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공원의 봄 1
금년(2023년) 봄에도 호수공원 두루미는 부화에 실패했다. 이 두루미의 부화 실패는 3년째 거듭되었다. 어미 새가 알을 품은 지 닷새 만에 알은 썩어서 내용물이 흘러나왔다. 나중에 조류학자에게 물어보니까. 이 알은 애초부터 무정란이었다고 한다.
이 두루미의 종족은 중국 흑룡강 북쪽의 숲에서 서식하고 번식하면서, 늦가을에 한반도 남쪽으로 날아와서 겨울을 지내고 초봄에 흑룡강 가로 돌아가는 철새의 무리들인데, 지금 호수공원 동물원의 두루미 한 쌍은 4대조 때 사람들에 잡혀서 서울로 실려 왔고, 그 후로는 동물원 부화기에서 새끼를 번식시켜 왔다. 이 두루미는 4대째 철망 안에서 태어나서, 그 안에서 살고 또 죽는다. 무기수들은 감옥에서 죽으면 형기가 끝나는데 이 두루미들은 대를 이어 물려받는 세습 종신형을 복역 중이다.
호수공원 철망 안의 두루미 한 쌍은 암수 사이가 늘 데면데면하다. 철망우리 암놈은 이쪽 구석, 수놈은 저쪽 구석에 외발로 서서 목을 뒤로 틀어서 죽지 밑에 감추고 우리 밖을 향해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먹이로 미꾸라지를 먹을 때도 각자따로 먹는다.
철망에서 4대째 사는 동안 야생의 생명력이 퇴화해서 금슬이 망가졌고, 무정란을 낳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새 전문가가 아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조류학자도 내 생각이 그럴듯하다고 말했다.
어미 새는 돌멩이와 다름없는 그 무정란이 부화하기를 기다리면서 닷새 동안 품고 있었다. 흑룡강에서 끌려온 지 4대가 지났어도, 어미 새의 몸 안에는 모성본능의 한 줄기가 작동하고 있었다. 무정란이 썩어서 문드러지면 어미 새의 모성은 어디로 가는 것인가. 알을 잃은 어미 새는 가끔씩 목을 쳐들어서 끼룩끼룩 울었다. 그 봄에 호수공원에는 미세먼지가 자욱했다. 두루미와 미어캣과 공작새와 물속의 잉어와 거북이와 눌러 나온 어린아이들이 다들 미세먼지를 마시고 있었다.
먼지 속에서 꽃이 피면, 먼지에 덮인 숲은 우중충하고 꽃향기는 먼지의 누린내와 섞인다. 희미한 냄새는 이간의 후각을 냄새 쪽으로 더욱 바짝 잡아당기는데, 이때의 냄새는 무슨 냄새인지 가늠하기 어렵고, 인간은 자신과 냄새 사이의 거리를 설정할 수 없다. 먼 것이 더욱 절박해서 감질나고, 머나 가까우나 다 헛것같고, 헛것이 오히려 실체 같다.
먼지 냄새와 꽃 냄새가 섞이는 날, 이 난해한 냄새를 맡으면 내 생애의 밑바닥에 쌓여 있던 여러 냄새들이 마음의 지층을 뚫고 올라온다. 마음속에서, 지나간 냄새들은 멀리 물러나 있지만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것들은 작은 실마리를 만나면 안개처럼 피어나서 내 마음을 덮는다. 내 마음의 오지에서 냄새들은 서로 불화하고 부딪치고 섞인다.
꽃 냄새가 향기이고 똥 냄새가 악취인 것은 아니다. 냄새에는 미추가 없지만 거기에 길들여진 인간의 고정관념은 유전되고 있다.
꽃이 아름다운 색깔과 냄새로 곤충을 유혹한다는 생물학의 정설을 나는 의심한다. 이 학설이 진리 대접을 받으려면 곤충에게 미의식이 존재한다는 전제가 성립되어야 한다. 벌과 나비는 꽃으로 가지만 잠자리, 메뚜기, 방아깨비, 오줌싸개, 여치는 꽃으로 가지 않고, 파리는 한사코 똥으로 모인다. 벌은 똥으로 가지 않고, 파리는 꽃으로 가지 않는다. 벌은 미의식이 있고 파리는 미의식이 없는가. 꽃 냄새를 따라가는 벌의 감각은 우아하고 똥 냄새를 따라가는 파리의 감각은 추악한가. 인간은 이런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
냄새에 대한 나의 기억은 미적 쾌감과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더 깊게는 냄새는 나의 생애에 무뉘진 나이테와 같다. 오래된 나이테는 나무이 목질부 심층으로 모여서 굳어지고 희미해지는데, 꽃 핀 나무들의 어지러움이 그 심층부의 먼 냄새들을 흔들어 깨운다.
유년 시절에 나의 시간과 공간을 지배한 냄새는 DDT 냄새였다. 구호물자로 받은 담요와 옷가지, 머리카락 속에 이가 들끓어서 아이들은 하루 종일 긁적거렸고, 전염병이 번졌다. 이는 사람의 피를 빨아먹었다. 개나 고양이의 몸에도 이가 들끓었다. 이들은 옷의 솔기를 따라서 서캐를 슬었다. 아이들은 양지쪽에 쪼그리고 앉아 입던 못을 벗어서 이를 잡았다. 천막교실 바닥에도 DDT를 뿌렸고, 여학생들의 머리카락과 내복 속에도 DDT를 뿌렸다. DDT를 작은 자루에 넣어서 겨드랑이에 차고 다니기도 했다.
내 유년의 부산 피난지와 서울의 천막교실, 서울 성곽 주변의 판잣집 동네에 DDT 냄새는 안개처럼 자욱했다. DDT 냄새는 매캐했고, 낯설었고, 이물감이 느껴졌다. 이 세계는 부조화하고 인간의 생명을 받아들이지 않는 곳이라는 느낌을 그 냄새는 나에게 심어 주었다. DDT 냄새 속에서 이 세상은 무섭고 낯설고 적대적이었다. 이 세계는 끝없이 부서져서 가루가 되어 흩어져 가고, 인간을 배척하는 어떤 무서운 힘이 현실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 이 세계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인간이 이 세계로부터 소외되어 있다는 정서는 DDT 냄새 속에서 형성되었다.
겨우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세계의 더러움과 불의, 억압과 차별, 먹이사슬의 잔혹함, 권력을 가진 자들의 갑질을 체득하고 있었다. 세상은 부패했고, 부패는 일상의 질서로 작동되고 있었다. 나는 다만 학교를 오가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노는 일만으로도 이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DDT 냄새가 어른들의 세상을 뒤덮고 있었다. 호수공원이 꽃 냄새 속에서 먼 DDT 냄새가 피어오를 때, 나는 그 기댈 곳 없는 가엾은 소년과 그때의 동무들이 떠오른다. 꽃 핀 나무 아래서 먼 슬픔이 더욱 날카롭다.
거지와 전쟁고아들이 넘쳐나던 시절이었다. 끼니때마다 깡통을 찬 거지아이들이 마을을 돌면서 밥을 구걸했다. 나의 식구들이 앉은뱅이 양철 밥상에 둘러앉아 저녁밥을 먹고 있으면 거지 아이가 두어 명씩 대문 앞에 와서, “밥 좀 주어, 밥 좀 주어”라고 외쳤다. 외치는 소리는 구슬펐고 울음에 가까웠다.
나는 식구들과 둘러앉아 거지아이가 외치는 소리를 들으면서 밥을 먹었다. 안 먹으면 다들 배가 고픈데, 나는 먹고, 거지아이는 먹지 못한다는 현실은 난해했다. 나는 그 절벽과 마주 대하고 밥을 먹었다. 밥에서는 배릿한 냄새가 났다. 그때, 밥을 먹는다는 일의 상처는 깊고 쓰라렸다. 그때 밥은 삶을 모욕하고 있었다. 이 모욕은 먹으나 못 먹으나 마찬가지였다. 우리 집은 밥이 넉넉지 않으므로 거지아이에게 줄 밥은 거의 없었다. 거지아이는 우리 집을 포기하고 다른 집으로 갔다. 밥을 달라고 외치는 소리는 골목에서 골목으로 이어졌다.
가끔씩 어머니는 우리 형제들이 먹다 남긴 밥찌꺼기를 한 그릇에 모았다. 어머니는 그 밥을 거지아이에게 가져다주라고 나에게 시켰다. 나는 그 심부름을 할 수 없었다. 난 밥찌꺼기를 들고 거지아이 앞으로 갈 수가 없었다. 난 밥찌꺼기를 들고 거지아이 앞으로 갈 수가 없었다. 그것은 너무나도 무서운 일이었다. 거지아이들은 끼니때마다 왔다. 형제 거지나 남매 거지, 자매 거지는 더욱 슬펐다. 그 거지아이들이 외침과 내 목구멍을 넘어가던 밥의 감촉과 밥과 똥의 관계는 슬픔의 사슬로 내 마음을 옥죄었다. 미세먼지의 누린내와 꽃 핀 숲의 향기 속에서 내 유년의 DDT 냄새와 밥 냄새, 똥 냄새가 풍겨 오고, 거지아이들의 밥 달라는 외침소리가 들여온다. 두루미 알이 썩어 버린 공원에서 나는 또 초겨울에 흑룡강에서 돌아오는 청둥오리들을 기다리고 있다.
―김훈, 『허송세월』, 나남, 2024. 307~ 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