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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정보
좁은길=동방교를 추억하는 사람들
 
 
 
카페 게시글
우리들의 이야기 노 장로님의 눈물
솔방울 추천 0 조회 66 24.02.28 03:01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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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4.02.28 18:45

    첫댓글
    영주동 2교회,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눈에 서~언 합니다.
    대신동으로 넘어가는 터널입구의 우측에 있었던 왜식 건물...
    반지하 공실에는 가발 만드는 무단가출 집 나온 여신도들을 수용해서 흐릿한 형광등 불빛아래 하루종일 작업해서 돈벌이를 시켰는데 세칭 동방교에서는 그들을 [수도사]라고 불렀고...
    참으로 어이없는 동방교,
    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르는 눈감고 아웅하는 이단사이비 종교집단.

  • 24.02.28 23:12

    수도사 :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에 생긴 명칭으로 주로 껌을 팔아 지성(헌금)을 바치는 연단선님외에 빈집초월(무단가출)한 일부 여자 신도들을 특정한 장소에 모아놓고 집단숙식을 시키면서 구슬빽이나 가발 같은것을 만들어 납품하도록 하고 그 대금은 본인들이 한푼 만져보지도 못한채 몽땅 세칭 동방교로 들어갔는데 부산지방에서는 지금의 부산터널 영주동측 입구 우측변에 소재했던 왜식 건물, 세칭 동방교 영주동 2교회의 5-6평정도 되던 반지하실이 그런 대표적인 장소였다. 어두컴컴한 반지하 좁은 공간에 서로 붙어 앉아 희끄므레한 형광등 불빛아래 하루종일 하염없이 작업을 했는데 아마도 그것을 수도하는 것으로 세뇌시키고 본인들도 그렇다고 굳게 믿었고 착각했었다. 착각은 얼마나 행복을 주었던가.(이단의 추억 #  2, 세칭 동방교의 주요용어 설명 중에서)

  • 24.02.29 08:00

    상기 본문에서 부주(副柱) 이야기가 나왔기로 잠시 소개하자면... 세칭 동방교의 부주(副柱)란?

    자칭 좁은길, 세칭 동방교에는 사주(四柱)라고 부르는 네 사람이 있다. 둘은 남자이고 나머지 둘은 여자인데 남자 둘은 사주(四柱)목사라 부르고 여자 둘은 사주(四柱)장로라고 부른다. 교주 노광공을 제외하고는 동방교 조직내에서는 최고위직인데 이들은 말그대로 동방교의 사주(四柱), 즉 ‘네 기둥’이라는 뜻이다. 

    -- 남자 둘은 사주목사(요나단-정재덕, 베드로-양학식),  여자 둘은 사주장로(헤레나-오인숙,  사르멘-김숙자) 라고 부른다.--

    이외에 사주(四柱)를 보좌한다는 뜻 정도로 보는 네명의 부주(副柱)가 더 있기는 한데 이에 대해서는 세칭 동방교 내에서 큰 비중을 두지 않았고 또 네명의 부주(副柱)들 대부분도 일찌감치 동방교를 떠났거나 동방교에 잘 출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존재감이 희미하여 논외(論外)로 한다. 단, 부주(副柱)중의 한명인 김인경 입다목사는 끝까지 동방교에 충성하다 어느 절간에서 운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異端의 追憶 #125, 사주(四柱)들에 대한 小考 중에서)

  • 작성자 24.02.29 08:42

    영주동에 사는 두 분은 모두 부주 장로였어요. 노광공이 너희는 한 몸이고 모두 부주 장로라고 말했다나요?

  • 24.02.29 09:21

    이종면, 그의 부인 다비다...
    1970년대 당시는 이분들이 자칭 좁은길, 세칭 동방교의 부산 영주동(2교회라고 불렀음)에 출석했더라면 필자가 모를리 없는데 아마 그 이후에 다시 동방교에 이끌려 나오기 시작한듯... 참으로 질긴 인연이다.

    그런 사람중에 하나가 늙은 노모를 홀로두고 노광공의 곁에서 멸사봉공 충성하던 순회자 출신의 '아브라함 김중식'이라고 있다. 기구한 운명의 사내다.

    (中略...)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 그가 다시 나타난 곳은 '초량12교회'가 문현동으로 이전하여 위장 개업한 세칭 동방교의 부산 문현동 한빛교회였다. 동방교의 내밀한 사연을 잘 알지 못한 채 아편 중독 같은 오랜 세뇌에 사로잡혀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던, 2대교주 노영구의 시대에 동방교안에서 짝을 맞춘 그의 부인이 계속 세칭 동방교를 출입하다가 고희를 넘겨 얼굴에 주름살 깊은 그를 다시 세칭 동방교로 데리고 나왔다고 한다. 참 질긴 인연이다.(이단의 추억 # 53, 파독 간호원 사건 중에서)

  • 작성자 24.03.12 10:46

    한빛교회 있을 때, 처녀 때 동방교에 다녔다는 중년부인을 만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처녀 시절에 대기처에 있다가 굶주림과 구타가 싫어서 집으로 도망쳤다고 합니다. 근데 동방교 간부가 집에까지 찾아와서 기절할 때까지 두들겨 맞은 기억이 있어서 아예 발길을 끊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다가 구성민 중 한사람을 만났는데, 이제는 안 팬다고 해서 나왔노라고 말을 하더군요. 참고로 노광공의 수하엔 베드로 목사, 아브라함 전도사, 삼손 목사, 입다 목사 등 구타를 잘하는 제자들이 많아서 걸핏하면 성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고 하더군요. 한빛교회 장로는 자신도 아브라함(?)에게 너무 맞아서 도망쳤다고 하면서 길에서 우연히 만나면 가만 안 두겠다고 별렀습니다. 근데 나중에 아브라함(김중식)이 한빛교회에 출석했다고 하던데.... 한은 풀었는지 궁금하군요. ㅎㅎ


  • 24.03.12 21:10

    세칭 동방교의 대기처(집단합숙소) 생활을 해 보지 않은 신도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가공할 사건들이 참 많이 있지요. '이단의 추억' 기록은 그중의 아주 일부에 불과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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