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갓 돌을 지난 딸아이가 막 걸음을 띠려고 하는 요즘 아빠 된 마음은 아주 바빠지고 있다. 아이를 낳은 지 굉장히 오래된 것 같고 남의 집 아이들은 우리 아이보다 늦게 태어났는데도 걷는 게 모자라 뛰어다니고 있다는 말에 아직 서는 것 조차 버거운 아이를 마루에 세우고 손을 잡아 앞으로 끌면 어느새 아이는 그냥 털썩 주저앉고 만다. 아이가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무리하게 걷게 만들면 나중에 척추 부위에 손상이 갈 수도 있다는 얘기도 들리는데 아빠의 욕심이 앞서 아이에게 무리한 일을 시킨 것이 아닌지 겸연쩍기도 하다. 무엇보다 아이는 자기 고유의 타이밍에 맞춰 자연스럽게 걷게 되고 말하게 되는 법인데 이 아빠는 조급하기만 한 것이다. 지금까지 스스로 잘 자라줬는데 아빠가 그 다음 얼마간을 기다리지 못해서 벌어지는 아이와의 신경전은 오늘도 계속된다.
K2 팀들이 리그컵에 참가해서는 안되는 까닭
K2리그와의 승강제에 앞서 K-리그 컵대회에 K2리그 팀들을 참가시키는 문제를 놓고 말들이 많았다. 연맹 이사회를 통해 부결로 결론이 나긴 했지만 아직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아마도 우리나라 클럽 축구의 한 획을 긋게 될 승강제의 실시를 앞두고 가시적인 한걸음을 더 떼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리라. 승강제를 실시하고 K2리그 팀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도록 하는 과정 속에서 순간 멈칫하게 만든 이번 컵대회 해프닝은 이사회 부결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는 상투적인 격언을 떠올릴 수 있는 당연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K2리그 팀들이 K리그 컵대회 참가가 불가한 첫 번째 이유는 정체성의 문제이다. K2리그는 말 그대로 실업팀이다. 당초 축구협회에서 얼렁뚱땅 K2리그라는 UFO를 만들어 낼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K2리그는 몇몇 팀을 제외하고는 아직 연고 정착도 되어 있지 않고 말 그대로 회사 팀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필자가 실력을 갖고 논하는 것은 아니다. 그 클럽의 수준은 축구 실력으로 보다 프런트, 운영능력, 연고정착, 팀의 비전 등 그라운드 외적인 요소들이 어우러져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K리그 구단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클럽은 K2리그에 아무도 없다. 당초 프로축구연맹에서 생각한 4개 팀이라는 것이 무슨 기준이었는가? 실력이 아니었는가? 실력이 있다고 해서 프로팀의 컵대회에 들어온다면 기존의 프로팀은 뭐하러 마케팅을 하고 팬관리를 하며 홈경기에 공을 들이고 연고지와 유대를 맺는가? 뭐하러 프로연맹에 가입을 하고 비싼 돈 들여 프로의 틀을 유지하는가?
그렇다면 컵대회는 또 무엇인가? 이 일을 추진하던 연맹은 과연 컵대회에 대해 어떤 정의를 내리고 어떤 정체성을 부여해왔던가? 컵대회는 FA컵과 어떤 차별점이 있는가? 컵대회는 프로팀만이 참가하는 리그컵 대회가 아니었던가? 다른 목적이 있어서 컵대회를 그렇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면 과연 컵대회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가? 그렇다면 연맹은 컵대회에 무슨 의미를 부여하고 지금까지 대회를 치러왔던가? 아무 생각 없이 아무 의미 없이 그냥 그렇게 진행해 왔던 것이 아닌가? 그러니 컵대회가 지금까지 이렇듯 찬밥이 아닌가? K리그 컵대회는 프로팀만이 참가하도록 규정된 대회다. 연맹은 컵대회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승강제 준비, 전혀 안되어 있다.
근본적으로 이런 방법으로 조급하게 승강제를 논하기 전에 승강제에 대해 얼마만큼의 준비가 이루어졌는지 궁금하다. 필자가 보기에 승강제를 위한 준비는 한걸음도 떼지 못했다. 그저 축구협회(협회 전체가 그러는 건지 한 사람이 그러는 건지)의 조급한 진행으로 축구팬과 언론의 기대치는 높아지고 분위기는 무르익어 가지만 정작 중요한 준비들은 하나도 안되고 있다.
K2리그의 구단들이 K리그 팀과 같은 무대에서 경쟁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최우선 조건은 바로 K2리그 구단 모두가 프로팀으로서의 조건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가 프로팀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채 승강제를 한다면 K2리그에서 올라올 수 있는 팀도 제한이 되고 그렇다면 K2리그 자체도 별 의미가 없어진다. K리그의 기존 팀들도 프로 팀이 아닌 구단들과 경쟁할 수는 없는 일이다. K리그 승격이 확정된 후에 모든 조건을 채우면 된다는 말도 어이가 없다. K리그에서 경쟁할 수 있는 조건이 선수와 실력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인지, 그럼 왜 경남FC 같은 팀들은 프로팀 하나 창단하는데 1년이 넘게 걸렸는지 되묻고 싶다. 강등되는 팀도 마찬가지다.(강등제는 몇 년 후에 한다고 하더라도) 프로팀이 강등되어 대부분이 아마팀인 리그에서 대회를 치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프로팀이 꼭 한해에 100억 200억을 쓸 필요는 없다. 프로의 조건이 운영비가 기준은 아니라는 얘기다. 현재 K2리그에서 제대로 된 프런트를 구성한 구단이 어디 있는가? 한 시즌을 치르는 것이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라면 왜 인천유나이티드는 어렵다 어렵다 하면서도 십수명의 프런트를 두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는가? 감독과 주무가 모든 일을 챙기고 있는 K2리그 구단의 현실에서 그럼 누가 홈경기 운영을 하고 누가 후원사 영입에 관리까지 담당하고 누가 선수단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겠는가? K리그 승격 확정되면 그때 가서 인력을 구성하면 되는가? 아님 지금처럼 그냥 감독하고 주무가 다 알아서 하면 되는가? 그도저도 아니면 그냥 지금 이대로 경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가? FA컵에서 좋은 성적으로 거두었다고 당장 프로팀들하고 리그를 치를 수 있다고 쉽게 생각하는가?
K2리그는 프로가 아니다.
연고지는 어떠한가? 인천한국철도가 실질적으로 인천에 연고를 두고 인천 지역의 구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들어 보시라. 인천한국철도가 K리그에 올라와 인천유나이티드와 더비매치를 벌인다? 하나는 시민구단이고 하나는 인천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철도공사의 팀인데 과연 더비의 이름을 붙일 수 있을 만큼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미포조선이 울산현대와 더비매치를 꿈꾼다? 같은 구단주를 두고 실질적으로 같은 회사이면서 두 구단이 같은 연고지에서 더비 매치를 한다?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수원시청은 어떤가? 수원시청이 K리그에서 수원삼성과 붙는다? 그럼 수원시청은 수원시청 팀의 자격으로 K리그에서 뛸 수 있는가? 그렇다면 K리그 승격이 확정되고서 단 몇 달 만에 시민주 공모하고 부랴부랴 준비해서 시민구단이 된다? 그러면 수원삼성은 그때부터 찬밥? 고양 국민은행? 국민은행처럼 초대형기업이 K리그 팀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면 벌써 만들지 않았겠는가? 극적으로 K2에서 승급으로 올라가는 최초의 팀이 되고 싶어서? 아니면 힘들이지 않아도 K2에서 우승하면 K리그에 껴준다니까 그거 기다리느라고?
경기장은 어떠한가? 당장 문학에서 인천한국철도하고 인천유나이티드가 컵대회를 치른다면? 매표소 안내는 몇 번을 띠었다 붙였다 해야 하는 것이고 각종 컴퓨터 기기들은 몇 번을 설치했다 치웠다 반복해야 하는 것인지, 경기장을 활용한 상업광고를 계속 변경하기 위해 업체의 일군들은 몇 번이나 경기장 난간을 타잔처럼 타고 다녀야 하고 구단은 얼마의 지출을 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았는가? 그럼 인천유나이티드가 인천한국철도와 LG-두산처럼 광고 계약을 공동으로 하면 편리하겠다. 그럼 인천한국철도가 K리그에서 뛴다면 GM DAEWOO는 40억원을 내야겠지. 경기장도 공동으로 활용하고 또 같은 인천 연고인데 누구는 20억원 후원하고 누구는 입을 싹 씻을 수 있는가?
프로 가입금하고 축구발전기금은 어떻게 할 것인가? K리그 승격이 확정되면 부랴부랴 목돈 마련하느라 힘들것인데 그래도 신난다고 하면 강등되는 팀은 억울해서 어떡하나……. 신생팀은 어떻게 해야하나? 이제부터는 K2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하겠지만 바로 K리그 수준이 되는 팀을 만들만한 의지가 있으나 K2의 수준으로 만들어 시작하라고 하면 어느 누가 반기겠으며 또 지금의 K2리그가 그런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훌륭한 프로구단을 만들어 함께 리그를 치를만한 수준이 되는지. 승급하는 선수들의 계약은 어떻게 해야 하나? 그들의 신분은? K리그의 통일 계약에 맞추어 모두 다시 계약하나? 이 부분에 대해 축구협회는 과연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축협, 승강제 이전에 판을 만들어라
축구협회는 승강제를 논하기 전에 위에 언급한 여러 가지 문제부터 해결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K2리그 구단들의 의지도 없어 보이고 별다른 준비가 없어 보이는데 축구협회가 요란하게 진군나팔만 울려댄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프로연맹도 무작정 승강제에 휩쓸리기 보다 현재 K리그의 틀을 유지하고 K리그 구단과 팬들이 박탈감을 가지지 않게 K2리그에 끊임없이 준비를 요구하고 일정 수준의 구단 운영 요건과 자격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컵대회의 개방이든 뭐든 논의가 가능한 것이 아닌가? K리그도 K2리그도 모두 준비가 안된 마당에 컵대회에 붙여서 과연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지 필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실력만 되면 그만인가? FA컵에서 K2 구단이 결승에 올라갔으면 승강제의 요건이 모두 갖춰진 것이라 생각하는가? 과연 K리그 구단들이 K2 팀에 지는 것이 두려워 K2와 같이 안 놀겠다 한다고 생각들 하시는가? 그럼 K2 구단들은 어떤가? 다들 K리그에 올라가는 것을 반기고 있는가? 의지와 비전이 준비되어 있는가? 자 모두들 생각해 봅시다. 다시. 제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