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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오늘 교제의 말씀은 이사야서 36~39장 히스기야 왕에 대한 얘기로 여러분과 교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이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으로 나뉘어져서 66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이사야서 또한 전반부 39장과 후반부 27장으로 이렇게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 전반부 39장 가운데서 36, 37, 38, 39장에 대한 말씀이 바로 히스기야
왕에 대한 많은 분량을 이렇게 할애 하면서까지 히스기야 왕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제가 말씀드린 것은 얼마나 중요한 메시지인지 모릅니다.
이 말씀을 알게 되면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대치하셔서 연합되기를 원하시는지 그런 영적인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목적과 경륜의 이상에 대해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기 때문에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오늘 여러분들께 이 말씀의 교제를 나누게 된 것을 저도 감사를 드리고 이 말씀을 나누기 위해서 사실 많은 부담 가운데 많은 묵상을 통해서 제가 그리스도의 영이신 주의 영을
통해서 허락하신 말씀에 깨달은 바에 한에서 여러분들과 이렇게 교제를 나눌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이사야서 36장 37장 38장 39장은 바로 구약성경 39권에 전반부 말씀을 이렇게 기록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마지막 네장이 히스기야 왕에 대한 됨됨이에 관해서 이렇게 성경은 기록하여서 우리들에게 깊은 그런 하나님의 경륜의 이상에 대한 것을 아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놀라운 정말 귀한 말씀인 것입니다.
이 구약 성경이 39권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이사야서는 전반부가 39장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1장부터 35장까지가 바로 선민 이스라엘 그리고 그 선민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정말 징계의 회초리로 다루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삶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러한 생명의 삶의 원칙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이사야서 1장부터 35장까지의 말씀인 것입니다.
거기에서 이 35장의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이 바로
선민 이스라엘 하나님에 속한 백성들 하나님의 자녀들 성도들의 삶에 원칙을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이 1장부터 35장까지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고 36장 37장 38장 39장은 바로 선민 이스라엘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이요 하나님의 귀한 자들이 하나님의 경륜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통로가 될 경륜의 이상을 이렇게 실현
시킬 정말 보배로운 존재자들인 그들의 삶의 본을 제시한 것이 36장 37장 38장39장에
대한 이 네장의 말씀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쫓아 사는 삶과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 곧 그분을 쫓아 사는 삶의 원칙과 그분을 신뢰함으로 말미암아 어떤 삶의 모습을 통해서 삶의 원칙과 삶의 본을
통해서 바로 하나님을 마주해야 되는지 그러한 것을 이 말씀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아주 귀한 말씀인 것입니다.
바로 이 1장부터 35장까지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66장으로 그냥 이사야서 말씀이 기록된 것만 알지 이것이 구약 성경 39권과 신약 성경 27권으로 이렇게 구분되어져서 마치 이사야서가 전반부 39장과 후반부 27장으로 이렇게 의도적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조차도
무심코 간과하여 이렇게 소홀하게 대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세하고 깊이있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주 예수님의 영께서 이 말씀의 빛과 계시의 정신을 주셔서 인도 받지 않으면 쉽게 깨달을 수 없는 그런 깊은 내용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사야서의 처음 1장부터 35장까지는 피조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선민 이스라엘들이 어떻게 회복이 되고 또 그 회복시켜주시는 만유를 포함하신 그리스도가 오실 수 있기 위해서는바로 선민 이스라엘이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 돌이켜서 그 안으로 들어가는 삶을 사는 삶의 원칙을 가지고 그분을 사랑할 때 이 35장은 바로 그분을 사랑하는 삶의 원칙 인생의 원칙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선민 이스라엘에 대한 그런 하나님의 애정이 각별한 관심과 각별한 사랑과 경륜
속에서 그들을 대하고 계시지만 어긋나는 삶을 살 때 사악하고 패역하고 하나님께 반역의 정신을 갖고 변질된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들을 섬기기 위해서 우상을 받아들이고 다른
열국의 강국 들을 의존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는 그 의존하는 삶 그리고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고통 가운데 처하게 한 그 열국에 대해서는 징벌의 몽둥이로 그들을 때리셔서
이렇게 넘어뜨리고 있는 모습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민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그분의 속성에 의하여 사랑과
긍휼이 내재되어 있는 사랑으로 선민 이스라엘을 대하심으로 말미암아 열국을 대하
시는 것처럼 징벌의 몽둥이로 때리시는 것이 아니라 징계의 가느다란 회초리로 때리심
으로 말미암아 최악의 경우에는 그 땅을 빼앗기고 노예 생활을 하게 하고 포로로 잡혀
가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파괴되는 일을 갖게 할지라도 이 열국을 때리심으로
말미암아 모두 말살시키는 것과는 달리 소수의 남은 자들을 하나님께서 남겨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셔서 그리스도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바로 아브라함이라는 그러한 후손을 따라 이 다윗이라는 가문을 통해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서 오셔야
피와 살을 가진 육체를 가지신 그리스도가 되실 수 있기 때문에 영원 안에 계셨던 그 신성이 영원 밖의 제한된 시간 속에 살아가는 그런 인간의 몸을 취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통로가
선민 이스라엘을 통하여서 이루어져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각별한 관심과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다루시는데 그들이 잘못되거나 어긋난 길을 가게 되면 징계의 회초리로
때리시되 열강들을 대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혹독하게 대하시지 아니하시고 자비와 긍휼과 자애 그분의 동정심 어린 긍휼 속에서 소수의 남은 자들을 남겨 두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경륜의 통로로 조성되어지는 선민 이스라엘을 보존하시고 유지하시는 하나님의 각별한 섭리를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열국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의로운 심판을 행하심으로 의로운 심판으로 그들을 다루시고 행하시기 때문에 징벌의 몽둥이로 때리시고 그리고 이 선민 이스라엘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과 애정 긍휼로 대하시는 선민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의로운 심판이 아닌
하나님의 거룩하신 긍휼이 내재되어 있는 사랑으로 그들을 다루시고 때리시기 때문에
이 선민 이스라엘에게는 징계를 열국의 강대국들이 어긋난 길을 갈 때에는 징벌을
내리심으로 말미암아 현격한 차이를 가져오게 되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잘못되는 길을 선민들이 갈 때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 열국들을 하나님께서 크게 때리심으로 말미암아 크게 징벌하는 징벌의 막대기와 몽둥이로 치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무너지는 모습을 통해서 선민 이스라엘이 오히려 두려워하고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모시는 일에 적합한 심성으로 조성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주님께서는 온전한 그리스도로 대치해 주시기 위해서 그 사람들 그 선민
이스라엘 또는 열국의 모든 선민 이스라엘이 역사의 중심이기 때문에 역사의 중심 가운데서 중심이신 그리스도가 온전히 오셔서 그 선민 이스라엘의 꿈을 하나님이 가지신 그 영원한 경륜의 이상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어쩔 수 없이 해고를 시키시는 분으로 이렇게 우리가 나타나져 있다 라고 1, 2, 3편 교제의 말씀을 통해서 말씀을 나눴습니다.
예! 그리스도만이 이 일을 대치하여서 그 사람들은 타락한 죄인이요 죄악된 본성 악한
죄된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원하신 꿈이요 하나님의 계획이며 하나님의
경륜의 목적을 이루어드릴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갈망을 이루어드릴 수 있는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모든 사람들을 그리스도로 대치하여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 선민 이스라엘과 열방 민족의 강대국들인 열국들을 혹독하게 정말 너무나도 심하게 여겨질 정도로 그렇게 다루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36장부터 바로 이 마지막 구약 성경 39권을 이렇게 예표로 나타나고 있는 이사야 39장 말씀 중에서 4장 마지막 끝장에 36,38, 39장에 가서는 유다 왕 히스기야라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의 본을 우리에게 제시해 줍니다.
그 본은 그리스도가 중심입니다.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게 하기 위한 그럼 1장부터 35장까지는 그리스도를 쫓아가는 참다운 올바른 이 삶의 원칙이 무엇이냐 라는 것을 제시해 주고 있는 반면에 마지막 36, 37,38, 39장은 바로 그리스도 우리의 본이 되시는 대치자가 되셔서 연합되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 안에 들어와서 연합할 수가 있고 그 사람 안에 어떻게 하나님이 그리스도라는 분을 통하여 연합하여 질 수가 있느냐라는 이런 하나님의 경륜의 최종적인 목적과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 바로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삶의 원칙과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삶의 본을 제시해 줌으로 말미암아 바로 40장 말씀을 통해 40장은 뭐죠 40장부터 66장은 신약 성경 27권을 이렇게 예표로 표준으로 보여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40장에 침례 요한이 선구자로서 바로 오실 그 대치자가 되어서 하나로 연합되어지는 삶을 살게 해주시는 돌감람나무와 참감람나무에 대한 그 가지에 대한 얘기를 했죠. 예 그렇게
해 주시기 위해서 40장에는 바로 신약 성경의 처음 부분처럼 바로 이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침례 요한의 기록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구약 성경 39권 중에서 마지막 4장이 특별한 마치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길을 따르는 삶의 원칙과 바로 그리스도가 그 삶의 원칙의 중심이 되시는 그분을 따라 사는 삶의 본이 무엇인지를 제시해 주는 가운데 왜 히스기야 왕의 얘기가 갑자기 나타나서
4장이나 되는 거대한 성경 말씀 가운데 기록을 하고 있느냐 이것은 40장에 기록되어져
있는 바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만왕의 왕이시고 평강의 왕이시고 참 대치자로서 왕중의 왕이신 그분이 필연적으로 오셔야 될 수밖에 없는 일들을 보여주어서 왜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셔야만 되고 그리스를 쫓아 사는 삶의 인생에 본이 인생들은 되어질 수가 없는가? 이룰 수가 없는가? 왜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목적을 이루고 성취할 수 없는가?
하나님의 경륜의 꿈 경륜의 이상을 왜 실현시켜드릴 수가 없는가라는 것을 실패한
히스기야 왕의 삶의 모습을 통해서 마치 적극적으로 신뢰하고 적극적으로 주님을 쫓아
살고 경건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 히스기야 왕 안에 작은 수많은 여우들이 견고해지고 생명력이 넘치는 이 땅에 생명력이 넘치는 그런 여우들이 존재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왕국을 조성할 수 없다 라는 것을 밝히 보여주기 위해서 히스기야 왕을 통해서 그 본을 왕중의 왕이신 그리스도가 왜 오실 수밖에 없었고 왜 오셔야만 하셨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성경 말씀을 이렇게 보면 이사야 36,37,38,39 장에 히스기야 왕에 대한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그 히스기야 왕이라는 자가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히스기야 라는 사람에게서 그리스도와 히스기야 왕과의 비교를 통해서 사람 가운데서 왕이 된 히스기야라는 사람을 통해서 보여진 본과 왕중의 왕 만유의 주가 되셔서 우리의 대치자가 되신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만왕의 왕으로서의 그리스도 임마누엘 하신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하시는 그리스도로서 또한 우리에게 어떠한 본을 보여주고 있는가가 바로 히스기야 왕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아주 현격한 대조인 것입니다.
구분되어지기 위해서 구별되어지기 위해서 하나의 본을 우리에게 아주 확연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성경은 마지막 구약 성경을 상징하고 있는 39권 가운데 마지막 네장이 그렇게 기록되어 졌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외형적으로 보면 여러분 굉장히 신실한 자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열왕기하 18장 2절을 한번 볼까요.
열왕기하:18;1 이스라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삼년에 유다 왕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되니 18:2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오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 구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아비라 스가리야의 딸이더라
18:3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18:4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18:5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18:6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여러분 2절부터 보면 히스기야가 불치병에 걸려서 죽게 됐을 때의 나이를 사람들이 잘
모릅니다. 여기 이사야서 38장 10절에 나는 말하였네 중년의 때에 나 스올의 문 죽음의 문으로 들어가겠구나 중년의 때 여러분 중년의 때란 유아의 때가 한 살부터 10살 때까지이고11살 때부터 20세까지가 소년 시대 또 21살부터 한 30살까지가 청년의 때 그러면 31세부터 40세 때까지가 중년의 때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대충 나는 말하였네 중년의 때 38장 10절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은연 중에 볼 수 있는 것은 내 날들이 끊어지는 때에 바로 이게 중년의 때인 것입니다.
그러면 정확한 이 죽어지는 때가 몇 살입니까? 그것이 바로 열왕기하 18장 2절에 히스기야가 25세 때 왕이 되어 다스리기 시작합니다.예루살렘 이스라엘 유다 왕이죠.
유다 나라에서 히스기야가 25세 때 왕으로서 다스리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사야서 38장 10절에 보면 중년의때라고 함으로 말미암아 대략 한
40세 정도 됐겠구나라는데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바로 무엇입니까?
여러분 성경은 다 이렇게 조각을 맞추다 보면 해답이 정확하게 나옵니다.
36장 1절에 히스기야 왕 14년에 이 히스기야 왕이 몇세에 유다의 왕 보좌에 앉았죠?25세입니다. 25세에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했는데 14년 동안 통치했으니까 몇 살입니까?
25세에서 14년을 더하면 39살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39세 때의 이 일들이 이렇게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여서 15년이라는 이 병들어 죽게 된
불치병에서 15년을 연장된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39 + 15는 몇 살입니까?54살이죠.
39살 때 병이 걸렸으니까 15년을 더 연장된 삶을 살기 때문에 바로 54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히스기야가 유다 나라의 왕으로 다스리기 시작한 때가 25세이고 그리고 이사야서 36장 1절을 통해서 14년 동안 다스렸을 때 바로 앗시리아왕 산헤립이 자기의 수하인 랍사게를 통하여 쳐들어왔기 때문에 바로 이 39세에 이런 일들이 이렇게 발생이 되었지만 15년의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54세에 이렇게 죽음을 경험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여러분 54세의 죽음을 당했는데 삼십구세 때 불치병에 걸려서 15년 동안의
연장된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날의 생명의 수한으로 봐서는 그리 많지 않은 나이인데요
15년이 아니라 20년 30년을 이렇게 허락하실 수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15년이라는 기간만을 설정해 주셨던 것은 15년이라는 연장된 삶을 통해서 왕다운 왕이 되게
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기대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이 성경을 묵상하고 깨달으면서 얼마나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많으신 분인지 이 히스기야 왕은 바로 오늘날의 우리 성도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가 생명을 연장시켜달라고 허락해 달라고 간절히 간구했을 때 15년이라는 삶을 허락해 주십니다. 더도 덜도 아닌 딱 그 시간이 바로 제2의 삶을 살 수 있는 다윗왕과 같은 하나님의 집과 하나님의 왕국을 위한 전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최후의 마지막 삶의 연장된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히스기야 왕은 이 연장된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히스기야 왕은 어떤 자입니까 바로 열왕기하 18장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굉장히 히스기야 왕이 아주 경건한 왕으로 아주 하나님을 참으로 신뢰하는 왕으로 그렇게 보여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데요 이것은 외형적으로 보여진 히스기야 왕의 그 참다운 그리스도와 같은 삶의 길과 삶의 본을 따르지 않고 산 자기의 외형적인 삶의
모습일 뿐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현혹되거나 넘어가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래서 18장에 1절부터 이렇게 8절까지 보면 특별히 2절 한번 볼까요? 25세때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했다고 써 있죠. 그런데 3절에 보면 자기 조상 다윗이 한 모든 것을 따라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만 하였습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히스기야 왕이 대단합니다. 자기 조상 다윗이 한 모든 것을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였습니다.
4절을 보면 산당을 제거하고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진 그 우상의 집이라는 것을 기념하는 그 기둥들을 헐고 바로 이 선민 이스라엘을 가장 가깝게 괴롭혔던 우상 거짓 신인 아세라 상을 찍어서 불태워버리고 모세가 만든 청동 뱀을 오히려 선민 이스라엘이 그것을 우상화해서 그것에 대해서 절을 하고 섬기고 하는 이 일 때문에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오히려 놋뱀을 섬겼는데 이것을 산산조각 내어 없애 버립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자손이 그 청동뱀 앞에서 향을 피우고 하나님 대신에 그 놋뱀에게 경배를 하였기 때문에 그 잘못된 그 경배의 모습을 보고 히스기야가 이렇게 과감한 결단을 통해서 그 놋뱀을 산산조각 내어 버립니다.
여러분 이때 당시에 청동 놋뱀을 산산조각 냈다라는 것은 크나 큰 이 선민 이스라엘 유다 백성들에게 엄청난 구설수에 올랐을 것입니다. 그런 것을 감안하면서까지 히스기야가 이 일을 감행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놋으로 만든 뱀을 느후스단이라고 이렇게 얘기함으로 말미암아 놋 조각이라는 뜻이죠.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을 죽음에서 구출하려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방법에 의하여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놋뱀을 만들었다라고 민수기 21장 8절 9절은 그렇게 기록하고 있는데 놋뱀이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을 죽음으로부터 구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그 상징적인 존재가 십자가를 상징하고 있는 그 상징적인 존재가 오히려 선민 이스라엘을
유혹하고 그것에 집중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미신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히려 하나님이 아닌 그 상징적으로 만들어진 그 기념물인 놋뱀을 하나의 신으로 하나의 우상으로 여기게 되어서 산산조각을 냈기 때문에 그것을 성경은 뭐라고 얘기합니까? 느후스단(산산조각 내어졌다) 그건 하나의 우상이었다.
여러분 오늘날 이렇게 보면요 목걸이 또는 여러분 이 천주교인들은 손에 나무로 만든 십자가를 조그맣게 또는 어떤 사람은 문신을 통해서 십자가를 또 이렇게 목걸이로 십자가를 여러분 이것들 다 이런 놋뱀과 같은 하나의 상징적인 기념물 바로 하나님 대신해서 신으로 경배하고 거기에 뭐라고 쓰여 있습니까? 청동뱀 앞에 향을 피웠다. 향을 피웠다는 것은 섬기고 경배하고 절을 하였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지금 오늘날에도 유야무야로 이러한 면으로 십자가 어떤 사람은 비행기 타고 가면서 비행기가 막 출렁거리고 바람 기류에 의해서 위험해진 순간에 빠지게 되어 십자가로 만든 반지 목걸이를 꺼내가면서 막 이렇게 천주교 식으로 입에다 대면서 자신을 보호해달라고 십자가 여러분 그런거 아닙니다.
그런 행위는 바로 느후수단이라는 바로 놋뱀 하나의 우상으로 여겨진 선민 이스라엘의
하나의 신으로 하나님 대신한 기념물을 하나의 하나님으로 하나의 우상으로 하나의
신으로섬기고 여긴 것과 같은 행위이기 때문에 절대 이 말씀의 교제를 듣는 우리들은
우리 집안이나 또는 어떤 우리들의 장식물 가운데 그런 것들이 결코 흔적조차 있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5절에 히스기야가 어느 정도로 하나님을 신뢰했습니까?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이렇게 유다 백성들의 많은 반대와 그런 많은 의견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놋뱀을 산산조각 냄으로 말미암아 느후수단이 되게 한 것은 전에도 이후에도 있을 수가 없는 그만큼
이스라엘 하나님을 신뢰하였던 자입니다.
그래서 5절에 보면 유다의 모든 왕 가운데서 히스기야와 같은 이가 없었습니다.
그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히스기야와 같은 자가 없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6절에 보면 여호와께만 매달렸습니다. 그분을 따르는 일에서 다른 것을
보지 않고 돌아서지 않고 그분의 모세를 통해서 명령하신 그분의 계획만을 지켰다고
6절에 써 있습니다.
열왕기하:18:6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그래서 그러한 히스기야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그 히스기야가 어디에 가든지 번영하였습니다. 그래서 앗시리아 왕이 쳐들어왔을 때 오히려 반기를 들고 그를 섬기면 살려주겠다 라는 이 산헤립의 신하였던 랍사게를 통하여 항복하면 자신을 섬기면 자신을 따르면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면 안전을 보장해 주겠다라고 했을 때 앗시리아 왕에게반기를 들고 그를 섬기지 않을 정도로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였던 자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 히스기야 왕을 해고시키고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시고 죽음을 통해서 쫓아내셔서 해고하셔서 파직하게 하셔서 왜 40장에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만왕의 참 왕의 왕 중 왕이신 그리스도가 오셔야만 했을까요?
이것은 욥의 얘기와 비슷한 경우입니다.
욥이 그 옳곧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만을 쫓아 사는 삶을 살기 원하는 욥과
함께 계심으로 말미암아 욥의 삶 가운데 늘 욥이 창성하고 번영하게 되었다라고 성경 욥기 1장은 그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부를 이루고 얼마나 많은 재물과 얼마나 많은 종들과 얼마나 많은 그때 당시에 바로 재산의 척도를 가늠할 수 있는 짐승들이 말할 수 없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요. 그 욥에게는 한 가지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한 가지 모든 것을 취하고 모든 것을 소유하고 하나님과 함께하심으로 말미암아 번영하는 삶 창대하는 삶을 살았을지라도 그에게 오히려 없는 한 가지 오히려 부족한 것은 욥 안에 하나님 자신이 계시지 않았다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히스기야는 모든 것을 다 했습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매달렸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켰고 하나님을 신뢰하였고 정말 하나님이 아닌 다른 마치 대치물이 된 그 놋뱀을 산산조각 낼 정도로 그렇게 단호한 결단의 삶을 산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히스기야 왕 같은 자가 없었는데 왜 그를 36, 37, 38, 39장에 구약성경의 마지막을 대신하여 장식하고자 한 그 네장의 말씀은 왜 히스기야를 너무나도 실패한 왕으로 이렇게 치부하였을까요? 여러분 성경을 자세하게 읽어보지 않으면 이 열왕기하에 나타난 18장 1절에서부터 8절의 말씀까지만 보면은 참 경건하고 좀 하나님만을 신뢰한 좋은 왕의 모습으로 경건한 자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간과하고 놓쳐서 아니 될 것은 히스기야 왕은 정말 그 왕들 가운데 유다의 모든 왕들 가운데 히스기야와 같은 이가 없었고 그 이전에도 없었다라고 열왕기하 18장 5절은 말씀하고 있는데요. 이 히스기아 왕이 가지고 있지 아니한 그런 것이 바로 한 가지 있습니다.역대상 17장 12절과 14절에 보면 17:12 저는 나를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17:13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니 나의 자비를 그에게서 빼앗지 아니하기를 내가 네 전에 있던 자에게서 빼앗음과 같이 하지 않을 것이며 17:14 내가 영영히 그를 내 집과 내 나라에 세우리니 그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이 역대상 17장 얘기는 다윗이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왕국 하나님의 집을 건축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처죠 하나님의 성전이죠. 예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성전 곧 하나님의 왕국을 건축하기 원하여서 갈망하는 가운데 선지자 바로 다윗의 가족이기도 한 다윗의 그 신원자이신 나단과 함께 하나님을 위한 집 하나님을 위한 성전을 짓고자 이렇게 간절히 간구하고 갈망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다윗이 피를 많이 손에 묻힌 고로 솔로몬 왕 바로 다윗의 아들이죠. 다윗의 아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성전 곧 솔로몬 성전을 이렇게 건축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지고 건축되어지는 것을 예표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역대상 17장 12절 14절을 전체적인 말씀이 17장 가운데 말씀이 있지만 뚜렷하게 좀 골라서 여러분들에게 봉독해 드리면 그가 나를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고 나는 그의
보좌를 영원토록 견고하게 할 것이라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왕국에 그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서 갈망하는 그 모습을 보고 14절은 그의 보좌가 영원토록 견고하게 될 것이다. 자기의 집과 왕궁이 아닌 하나님의 집과 하나님의 왕궁을 건축하고자 소원을 갖고 아뢰는 모습을 통해서 오히려 하나님은 그에게 복을 주십니다.
8절에 그래서 내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내 앞에서 너의 모든 원수들을 끊어버리고 내가 너의 이름은 이 땅에 있는 모든 위대한 인물들의 이름과 같이 만들어 줄 것이다라고 하나님만을 위하여 하나님의 집과 하나님의 왕국을 건축하고 조성하기를 원하는 그의 마음을 보고 참으로 기뻐하셔서 그 솔로몬이라는 아들을 통해서 건축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렇게 작정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13절에 보면 내가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내 씨 내 아들들 가운데서 태어날 외형적으로는 일차적으로 자기의 아들인 솔로몬 왕이겠죠. 그러나 이 네 뒤를 이을 네 씨를 일으켜서 그 씨를 통하여 내 아들들 가운데 나는 그의 왕국을 하나님의 집을 견고하게 할 것이다라는 말은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대상:17:12 저는 나를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17:13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니 나의 자비를 그에게서 빼앗지 아니하기를 내가 네 전에 있던 자에게서 빼앗음과 같이 하지 않을 것이며
17:14 내가 영영히 그를 내 집과 내 나라에 세우리니 그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17:15 나단이 이 모든 말씀과 이 모든 묵시대로 다윗에게 고하니라
너의 후손으로 올 그리스도가 바로 내가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유일한 아들이
될 것이다. 그리고 14절에 이 집과 내 왕국이 영원토록 그를 통해서 세울 것이고 그의 보좌는 영원토록 견고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히스기야 왕이 이렇게 하나님에 의해서 복된 말씀을 받은 것보다도 엄청나게 차원이 다른 역대상 17장에 나타난 그 말씀보다도 엄청난 비교할 수도 없는 너무나 하늘과 땅 차이처럼 큰 차이에 복을 허락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지금 이 내용들을 전반적으로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그림으로 이 말씀으로 교제를 통해서 보여주기 위해서 지금 히스기야와 다윗의 왕의 얘기를 비교해서 대조해서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히스기야 왕은 모든 것을 행한 자입니다.
하나님만을 철저하게 신뢰한 자입니다.
정말 이 청동뱀 기념물 하나님 대신해서 신으로 섬기고 있는 선민 이스라엘의 잘못된 신앙의 길을 단절시키고자 청동 뱀으로 만들어진 놋조각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으로 섬겼던 하나님의 이름을 대체해서 섬겼던 그것을 박살낼 정도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따르고 모세의 계명을 지키고 정말 모든 그 우상들을 철폐한 그러한 경건하고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정말 말할 수 없는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을 정도로 특별히 유별난 그러한 신앙의 소유자인 것 같이 보이는 히스기야 왕입니다.
그러나 그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을 신뢰하였지만 사실은 하나님을 실천적으로 신뢰한 자가 아니라는 것이 나중에 말씀을 통해서 나옵니다. 경건한 삶을 살아서 경건한 하나님의 삶을 사는 본을 보여주기 위해서 아세라상 우상들을 철폐하고 우상들을 불태워버리고 놋뱀을 산산조각을 내고 다른 열국들을 의존하지 않은 채 하나님만을 섬기기 위해서 정말 그들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라는 말을 멀리하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매달려 무릎 꿇고 기도한 자였지만 경건한 모습으로 보여진 그 자이지만 실제 하나님이 원하는 그런 하나님의 사람은 아니었던 그런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다윗처럼 역대상 17장 나오는 그런 하나님의 집과 하나님의
왕국을 하나님의 집을 존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집과 하나님의 왕국을 유지하고 보존하고 굳건히 세우는 일에 다윗보다는 훨씬 모자란 자였습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보여준 신앙의 삶의 본이 흩어진 자의 삶의 모습으로 그리스도께서
왜 히스기야 왕 대신에 그렇게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정말 히스기야 왕 같은 자가 없었지만 그에게는 무엇이 없었습니까? 욥에게 모든 것이 있었지만 하나님 자신이 욥안에 없었던 것처럼 히스기야 왕에게는 하나님의 집을 조성하고 건축 하고자 하는 갈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을 이루어서 확장시키고 존귀한 하나님의 왕국을 자신의 생명보다도 더
귀하게 여겨서 그 왕국을 위해서 사는 헌신의 삶이 히스기야 왕에게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외에 하나님의 집과 하나님의 왕국을 도모하고자 하는 그런 소원과 갈망이 없는 대신에 다른 것들은 다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왕국의 건축에 대한 갈망이 없는 다른 것들을 하나님은 부족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실패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사야서 40장 말씀을 통해서 새로운 왕으로 대치하여야만 이 하나님이 집과 하나님의 왕국이 바로 그 왕을 통해서 참다운 왕 하나님의 집을 존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왕국을 바로 세울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 되시는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가 나타나셔야만 임마누엘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하시는 그분이 나타나셔야만 히스기야 왕이 이루지 못한 성취하지 못한 그 하나님의 집과 하나님의 왕국이 그 히스기야 왕을 통해서 도모하지 못했던 실패했던 그 신앙의 삶의 본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신앙의 본이 되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쫓아 사는 그 삶의 본이 무엇이냐를 보여드림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하나님의 집과 하나님의 왕국이 조성되어지는 지를 이렇게 보여주고자 한 것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윗과 같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는 아니었습니다.
왜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죠?그가 얼마나 많은 실수와 얼마나 잘못과
여러분 십계명 가운데 모든 계명들을 다 어긴 자가 바로 다윗입니다.
이 바세바라는 우리야의 아내를 취하는 일로 인하여 살인하지 말라 했는데 살인을 했죠
도둑질하지 말라고 했는데 남의 아내를 도둑질 했죠 또 거짓말을 했죠, 탐했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어긋나는 삶을 살게 됐죠. 하나님께서 제시해 주신 하나님의
언약이 담겨 있는 하나님의 명령인 율법조차도 어긴 그 왕이 다윗 왕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왜 그를 하나님의 마음과 합한 자라고 그랬을까요?
하나님의 집에 대한 존귀히 여기는 마음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고자 하는 하나님의 성전을 통해서 하나님의 왕국을 도모하고자 하는 이루고자 하는 그 마음의 갈망을 보고 하나님의 마음과 합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경륜의 영원한 목적이 바로 하나님의 집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는 일이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이 하나님의 집과 하나님의 왕국을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수조차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는 마음으로 인하여 그 집과 성전과 왕국에 대한 중요성을 알고
그것을 일으켜 세우기 위한 그 마음의 충만함 때문에 그 마음의 갈망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과 똑같은 일치를 이루어서 내 마음에 합한자다 라고 하나님께서 인정을
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에 대한 꿈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그 갈망 하나님의 왕국을 이루고 도모하고
세우고자 하는 그런 꿈들이 바로 다윗에게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윗을 그렇게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왕은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외형적으로 마치
경건하고 신실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자처럼 보이지만 실제적인 그 삶의 형태를 통해서는 그가 하나님이 원하는 만족케 하는 왕으로서의 삶의 본을 제시해 주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비록 경건한 사람이었고 신실한 사람으로 기도하는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곧 하나님과 사람이 아닌 그냥 외형적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자 영적으로 하나님을 따랐던 일은 마치 자기가 자기 자신의 한 행위에 대해서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는 작은 여우들이 그 안에 자리 잡음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작은 여우들로 인하여 포도원 포도나무를 망치게 됐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이 이렇게 커다란 손상을 가지고 커다란 훼손되는 일이 오히려 히스기야 왕에게서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는 경건한 사람이고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앗시리아 왕 산헤립의 신하인 랍세기를 통하여 유대의 모든 변방 지역의 요새화된 성읍들을 치고 그것들을 정복하고 차지합니다.
그 산헤립에 의하여 변방 지역들의 성들이 정복함을 당하고 빼앗기고 그 산헤립의 손에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이 히스기야 왕은 고난 가운데서 그렇게 심한 말할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한 모욕 선민 이스라엘에 대한 치욕을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함에도 불구하고 히스기야는 그러한 고난 속에서도 그 어려움을 하나님께 가져가서 아주 외형적으로는 좋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것이 36장 1절부터 여러분 20절까지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고 37장 특별히 17절부터 20절까지 여러분 자세히 한번 읽어 보세요
이사야:37:17 오 주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오 주여, 눈을 여시고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모욕하려고 보낸 그의 모든 말들을 들으시옵소서. 37:18 주여, 진실로 아시리아의 왕들이 모든 민족들과 그들의 나라들을 황폐하게 하고 37:19 또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니 그들은 신이 아니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 즉 나무와 돌이므로 그들이 그 신들을 멸하였나이다. 37:20 그런즉, 오 주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땅의 모든 왕국이 주 곧 주는 유일한 주인 줄 알리이다, 하니라. 이렇게 좋은 기도를 드릴 정도로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만을 신실하게 따랐던 자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에 의하여 바로 이 유다 나라의 다윗왕의 후손들 가운데 특별히 왕으로 임명된 자입니다. 히스기야가 하나님에 의하여 임명된 왕이라면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에 의해서 고용되어진 왕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목적 하나님의 경륜의 이상을 이루고 성취를 위해서 힘써서 하나님의 집과 하나님의 왕국 하나님의 성전을 이렇게 존귀하게 여기고 도모하는 일에 애를 쓰기 위해서 하나님께 고용되어진 하나님이 친히 임명한 왕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는 외형적으로 경건한 사람이었고 하나님이 아닌 앗시리아 왕의 말을 듣게 되면 자신의 안위를 도모함 받을 수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유혹된 말에도 넘어가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한 그 히스기야 왕을 위해서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여서 하루 저녁에 순식간에 18만 5천 명이라는 앗시리아 군대들을 모두 죽여버리는 인류 역사상 한순간에 18만 5천 명이 죽는 사건은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이사야:37:36 그때에 주의 천사가 나아가 아시리아 사람들의 진영에서 십팔만 오천 명을 치매 그들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니, 보라, 그들이 다 죽어 송장이 되었더라.
한순간에 물론 날짜를 두고 어떤 전쟁을 통해서 어떤 지속적인 역병들을 통해서 더 많은
사상자는 있을 수 있었지만 이건 그날 저녁에 하루 저녁에 생겨진 순식간에 벌어진 일들입니다. 그의 기도를 응답하신 사건이죠.
많은 사람들은 역병에 의해서 죽었을 거라고 하는데 역병에 의해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역병에 의해서 죽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그 능력에 손에 의하여 하나님의 그 오른팔의 능력의 손에 의하여 순식간에 죽음을 당하게 하신 것입니다.참으로 이게 놀라운 얘기입니다.
왜냐하면 역병에 의해서 죽었다면 이사야서 37장 36절에 그 여호와의 천사가 그날 저녁에 앗시리아 진영에서 18만 5천 명을 순식간에 쳐서 죽였는데 그들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보았습니다. 모두 죽은 시체가 돼 있었죠. 18만 5천 명 여러분 만약에 역병이라면 그들이 어떻게 그곳에 가서 그 시체 죽은 자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까? 그런 면에서 역병이
절대 아니라 하나님의 그 오묘하신 오른팔의 능력의 손에 의해서 우리가 알 수 없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방법에 의해서 18만 5천 명이 죽음을 당했다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생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히스기야 왕의 자신만을 의지하고 앗시리아 산헤립 왕의 말을 들으면 생명을 보장시켜주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안전을 도모해 주겠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을 친히 보게 된 것입니다. 그때 바로 기적적인 이러한 18만 5천 명을 그날 저녁에 죽이는 그러한 여호와의 놀라우신 능력의 손길을 받은 후에 갑자기 히스기야 왕이 38장 말씀을 통해서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그때에 어떤 때입니까 18만 5천 명의 죽음을 당한 바로 얼마 후에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 죽게 되메 아모스의 아들 대언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와 주께서 이같이 말합니다.
당신 집을 정리하라고 합니다. 당신이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합니다 하니까 자기 얼굴을 벽으로 돌리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그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전적으로 의존하고 하나님이
보기에 좋은 합당한 이 삶의 본을 보였기 때문에 바로 그의 대적자 앗시리아 산헤립의
그 군대를 하나님께서 친히 물리쳐 주시고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은 상태죠 그리고 그가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 정말 목숨을 다한 경건한 깊은 기도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간과하시지 아니하시고 정말 집중하셔서 들으심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15여 년 동안 더 연장해 주시겠다라고 말씀하시고 동시에 무화과 나뭇잎을 통해서 그를 치료하는 장면이 이렇게 나옵니다. 이사야:38:21 이사야가 이르기를, 그들이 무화과 한 덩이를 가져다가 종기 위에 덮는 것으로 붙이면 그가 회복되리라, 하였으며 이 무화과 나무는 선민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나무죠 마치 나다나엘이 무화과 나무아래에서 기도하는 것을 보았다고 한 것처럼 바로 선민 이스라엘의 왕 참 주인 참 왕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고쳐주셨다 라는 것을 무화과 덩어리로 성경은 은연 중에 이렇게 암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간절한 히스기야 왕의 기도에서 15년간의 생명의 시간을 연장해 주시기
위하여 친히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생각을 해보십시오
히스기야 왕이 이런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이런 알 수 없는 이런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 나이가 39세라고 얘기했죠. 중년의 나이 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15년이라는 생명의 시간을 허락해 주십니다.
그러면 그가 54세까지 살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54세 그때 당시의 나이로는 보통의 나이였을 것입니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그러니까 불치의 병에 걸렸다는 것은 보통의 생명의 수한보다도 더 적은 삶 39세 때에 이 병이 걸렸기 때문에 39세에 죽는다는 것은 이른 나이에 죽는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15년을 줌으로 말미암아 다른 이들과 같은 똑같은 생명의 수한을 주신다라는 것은 바로 이 15년이라는 연장된 생명의 기간 생명의 수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가 취하지
못한 하나님의 보기에 합당한 삶을 살았지만 하나님을 크게 기뻐하게 하고 만족하게 할
만한 하나님의 집과 하나님의 성전과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갈망과 소원과 꿈과 도모함이 없었습니다.
그 마음을 부여해 주셔서 그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 15년 동안의 삶을 또 한 번 부여한 것입니다. 그래서 20년 30년이 아니라 54세까지 줌으로 말미암아 특별한 기간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39세라는 나이에 죽을 수밖에 없었지만 15년이라는 생명의 수한을 더해짐으로 말미암아 얼마든지 주의 뜻을 따라 다윗왕이 그런 삶의 본을 보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인정받은 마음이 합한 자라는 이런 놀라운 축복의 말씀을 들은 것처럼 히스기야 왕에게도 그러한 외형적으로 경건하고 신뢰하고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존한 그에게 한 번 더 기회를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성도들인 우리들에게 한 번 더 생명을 허락해 주신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남은 이 삶은 보너스 삶인 것입니다. 15년 동안 이라는 삶을 여분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잘 먹고 잘 살고 자기의 안전과 자기의 생명과 자기의 가족들에 대한 어떤 번영과 창성함과 창대함을 도모하기 위한 일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집과 하나님의 왕국과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생명의 시간들을 연장을 해준 것입니다.
제가 이 히스기야 왕에 대한 서두 부분을 길게 여러 방법으로 설명을 하고 있는데요.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를 치료하여서 생명을 보장해 달라고 그렇게 간절히 기도한 히스기야 왕에게 20년 30년 40년이 아닌 오랫동안 살게 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근데 나이 54세에죽게 될 것이라는 15년이라는 시간을 한정해 놓고 그 15년이라는 주어진 그 시간에 최선을 다해서 다윗과 같은 삶을 살라라는 얘기입니다.
그러한 삶을 살아야 되는데 그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히스기야 왕 같은 자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왕은 사실은 하나님이 원하는 그런 신앙의 본을 따라 사는 자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고 하나님이 사랑하고 하나님이 만족해 하는 임마누엘 되시는 그리스도만이 이 일을 하기에 합당하다라는 것을 점을 찍고 완결되고 그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바로 히스기야 왕에 대한 얘기를 36, 37, 38, 39장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렇게 비교하면서 왜 만왕의 왕이신 이 임마누엘 되신 그리스도께서 왜 오셔야만 되는지 40장부터 신약의 말씀을 예표로 이렇게 기록되고 있는 것이니까요. 예 그렇습니다.
하나님 눈에는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경륜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만큼의 신뢰 하는 자가
아니라고 보고 15년 만에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지만 여러분 39세에 하나님께 간절히 자신의 생명을 연장해 달라라고 얘기를 하였다면 여러분 15년이 아니라 우리 생각에는 넉넉하게 한 30년 40년 이렇게 오랫동안 늙어 정말 다른 어떤 믿음의 사람들처럼 오랜 기간을 장수하다가 편안한 삶을 살다가 죽음을 가질 수 있도록 생명의 기간을 더욱더 많이 허락하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런데 그는 하나님의 경륜의 목적을 이룰 하나님의 집을 가꾸고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고 도모하는 일에 하나님조차 그를 믿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외형적으로 그가 놋뱀을 산산조각 내고 아세라상 우상들을 철폐하고 들어가는
양쪽 왼쪽 오른쪽에 그 기념 탑들 다 무너뜨리고 불살라버리고 그리고 열강의 강대국 앗시리아 왕의 산헤립 왕을 의존하지 않는 이러한 신앙의 삶은 비록 보였을지라도 그가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집과 하나님의 성전 왕국을 도모하는 일에 적합한 자라고 하나님이 미리 아심에 따라 그렇게 가늠해 보시고 하나님이 15년이라는 생명의 시간만을 허락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 마지막 15년 동안은 히스기야왕이 이 땅에 지금까지 하나님을 위해서 합법적인 외형적으로 보여지는 경건하고 신뢰하는 신앙의 삶의 본을 보였지만 하나님이 참으로 만족해 할 만한 이 땅 위에 세워진 그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왕국을 도모하는 일에 그가소홀히 했던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집과 하나님의 왕국을 도모하고 세우는 일에 유지하고 보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15년이라는 마지막 생명의 수한의 기간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히스기야 왕은 이것을 간과하고 오히려 실수를 하고 크나 큰 실패를 하여 하나님의 성전에 있는 성물들까지도 다 빼앗겨버리고 그 히스기야 왕이 그 생명의 연장된 기간을 통해서 출생한 그 아들이 이 유다 나라에서 가장 포악하고 하나님 목전에 가장 악한왕이 되었다라고 성경은 그렇게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차라리 기도하지 말고 그냥 죽어버렸더라면 그렇게 악한 자식이 왕이 되는 하나님 앞에
그렇게 하나님이 집과 하나님의 왕국을 존귀하게 여기고 도모하는 자가 아니면 그런 악한 자의 아들이 산출되어져서 하나님의 나라 선민 이스라엘 백성과 그 땅과 그 성전을 빼앗기고 파괴시키고 포로로 잡혀가는 일들이 생긴다 라는 것을 통하여 대치자이신 완전한 왕이신 온전하신 평강의 왕 만왕의 왕이 왜 오셔야 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38장 말씀을 통해서 내가 말하였습니다. 내가 중년의 때 곧 39세죠 내가 죽음의 문으로 이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절에 보면 놀랍게 여호와는 나를 구원하시는 분이시니 우리 사는 모든 날 동안 여호와의 집에서 내가 현악기에 맞춰서 내 노래들을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가 노래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병으로 인하여 15절 이 하반절에 보면 나의 혼이 있으라 일생 동안 신중히 아주 이제 경거망동하지 않고 이제 이 병을 통하여 내가 생명의 이 수한의 기간을 연장받았으니 이제는 심사숙고한 가운데 조급해 하지 않고 정말 천천히 천천히 생각 속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신중한 삶을 살겠습니다 라고 이렇게 고백하는 장면도 이렇게 나옵니다.
그런데 이 38장의 이 말씀들을 통해서 보여지는 것은 바로 히스기야 왕이 병에서 고침받고 이제는 건강한 상태에서 하나님이 제한된 시간 가르쳐준 삶의 시간을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고 어떤 평안을 유지하고 평안한 생활과 온전한 건강을 도모함으로 말미암아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의 연수를 다 채우고자 하게 하기 위해서 이 병을 고쳐준 것이 아닌데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이 아닌 자신만을 바라보다가 이 일에 대해서 완전히 실패하여 넘어진 자로 보여지는 것입니다.
38장의 말씀이 뭡니까 히스기야 왕이 병들었다가 고쳐졌다는 얘기를 듣고 히스기야에게 편지와 그 많은 선물을 이 바벨론 왕에 의해서 바벨론 제국에 의해서 유다 나라가정복을
당하고 공격당하고 예루살렘 성이 파괴가 되고 포로로 잡혀 가고 그 땅을 빼앗기게 되는 일이 바로 이때의 일로 인하여 그들에게 강한 유혹의 손길을 보내면서 그들이 기억하게 됐던 것입니다.
히스기야왕은 그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자신의 보물 창고를 보여 주었는데 여러분 자신의 보물 창고에는 뭐가 있겠습니까? 바벨론에서 온 왕의 사절단에게 자기의 보물창고와 무기고 나라 전체의 가장 귀한 것을 보여준 것은 말할 수 없이 어리석은 행동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성물들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구별된 기구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가장 좋은 보물들을 이 무기들과 귀한 것들을 보여줌으로 말미암아 후에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에 약 1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에 바벨론 왕이 친히 와서 이 모든 그 사절단에게 보여준 그 보물 창고 그 귀한 것만을 담아 바로 하나님의 집을 채우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는 그런 성별된 물건들까지 보여줌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기억한 바벨론 왕이 사절단으로부터 이 얘기를 듣고 마음속에 간직하였다가 자신들의 힘이 강력해진 그때에 모든 재물들을 빼앗아 가는 것이 이사야서39장2~7절 말씀입니다.
39:2 히스기야가 사자를 인하여 기뻐하여 그에게 궁중 보물 곧 은금과 향료와 보배로운
기름과 모든 무기고와 보물고에 있는 것을 다 보였으니 궁중의 소유와 전 국내의 소유를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은지라
39:3 이에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왕에게 나아와 묻되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 왕에게 왔나이까 히스기야가 가로되 그들이 원방 곧 바벨론에서 내게 왔나이다
39:4 이사야가 가로되 그들이 왕의 궁전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들이 내 궁전에 있는 것을 다 보았나이다 내 보물은 보이지 아니한 것이 하나도 없나이다
39:5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왕은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39:6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열조가 오늘까지 쌓아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39:7 또 네게서 날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히스기야 왕이 그 보물 창고를 보여줬기 때문에 이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자신의 행동을 사려 깊게 주의 깊게 깊은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가볍게 생각을 하여서
신중히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행동을 할 때 사절단이 왔을 때 그 행동에 대해서 기도 조차도 하지 않았습니다. 바벨론 왕이 이 사절단에게 자신의 보물 창고 귀한 것만을 모아 수집하여서 굳건히 잠겨놓은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것들을 오히려 자기 이름을 드높이기 위해서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서 자기가 위대한 자임을 이러한 것들을 이렇게 가지고 있는 큰 왕임을 보여주기 위해서 바벨론 왕이 장차 자신들의 나라에 유다라는 나라를 어떻게 대할지를 알지 못하고 깊은 생각 없이 한 히스기야 왕의 경솔한 행동과 사려 깊지 않은 이런 행동들 때문에 사절단에게 자신의 보물창고를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의 재물을 나타내고자 한 것입니다. 자기의 소유를 과시한 것입니다.
탐욕이 있는 것임을 그 사절단에게 보여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마음을 몹시 아프게
하였습니다.
이 사절단에게 자신의 보물 창고를 보여준 것은 자신의 소유물이 넉넉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은근히 내세우고 자기의 이름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보물들을 누가 부여해 주었습니까? 하나님께서 번영하게 하고 창성하게 하고 창대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 소유를 소유할 수 있도록 보물들을 소유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이었는데 마치 자기 것인 양 자기의 물건 인냥 과시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마음을 몹시 아프게 하고 슬프게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교만한 눈을 갖고 거만한 마음을 가진 자를 미워하신다라고 베드로전서 5장 5절은 그렇게 기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5: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이 교만과 거만함이 합쳐진 것이 오만함인데요.
오만한 자들을 절대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보고
마음속 깊이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그 사절단에게 자신의 보물창고를 보여주는 그런 행동은 얼마나 과시욕이 있는지 여러분 우리가 좋은 차 자기 분수에 넘는 그 좋은 집들 아니 혼자 사는 집에 무슨 30평 40평 집이 왜 필요합니까? 왜 타고 다니는 차가 왜 그렇게 5억짜리 10억짜리 차가 필요한가요? 여러분 자기가 그렇게 많이 가진 소유를 과시하는 것은 사단의 정신에 부합되는 삶의 속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렇게 기분 나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당신이 그 보물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을 다 보여주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당신이 보여준 그 쌓아둔 모든 모물들이 바벨론 왕에 의해서 유다 나라가 정복당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보물들이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하나도 남지 않으리니 곧 다가오고 있습니다 라고 이사야 39장 6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39:6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열조가 오늘까지 쌓아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39:7 또 네게서 날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완전히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해서 그 히스기야 왕을 해고시키는 것입니다. 파직시킨 것입니다. 먼저 외형적으로 15년이라는 설정된 기한은 살게 하시지만이 이 일을 통해서 자식들이 포로로 끌려가고 왕궁의 내시가 되게 함으로 말미암아 왕의 위치에서 벗어난 파직한 삶 하나님이 왕으로서 고용한 히스기야 왕의 위치에서 쫓겨나게 됨과 동시에 완전히 하나님께서 해고를 시키시고 새로운 왕 임마누엘 되시는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이 말씀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히스기야가 선지자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렇게 말씀하는 것이 당연히 옳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사는 날 동안에는 비록 아들들이 내가 낳을 아들들 지금 있는 아들들이 아니라 장차 낳을 아들들 가운데 몇 몇은 끌려가고 바벨론 왕궁의 내시가 되는
일인데 나에게는 그런 고통스러운 그런 일들이 친히 닥쳐지는 일이 없기 때문에 내가 사는 날 동안에는 평화와 진리가 있을 것입니다라고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39:8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의 이른바 여호와의 말씀이 좋소이다 또 가로되 나의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으리로다 하니라
여러분 그리고 40장에 이스라엘에게 하신 여호와의 위로의 말씀인 임마누엘 그리스도
만왕의 왕으로 오실 것이라는 히스기야 왕 대신에 이러한 이 해고 되어져서 몹쓸 짓을 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집을 세우고 도모하는 일에 소홀 할 뿐만 아니라 실패하는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그 성이 무너지고 포로로 끌려가고 선민 이스라엘 그 신하들 자기 아들들만 끌려갔겠습니까 수많은 백성들 수많은 신하들이 함께 끌려갔을 것입니다.
해고될 수밖에 없습니다. 파직될 수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왕이신 그리스도가 오셔서 대치물이 되지 않고서는 구약성경의 모든 것이 완결되어질 수 없기 때문에 완결되어질 수 있고 완성되어질 수 있는 바로 임마누엘 되시는 왕이신 그리스도가 오셔야만 되는 이유를 여기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