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유배문학 「성심천(醒心泉)」 마음을 깨우치는 샘물에서 읊다>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마음을 깨우치는 샘물’ 「성심천(醒心泉)」은 조선전기 1506년 여름, 거제도 유배객 상재(像齋) 최숙생(崔淑生 1457~1520)이 거제도 유배객 용재(容齋) 이행(李荇 1478~1534)에게 화답하여 써 준(贈擇之) 오언절구(五言絶句)이다. 당시 성심천(醒心泉)은 운문(문동)폭포 계곡물을 따라 내려오다가 또 다른 계곡물과 만나는 지점에 군자지(君子池)와 같은 곳에 있었다. 당시 유배객 최숙생(崔淑生)과 이행(李荇) 뿐만 아니라, 거제도에 유배객 약 25명 정도가 여기 운문폭포 계곡에서 노닐다가, 서로 시를 주고받으며 읊조리니, 그 당시 여기서 조선 최고의 문학 공간이 연출되었다.
그리고 최숙생(崔淑生,子眞 1457~1520) 선생이 여기 문동폭포 골짜기에서 이행(李荇 1478~1534) 선생의 <기성 10영(岐城十詠)>에 화답한, 똑같은 제목의 <십영(十詠)> 시(詩), "소요동(逍遙洞), 백운계(白雲溪), 성심천(醒心泉), 군자지(君子池), 차군정(此君亭), 운문폭(雲門瀑), 신청담(神淸潭), 지족정(止足亭), 보진당(保眞堂), 세한정(歲寒亭)"을 남겨 전하고 있다. 다음은 『거제군읍지(巨濟郡邑誌) 1899년』 「음영(吟詠)」편 <십영(十詠) 최숙생(崔淑生)>의 3번째 「성심천(醒心泉)」이다.
”무엇으로 내 마음 깨우칠까? 깨끗한 샘이 옥같이 희다. 돌에 앉으니 바람이 옷깃을 들썩이고, 물을 잔질하니, 달이 손안에 한 움큼 가득하다.“
최숙생(崔淑生)은 ‘맑은 물에 비친 달을 두 손바닥으로 걷어 올리니, 달이 손안에 한 움큼 가득하다. 이 순간 유배객의 상심(傷心)에, 귀양살이 근심과 더불어 속세의 때가 사라지고 마음 또한 옥같이 정화된다.’하여, ‘마음을 깨우치는 샘물(醒心泉)’이라고 명명했다.
또 여기서 최숙생의 「성심천(醒心泉)」을 화답하게 만든 이행(李荇 1478~1534) 선생의 <기성 10영(岐城十詠)> 「성심정(醒心亭)」은 이러하다.
”바위 아래에다 샘을 파니 유월에도 얼음처럼 물이 차, 손으로 움켜 양치질을 하면 정신이 번쩍 듬을 느끼네. 평소 지니던 고목 표주박을 꺼내어 쓰니 더없이 좋아라. 마음 맞는 벗에게 이르노니 솔뿌리 가져다 차를 달이세.(鑿泉巖石底 六月氷雪冷 挹之一漱齒 已覺神魂醒 平生老木瓢 取用功莫竝 爲報同心子 松根來煮茗)“
‘얼음물처럼 차고 깨끗한 샘물로 벗과 함께 차를 달이어 먹으며, 귀양살이 고뇌를 서로 위로하자’고 노래한 이 오언율시는 ‘逈’ 운목(韻目)의 평기식 한시 「성심정(醒心亭)」이다.
◉ [거제도 여러 지명을 명명하다] 갑자사화(1504년)로 유배 온 최숙생의 1506년 작품인, <십영(十詠) 최숙생(崔淑生)>은 거제시 삼룡초등학교 인근 고현천에서 상문동 운문폭포 아래 웅덩이 신청담(神淸潭)까지 계곡과 폭포를 노닐다가, 그의 지우(知友) '이행(李荇)의 7언 절구'에 화답하여 쓴 5언 절구이다.[신증동국여지승람, 1759년 거제부읍지 수록] 최숙생 선생과 함께 거제도에서 귀양살이 한, 이행(李荇) 선생은 거제도 유배 중에도 고현동과 상문동 주위의 곳곳의 이름을 지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보진당(保眞堂)', 그리고 現 '고자산치'는 당시 '화자현(火者峴, 고자고개)'이라 불리었는데 '고절령(高節嶺)'이라 개칭했으며, 배소 주위 유수(幽邃)한 골짜기를 '소요동(逍遙洞 문동저수지 일대 계곡)'이라 불렀다. 그리고 現 문동저수지 內 시내를 '백운계(白雲溪)', 정자는 '세한정(歲寒亭)', 운문폭포 올라가는 입구에 샘물이 솟는 것을 보고 '성심천(醒心泉)'이라 이름 짓고, 이 샘물에다 직접 작은 못을 만들어 '군자지(君子池)'라 하였으며, 또한 그 아래 정자를 짓고는 이름하여 '차군정(此君亭)'이라 불렀다. 그리고 시냇물을 따라 올라가 보니, 푸른 벼랑이 물러서고, 드리운 물결이 쏟아져서 굉음을 울리며 부서져 내리는 모습이 마치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듯하여 '운문폭(雲門瀑 문동폭포)'이라 하였다. 또 폭포수 아래 웅덩이(용소)를 '신청담(神淸潭)', 그리고 주위에 평평한 바위들이 있어 휴식할만하다 생각하여 '지족정(止足亭)'이라 명명했다.
● 다음 ‘沃’과 ‘屋’자를 통운한 오언절구(五言絶句) 「성심천(醒心泉)」은 조선전기 문신 상재(像齋) 최숙생(崔淑生 1457~1520)의 거제유배작품이다. 최숙생 선생의 「성심천(醒心泉)」은 <거제읍지>, <거제군읍지(巨濟郡邑誌)>, <거제부읍지>에 수록되어 전하고 있다. 또한 이 글은 최숙생(崔淑生)이 지은 <십영(十詠)> 가운데 3번째 작품이며 측기식이다.
내용은 이러하다. 보름달이 뜬 초여름, 거제도 문동저수지에서 문동폭포 사이 계곡 어느 지점에 앉아 시를 읊으며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다. 내 마음도 덩달아 '성심천'의 깨끗한 물과 같아 보였다. 사람의 마음이 흐려지는 것은 속세의 욕망 때문이다. 속세의 때는 좀처럼 씻어내기가 어렵다. 선생은 샘가에 앉아 시원한 계곡 바람 맞으며 온몸을 닦아낸다. 두 손바닥으로 물에 비친 달을 걷어 올리니, 달이 손안에 한 움큼 가득하다. 이 순간 속세의 때가 사라지고 마음도 옥같이 정화된다.
*「성심천(醒心泉)」* 마음을 맑게 하는 샘물 / 최숙생(崔淑生) 1506년
何以醒我心 무엇으로 내 마음 깨우칠까?
澄泉皎如玉 깨끗한 샘이 옥같이 희다.
坐石風動裾 돌에 앉으니 바람이 옷깃을 들썩이고
挹流月盈掬 물을 잔질하니, 달이 한 움큼 채운다.
◉ [저자 상재(像齋) 최숙생(崔淑生)의 약력] 상재(像齋) 최숙생(崔淑生 1457~1520)은 본관은 경주(慶州), 자(字)는 자진(子眞), 호(號)는 상재(像齋), 현우(玄祐)의 7세손이며 철중(鐵重)의 아들이다. 1492년(성종23)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였고, 1496(연산군2) 사가독서(賜暇讀書, 휴가를 얻어 책을 읽음)를 한 뒤, 1504년(연산군10) 응교(應敎)로 있을 때, 갑자사화(甲子士禍, 연산군의 어머니 윤씨 복위 문제로 연산군이 일으킨 사화)로 1504년 4월 신계(新溪)에 유배, 다시 5월 거제도로 이배되어 이행(李荇), 홍언충, 김세필, 이려, 이윤 등과 거제시 신현읍에 함께 유배되어 있다가 1506년 9월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풀려나 1508년 문신정시(文臣庭試)에 장원하여 대사간·대사헌을 역임하고 1518년(중종13) 우찬성(右贊成)에 올랐으나, 이듬해 기묘사화(己卯士禍)때 파직되었다가 다음 해인 경진년에 죽었다. 사후에 영의정(領議政)에 추증되었다. 그는 특히 시문(詩文)에 능하여 많은 저서(著書)를 남겼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덧붙여 그는 대사헌이 되어서 도성 안에 살고 있는 무녀(巫女)들을 쫓아내어 동서 활인서(東西活人署)에 모이게 하고, 도성 안에 있는 여승방(女僧房)을 철거하고 불상까지 헐어서 중들로 하여금 도성 안에는 접근을 못하게 하였으며, 사대부(士大夫)로서 제도에 지나친 집은 간가(間架)를 철거하게 한 유학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