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다른 동물과 견주어 볼 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능력 중의 하나는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기가 4 개월이 되면 모음을 만들어 내는 엄마의 입 모양을 알아본다. 18 개월이 되면 말을 시작하는데, 한 두 단어로 시작되어 두 살이 넘으면 수천 개의 단어를 말할 수 있게 된다. 어른에 비한다면 엄청난 학습능력을 보이는 셈이다. 특히 여자아이는, 말에 관한 한, 남자아이보다 두 배정도의 능력을 발휘한다. 여자아이는 같은 또래의 남자아이보다 말을 빨리 시작한다. 말이 늦어 언어치료사를 찾게 되는 아이의 대부분 역시 남자다.
여자에 비하면, 남자들은 말을 잘 못한다. 말수가 적을 뿐만아니라 조리 있게 말할 줄도 모른다. 남자들은 스스로 말보다는 행동이 더 중요하다고 위안하고 있겠지만, 말을 하는 것도 말을 들어주는 것도 여자에 비해서는 서툰 것이 사실이다. 꼭 말을 잘하지 못하기 때문만은 아니지만, 남자들은 침묵하며 보내는 시간이 많은 편이다. 그러다보니 여자들에게 곧잘 심술궂거나 거만하다는 오해를 사게 된다. 남자들이 여자의 그런 반응에 놀라는 이유는, 그들이 말의 중요성을 느낄 수 없는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남자에 비하면, 여자들은 말을 잘한다. 자기 마음을 표현하거나 남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주는 것 모두가 여자들에게는 익숙한 일이다. 여자들끼리 함께 있는 자리에서는 어김없이 말잔치가 벌어진다. 그녀들에게 대화는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 이상의 것이다. 가끔 남자들은 그것을 목적 없는 수다라고 비꼬지만, 여자에게 대화는 서로를 인정해주고 공통점을 찾고 유대감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여자들끼리 함께 있는 자리에 침묵이 흐른다면 그것은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뜻이 된다. 여자들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서로에 대한 감정을 호흡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남자들의 조상은 오랜 세월 동안 사냥꾼으로 살아왔다. 현대를 사는 남자들의 심리적 특성 대부분은 사냥꾼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사냥은 고도로 조직적인 협동작업이다. 리더가 지휘하는 조직이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위계질서와 서열이 중요했다. 사냥을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대화는 모호하지 않고 의미가 분명한 것이었다. 돌려 말하는 것은 방해가 되었다. 각자가 갖고 있는 느낌보다는 대화 속에 들어 있는 정보와 명령체계가 중요했다. 사냥꾼 집단의 결속력은 서로의 느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얻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함께 사냥을 하면서 하나라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서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남자들끼리 축구 게임을 뛴 후에 친근감을 느끼는 것과 같다.
여자는 오랜 세월 동안 부녀회에 소속된 어머니로 살아왔다. 아기의 수태기간과 양육기간이 길어지면서 여자는 아이를 키우는 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거주지 근방에서 열매를 따거나 나무뿌리를 캐는 것 이외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를 키우고 교육시키는 데에 써야만 했다. 인간이 지능을 무기로 선택한 이래, 교육의 중요성은 점점 커졌고, 많은 정보들이 말을 통해 공유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지게 된 여자들만의 집단은 사냥꾼의 집단과는 달리 위계질서가 중요하지 않았다. 평등한 위치에서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는 방식으로 친근감을 키우는 것이 훨씬 유리했다. 여기에서 다정다감한 언어는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들 사이에서는 계급이나 독립성은 의미가 없었다. 서로가 비슷한 점을 찾아 함께라는 것을 느끼는 것이 대화를 하는 목적이었다. 여자들의 대화가 사냥꾼의 직설적인 대화법보다는 모호함이 있는 간접화법을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렇듯 말은 남자와 여자에게 다른 의미를 갖는다. 슬픈 것은 남녀가 이러한 차이로 인해 충돌한다는 사실이다. 상대를 자신과 똑같은 사냥꾼으로, 부녀회에 소속된 어머니로 가정한다면 실망은 피할 수 없게 된다. 물론 상대방이 나와 다른 집단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흘러 서로의 방식에 익숙해질 수는 있겠지만, 끝내 상대방을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다름을 극복하거나 없애려고 하는 것, 역시 바른 태도는 아니다. 남자와 여자의 모습이 그러하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상대방을 존중하는 길이고 유일하게 화합할 수 있는 길이 된다. 물론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결론이 아니라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자는 여자의 장황한 말 뒤에 다정다감함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여자는 남자의 무뚝뚝한 태도가 거만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배울 마음의 준비부터 갖추어야 한다.