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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설날설교} 금의환향(錦衣還鄕)(수22장1-9)
<설날설교
성경본문⎟여호수아서 22:1-9
○ 돌아간 두 지파와 반 지파
1. 그 때에 여호수아가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를 불러서 민32:20-22
2.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너희가 다 지키며 또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일에 내 말을 너희가 청종하여
3. 오늘날까지 날이 오래도록 너희가 너희 형제를 떠나지 아니하고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그 책임을 지키도다
4. 이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대로 너희 형제에게 안식을 주셨으니 그런즉 이제 너희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요단 저편에서 너희에게 준 소유지로 가서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되 민32:33
5. 크게 삼가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한 명령과 율법을 행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계명을 지켜 그에게 친근히 하고 너희의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그를 섬길찌니라 하고 신6:6-17
6.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축복하여 보내매 그들이 자기 장막으로 갔더라 수14:13
7. 므낫세 반 지파에게는 모세가 바산에서 기업을 주었고 기타 반 지파에게는 여호수아가 요단 이편 서편에서 그 형제 중에서 기업을 준지라 여호수아가 그들을 그 장막으로 돌려보낼 때에 그들에게 축복하고 수17:5, 수22:6
8. 일러 가로되 너희는 많은 재산과 심히 많은 가축과 은, 금, 동, 철과 심히 많은 의복을 가지고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서 너희의 대적에게서 탈취한 것을 너희의 형제와 나눌찌니라 하매 대하20:25
9.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 실로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떠나 여호와께서 모세로 명하신대로 얻은 땅 곧 그 소유지 길르앗으로 가니라 민32:1, 2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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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일제시대에 쓴 동요로서 수 십 년간 초등학교시절에 불려졌던 것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산업화로 도시화가 급속히 형성되면서 고향을 떠났던 사람들이 이제 성인이 되어 고향을 다시 그리워하게 됩니다.
지난주에도 새가족 가운데 시어른이 부산에서 장로님으로 봉사하시다가 은퇴하신 후 고향이 청도라서
청도에 오셔서 살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경우는 대게는 성공의 삶을 살았을 때 가능합니다. 삶이 실패했다고 하면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꺼려합니다.
우리나라 운동선수들 가운데 박세리, 이승엽, 박찬호, 박지성 그리고 피겨요정 김연아 등 나름대로 해외에서도 인정받을 만큼 성공적인 선수들이 귀국할 때보면 공항에 많은 인파가 몰리고 고향이나 모교를 방문하면 환영하는 분위기가 대단합니다. 이런 경우를 가리켜 ‘금의환향(錦衣還鄕)’이란 고사 성어를 사용합니다. 단어의 뜻은 ‘비단 옷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이 고사성어가 나온 배경은 이렇습니다. 육조(六朝)시대 양(梁)나라의 유지린 이란 사람이 남군 태수로 승진했을 때 무제(武帝)는 이렇게 격려했습니다.
“그대의 모친은 연세가 많고 덕망도 높으니 그대에게 비단옷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서(今卿衣錦還鄕) 마음껏 효도를 할 수 있도록 해 주겠노라”
‘의금지영(衣錦之榮)’이란 말도 있습니다.
‘비단옷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영예’ 라는 뜻으로 ‘금의환향(錦衣還鄕)’과 같은 뜻입니다. 이구절과 대조적인 성어에는 ‘금의야행(錦衣夜行)’이 있습니다.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걷는다’는 뜻입니다. 즉 아무 보람도 없는 행동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오늘은 설입니다.
설이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음력으로 1월1일 새해입니다.
세계적으로는 태양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미 새해를 맞은지 2월 중순을 지났습니다만 음력으로는 오늘이 1월1일입니다.
이 날을 원단(元旦), 세수(歲首), 연수(年首)라고도 하며, 일반적으로 설이라고 합니다.
설은 한자로는 신일(愼日)이라고 쓰기도 하는데 "근신하여 경거망동을 삼가한다"는 뜻입니다. 설날의 세시풍속은 매우 다양합니다.
설날이 다가오면 섣달 그믐날 자정이 지나자마자 복조리장사들이 복조리를 한 짐 메고 골목을 다니면서 이것을 사라고 외쳐댑니다. 각 가정에서는 1년 동안 필요한 수량만큼의 복조리를 사는데, 일찍 살수록 좋으며 집안에 걸어두면 복이 담긴다고 믿습니다. 새벽에는 거리에 나가 처음 듣는 소리로 한 해 운수를 점치는 청참(聽讖)을 행하기도 합니다. 설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미리 마련해둔 새 옷으로 갈아입는데 이 새 옷을 설빔이라 합니다. 아침에는 가족 및 친척들이 모여들어 정초의 차례를 지냅니다
차례는 모처럼 자손들이 모두 모여 오붓하게 지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차례가 끝나면 어른들께 순서를 따져 세배를 올립니다. 떡국으로 마련한 세찬(歲饌)을 먹고 어른들은 세주(歲酒)를 마십니다. 세찬이 끝난 후에는 차례상에서 물린 여러 명절음식들을 나누어 먹는 음복(飮福)이 마련됩니다. 아이들에게는 세뱃돈을 주며 덕담을 나누고 한해의 복을 빌어줍니다. 이웃 및 친인척을 찾아서 세배를 다니는 일도 중요한 풍습입니다.
중류 이상의 가정에서는 부녀자의 외출이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문안비(問安婢)라 하여 여자종을 성장시켜 일가친척에 보내어 신년문안을 드리게 했습니다. 정초에 어른이나 친구를 만나게 되면 말로써 새해인사를 교환하는데 이를 덕담이라 합니다. "과세 안녕하셨습니까?" 또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하는 식으로 설날인사를 합니다.
이런 세시 풍속이 있다 보니 설이 되면 모든 사람들이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을 찾거나 부모님이 계시는 곳으로 흩어졌던 형제자매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됩니다. 그래서 명절에는 항상 이동이 시작됩니다.
명절 때마다 생각하게 되는 것은 세상에서의 고향도 중요하지만 영원한 나의 고향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살아갈 본향, 하나님이 정해 좋은 본향, 그곳은 고린도후서5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준비되어 있는 하나님 나라, 천국을 생각합니다.
히브리서11장16절 말씀에 보면,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나그네 인생길을 살다가 우리의 영원한 본향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을 때 금의환향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곳에서는 비단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세마포 옷을 입게 됩니다만 그 옷을 입는다는 것 자체가 금의환향입니다.
세상에서도 금의환향의 기쁨과 영예를 안고 돌아오기 위해서는 피눈물 나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노력 없이 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세상에서 피눈물 나는 경건의 훈련이나 믿음을 위한 노력이 없이는 절대로 금의환향할 수 없습니다.
금의환향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을 통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을 설명 드리면 이렇습니다.
모세가 죽고 난 다음 여호수아가 지도자가 되어 하나님이 약속한 땅 가나안에 들어와 원주민을 쫓아내고 그 땅을 차지하여 분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 두 지파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이 광야생활을 거쳐서 가나안으로 들어오기 전 즉,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르우벤 지파,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가 요단 동편에서 먼저 기업을 얻었습니다. 이들은 요단강을 건널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1장10절 이하에 보면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이 시키는대로 백성들의 관리들에게 명령하여 진중에 두루 다니며 그 백성에게 요단강을 건너갈 준비로 양식을 준비 시켰습니다.
그 다음으로 조치를 취한 내용은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명령하기를 “처자와 가축은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쪽 땅에 머무르려니와 너희 모든 용사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보다 앞서 건너가서 그들을 도와 여호와께서 너희를 안식하게 하신 것 같이 너희의 형제도 안식하며 그들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그 땅을 차지하기까지 하라. 그리고 너희는 너희 소유지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쪽 해 돋는 곳으로 돌아와서 그것을 차지하라”
이 명령을 받은 두 지파 반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기를 “당신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겠습니다. 우리는 범사에 모세에게 순종한 것 같이 당신에게 순종하려니와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합니다”
이 내용의 말씀에서 보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의 통솔하에 요단강을 전널 때 자신들은 동편에 머물기 때문에 그것에 남겠다고 하지 않고 여호수아의 명령에 순종하였습니다. 이때 요단강을 건넌 장병들이 무려 4만 여명이 된다고 합니다.
이들이 내려가서 끝까지 사명을 감당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움을 통해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을 완전히 점령하여 차지하게 되었을 때 여호수아가 이들 두 지파 반 장정들에게 이제는 자신들이 가족이 머물고 있는 요단강 동편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하면서 취한 여호수아의 명령의 내용입니다. 이 내용을 보면 완전한 고향은 아니라 할지라도 금의환향과 같은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금의환향한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들에게서 우리가 배울 점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인생들도 금의환향하는 인생이 될 것인가를 이 말씀에서 배워서 우리 모두 금의환향하는 인생이 되길 바랍니다.
첫째,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명령을 다 준행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편안해지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위험한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무리 형제의 일이라 할지라도 위험한 일은 쉽게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가나안에 들어가면 분명히 원주민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과 싸워야 합니다. 승리할 수도 패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위험을 무릎쓰고 갔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것도 자신들의 처자식들과 가축들은 다 두고 떠났습니다. 앞으로 몇 개월이 소요될지도 모릅니다. 기한도 없고 승리의 보장도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보장을 하고 있지만 이들의 마음에는 인간적인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1-2절에 보면 “그 때에 여호수아가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를 불러서 /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을 너희가 다 지키며 또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일에 너희가 내 말을 순종하여”
사실 1장에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다 순종하겠다고 했습니다.
16-17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 우리는 범사에 모세에게 순종한 것 같이 당신에게 순종하려니와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환영받을 사람이 누굴까요?
가장 칭찬받을 사람이 누굴까요?
돈을 많이 번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부자이십니다.
사회적 명성이 높은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권세자입니다.
지식이 풍부한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전지하신 분입니다.
그러면 누굴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누누이 강조하셨습니다.
창세기26장 1절 이하에 보면 아브라함 때도 훙년이 들었는데 이삭때에도 흉년이 들었습니다. 이때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말씀하시기를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이 땅에 거주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그리고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삭이 잘해서 되었는가?
아닙니다.
5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이삭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데 그 복은 결국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의인의 삶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복을 받는다는 것이 구약의 사상입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신명기28장이나 30장에 보면 항상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는 복을 주신다고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5절에 보면 “ 오직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한 명령과 율법을 반드시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켜 그에게 친근히 하고 너희의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그를 섬길지니라 하고”
우리가 금의환향한 삶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우선은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둘째, 성실한 자세로 책임을 감당하였습니다. 일종의 희생정신이 투철했습니다.
3절에 보면 “오늘까지 날이 오래도록 너희가 너희 형제를 떠나지 아니하고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그 책임을 지키도다”
이 두 지파 반 장병들이 쉽게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곳에는 가정이 없었습니다.
아내와 자녀들과 짐승들은 모두가 요단강 동편에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동안 가나안에 들어가 있었는가 하면, 오랫동안 떠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정확하게 날짜를 계산하면 약7년 정도 됩니다.
요즘 우리사회에는 기러기 아빠들이 많습니다. 자식들을 공부시키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오직 형제가 가나안을 점령하는데 잠시 도와 주러 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무려 세월이 7년이 소요되었을 때 여러분 이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장애물이 등장한다 하더라도 책임을 끝까지 감당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 사람들이 무엇을 할 때까지 기다렸는가 하면, 가나안 남부전쟁과 북부전쟁과 땅을 분배하는데까지 참여했습니다.
이 두 지파 반이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애국심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심이 함께 어우러져 가나안 정복 전쟁에 기꺼이 심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은 당신의 책임을 다 감당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나의 책임의식을 갖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성실한 자세로 끝까지 감당해야 합니다. 이들이 어렵다고 힘든다고 형제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통하여 일을 이루시고자 여러 가지 일을 맡겼습니다. 그 맡겨진 일에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책임감 있게 감당하셔야 합니다. 어떤 직분이든지 소홀히 여겨서는 안됩니다. 내게 주어진 십자도 지고 가야 합니다. 그래야 금의환향 할 수 있습니다.
셋째, 받은 복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다시 자기의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할 때에 그냥 돌려보내지 않고 전쟁에서 탈취한 모든 것을 갖고 가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자기들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 누리도록 명령을 했습니다. 이 명령을 그대로 이들이 순종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그들을 그들의 장막으로 돌려보낼 때에 그들에게 축복하고 /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많은 재산과 심히 많은 가축과 은과 금과 구리와 쇠와 심히 많은 의복을 가지고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서 너희의 원수들에게서 탈취한 것을 너희의 형제와 나눌지니라 하매 /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 실로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떠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받은 땅 곧 그들의 소유지 길르앗으로 가니라”
우리가 세상속에 살면서 받은 복은 각자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즉 내가 노력해서 얻은 복이든지, 아니면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복이든지, 아니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가운데서 얻은 복이든지 그 복을 함께 나누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 동생이 부목사로 있는 서울 모 교회에 원로장로님이 계시는데 그 분은 사업을 해서 생활이 괜찮으신 편인데 형제들에게 그렇게 잘 하신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부모님에게 잘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합니다. 그러나 형제들에게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장로님은 출가한 여동생들까지도 잘 챙긴다고 하였습니다.
8절에 보면 “너희는 많은 재산과 심히 많은 가축과 은과 금과 구리와 쇠와 심히 많은 의복을 가지고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서 너희의 원수들에게서 탈취한 것을 너희의 형제와 나눌지니라”
이 말을 들은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 사람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9절에 보면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돌아갔다는 것은 그것을 가지고 여호수아가 명령한 내용을 그대로 준행하겠다는 것입니다. 만약 떠나 온지 7년이 되었고 그 넓은 땅, 하나님이 약속한 땅에 눌러 앉아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그런데도 다 돌아갔습니다.
우리가 받은 복을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복으로 다시 하늘에 쌓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만약에 세상에서 받은 복을 하늘에 쌓지 못한다면 그 복은 복으로 남지 않고 화로 미치게 됩니다. 이 내용의 삶을 살은 사람 중 대표적인 사람을 이야기 하라고 한다면 구약성경에 나오는 롯입니다.
롯은 하나님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망하는 소돔성에서 구원을 받았지만 그동안 불신앙으로 살았던 삶으로 인해 사위고 구원 시키지 못했고 아내도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나쁜 문화속에 젖어 있던 두 딸에 의해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히는 암몬과 모압 두 족속을 태동시키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지고 가신 십자가는 바로 나눔의 삶을 본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만찬석에서 빵과 포도즙을 제자들에게 직접 나누어주시면서 하신 말씀이 이것은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고 하셨고, 이것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 곧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았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살게 되었습니다. 영생을 받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어떤 부자가 친구에게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인색하고 날 좋아하지 않는다네. 그러나 난 내가 가진 모든 재산을 자선단체에 기증하기로 유언장을 작성해 두었다네’
그러자 친구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암소와 돼지 이야기가 자네 한테 교훈이 될 수 있겠군. 돼지가 암소를 찾아가 불평을 늘어놓았다네. ‘사람들은 입만 열면 자네를 정 많은 친구라고 떠들어대지. 자넨 사람들에게 우유를 제공하니까. 하지만 사람들이 나에게서 얻어가는 건 그에 비하면 많아도 한참 더 많다네. 훈제한 허벅지, 뱃살고기, 정제한 돼지기름은 물론 심지어 족발까지 한두 가지인가. 그런데 날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들에게 하는 한낱 돼지요 욕심꾸러기일뿐이야.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어’암소는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네. ‘그건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나를 내어주기 때문일거야!’”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받은 복 혼자 누리지 마시고 이웃과 나누세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세요.
그럴 때에 우리는 장차 우리의 영원한 본향인 하나님 나라에 금의환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금의환향이 아닌 어깨가 축쳐진 모습으로 고향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누가 그랬습니까?
예수님의 비유 중 탕자가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돈을 가지고 고향을 떠났다가 빈털터리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올 때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나는 이제 아버지의 아들이 아닙니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쓰소서’이런 모습으로 고향을 찾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위에서 살 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하여 금의환향해야 합니다. 주님이 준비해 놓으신 그곳, 본래 우리를 있게 하셨던 그곳 천국으로 말입니다. 천국에 들어갈 때 금의환향하는 모습으로 들어가 신랑 되신 주님 품에 안길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받은 고난을 위로받고 주를 위해 산 삶을 통해 면류관을 받게 되는 날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