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차』(유승엽 작사/작곡)는 1978년 발표된 「이은하」의 곡
입니다. 1970년대 후반 한국 가요계는「이은하」의 『밤 차』
전성시대(全盛時代)였습니다.
'관광버스' 안의 아줌마, 아저씨들은 물론, 초등학생들까지도
「이은하」의 『밤 차』를 부르고, 손으로 여기저기 허공을
찌르는 '디스코 댄스'를 추는 것이 유행이었죠.
「이은하」가 TV쇼에 나오는 날이면 아이들이 TV 앞에서
『밤 차』를 따라하고 재롱을 부려 가족이 웃는 날이 됐습니다.
「이은하」(1961년생)는 1973년 13살에 '임 마중'이란 곡으로
데뷔 했습니다. 그리고, 16살에는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17살에는 『밤 차』등 연이은 흥행으로 '한국 가요사'에 첫 10대
소녀 가수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허스키한 목소리와 볼륨 있는 몸매의 성숙한 이미지
여서 「이은하」가 10대 소녀라는 사실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으며, 정부가 17살 이하 미성년자의 방송 출연을 금지한
때여서 「이은하」의 소속 회사도 나이를 숨겼다고 합니다.
이후 '돌이키지 마' '아리송해', '사랑도 못해본 사람은', '봄비',
'겨울 장미',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등 많은
히트곡으로 10년 연속으로 방송사의 '10대 가수상' 을 받는
대형 국민 가수가 되었고, 인기 가요 순위 1위의 트로피만
70여 개가 됩니다.
1983년 5월 「이은하」는 미주(美洲) 한국 일보 초청 '재미 동포
위문 공연단' 일원으로 '코미디언 이주일' 등과 40여 일의 순회
공연을 했습니다.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이나, 로스앤젤레스의 '슈라인 오디
토리엄' 같은 대형 무대에서도 이은하의 『밤 차』 디스코는
절창(絶唱)이었으며, 동포들의 위안 이었고 향수(鄕愁)였습니다.
그런데,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던 가요. 가수로 성공하여 이룬 부(富)와 명예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수십 억에 이르는 빚이
생겨 십 수년간 갚다가, 결국 개인 파산 신청을 하였고,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척추 분리증을 치료 받다가 '쿠싱
증후군'이란 이름도 생소한 병까지 얻었습니다.
'쿠싱증후군'은 얼굴이 붓고 고혈압 등의 질병이 따라오는 것
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이은하」가 '쿠싱증후군'을 이겨
내고 'KBS 가요 무대'에 올라 열창(熱唱)을 하였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고통의 터널을 뚫고 나온 「이은하」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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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기적이 우네
나를 두고 멀리 간다네
이젠 잊어야 하네
잊지 못할 사람이지만
언젠 가는 또 만나겠지
헤어졌다 또 만난다네
기적 소리 멀어져 가네
내 님 실은 마지막 밤 차
멀리 기적이 우네
그렇지만 외롭지 않네
언젠 가는 또 만나겠지
헤어졌다 또 만난다네
기적 소리 멀어져 가네
내 님 실은 마지막 밤 차
멀리 기적이 우네
그렇지만 외롭지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