하기 위해서 제가 밤예배를 인도하지 아니하고 낮에 예배를 인도하도록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또 요즘에 성전 대지가 큰 대지가 들어와 가지고서 이렇게 정리를 잘했는데 얼마나 보기 좋은지 우리 성도님들이 빙 둘러 걷는데 얘기를 합디다. 나이 많으신 분들은 너무 넓어서 한바퀴 다 돌려면 힘들기 때문에 셔틀버스나 순환버스를 하나 만들어서 돌아야 되겠다 라고 할만큼 대지가 넓어졌는데 모두 기쁨으로 그렇게 참여하고 계신데 그 대금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님들이 일년동안 배가해주시는 것으로서 배가 헌금하시는 것으로 충당이 되지요. 특별헌금 이렇게 다 작정하거나 이렇게 하지 않고도 여러분께서 하시는 헌금의 일년간만 배가해주시면 다 갚을 수 있겠지만 그러나 배가 그 자체도 힘드신 성도님들이 많은 것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마음은 있고 믿음은 있어도 참 어려운 분들이 많고 해서 제가 다믄 얼마라도 우리 성도님들이 못하시는 부분에 그 부분을 좀 메꾸기 위해서, 이번에 제가 타고 있는 차가 엔진이 다 되어 가지고서 우리 장로님들이 차 바꾸어야 합니다 하고 수천만원짜리 차를 바꿔주시겠다 하는데 그냥 덜덜 내려앉을 때까지 계속 탈테니까 거기서 몇천 만원 남기십시다 해서 차를 계속 타기로 했습니다. 껍데기는 좋습니다마는 속이 곪았다 그겁니다.
그런데 바꿔 주시겠다 하는데 기도하고 어거해 가지고서 앞으로 여러해 탈 테니까 새로 사지 맙시다 해서 몇천 만원 세이브(save)하고, 그리고 또 참 저는 전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여러분께서 아시겠지만 우리 교회 사택 얼마나 전망 좋은 곳에 있습니까. 그 전망 좋은 것이 저는 참 좋습니다마는 행복합니다마는 그러나 그 사택을 팔기로 했습니다.
성전대지를 위해서 팔기로 하고 제가 어디로 가느냐? 사택을 팔고 그만한 사택 또 사가면 아무 소용이 없지요. 그래서 사택판 돈을 전부 대지에 헌금, 여러분께서 배가할 수 없는 여러운 분들의 그 자리를 메꾸기 위해서 저는 어디에 거처를 갖기로 했는고 하면 성가대 까운 있는 저 위에 저기 제가 앞으로 살기로 했습니다.
우리 가족이 와서 살기로 이렇게 하고서 교회 안에 들어와 살면서 그리고 밤예배가 아닌 낮예배 그 낮예배를 인도하면서 원쓰리처치 쓰리원처치, 다시 말하면 지금은 시간대로 예배 부서를 나누고 있습니다마는 앞으로는 지역별로 교구별로 낮예배를 나누고 또 연이어 합해서 연합 대예배를 보게 된다 그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제는 산해원, 마산 진해 창원이 전체 한 교구가 되었을 때에는 이 동네에서 무슨 일이 있으나 저 동네 무슨 일이 있으나 다 내게 책임이 없어요. 우리 장로님이 없어요. 전부 남의 장로님 같아요. 우리 권사님 우리 장로님 우리 안수집사님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너무 교구가 커서요.
그러나 이제는 진해 창원 마산 이 지역별로 예배를 드리고 또 이어서 연합으로 대예배를 드리고 하면, 이와 같이 모이는 예배의 효과도 다 가지면서 실제적으로 교구 관리가 원활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전에 우리가 함께 의논하고 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그 일인데 이 일을 다시금 이제 추진하게 되었다 라는 것을 말씀을 드리고 이번 9월 노회에 이 일을 허락 받기 위해서 노회에 신청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신청하기 전에는 여러분에게 투표를 해서 여러분이 싸인을 해 주신 데 따라서 결정적으로 그렇게 해 갈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전처럼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전에 여러분께서는 이태화 목사 이렇게 만들어 놓고 도망간다 하셨지만 안 갔습니다. 이번에는 또 그런 생각 또 하실까바 아예 교회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밤에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낮에 이렇게 해 드립니다.
그래서 아주 합리적인 적절한 규모의 교회와 그리고 연합으로서의 대형 교회의 두 가지 효과를 다 함께 보는 이 일에 우리 장로님들과 함께 머리를 싸매고 연구해 왔고 뜻을 같이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일에도 기도하시면서 협조해주시기를 바라고 이 일을 위해서 교회 대지도 들어오고 앞으로 공사도 그렇게 이루어지리라 생각됩니다.
이제 8월 수련회 끝나고 나면 이 행사들이 끝나고 나면 노회 허락을 받은 후에 예배를 동시에 드리려고 합니다. 지금은 시간대별로 9시 10시 12시 이렇게 낮에 드렸는데 그렇게 한 장소에서 드리지 않고 동시에 교구별로 드리고, 그 동시에 예배가 끝나고 나면 동시에 이제 연합으로 예배를 드리게 되므로써 아주 좋은 일이 많을줄로 생각이 됩니다.
이런 시설을 위해서 이제 가을동안 준비를 하고 내년 1월1일부터 이와 같이 이제 실시를 하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도 여러분에게 투표할 기회를 드립니다. 다시 설명을 더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있겠지요. 설명을 들으신 후에 전처럼 좋아하시고 또 모든 분께서 좋아해 주시는 그 근거에 따라서 이렇게 행정이 되어지리라고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왕위에 오른 이후 여로보암의 죄에서 한시도 떠나지 아니하여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한 이 요아스에게 활과 살을 잡게 하고 동창을 열게 하고 쏘게 하고 그 쏠 적에 동등에 안찰까지 진심으로 해 주고 그리고 땅을 치되 당신이 계속 땅을 치소서하는 마음으로 땅을 치게 하였던 이 엘리사, 과연 요아스가 좋아서 그랬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요아스가 사랑스러워서 요아스에게 복주려고 또 요아스가 세 번밖에 치지 아니하니까 요아스가 복을 못 받을 것 같아서 화를 내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 엘리사에게 관심의 주 대상은 요아스도 아니고 자기 자신도 아니고 하나님 나라의 영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이 영원히 가는 것,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이 영원히 간다면 요아스가 내 개인적으로 밉다고 그를 버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당시에 요아스가 왕이요 군권을 갖고 있고 병력을 다 장악하고 있으니 아람 군대와 싸우든지 모압과 싸우든지 싸울 사람은 요아스 이 사람뿐입니다. 그러니까 요아스가 밉지만 요아스에게 축복을 했어요. 요아스의 손등에 안찰을 했어요. 그리고 요아스의 화살에 여호와의 화살이 되도록 해 주었다 그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 교회 20주년까지 이르러 이렇게 큰 교회가 되었는데 여기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이 교회가 주 오시는 날까지 이어져가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주 오시는 날까지 우리 교회 안에서 여로보암과 같은 죄를 범하는 자가 그런 똑똑한 엉터리 똑똑한 자는 우리 후손가운데 나지 않기를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로보암과 그의 행한 죄목은 하나님이 잊지 아니하시고 그와 비슷한 일만 있으면 여로보암의 죄, 여로보암의 죄 했으니 그가 비록 이스라엘을 데리고 나가서 큰 작품을 세상적으로는 이루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역대지략에서 다 빼어버리라고 했으니 그 인생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 교회 앞으로 우리 후손 가운데 여로보암의 죄를 범하는 그런 똑똑한 자는 나지 말기를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좀 똑똑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하나님의 교회의 영원을 위하여 헌신하는 그런 후손만 이어지도록 기도해야 될 줄을 믿습니다.
그리고 내 마음에 든다 라고 해서 목사를 모시고 내 마음에 든다 라고해서 어느 장로님을 존경하고 내 마음에 아니든다 해서 목사님을 내쫓고 내 마음에 아니든다 해서 그 장로님에게는 안사도 잘 하지 않고 이러지 마십시오.
이 엘리사는 자기 마음에 들고 안 들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요아스에서 군권이 잡혀있으니 요아스에게 진심으로 안찰했던 것 누구 때문에 했습니까? 하나님 나라 때문에 한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제 주의 종이 되었던지 성도간이 되었던지 우리의 개인적인 감정을 가지고 교회를 어렵게 할 것이 아니라, 교회의 평안과 교회의 안정을 위해서 내 자신은 미워도 나는 밉지만 저 사람이 그래도 교회를 이끌어가는 데는 최고야 싶으면 붙들어야 될 것이고,
저 사람이 교회의 전체 성도들에게는 유익하지만 내 마음에 안드니까는 막아야 되겠다 이런 여로보암같은 생각은 산해원 20주년을 맞으면서 앞으로 이 교회의 영원을 위하여 그런 생각을 버리시고 나의 감정과 나의 기쁨과 나의 유익보다는 하나님의 교회의 영광과 하나님 교회의 주 오실 날까지 이어져나가는 그 한가지 일을 엘리사처럼 마음먹어 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내 평생 소원 주의 일 하면서 주님의 교회 내가 참여한 교회 나의 영혼의 주소지가 되어 천국에서 내 주소가 될 이 교회, 주님 오시는 그날에까지 버티다가 살아남을 수 있는 교회 지금 만들어 놓아야 되겠다는 이 생각을 20주년 가장 큰 교회가 되는 만족스러운 이 때에 만족하지 말고 엘리사의 마음을 가져주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당부합니다.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후손에까지 이 마음이 이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다시 한 번 축원합니다.
376장 찬송합시다.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그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임하여 역사하시며 보호하시며 영원까지 인도하심이, 진실로 엘리사에게 도전을 받아 우리도 우리가 속한 교회 우리가 참여한 교회 이 교회가 주님 오시는 날 쓰러지지 아니하고 그때까지 당당하게 이어져나가기를 바라며 그 일을 위하여 함께 노력하고자 하는 모든 성도께 함께 있을지어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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